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의원회관 신관 818호.
여기가 20대 국회 내내 내가 사용할 방이었다.
의원실도, 개인사무실도, 들어서자마자 느낀 건 경관이 끝내준다는 점이었다.
전에 3층이었던 337호와는 수준이 달랐다.
잘 가꾸어진 국회 정원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데다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국회 앞 경관도 도시 풍경화 같아서 멋있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의원님?"
어느새 다가온 박 보좌관이 집기 정리를 하면서 물었다.
절로 웃음이 났다.
"그럼요, 아주 좋습니다."
애초에 이 818호가 위치한 8층이 일명 로열층으로 불렸다.
경관이 좋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외에도 의원실 중에 유명한 곳이 더 있긴 했다.
예컨대 518호, 610호 등등 역사적 사건과 얽힌 숫자나 전직 대통령이나 당대표 등을 배출한 의원실이 그랬다.
그리고 경관 좋은 7, 8층까지.
당연하게도 이런 의원실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다.
방 배정에도 순서가 있었다.
국회의장을 시작으로 당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실세들, 그리고 원로 의원과 다선 의원, 마지막으로 재선 및 초선이 방에 입주하는 게 기본이었다.
내가 초선 때에 3층에 있는 337호에 들어간 게 그런 이유였다.
그때는 선택권이 없었다.
반면에 이번에 배정된 818호도 전에는 힘깨나 쓰던 사람이 입주했던 방이었다.
바로 김정환 의원.
한 때는 대선 후보였다가, 나중에는 5,000만 달러에 움직여서 20대 총선에도 나타나지 않은 사람.
방에 의미부여 하는 사람들은 대선 후보가 낙마한 이 방을 안 좋게 여기기도 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전망이 이렇게 끝내주는데 뭐가 나쁘다고?
더구나 내 좌우로도 조성현 당대표와 임청학 원내대표 등이 있어서 의견 교류도 쉬웠다.
추가로 내부 인테리어도 좋았다.
입주 전에 내부 책걸상은 물론이고 사무집기와 전자기기도 전부 싹 바꾼 덕분이었다.
웬만한 대기업 임원실 뺨칠 정도로.
그리고 벽 한 쪽에 나란히 쌓이다시피 진열된 각종 화분과 꽃바구니, 난초 따위도 보기 근사했다.
기분이 좋았다.
모든 게 잘 되고 있었다.
당연히 내가 하는 일만 그랬고, 다른 건 아니었다.
[신민주당 의원 20여 명, 새정치당 복당에 반대]
[새정치당 통합파와 잔류파로 나뉘어···혁신위는 닭 쫓던 개 처지]
[행복당 조성현 당대표 “복당과 통합보다 중요한 건 국회의원 본연의 직무"···신민주와 새정치에 쓴소리]
이게 오늘 난 신문이었다.
다행히 원구성 논의도 끝났고, 국회 상임위도 굴러가기 시작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부 정리가 되질 않아서 난 보도였다.
국회가 시끄러웠다.
오로지 우리 당만 잘 굴러가고 있었다.
애초에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갈라 먹고, 상임위원장 분배했다고 저절로 국회가 운영되겠는가?
일을 하는 건 사람이었다.
정신 딴 데 팔고선 아우성 지르기 시작하면 제 일을 못할 수밖에.
그 때, 사무실 전화소리가 울렸다.
내 스마트폰도 진동했다.
[당대표비서실 최고위원회의 알림 - ◎장소 : 본청 당대표회의실, ◎일시 : 금일 오전 10시 ◎내용 : 당협 정비의 건]
이미 일주일 전에 예고된 내용이었다.
당협 정비라고 하지만, 주요 내용은 각 시도당위원장의 교체와 선출이었다.
6월에 기존 시도당위원장의 임기가 끝나니, 하는 김에 내부 단속을 마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의 대선가도 때문에.
그러다 시간을 확인하자 헛웃음이 났다.
회의 30분 전이었다.
국회의원들이 워낙에 지각을 많이 하고, 각종 회의며 업무도 예정 시각을 넘기는 경우가 많아서 30분 전에 문자를 보내준 것이었다.
애초에 준비가 다 끝난 뒤에 느긋하게 오는 걸 체면으로 아는 족속이 이들이었다.
이건 학교든, 군대든, 회사든 마찬가지였다.
