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58화 (158/191)

# 158

소문이 돌았다.

윤수혁이 행복한국당의 주인이라고.

낯선 얘기는 아니었다.

이미 실세라는 말은 국회 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많이 나도는 상황이었다.

실세가 오직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은 죄다 실세라고 부르기 때문이었다.

누가 명문화(明文化)해서 규정한 게 없으니까.

그중에서도 나는 실세 중의 실세로 알려졌다. 아마 우리 당 사람들도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컸다.

최고위원인데다가 당대표와 자주 접촉하는 사람이며, 이번 선거에서도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총괄본부장을 맡은 덕분이었다.

그래서 당내뿐만 아니라, 이 바닥 관계자라면 대부분 내 위치를 대충 알긴 했다.

그러나 주인은 아니었다.

애초에 실세하고는 격이 다른 말이었다.

더 자극적이었고, 직접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사물이 아닌 정당에 쓰기에는 부적절한 말이 아닌가?

그러나 내가 듣고 싶던 말이었다.

먼저 소문내지 않아도, 알아서 그런 말이 들렸으면 했었다.

그게 드디어 내 귀에 들렸다.

그 말인즉슨, 우리 당에서도 안 들어본 사람이 없다는 뜻일 터.

그래서일까?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빛이 묘했다.

카메라가 있으니 별 말을 하지 않을 뿐, 모두 심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름 거물 취급 받는 이들이니 기분이 이상할 것이었다.

그들 중에 조성현 당대표만이 의연하게 모두발언을 진행하고 있었다.

곧 발언이 끝나고 진행을 맡은 부대변인이 입을 열었다.

“이로써 존경하는 조성현 당대표님의 모두발언을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전당대회준비위원회와 원내대표 경선 준비 과정에 대해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순서는 고일준 의원님입니다.”

그러자 고 의원이 마이크를 조정하면서 내 눈치를 봤다.

내 사람이나 다름없는 그도 정계에 파다한 소문이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공천을 시작으로 총선 마무리까지 내가 모든 걸 주도했다는, 최근의 얘기부터 찌라시로나 돌던 정계의 흑막설까지 있었으니, 충분히 이해 됐다.

흡사 음모론에 가까운 소재도 있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힘자랑 하질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기게 될 테니까.

어차피 그런 얘기들은 언론사를 탈 수도 없으니, 양지에 드러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저 관계자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질 뿐.

이윽고 고 의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기안성시 고일준입니다. 먼저 존경하는 조성현 당대표님의 모두발언은 잘 들었습니다. 저 또한 매우 공감하고 동의하는 얘기였습니다. 우리 당은 자만해선 안 되고, 여태 해왔듯 정진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20대 국회의 완만한 출발을 위해서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당 지도부를 우선 구성하고······.”

고 의원이 얘기하면서도 나를 계속해서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믿고 있는 건 아닐까?

몇 안 되는 가까운 의원 중 한 명이니, 어쩌면 그 소문을 믿고 있을 수도 있었다.

내가 행복한국당의 주인이고, 정계의 흑막이라는 찌라시까지.

이번 총선에서 기존에 있던 의원들 절반 이상이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잡음 없이 조용히 넘어간 이력도 있으니 그가 믿는 것도 말이 됐다.

본래라면 공천 파동이니, 컷오프 논란으로 시끄러워야 했다.

국회의원들이 정형화된 로봇도 아니니 당연한 것이었다.

불만이 있거나 다른 의견이 있는 의원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래서 총선 때마다 정당은 시끄러웠다.

이번에 신민주당도 컷오프로 당권 분열이라는 소리가 나돌았었다. 새정치당도, 보수신당도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 우리만 조용했다.

내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

단체의 임원이나 기업 이사 자리, 아니면 돈과 법으로.

정확히 말하면 법은 손기택 대전지검장의 오른팔인 진도환 검사가 행한 것이지만.

