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59화 (159/191)

# 159

내 아이를 안았다.

원래 갓 태어난 아이는 생김새가 못 생겼다고 들었다.

그래서 산부인과 대기실에 걸린 출산 직후의 사진을 봐도 주물러놓은 듯 생긴 애들이 많았다.

대개 핏자국 때문에 흑백 처리된 사진들이었는데, 지금 보니 내 아이는 그런 사진과 달랐다.

예뻤다.

내 아이라서 그럴까?

아니, 미모가 출중한 한사랑 덕분이겠지.

그렇다고 웃음이 나진 않았다.

손끝까지 긴장된 상황이었다.

갓 태어난 3.52kg의 조그만 아이를 안고 있는 건 손끝이 떨리는 일이었다.

애초에 아이를 받아들 때부터 자세가 엉성하기도 했지만.

연약하고 가녀린 아기의 맥박을, 숨소리를 들으면 석상처럼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하릴없이 아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흰자와 아득할 정도로 검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형광등이 버거운지 한 쪽 눈만 뜨고 있었는데도, 마주하자니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고, 동영상이 촬영되는 것도 잊을 정도로.

아무 말도 채 못한 채 바라만 보다가, 분만실 간호사에게 다시 아이를 건네주었다.

그제야 길게 숨이 토해졌다.

아이 주위로 서 있던 장인장모와 부모님의 인기척도 뒤늦게 느껴졌다.

단계별로 불이 켜지듯, 울음도 나중에야 들렸다.

장모가 소리 내어 우는 중이었고, 어머니도 눈물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애 봤으니 이제 담배 한 대 태우고 오마.”

아버지는 병원에 들어온 뒤로 꾹 참았던 담배를 태우겠다고 걸음을 옮겼다.

장인, 안드레 한 만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고생했네.”

내가 무슨 고생을 했을까 싶었는데,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여전히 먹먹했다.

“나도 사돈 따라서 담배나 태우러 나가겠네.”

안드레 한이 자리를 비우고, 나도 과장의 도움을 받아 수술복을 갈아입었다.

이윽고 과장이 내게 거울과 빗까지 건네주었다.

“산모님께서는 회음부 봉합과 세척, 소독을 하고 수액 주사 뒤에 VIP실로 옮길 예정입니다.”

내 의전이라도 맡은 건지,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따듯한 커피라도 좀 드릴까요?”

“······예.”

대답하자, 그가 가족 대기실로 머릿수에 맞춰 커피를 내왔고 내게 귓속말을 더했다.

“득남 축하드립니다, 의원님.”

“아, 고맙습니다.”

“정말 실례지만, 같이 사진 한 장만······.”

“예, 찍으세요.”

그렇게 셀카 촬영까지 마친 뒤.

뜨거운 커피를 삼키자 멍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아버지와 안드레 한도 옅은 담배냄새와 함께 대기실로 들어왔고, 장모와 어머니는 눈물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도 이제 할 일을 해야겠지.

연석회의도 팽개치고 왔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기자들도 내 뒤를 따라 왔었다.

나는 무음 처리했던 스마트폰을 꺼내서 화면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떠올랐고, 카톡도 999개까지 표시된 상황.

나는 그중에 박 보좌관과의 채팅창을 확인했다.

그가 보낸 새 메시지가 꽤 많았다.

[최 비서하고 병원 로비에서 대기 중입니다.]

[로비에 기자들도 오는 중인데, 소식 듣고 계속 몰려옵니다. 내려오시기 전에 연락 주십시오.]

[준비한 배포 자료 바로 뿌렸습니다. 지금 온라인으로 기사 나갈 겁니다.]

[의원님, 아무 이상 없으시죠? 내려오시기 전에 연락 주십시오.]

그 외에도 상황 보고하거나 내 상황을 묻는 카톡 몇 개가 연달아 와 있었다.

이 정도면 내가 재선 됐을 때보다 더한 관심처럼 보였다.

카톡을 확인하는 와중에도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으니.

나는 걸려오는 전화를 무시하고 일단은 박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시작하자마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박민푭니다, 의원님. 순산하셨습니까?

“예, 방금 아이도 안아봤습니다.”

- 축하드립니다, 의원님. 그런데 여기 상황 관련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

“예, 카톡 봤습니다. 말씀하세요.”