주인공이 늦게 온다는 말처럼, 윗사람은 항상 늦었고 자존심 강한 국회의원들은 더 그랬다.
그중에 나만 안 그랬다.
아니,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주말에도 쉬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없는데 누구 좋으라고 늦게 가겠는가?
물론 남들 늦는 것도 더 이상은 허용할 수 없었다.
이제 내 말을 무시할 사람도 없으니, 목소리에 힘 좀 줘도 되겠지.
"박 보좌관님."
"네!"
"앞으로 회의든 뭐든 저보다 늦으면 좃 된다고 소문 좀 내주세요."
"그거 제 전공입니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박 보좌관이라면 알아서 일을 잘 진행할 것이었다.
융통성 있게 어딘가에 말을 흘리고, 당내에 괜찮은 소문을 퍼뜨리겠지.
그 때, 나가려던 박 보좌관이 나를 쳐다봤다.
"의원님."
"예."
"그래도 너무 일찍 가시는 건 안 됩니다, 재선한 최고위원 가오가 있죠."
"일찍 갈 시간도 없습니다."
"아, 그건 그렇네요. 제가 딱 10시에 입장시켜드리겠습니다, 편히 일 보십시오."
박 보좌관이 꾸벅 고개를 숙인 뒤에 다시 개인사무실을 나갔다.
내 말대로, 그의 대답대로, 나는 시간이 없었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기존에 하던 국회의원의 업무는 물론이고, 이번 총선 치르면서 공약한 산후조리원 신축과 후원이사로 등록될 재단의 설립까지 처리해야 했다.
물론 일은 다 아랫사람이 한다지만, 나도 내 일을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직접 안하면 개판이 될 테니까.
애초에 우리 당도 나 아니었으면 진작에 몰락해서 꼴통 취급을 받았겠지.
* * *
6월 말.
[서울특별시당위원장에 윤수혁 합의 추대(종합)]
[행복한국당, 정당 중 유일하게 시도당위원장 선출까지 끝마쳐]
[조성현 "선출된 시도당위원장들과 합심하여 국정 운영에 최선 다할 것"]
정치면 기사가 채워졌다.
신민주당과 새정치당의 지난한 통합 얘기는 잠시 묻혔다.
제대로 된 진척은 전혀 없이 힐난만 이어지니 더 이상 기사로 쓸 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윤수혁이 언론사에 접대한 덕분이었다.
"기사 잘 봤습니다, 주간님."
"그래요? 잘 나오기도 했지요?"
"예, 노골적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하하하하, 다행입니다. 참, 저도 다시 한 번 제대로 축하인사 올리겠습니다. 우리 윤수혁 의원님 서울시당위원장 되신 거, 감축드립니다."
중앙일간의 논설주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윤수혁이 원내 제 1당의 실세라서, 재산도 1조가 넘어서 등등의 갖은 이유가 있었지만, 끝은 하나였다.
이익이 되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윤수혁에게 받는 접대와 수고비가 짭짤했다.
여타 정치인과는 정도가 달랐다.
하다못해 신년이나 구정, 추석에 돌리는 선물마저 아주 고가였다.
최상품의 한우나 와규, 아니면 값비싼 전통주와 잘 빚은 술잔 세트를 종종 받곤 했다.
그것도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것들이었다.
그사이, 윤수혁이 손을 내저었다.
"하하, 앉으세요. 낯부끄럽습니다."
"젊으신 분이 성공해서도 이렇게 겸손하기가 힘든데, 대단하십니다. 그럼 앉겠습니다."
그 뒤 짧게 안부 얘기를 나누다가, 윤수혁이 나직하게 목소리를 냈다.
"아, 오늘 제가 주간님을 모신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다름이 아니고, 논설주간님께 계속해서 같은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같은 부탁이라면······?"
"좋은 기사 말입니다."
"으허허, 저희 사이에 그 정도가 어렵겠습니까? 제가 행복당 기사도 매번 검토하고 있습니다. 아니, 취재 단계부터 길 잡아주고 있지요."
"그리고 좀 더 있습니다."
"뭐든 좋습니다, 어떤 겁니까?"
"비판 기사도 좀 내주셨으면 합니다. 신민주, 새정치, 청와대 전부."
그 말에 논설주간이 움찔했다.
