# 164
2016년 6월 30일.
[최저임금 1만원VS동결, 협상 결렬(종합)]
[신민주당 환노위 "최저임금 인상해야, 대통령은 반성해라"]
[노병선 "李대통령 최저임금 의견 듣지 않아, 선거 때 정당 써먹기만 해"···여당도 힐난]
우스웠다.
기사만 봐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훤히 보였다.
이미 매 해마다 논란이 됐던 최저임금 협상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니?
여태 이런 적이 없었다.
심지어 MB 정부에 비해 최저임금 인상률도 높았다.
동결하기도 하고 2%만 인상하기도 했던 전 정권에 비해, 이번 혁신 정부는 평균 8% 가량 꾸준히 높여왔었다.
전생과 비교해도 약 1%포인트가 높은 수치.
그런데도 같은 정당의 대통령을 까는 이유는 하나였다.
대통령의 탈당.
물오른 최저임금 이슈를 이용해서 대통령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내쫓겠다는 것이겠지.
과정도 뻔했다.
신민주당과 이미 물밑에서 통합 논의를 마쳤을 것이었다.
합의도 없이 대통령을 내치고 여당이라는 자리를 내려놓을 리가 없을 테니까.
특히나 4선이나 해먹은 새정치당의 노병선 의원이나 5선의 염상수 의원이 그만큼 어수룩한 이들이 아니었다.
내 과한 제의도 단번에 걷어찼었고.
그사이, 박 보좌관이 국회 정론관 입장을 알렸다.
"준비 됐습니다, 의원님."
"갑니다."
하늘색 배경과 타원의 국회 로고를 등지고, 직사각형 모양의 연설대 앞에 섰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었고, 원고 송고를 위한 노트북에 손을 얹는 모습을 본 뒤 연설대 마이크를 조정했다.
이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초선 때만해도 긴장이 됐는데, 많이 서봐서 그런지 이제는 편안하기까지 했다.
물론 여기까지 올라오는 게 쉽진 않았다.
안 그래도 정론관 예약이 가득 차서 마음대로 설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나직하게 목소리를 냈다.
"안녕하십니까, 행복한국당 강북구을 국회의원 윤수혁입니다."
국회 출입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눈부심을 견디며 말을 이었다.
"오늘 오전, 최저임금위원회의 7차 전원회의가 결국 결렬되었습니다. 먼저 최저임금을 받아가며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생으로서, 그리고 원내 제1 정당의 최고위원으로서 오늘의 결과를 심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모두 공감할 수 있게 포문을 열고,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얘기했다.
불안정한 고용, 낮은 임금, 생활고 등등.
당연한 말을 떠들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현실은 최저임금 만 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너무 많이 올려도, 너무 적게 잡아도 욕먹는 게 최저임금이었다.
사회에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함께 있기 때문이었다.
"높은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갑질, 부당한 유통 구조, 그 외 노동계의 부조리 해결이 우선입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노동계가 싫어할 말이 자극적으로 헤드라인이 실릴지도 모를 일.
나는 힘을 주며 마무리를 지었다.
"저는 이번 최저임금 논란을 시발점으로 삼아, 행복한국당에 근로환경개선특위를 창설하여 뜻있는 민간 전문가를 모시고, 불공정한 사회 타파를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질 때, 정수리가 보이게 깊게 고개 숙였다.
원래 조성현 당대표에게 시키려고 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대선 행보를 보여야 하고, 근로특위로 언론의 주목을 끌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TV 출연이 잦거나, 유명해진 전문가들로 팀을 꾸릴 예정이었다.
화면발도 잘 받고, 이미지 메이킹도 쉽게끔.
무엇보다 내가 준비해온, 가장 중요한 사회 현안까지 해결해서 일석이조를 노리려고 했다.
대선이 1년 반 밖에 안 남았으니까.
그러나 조컨설팅의 조양준 대표에게 가로 막혔다.
공감하기 힘들다고.
조성현 당대표 보다는 내가 해야 효과적이라고 했었다.
조 대표도 가난했고 근로자였던 때가 있지만, 그 때와 지금은 다른 탓이었다.
80년대의 가난은 성장기였고 작금의 가난은 침체기였으니까.
그래서 불과 6년 전에 오래된 주공아파트에서 살았던, 서민층의 과거를 가진 내가 적격이라고 했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라고 힘겹게 만들고, 쌓아올린 이미지가 아니던가?
