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61화 (161/191)

# 161

5월 말.

[새정치당 결국 신민주당으로 복당하나?]

[여야 정당 합당설에 무소속 의원들 들썩!···과반 차지한 행복당은 무심]

[새정치당 노병선 정책위의장 “합당설은 행복당의 독주로 인해 생긴 얘기, 아직 논의된 것 없어”]

역시나 합당 얘기가 나왔다.

주인공은 새정치당.

뻔하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중요한 게 달랐다.

바로 합당설의 대상.

우리 행복한국당이 아닌, 신민주당이 합당의 타깃이 되어 있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노 의원이 임청학 원내대표를 통해 만남 주선을 부탁한 게 고작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인터뷰까지 하면서 이런 식으로 노선을 틀 줄이야.

내가 아무리 철벽을 쳤다고 해도 그렇지, 제 발로 걷어차고 나온 신민주당에 복당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실리가 중요하다고 해도, 자존심 꺾어가면서 복당을 간보는건 아주 드문 경우였다.

국회의원은 품위 유지 조항이 있을 만큼, 체면을 세워주는 직업이었다.

그만큼 목에 깁스를 하기도 했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대강 감이 오긴 했다.

노 의원에게 과한 요구를 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 있었다.

바로 조기 전당대회 의결.

그리고 당대표 후보자로 조 대표가 재출마 했고, 나도 최고위원 후보로 재출마했었다.

그래서 합당 경로가 바뀌었으리라.

우리 당의 권력이 너무 공고하게 변하니까, 그게 두려워서.

2, 3정당끼리 합치는 것이었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공통의 적을 두고 모이는 건 역사적으로도 잦은 일이었다.

더구나 군사정권 이후 최대 의석을 확보했고, 계파도 없이 연임에 도전하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일단은 간을 보는 거겠지만, 다음 수순은 정해져 있었다.

합당을 검토하는 게 어떻냐는 말이 나오고, 동시에 의원들도 연석회의 따위를 가진 뒤, 허수아비 시민단체를 내세워서 시위나 모임을 만들겠지.

다음은 이해관계가 맞는 의원들이 합당을 떠들 터.

전당대회로 권력이 고착화되면 아마 합당이든, 복당이든 가속도가 붙을 것이었다.

이미 눈에 훤했다.

저런 식으로 이뤄진 연극이 어디 한두 편이던가?

썰로 관심 끌어서 반응을 보고, 구체적으로 진도 빼는 건 이미 여러 번 봐온 일이었다.

"쩌 봐라, 쩌쩌. 저 철새들 몬 쓸 놈들 아인교? 의원님."

한 대의원의 목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그가 보도전문채널에 나온 합당설을 보면서 내게 말을 건 것이었다.

접대용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맞습니다, 저희 당에서는 못 쓸 사람들이죠. 걷어차고 나온 당에 복귀한다는 건 국회의원으로서 아주 줏대 없는 행위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대의원이 맞장구를 쳤다.

"하모요! 정치가 무슨 얼라들 방깨이도 아이고."

"와 존심을 파노? 쯧쯧."

대의원들이 저들끼리 맞장구를 치면서 떠들어댔다.

나도 반주를 따라주고, 고기 몇 점을 얹어주며 분위기를 맞춰주었다.

이게 전당대회 선거 유세였다.

대의원들과의 식사와 사진 촬영, 그리고 찬조금 기부.

그사이, 박 보좌관이 식당 룸으로 들어섰다.

나를 다음 유세장, 아니 식당이나 술집, 혹은 지역 행사장으로 데려가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다.

"대의원님들, 죄송하지만 의원님 스케줄 때문에 먼저 일어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벌써 그래 됐나?"

"죄송해서 어쩌죠, 전대 기간이 워낙 짧다보니 먼저 일어나야 될 것 같습니다. 시의원님하고 편히 드십시오."

"벌써 가십니꺼, 의원님?!"

시의원이 나를 따라 일어나려 하기에 자리에 앉혔다.

"편히 계세요, 대신에 제가 찬조금 조금 놓고 가겠습니다. 우리 대의원님들 당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대의원들이 손사래를 치는 사이, 5만원 권이 들어있는 두툼한 봉투를 내려놨다.

이건 뇌물이라기보다 관례에 가까운 돈이었다.

물론 평소보다 더 많았다.

보통 행사에서는 끽해야 수십만 원만 놓고 갔지만, 이번에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기에 수백으로 단위를 바꾼 것이었다.