- 지금 저하고 최 비서는 병원 측에서 대기실을 마련해줘서 잠깐 쉬고 있습니다. 기자들도 배포자료 받고 일부가 돌아가긴 했는데, 의원님 인터뷰 따려고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와이프 얼굴보고 인터뷰하러 내려갈게요.”

- 로비에서 하면 번잡하고 방해되니까 차라리 조그만 회의실 하나 잡으면 어떠십니까?

“아이 낳는 걸로 유별 떤다고 하진 않겠습니까?”

- 통행에 방해되는 거라서 따로 하는 게 낫습니다. 기자들한테도 말 잘해놓겠습니다. 그러면 배포자료 낭독한 뒤, 5분에서 10분 내외로 질문 받는 걸로 가겠습니다. 괜찮으시죠?

“예, 근데 기자가 몇 명이나 왔어요?”

- 로비에만 3, 40명은 있습니다.

“로비? 딴 데 어디 더 있어요?”

- 지하주차장에도 열 명은 있습니다.

헛웃음이 났다.

도망갈까봐 지하주차장에도 내려갔다니.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 정치계에 연예인이시죠. 그럼 내려오시기 전에 연락 주십시오. 병원 측에 비어 있는 회의실 하나 요청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아, 그리고 의원님.

“예?”

- 2세 탄생,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 *

[(속보)행복한국당 윤수혁 득남]

[캡틴코리아 2세 탄생···윤수혁 연석회의 도중에 뛰쳐나가(종합)]

[윤수혁 “재선 당선에 이어 아들 출산 정말 행복해, 가정과 국가에 충실할 것”]

윤수혁이 출력한 기사 확인을 마칠 무렵이었다.

“당대표님 오셨습니다.”

문 바깥에서 들린 소리에 윤수혁이 사무책상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문이 열리고 조성현이 웃는 낯으로 들어왔다.

“득남 축하합니다, 윤 최고.”

“고맙습니다, 대표님.”

“조촐하지만 출산 기념 선물입니다, 뭐가 좋을지 몰라서 인기 제일 좋은 걸로 샀습니다.”

조성현이 웃으며 작은 반지 케이스를 건넸다.

딸칵.

뚜껑을 연 윤수혁이 엷게 미소 지었다.

안에 있는 건 앙증맞은 디자인의 발바닥모양 금반지였다.

“귀엽네요, 잘 받겠습니다.”

거절할 뇌물 수준이 아니었다.

일반인들도 아기 옷이나 반 돈 이상의 금반지를 종종 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축하 명목으로 사무실로 손바닥만한 화분부터 꽃다발과 각종 선물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조성현은 자연스레 소파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애아빠 돼서 정신도 산만하고 심경도 복잡할 텐데······, 미안하게 하나 물을 게 있어서 왔습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그러자 조성현이 웃음을 지워내며 나직하게 물었다.

“원내대표 경선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이번 연석회의 의견 참고해서 진행하기로 했지 않습니까?”

“그러겠지만, 윤 최고의 개인 의견을 묻는 겁니다.”

“후보자 분들 다들 괜찮던데요. 개인적으로는 임청학 의원님이 제일 나아 보입니다.”

“그 말은 직접 지원은······.”

“아, 없습니다. 어느 정도 물갈이도 됐고 정비도 됐으니까요. 이번에 돈깨나 썼습니다, 다음 선거 생각하면 좀 아껴야죠.”

윤수혁이 커피를 꺼내오면서 마주 앉자, 조성현이 다행이라는 듯 미소 지었다.

“잘 생각했습니다. 나도 당분간은 윤 최고가 되도록 손대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소문 때문에 그러시죠?”

“그래요, 윤 최고가 정계 흑막이라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나오잖습니까? 이럴 때는 조용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대표님께서 그런 말씀하시는 건 조금 낯서네요. 해명하는 쪽이 대표님 스타일 같은데.”

“그런가요?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조성현이 미소와 함께 말을 덧붙였다.

“축하 인사 화환만 봐도 반은 맞는 것 같은데, 아닙니까?”

“······말뿐인 축하인데요?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조성현이 그러면서 개인 사무실 한쪽 벽면에 놓인 화분들을 바라봤다.