그리고 대한민국에 비슷한 예시조차 없을 정도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 말인즉슨, 공감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는 뜻.
나는 카메라 플래시에 정수리를 보여주다가 천천히 상체를 세우고, 몸을 돌렸다.
마치 결연한 각오라도 한 듯.
* * *
7월 중순, 오전.
행복한국당 당사 6층 제2회의실.
전면부 벽에는 '근로환경개선특별위원회 제 1차 회의'라고 인쇄된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 외에는 태극기나 화분, 기증 받은 그림 몇 점 정도가 벽을 채울 뿐.
아이보리 컬러의 벽과 천장이 인테리어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ㅁ'자로 디자인된, 족히 40여 명은 앉을 수 있는 회의 테이블에도 십수 명의 사람만이 앉았다.
휑할 법한 상황.
그러나 내부는 이미 어수선할 정도로 북적거렸다.
삼각대와 함께 설치된 방송 카메라와 수십 명의 기자들, 그리고 근로특위의 실무진들이 좌우에 마련된 의자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툭툭-
마이크 치는 소리가 울리자, 몇 마디씩 나누던 사람들이 입을 닫았다.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윤수혁이 마이크 높이를 조절한 것이었다.
"개의에 앞서서,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위원 여러분과 관계자분들, 그리고 기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윤수혁이 말끝에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회의를 선포하고 진행하는 국회의원의 권위적인 모습이 아닌, 친근한 모습이었다.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고, 윤수혁이 곧 의사봉을 쥐었다.
"의석을 정돈해주시기 바랍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근로환경개선특별위원회 제 1차 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땅- 땅- 땅-
타봉하자마자, 기자들이 또 다시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첫 번째는 윤수혁의 기조발언이었다.
취업 지옥의 현실, 경제 불황, 불안한 미래, 3포, 5포, 7포 세대 등등······.
작금의 현실을 언급하며 그럴싸한 말을 이어갔다.
근로환경 개선을 통해 올바른 경제 생태를 만들고, 최저임금 인상이 보다 쉽게 받아들여지고 적용되게끔 해야 한다고.
아주 당연한 말이었다.
언론사에서 받아 적길 바라고, 대중의 마음을 끌기 위해 만든 문장이기 때문이었다.
위원들이 나눈 10분간의 논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바쁘게 셔터를 눌렀고, 노트북으로 원고를 작성했다.
위원장이 윤수혁이라서.
그리고 앉아 있는 위원들도 모두 유명인이기 때문이었다.
SNS 활용으로 유명한 서울대 교수, 종편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박사, 해외 언론에서 유명해진 연구소장 등등.
그들 모두가 공인 취급 받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촬영이 바빴다.
사진만 잘 찍어도 기삿거리였으니까.
기자들은 허락된 공개회의가 끝날 때까지, 바쁘게 셔터를 눌렀다.
이윽고 시간을 확인한 윤수혁이 장내를 정리했다.
"공개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원활한 논의를 위해 지금부터 비공개 회의로 전환하겠습니다. 기자님들께서는 퇴장해주시기 바랍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마지막으로 몇 번 터지고, 기자들이 물러갔다.
아쉬운 표정은 아니었다.
유명인들만 데려다 모은, 쇼에 불과한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해결책이나 대처 방안도 나오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근현대 정치 역사에서 되풀이 되어온 일이니까.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정치권이 반응하고 정치적 도구로 써먹는 건 흔한 것이었다.
그걸 이 자리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기자들도, 당직자들도, 그리고 각자의 명패 앞에 앉은 근로특위 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쇼는 다 끝났나?'
위원 중 한 명인 박사 출신의 김세은이 속으로 생각을 곱씹었다.
그녀의 눈이 다른 위원들을 훑었다.
'다들 돈 백은 받았겠지?'
오늘 회의 참석 대가로 그녀가 받은 돈이 300만 원이었다.
서른 중반의 나이와 박사 학위, 관리한 미모 덕분에 이슈가 됐으나, 여태 회당 수십만 원의 출연료만 받은 것에 비하면 엄청난 거액이었다.
그래서 관심도 없던 정당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이었다.
이미 최저임금이 결정됐으니, 이것도 대충 하다 말겠구나 생각했었고.
그렇게 내부를 둘러보던 김세은이 혀를 내둘렀다.
