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70평대 집이 가득 찰 정도로 아기 울음은 가히 맹렬했다.
그런데도 웃음이 났다.
구두를 벗고, 정장 상의를 벗으며 침실로 향하는 중에 아기 울음소리가 곧 잠잠해졌다.
방문을 열자, 모유 수유하는 한사랑이 보였다.
“나 왔어요.”
“오늘 일찍 왔네요.”
“원내대표 투표도 끝나고 당장 할 일은 다 해서······.”
“쉬잇.”
한사랑이 입을 모으며 내게 눈짓했다.
내 아들, 지훈이가 젖을 물자마자 눈을 감고 있었다.
벌써 자는 모양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집에 온 지 며칠 안 됐지만, 익숙한 광경이었다.
태어난 지 이제 3주차, 하루 대부분을 자는 데 소모하는 시기였다.
아이가 깰 때는 배고프거나 불편할 때.
그간 산후조리원에 머물러 있어서 아직 구체적으로 알진 못했지만, 며칠 겪어보니 대충 알 것 같았다.
아이는 새벽에 자주 깼고, 그러면 기저귀를 확인하고 수유해줘야 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한 시간에서 서너 시간 간격.
그래선지 나는 더 피곤해서 간신히 상체만 세웠는데, 한사랑은 육아 기록지에 배변과 수유 여부까지 기록하고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
그게 이틀 정도 반복될 때부터는 잠결이지만 나도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분유를 타오겠다고 말했는데 거절당했다.
“지훈이가 젖병을 잘 안 물어요. 그리고 모유가 더 맛있어요.”
나중에야 알았다.
애들이 실리콘 재질의 젖꼭지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 정말로 모유가 분유보다 더 달짝지근하다는 사실도.
어쨌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한사랑이 아기 침대에 조심스레 지훈이를 뉘이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였다.
으아앙-
등에 무슨 버튼이라도 달렸는지, 눕자마자 아이가 팔버둥, 발버둥을 치며 울기 시작했다.
“내가 안을게요.”
앉아서 수유하느라 허리가 뻐근했는지, 한사랑이 순순히 지훈이를 건네주었다.
“목 잘 받쳐줘요.”
“나도 애 아빠에요, 벌써 열 번도 넘게 안아봤어요.”
“열 번으로는 부족한데······, 조심해요.”
한사랑이 걱정스런 눈으로 보는 사이, 지훈이를 안았다.
작고 따듯했으며 부드러웠다.
그것도 한 시간까지.
그 이후부터는 딴 생각조차 나질 않았다. 은근히 허리와 팔이 아렸다.
아기침대에 내려놓으려고 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계속 품에 안은 채로 서서 흔들거려야 했다.
물론 지훈이의 무게라고 해봐야 4~5kg이 전부였지만.
어찌 아기를 함부로 들 수 있겠는가?
계속해서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조심스레 머리와 목을 받치고, 반복적으로 천천히 움직이다보면 이상하게 등줄기에 땀까지 났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어갈 무렵.
“내가 할게요.”
주방과 아기방을 오가며 집안일을 마무리하던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말하면서 결국 조심스레 지훈이를 건네주었다.
“하려고 했는데, 하······.”
“푸흐, 내가 열 번으로 부족하다고 했죠?”
“미안해요. ······그런데 괜찮아요?”
“뭐가요? 재우는 거? 아니면 새벽에 깨는 거, 아이 달래는 거, 어떤 거요?”
“······아니에요, 괜히 물었네.”
내 대답에 한사랑이 가볍게 미소지었다.
화장기 하나 없이 수수한 모습이지만 역시 아름다웠다.
지훈이 얼굴이 예쁘장할 수밖에.
딴 생각이 드는 와중에 그녀가 곧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모님이 많이 도와줘서 낮에는 편해요.”
“그 이모님 연봉이 대기업 초봉 수준이에요, 주말까지 나와서 요새는 추가 수당까지 받을 걸요? 불편하면 안 되죠.”
“흐······, 이럴 때보면 수혁 씨 같네요.”
“예?”
“아니에요. 음, 세수 하고 올래요?”
“어? 아······.”
이마에서 땀이 한 방울 주욱 흘렀다.
헛웃음이 났다.
유세할 때도 잘 안 흘리던 땀이었다. 그런데 아이 좀 안았다고 흘리다니.
육아 보다는 의정 활동이 적성에 맞는 모양이었다.
팔뚝도 뒤늦게 저릿했다.
반면에 한사랑은 대견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가는 팔로 아이를 안고 살랑거리고 있었다.
“······대단하네요.”
그리고 들려온 대답.
“쉬잇.”
벌써 지훈이가 뒤척임을 멈추고, 쌔근거리기 시작했다.