[윤수혁 의원의 득남을 축하합니다. - 존 패터슨 대사]

[윤수혁 의원의 2세 탄생을 축하합니다. - 알렉산드르 루샤일로 주한 러시아 대사]

[윤수혁 의원의 득남을 축하합니다. - 주한중국대사 장리싼]

그 말에 윤수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중국 대사까지 보낼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러시아 대사도 안면만 있지, 아는 사이라고 보긴 어려운데······.”

멋쩍은 설명이 이어지자, 조성현이 웃음 터뜨렸다.

“하하하, 놀랍네요. 정말. 한국 정치 흑막이라고 소문이 날 법 합니다.”

“듣다보니 나쁜 소문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그만큼 대단하다는 걸로 들려서요.”

“그런 마음가짐 좋습니다. 여유 있어 보입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정치해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왜 은퇴하실 사람처럼 말씀하세요? 대표님께서 제 곁에 계시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 말에 조성현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랬죠, 그런데 내 나이도 60이 넘었습니다. 윤 최고는 이제 서른둘 아닙니까? 내가 눈 감은 후에, 더 오래 정치하지 않겠어요?”

윤수혁이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리자, 조성현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윤 최고는 더 큰 인물이 될 겁니다.”

* * *

5월 초.

- 오늘 오전, 행복한국당에서 원내대표 경선을 위한 합동토론회와 정견발표회가 있었습니다. 현재 투표장에서는 행복한국당 소속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162명이 원내대표 결선 투표를 마쳤고, 잠시 뒤에 투표 결과가 나올 예정입니다. 국민적 지지를 얻어 최대 다수당이 된 행복한국당의 신임 원내대표에 대한 귀추가 주목 되는 가운데······.

투표장 바깥에서 기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개표식 중인 테이블을 바라봤다. 당 지도부가 참관한 가운데 당직자들이 하나씩 표를 꺼내서 펼치고 있었다.

종이가 펼쳐질 때마다 이름이 불리고, 화이트보드에 바를 정(正) 자 한 획이 추가 되었다.

부스럭.

“임청학, 정재남.”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짝 지어 이뤄지는 3파전으로 총 6인이 참가한 투표였다.

부스럭.

“임청학, 정재남.”

그러나 표는 한 팀에만 몰리고 있었다.

바로 임청학, 정재남팀.

임 의원은 나와 국방위 시절 같이 해온, 내 라인이었고, 정재남도 반기를 들지 않고 내 편에 선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둘의 호흡이 잘 맞았고.

“임청학, 정재남.”

바를 정자를 긋던 대변인이 멈칫했다.

“현재 162표중 143표가 개표 되었으며, 그 중 77표를 획득해서 당선 되었습니다. 기록을 위해서 마저 개표하겠습니다.”

그렇게 이뤄진 투표.

“과반 득표 워딩을 사용하면 되겠네요.”

“알겠습니다, 의원님.”

대변인이 내게 깍듯하게 대꾸했고, 조 대표가 몸을 일으켰다.

곧 문을 열고 나가자, 의원들과 기자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당 지도부가 앞 자리에 앉는 사이, 사회자가 올라가서 짧게 멘트를 던졌다.

그사이 단상에 올라간 조 대표가 마이크를 켰다.

“개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투표 결과, 총 162표 중 88표로 과반 득표하여 임청학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정재남 의원이 정책위의장으로 당선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회의실을 울렸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사회자석에 선 대변인이 잠잠해 질 즈음에 목소리를 냈다.

“임청학 신임 원내대표께서는 단상에 올라오셔서 수락연설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임 의원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단상으로 훌쩍 올라갔다.

“안녕하십니까, 부산 금정구 출신 임청학입니다.”

인사 뒤에 그의 정치 철학이 줄줄이 나왔다.

실용적인 국정 주도와 원내대표로서 낼 수 있는 성적을 언급하면서 대선까지 준비하겠노라 선언한 것이었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바쁘게 터지는 가운데 임청학이 앞자리의 나와 조 대표를 쳐다봤다.

“끝으로 우리 당을 쇄신하고 이끌어 준 조성현 당대표님과 한국 정치에 희망을 만들어준 윤수혁 최고위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락연설에서 인사라니.

조 대표가 자연스레 인사를 받는 가운데, 나는 가볍게 웃고 말았다.

이건 뭐 줄서겠다고 광고한 꼴 아닌가?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줄을 서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내 힘이 될 터.

미소가 쉬이 가시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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