옹호기사는 잘 써줘도 비판기사는 쓰기 어려웠다.
국민적인 시선이 모여 있는 게 아니라면 아예 손대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스폰을 한 군데에서만 받는 게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받았고, 그 중에는 행복당 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사주와 광고주의 입맛에 따라 바뀌는 게 기사의 논조였다.
논설주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비판 기사는 광고주들이 가만있질 않습니다. 사주도 그렇고······."
"포문만 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른 언론사도 받아쓰게끔 말입니다."
윤수혁이 담담하게 말했지만, 눈을 마주한 논설주간은 더 위축되고 말았다.
조금도 의견을 꺾을 기세가 아니었다.
안색이 절로 흐려졌다.
"그러다 잘못하면 잘립니다. 저도 위에 사주가 있는 입장이라······.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원님."
논설주간이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윤수혁에게 뭐든 해줄 것처럼 말했지만, 그것도 받은 것에 한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간 받은 접대와 돈, 선물 등등.
그 외에는 하기 어려웠다.
받은 만큼 일하지, 받은 것 이상으로 일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것도 명확한 약속 없이는 더더욱.
그 때, 눈을 마주한 윤수혁이 엷게 웃었다.
"제가 아무것도 없이 그러겠습니까?"
"그럼 어떤······?"
논설주간이 재깍 반응했고, 윤수혁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이번에 재단을 하나 만듭니다."
"아, 그렇습니까? 역시 훌륭하십니다. 참, 이거 온 더 레코드인지?"
관심을 보였던 논설주간이 기자였던 본능으로 묻자, 윤수혁이 엷게 웃었다.
"아직 조금 이르고요, 필요할 때 자료 배포하겠습니다. 그리고 재단은 새로 만들어서 자리가 꽤 많이 날 겁니다."
논설주간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뭘 줄지 눈치 챈 것이었다.
"제가 나중에 주간님 퇴직하실 때, 좋은 자리 정도는 하나 마련해드릴 수 있는데. 어떠세요?"
논설주간은 선뜻 대답하질 않았다.
평생 기자로 살았고, 논설주간이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다.
바로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은 지킨다는 것.
받을 거 다 받고, 줄 거 다 줬지만 그건 돈벌이라 했던 일들이었다.
일만해서 큰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돈벌이가 끝나고 은퇴하면, 나중에는 대학 교수나 언론 고문으로 체면 세우고 명예 지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단 일자리라니?
잘릴 지도 모르는 위험과 사주 눈 밖에 날 가능성을 감수하는 것치고는 약했다.
정말 잘못될 경우에는 퇴직 이후 대학은 물론이고, 웬만한 기업에 이력서 내기도 쉽지 않았다.
언론과 기업, 학교 모두 유착관계니까.
그런 점에서 퇴직 이후에는 어쩌면 울며 겨자먹기로 재단에 매달려야 할지도 몰랐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논설주간은 쉬이 판단하질 못했다.
이점이라고 해봐야 윤수혁이 전부였다.
그러나 윤수혁은 행복한국당의 정당 실세라곤 해도 나이가 너무 어리고, 앞으로 어떻게 고꾸라질지 모르는 일이니 그것도 저울질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논설주간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3,000억입니다."
윤수혁이 나직하게 말하자, 이해하지 못한 논설주간이 눈을 껌뻑거렸다.
"······?"
"그 재단 설립 자금이요."
논설주간의 동공이 화악 커졌다.
수백억짜리 재단만 해도 어마어마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3천억이라니?
"그리고 자금 추가로 더 댈 겁니다."
"······아! 아, 네."
논설주간이 당황함에 더듬대며 대답하면서도 3천억이라는 숫자에 정신을 못차렸다.
그러다 뒤늦게 입을 열어 물었다.
"저 실례지만, 그 자리라면 어떤 자리인지······."
"언론 계통 전문가시잖습니까? 그러니까 그 계열 이사 정도. 아니면 고문이나 자문도 있고요. 원하시는 자리 있으면 고려하겠습니다."
윤수혁의 대답에 논설주간이 정신을 다잡는 사이.
"그리고 재단 일은 깨끗해야하니까, 그 때부터는 제 스폰만 받으셔야 합니다. 이건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간님."
자신이 했던 말을 돌려받는지도 모르고, 논설주간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의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