나이는 이제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한사랑은 지난 10개월 간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면서 엄마가 다 되어 있었다.
가벼운 상념을 날리고 한사랑을 도와 지훈이를 아기 침대에 눕혔다.
숨까지 멎은 채 조심스레 움직였다.
무겁고 힘겨운 몇 초가 지난 뒤, 지훈이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숨을 삼키는 그 때.
으앙-
또 울었다.
한사랑이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 없이 웃었다.
* * *
- 행복한국당은 다가오는 23일, 전당대회 후보자 등록 신청을 받은 뒤 내달 1일에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틀 뒤 밤 8시 30분에는 종합편성채널인 중앙채널에서 행복한국당 당대표 후보자들의 첫 TV토론회가 방송될 예정이며······.
행복한국당의 전당대회 계획이 보도 됐다.
이례 없을 정도로 이른 조기 전당대회로 다소 조급하다는 평도 있었다.
그러나 포스터 제작과 TV토론회, 합동 연설 등의 일정이 기다렸다는 듯 정해졌고, 당대표 후보자를 비롯해 최고위원 후보 인선도 뚜렷해지자 그런 말이 쏙 들었다.
그리고 언론이 비난할 거리는 다른 곳에 더 많았다.
바로 제 2, 3의 정당들
[신민주당 비대위 출범, 당명 바꾸기 공모전 개시]
[새정치당 지도부 사퇴 이후 행보 삐끗···개혁위원장 추대 합의 물 건너 가]
[교섭단체 지위 상실한 보수신당, 당명 진성애국당으로 바꿔]
각 정당마다 기사가 나왔다.
주로 선거 이후에 반복적으로 행해지던 비대위나 개혁위의 출범, 혹은 합의 무산과 당명 변경 따위가 전부였다.
이는 총선이나 대선, 지방 선거 같은 정치계에 바람이 불 때마다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다.
혁신을 가장해서 물갈이를 하는 것이었다.
지도부나 반대 계파 등등.
비록 20대 국회가 개원하고 원구성 협상이 난항으로 빠졌음에도, 당 안정과 혁신 따위를 기치로 내걸고 내부 작업을 강행하는 것이었다.
선거에서 참패한 지도부만큼 쳐내기 좋은 명분은 또 생기려면 몇 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시끄러운 국회 분위기를 감지한 두 공무원이 휴게실에서 잡담을 나눴다.
“행복당만 조용하네요. 역시 다른 정당하고는 틀린 건가······.”
신입 공무원이 커피를 홀짝이며 중얼거리자, 선임이 눈살을 찌푸렸다.
“얼래? 너 백조 모르냐?”
“기러기목 오리과 대형 물새잖아요.”
“······별 걸 다 아네, 하여튼 백조가 수면 위로는 고고해도 물속은 어떠냐?”
“물갈퀴로 헤엄치죠.”
“그래, 쉴 틈 없이 엄청나게 바쁘잖아.”
선임이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행복당이 조용해 보이는 건, 물밑에서 이미 치고 박고 싸워서 그런 거야.”
“싸웠다고요?”
“다른 정당이 지도부 교체하느라 진땀빼지? 그걸 조용히 처리했다고, 인마.”
“어떻게요?”
“윤수혁이 다 했지.”
“어? 윤수혁은 국민적 영웅······.”
“어휴, 너 여기 온 지 일주일이라고 했냐?”
“예, 팀장님.”
“윤수혁이 행복당 와따야, 인마.”
“와따······요?”
“짱, 새끼야.”
선임의 다소 거친 어투에도 젊은 공무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이 조용함이 그냥 조용함이 아니야, 폭풍전야지.”
“아! 그거 때문이죠? 전당대회!”
“그래, 그건 알아먹네.”
선임이 그러면서 전당대회에 관한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할 무렵.
“어, 안녕하십니까!”
젊은 공무원이 고개를 숙였고, 사수도 움찔한 뒤 폴더처럼 허리를 접었다.
“기, 김 의원님.”
충북충주시 국회의원 김정수.
그리고 윤수혁의 외삼촌으로 더 유명한 행복한국당의 실세가 등장한 것이었다.
또한 국회 사무처에서 근무했던 상급 공무원 출신이었다.
선임이 겁먹은 사이, 김정수가 여유 있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성철아. 너 아직도 신입 겁주고 다닐래?”
한 때 국회 사무처에서 근무하며 안면도 트고, 대화도 나눴던 사이였다.
선임이 얼른 고개 숙이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의원님”
“거기 젊은 친구도 일 열심히 해, 성철이 따라하진 말고.”
“알겠습니다!”