어쨌든 큰 잡음 없이 갈아치울 수 있었다.

먼지 안 묻고 정치하는 놈 하나 없고, 돈 싫어하는 놈이 없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내가 그런 놈들 위주로 쳐내기도 했었고.

그렇게 했음에도 20대 국회의원 당선자들 전부가 내 사람은 아니었다.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저마다 수십 년을 살아온 고집과 가치관이 있으니까.

내게 반기만 들지 않으면 내버려뒀었다.

사실 80%는 싹 쳐내야 했는데, 그건 나로서도 수습하기가 힘들었다.

반발이 걷잡기 힘들어질 테니까.

그래서 나머지는 놔뒀다.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도 내 사람은 몇 명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에 바뀐 당선자 중에 내 손을 타거나 콧김을 받아 공천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최소한 수십 명은 됐다.

계파나 모임만 없을 뿐, 내 라인이었다.

내 말에 휘둘릴 사람들을 굳이 세어 본다면 총 당선자 중에 절반은 족히 넘을 정도였다.

물론 발언 수위에 따라 숫자 변동이 있긴 하겠지만.

어느덧 연석회의 발언 순서가 바뀌었다.

사회자의 시선도 내게 왔다.

“이제 존경하는 윤수혁 의원님.”

내 차례였다.

기자들의 방송 카메라와 공보국의 홍보용 카메라가 나를 향했다.

그들의 시선이 반짝거렸다.

근래에 조 대표만 띄워주느라 한 발 물러나 있었지만, 나도 주요 이슈마다 몸을 담갔던 사람이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끔은 폭탄이 되기도 했고.

“비례대표 윤수혁입니다.”

인사를 하고 말을 이으려던 순간.

기자들 뒤편의 벽 쪽에서 사람 하나가 튀어 나왔다.

뒤늦게 알아본 그는 박 보좌관이었다.

“으, 의원님!”

기자들을 뚫고 당황한 사회자와 의원들을 무시한 채로 그가 내게 달려왔다.

아주 급박한 모습.

머릿속에 불꽃이 튀었다.

설마 새정치당과의 말도 안 되는 합당 얘기라도 퍼진 건가? 아니면 내 총선 과정에서 문제라도 드러난 건가?

설사 그런 문제가 터졌다고 해도, 박 보좌관이 이렇게 난리를 친다는 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 자리였다.

더구나 국회 출입 기자들까지 와 있었고.

그저 박 보좌관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순간.

“추, 출산 하신답니다!”

“······!”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는데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눈부심에 뒤늦게 정신 차렸다.

“아······, 예. 존경하는 의원님들, 저희 보좌관님이 하신 말씀처럼 제 아이가 태어난다고 합니다. 당무(黨務)도 중요하지만, 가정에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발언은 지면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침착하게 또박또박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는 지금 이 순간은, 내가 바랐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짧게나마 멘트도 준비했었다.

혹여나 의정 활동하다가, 아니면 공개된 자리에서 출산 소식을 들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꾸벅 고개 숙인 사이,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윤 최고! 어서 가보세요!”

“감사합니다.”

이윽고 축하한다는, 빨리 가보라는 말이 나올 무렵에 등을 돌리고 국회의사당을 빠져나왔다.

괜히 긴장됐다.

이미 준비했던 멘트까지 했고, 차에 올라 산부인과로 가고 있음에도 떨렸다.

혹시나 무슨 문제가 있을까 걱정됐다.

그게 한사랑이든, 아이든.

그사이, 조수석에서 스마트폰이 하나 나왔다.

언제 탔는지 모를 박 보좌관이 건네 준 것이었다.

“의원님, 지금 원장님하고 전화 연결 됐습니다. 한 번 받아보시고, 말씀 나누십시오.”

떨림을 가라앉히며 얼른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바꿨습니다, 윤수혁입니다.”

- 네! 의원님, 저 이영숙 원장입니다. 지금 산부인과로 오고 계신 거죠?