위험할 것도 없었다.

지출만 좀 커질 뿐, 애초에 돈 먹여도 탈나지 않을 인간들 수천 명을 기억하고 있었고, 또한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정당 내 선거는 조사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내부 정보가 새어나가야만 선관위가 움직일 것이었다.

애초에 정당 선거를 관리하겠다는 법안이 정부에서 발의된 상황이었지만 상임위도 통과하질 못했으니까.

그 법안은 영원히 통과하지 못할 확률이 컸다.

전당대회가 원래 지저분한데다가 블랙머니(Black money)가 쓰이는 몇 안 되는 공식적인 시장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굴러다니는 곳이었다.

전당대회 한 번 할 때마다 최소 수백억에서 수조에 달하는 돈이 움직였다.

그래서 돈 많은 놈일수록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

박 보좌관 손에 10억을 들려 보내서 최고위원에 당선된 내가 바로 그 증거였다.

오죽하면 조 대표도 2억이나 타갔을까?

돈 없이 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당대표는 1억, 최고위원은 5천만 원의 기탁금을 시작으로 자체 여론조사, 공보물, 동영상 홍보물 제작과 응원도구, 포스터 생산 따위에 각각 최소 1천만 원이상의 돈이 쓰였다.

1회에 천만 원이 넘어가는 선거 홍보문자에다가 3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여의도 선거 사무실 임대료 2천만 원을 더한다면?

여유 하나 없이 싹싹 긁어모아 처리해도 2억은 필요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밥값이었다.

대의원 모임과 각종 행사 찬조금, 시도당위원회와 당협위원회 활동비 등등을 헤아리면 마찬가지로 최소 2억은 필요했다.

대의원과의 식대만 최소 1억이니까.

결론적으로 재계와의 스폰이나 뇌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받고도 모자랐다.

그래서 웬만한 국회의원들이 내 돈을 거부하지 않고 용돈처럼 타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은 윤수혁계가 정당 곳곳에 자리잡게 됐다.

이제 곧 호남권의 몇 없는 의원과 만날 예정이었다. 그들도 내 돈을 가져다 쓰는 내 사람들이었다.

호남 다음에는 충청, 인천을 거쳐 다시 서울로 복귀해야 했고.

거의 총선 선거운동과 비슷한 빡센 일정이었다.

그 때보다 물밑으로 쓰이는 현금이 더 많다는 차이가 있긴 했지만, 체력적 부담은 마찬가지였다.

"의원님, 이거 드시고 눈 좀 붙이셔야 합니다. 오늘 광주에서 밤새고, 조찬까지 하셔야 합니다."

어느새 박 보좌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양강장제 음료와 숙취해소 여명808, 비타민 보충제 따위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앞으로 나흘만 버티십시오, 의원님."

내 아들 지훈이도 못 본 지 벌써 한참 됐다.

생후 1, 2개월의 아이들은 하루, 이틀만 안 봐도 옹알이가 늘고 몸짓도 바뀐다던데.

괜히 지훈이 생각이 났다.

무감정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애아빠가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 * *

잠실 실내체육관.

콘서트장과 다름없는 커다란 단상과 전광판이 설치됐고, 주요 인사들이 앉을 좌석이 바로 앞에 주르륵 깔렸다.

그 뒤로는 방송국 카메라가 설치될 2미터의 단상이 가설됐으며, 나머지 1/3 공간에는 총 72개의 하얀 기표소가 세워졌다.

공간 여유가 빠듯한 구성이었다.

수백 명의 스태프와 당직자들이 빈 공간을 오가고, 9,100명의 대의원과 수백 명의 후보자 응원단이 세트장을 둘러싼 1, 2층의 관중석을 채우자,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당대표와 최고위원 후보들이 정견발표가 끝나고, 투표가 진행될 때는 더욱 복잡했다.

72개 밖에 없는 기표소에 9,100명의 대의원이 드나들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기자들의 촬영까지 이어졌다.

"저는 지금 행복한국당의 4차 전당대회 투표가 실시되는 잠실 실내체육관에 나와 있습니다. 현재 대의원 투표가 진행 중인데요, 기존 지도부의 연임이 가능한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투표장의 분위기는······."

기자의 말 대로였다.

기존의 지도부라고 해봐야 조 대표와 윤수혁, 호남 출신의 지명직 최고위원이 전부였지만, 많은 시선이 그 셋에 맞춰져 있었다.