신입이 힘차게 대답하자, 김정수가 다른 이에게도 인사하며 금방 휴게실을 떠났다.
신입이 엷게 웃으며 선임을 쳐다봤다.
“와, 방금 사단장 같았는데요. 포스가 생활관 둘러보고 나가는 투스타의······.”
“맞아.”
“예?”
“맞다고, 사단장. 괜히 구경하고 갔겠냐? 저 분이 이번 국회사무총장 내정자야.”
“그거는 국회의장이 정하는······.”
“국회의장은 누가 뽑냐?”
“정당 간에 후보자 협의해서······.”
“후보자는 누가 내?”
“당 지도부가······.”
“행복당 와따가 누구라고?”
“윤······, 아. 사단장님 조카요.”
뒤늦게 깨달은 대답에 선임이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사무차장도 못했던 분이 국회사무총장이 될 줄이야······.”
국회사무총장은 국회 사무처의 수장으로서, 의장의 감독을 받아 국회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이었다.
군사정권 이후부터는 직무대리를 제외하고 모든 사무총장은 국회의원 출신이었다. 주로 여당이나 원내 제1당으로 의석이 많은 당에서 사무총장직을 차지 했었는데, 이유는 하나였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서 그랬다.
또한 정당에게 필요한 직책이기도 했다.
국회의 사무를 돌보기에 입법 과정에서 불필요한 지연을 막고 신속히 발의를 도와 같은 정당에 도움을 주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국회 운영과 인사권 따위를 틀어 쥐고 있었고.
이윽고 커피를 비운 선임이 표정을 구겼다.
“아! 이거 좃 됐네.”
“예?”
“너 같으면 사단장이 이름 외우는데 어떻겠냐? 좋겠냐? 좃 됐겠냐?”
“아······, 아······!”
신입이 깨달았다는 듯 입을 열자, 선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도 이름을 기억할 줄이야, 으휴······.”
* * *
“외삼촌, 타세요.”
“혼자 맞지?”
“보좌진 있는데 괜찮아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영석이하고 박 보좌관 뿐이었다.
차 내를 힐끗 살핀 외삼촌은 카니발 리무진에 발을 올리면서 히죽 웃었다.
“오랜만이네, 우리 조카.”
여태 가족 관계였지만, 말 한 번 편하게 하질 못해서 그랬었다. 웬만하면 공석(公席)이었고, 공석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항상 함께 있었다.
당대표가 됐든, 원내대표가 됐든, 정책위의장이 됐든.
그런 이들 앞에서 보궐선거 초선에 불과한 외삼촌이 함부로 떠들긴 힘들었다.
아니, 외삼촌이 알아서 조심했었다.
국회 사무처에서 수십 년을 일했던 만큼 눈치도 상당하고, 듣는 귀도 밝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조카한테 폐가 될까 걱정했던 것 같았고.
“간만이네, 둘이 있는 거. 새서방 되고서 얼굴 보기 더 힘들었는데 말이야.”
“죄송해요, 너무 바빠서.”
“죄송하긴, 네가 나한테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사실 오늘도 전대 시작하면 더 뵙기 힘드니까, 그래서 같은 차로 가는 거잖아요. 원래 식사라도 대접했어야 했는데.”
“그런 소리 말아라, 차면 어떻고 식당이면 어떻니.”
충청도와 대전으로 전당대회 운동하러 나가는 길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역구 의원인 외삼촌에게 도움을 좀 받는 것이었고.
외삼촌이 상관 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어쨌든 밥은 같이 먹잖아?”
“대의원들이랑 같이 먹는 건데요, 제가 따로 대접해야죠.”
“네가 그럴 시간이 어딨니, 너 같이 클 놈은 얼른 세계로 나가야지.”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감사는 뭐. 내가 감사하지. 아니지, 사실 항상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지 마세요.”
“어어? 나 아직도 기억력 좋아, 인마. 네가 국회 사무총장 시켜준다고 했던 것도 다 기억해.”
“흐흐, 아직 사무총장은 안 됐잖아요.”
“그래도 후보자에 내 이름 올라가는 게 어디니, 사무차장도 못 달고 퇴직했는데 말이야. 국회 사무총장이라니······, 히야.”
외삼촌이 먼 곳을 응시하듯 초점을 흐렸다.
“그게 6년 전이었지?”
“예, 제가 7급 비서했을 때니까요.”
“······참, 감개가 무량하다.”
“벌써 감상에 젖으시면 안 돼요. 국회사무총장 일 빡센 거 아시잖아요?”
내 말에 외삼촌이 엷게 웃었다.
조금은 무겁기도 하고, 흐릿하기도 한 미소였다.
내가 바라보자, 외삼촌의 한마디가 나직하게 다가왔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