이 자리를 채운 십수 명의 위원들이 모두 그만한 대가를 받았다면, 오늘 회의 한 번에 수천만 원이 증발하는 셈이었다.
'이게 다 얼마야? 공개회의 10분에 300이면, 완전 땡 잡았네.'
픽 웃은 그녀가 윤수혁을 바라 볼 때였다.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된 얘기 나누도록 합시다. 의사봉 같은 건 치우고······."
윤수혁의 말에 당직자가 나타나서 의사봉과 받침대를 가져갔다.
힘쓰기 전에 소매 걷는 듯한 분위기.
묘한 기류마저 흐르자, 앉아 있던 위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뭘 하겠다고?'
애초에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위원들의 눈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이 자리에 모인 위원들 모두가 그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언론 플레이를 위해서 자신들을 모아 놨다고만 생각했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그랬다.
사람들 면면과 수당으로 받은 돈과 공개회의 원고까지.
전시성 행정에 불과했다.
더구나 근로특위는 정부 기구도 아니어서 권리도 없었다.
행복한국당에 소속 되어 있는, 윤수혁이 위원장으로 있는 단순한 당내 연구 기구에 불과했다.
영향력이 전혀 없다는 뜻.
그러나 이어진 윤수혁의 말에 위원들이 움찔했다.
"먼저 저희가 손 댈 곳은 치바그룹입니다."
위원들이 눈을 껌뻑거렸다.
너무나 갑작스런 말이었다.
또한 귀를 의심케 하는, 난 데 없는 단어였다.
치바그룹은 호텔, 음료, 제과, 홈쇼핑 등의 계열사를 가진 공시 기업집단 국내 5위의 대기업이었다.
손을 대고 자시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어디요?"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김세은이 묻자, 윤수혁이 나직하게 답했다.
"회장 천기윤이 오너로 있는 일본계 대기업, 치바그룹이요."
"근데 거긴 왜······."
"그 치바에서 근로자 부당 대우와 원자재 계열사 몰아주기, 과도한 프랜차이즈 비용 부담······, 아. 직접 확인하시는 게 빠르겠네요. 하여튼 그런 종류의 의혹과 정황이 상당히 많습니다."
윤수혁이 말을 마치자, 보좌진들이 자료를 배부했다.
뭉치나 더미라고 표현할만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한 뼘이 넘는 두께에 위원들이 주춤했다.
그러나 한두장 페이지를 넘기며 훑기 시작하자, 위원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경을 고쳐 썼고, 마른 안구에 인공 눈물을 넣었다.
곧 박사 출신의 김세은을 시작으로 자료를 받아든 이들이 내용을 확인하느라 입을 다물었다.
"지금 나눠 드린 볼펜 뒤에 USB 메모리가 있습니다. 보고 계시는 서류 파일이니 자택에서 컴퓨터로 확인하실 수도 있습니다."
윤수혁의 말이 이어졌으나, 앉아 있던 이들은 이미 눈앞의 자료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느새 의원 몇이 중얼거렸다.
"······!"
"어허, 이거······."
"내부 자료도 있는 거 같은데?"
그렇게 위원들이 술렁이는 사이, 김세은이 고개를 들었다.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잠시 주저하듯 입술을 뗀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 파악을 다 했지만, 정확히 들어야 할 것 같아서 묻는 것이었다.
윤수혁이 손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러니까 아까 말씀은, 이걸로······."
"검찰에 고발하고, 정부 부처에 시정조치 요구하고, 법안 발의를 위한 자료 정리를 해주시면 됩니다."
위원들의 고개가 드문드문 들렸는데, 그들이 보내는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따지자면, 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니 자료를 조합하거나, 빈틈을 찾아 공략하면 고발장도, 시정 요구서도, 법안 발의를 위한 자료 정리도 못할 게 없었다.
그러나 예상 밖이었다.
이건 어떻게 보면 받았던 돈 이상의 일을 하라는 소리였다.
단순 연구나 방송에서 준비된 멘트를 날리는 게 아니고, 치바그룹을 상대로 전투 준비를 하라는 말이었으니까.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었다.
윤수혁을 제외한 열두 명의 민간 위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때, 윤수혁이 나직하게 목소리를 냈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대기업이라고 겁나시면 경호원도 붙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말끝을 흐린 윤수혁이 위원과 실무자들을 한차례 바라봤다.
"치바, 원래 휘청할 기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