“지금 가고 있습니다. 금방 도착할 겁니다.”

- 너무 급하게 오진 않으셔도 됩니다. 산모님 자궁이 많이 열리긴 했는데 아직 대기실에 계시거든요. 그리고 양가 부모님 전부 와 계시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저희 부모님도요?”

친정부모가 아니라 내 부모님까지 산부인과에 가 있다는 얘기에 되묻자, 원장의 목소리가 얼른 딸려 나왔다.

- 아, 실은 저희가 보호자로 남편 분께 먼저 연락드리는데, 산모님께서 의원님 의정 활동에 방해된다고 하셔서요. 진진통인 거 확인하자마자 부모님 모셨고, 의원님은 자궁 열린 거 확인한 뒤에 연락드린 겁니다. 서운해 하진 마세요, 산모님께서 의원님 걱정 되게 많이 하셨어요.

“아······, 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녀다웠다.

출산의 고통을 염려하던 그녀가 국회에서 말이나 떠드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분명 콧구멍으로 수박을 꺼낸다는 강사의 비유에 몸서리쳤고, 악착스런 분만실 광경에 내 출입 여부를 고민하며 떨었던 게 그녀였다.

어느덧 원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너무 걱정하진 마시고 안전하게 오세요. 자궁입구 열려도 출산이 금방 이뤄지진 않으니까요. 혹시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따로 생각나는 게 없었다.

있다면 한사랑.

“······제 와이프는 어떤지.”

- 아주 건강하시고요, 방금 전에 무통 주사 맞으셨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 갑니다.”

전화를 끊자, 조수석에서 다시 스마트폰을 가져갔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아기 건강하게 태어날 겁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해서 애 아빠가 된 박 보좌관이 나를 위로했고, 영석이는 재빠르게 차선 변경해가면서 산부인과로 내달렸다.

얼마나 걸렸을까.

애꿎은 손바닥만 비비는 사이에 차가 멈췄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의원님.”

과장이라는 사람이 나를 맞이했고, 간호사가 잡아둔 엘리베이터로 올랐다.

평소였으면 거부했을 의전이지만, 지금은 간섭할 정신도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순식간에 부성애가 생기고 애아빠라는 책임감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온갖 감정이 요동쳤기 때문이었다.

설레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여태 일에만 매달려서 묵혀뒀던 감정이 깨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덧 도착한 분만실.

과장이 나를 옆으로 딸린 부속실로 데려갔다.

“산모님께서 생각보다 자궁이 많이 열리셔서 바로 분만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외투 벗으시고 수술복으로 환복 하셔야 합니다.”

잘 개어진 파란 수술복을 받아서 그의 도움을 받아 착용을 마쳤다.

머리를 감싸는 모자까지 쓰고, 마스크를 턱에 걸친 뒤에 다시 움직였다.

향한 곳은 가족 대기실.

과장이 들어가기 전에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알려줬다.

분만실로 들어가진 말 것, 아기를 안고 사진 촬영하고 동영상을 찍어야 한다는 것 등등.

이후 푯말이 붙은 곳으로 들어가자 장인장모와 부모님이 모두 와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고, 너 왔구나. 국회 일은 잘 마무리 했니? 새아가는 방금 들어갔어.”

조금 호들갑스런 목소리였다.

“예, 잘 처리했어요. 지금 분만 시작한 거죠?”

“그래, 아까 자궁 입구가 10cm나 열렸대. 나는 열두 시간 진통해서 낳았는데, 새아가는 축복 받았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애 낳는 사람 없거든. 내가 정말 기도 많이 했다.”

어머니의 말이 끝나는 순간.

신음이 들리지 않게끔 방음된 가족대기실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 아악!

여태 듣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못 들을 것 같은 소리였다.

가슴이 찌르르 울릴 정도.

장모가 눈물을 떨어트리는 그 때.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그건 방금 태어난 내 아들의 울음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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