애초에 연임이 아니라 사임이 더 많은 곳이 정치권이기 때문이었다.

트집 잡아 지도부를 교체하는 건 정계의 흔한 관습이었고.

그러나 행복한국당에는 계파를 위한 사모임도, 파벌도 없기 때문에 연임에 성공한다면 대선 때까지 지도부가 유지될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세 명이면 지도부에서 비율도 높은 편이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일반 최고위원 셋, 청년과 여성 최고위원 각각 한 명에 지명직 최고위원을 더해도 차기 지도부는 총 아홉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사무총장을 포함해도 고작 열 명.

그 열 명이 별 문제 없는 한 보궐선거 준비와 대선까지 떠맡으며 당의 각종 주요 사안을 이끌게 될 예정이었다.

정치부 기자들이 눈여겨 볼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대의원 투표가 마감된 뒤.

대기실에 있던 당대표와 최고위원 후보자들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와아아아아-

"윤수혁! 윤수혁!"

"조성현! 조성현!"

"남병기! 남병기!"

응원단의 목소리가 다시 체육관을 채웠다.

곧 투표 결과가 나오니, 지쳐서 웅성거리던 이들이 응원의 함성을 내뱉은 것이었다.

오후 7시 30분.

기존보다 지체된 일정 끝에 선거관리위원장이 단상에 올랐다.

큐사인을 받은 사회자가 얼른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대의원과 관계자 여러분, 행복한국당의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가 종료되었습니다. 곧 선거관리위원장님의 개표 결과가 발표될 예정입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울리자자, 체육관을 채우던 1만 여 명의 웅성거리던 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선거관리위원장이 마이크 앞에서 원고로 시선을 내렸다.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 투표 및 개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 총 수는 346,750명이며, 이중 당대표 선거인은 76,355명이 투표했고, 투표율은 22.0퍼센트였습니다. 총 유효 투표수는 76,213표이고······."

투표와 관련된 긴 설명이 이어진 뒤.

"······당대표 선거는 기호 1번 조성현 후보가 58,201표를 득표했고, 기호 2번 이민준 후보가 36,742표······."

후보 이름이 명명될 때마다 환호가 울렸다.

그리고 세 번째 후보자의 득표수가 나오기도 전에, 후보들을 촬영하던 카메라가 조성현을 향했다.

당선이 확실시 된 것이었다.

남은 표는 고작 2만여 표에 불과.

관중석에서도 조성현의 이름을 반복하는 환호하는 함성이 쏟아졌다.

조성현이 환히 웃으며 나란히 앉은 후보들과 악수를 나눴고, 선거관리위원장은 입을 다물어서 잠시 공백을 만들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발표 중이기에 짧은 인사만 하자, 선거관리위원장은 최고위원 열 명의 득표수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후보자의 득표수가 나올 때마다 환호가 일었다.

그리고 득표수 계산을 한 대의원들과 당선자의 얼굴에 희비가 갈렸다.

"당선자 선포를 하겠습니다. 당헌 제27조, 제28조에 따라서 행복한국당 당대표로 기호 1번 조성현 후보가 당선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환호가 일고, 조성현이 다시 일어나 관중석을 향해 고개 숙였다.

카메라 플래시가 그의 정수리를 덮친 뒤.

선거관리위원장이 원고와 카메라를 번걸아 보며 목소리를 냈다.

"최고위원으로는 기호 3번 윤수혁 후보, 기호 1번 고일준 후보, 기호 7번 남병기 후보, 기호 8번 김원석 후보, 기호 5번 강미순 후보가 선출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상 당선자 발표를 마치겠다는 목소리는 대의원의 환호에 사라졌다.

땅- 땅- 땅-

세 번의 타봉소리도 온갖 환호성에 묻힌 뒤, 팡파레가 체육관 내부를 울렸으며, 단상에선 하얀 연기가 뿜어졌다.

마치 피날레 공연을 장식하는 듯했다.

이로서 행복한국당의 차기 지도부가 만들어졌고, 조성현이 당대표 연임에, 윤수혁도 최고위원 연임에 성공했다.

마이크를 든 기자들이 앞 다투어 생중계를 했고, 언성을 높였다.

"······조성현 후보가 전당대회 투표 결과 당대표로 선출되어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조성현 후보와 윤수혁 후보의 당선 여부는 결국 연임 성공으로······."

"······조성현 당대표와 윤수혁 최고위원의 연임으로 차기 당 지도부가 결정되었습니다."

2016년 6월 1일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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