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3월 초순.
[외교부, 중국과의 사드 논의 실패(종합)]
[행복당 한중관계 해결 위해 중국가나?···靑“당청이 하나 되면 좋은 것”]
[조성현 “총선도 중요하지만 국가 문제가 우선, 원내 제 1야당으로서 외교 문제 도울 것”···당 지도부 방중(訪中) 발표]
방중 인원은 지도부에 의원 몇을 추가로 더했다.
중국 협상의 구실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재선 의원과 상하이 둥화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의원, 그리고 화교 출신의 전직 사업가 의원까지.
총 셋이었는데, 당연히 셋 다 내 사람들이었다.
그들 말고도 중국과 연이 있는 이들이 더 있었지만, 제일 쓸 만하고 믿을만한 이들로만 꾸렸다.
어차피 이번 방중 행사는 모두 내 손안에서 이뤄질 예정이었으니까.
그렇게 방중 보도가 난 뒤, 조컨설팅 조양준 대표와 만났다.
언론 대응 때문이었다.
“당대표님이 말씀을 잘하셨네요. 총선도 중요하지만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 컨셉으로 밀고 가면 되겠습니다.”
“총선 앞두고 쇼한다고 하는데, 그거 막는 방법은요?”
내가 묻자, 조 대표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성과 내실 거잖습니까?”
“예?”
“의원님이 가시는 데 설마 빈손으로 오실 건 아니잖습니까? 결과물 들고 오실 거니까, 그걸로 커버하면 됩니다.”
조 대표도 어느덧 안순익 회장이나 오준범 이사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하하······.”
내가 행동하면 이득이 따라온다고 믿는 것이었다.
내가 무슨 일을 했고, 무슨 목표로 움직이는지 모르면서도 그는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믿어주셔서 고맙네요.”
“당연한 말씀을······ 아, 청와대하고도 말 맞추신 거죠? 반응 보니까 은근히 저희 편 들 던데.”
“맞습니다.”
역시나 눈치가 빨랐다.
이미 비서실장하고 얘기해 놓은 것이었다.
우리가 방중을 선언하면 청와대는 소극적인 태도로 호응하기로 했었다.
반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찬성해도 안 되니까.
본래 정부라면 야당의 독단적 행위, 혹은 사대주의 외교 자제하라고 비판할 법했지만, 어찌 그러겠는가?
물론 정부를 제외한 정당들은 다들 그랬다.
새정치당과 신민주당, 보수신당까지.
모두가 시끄러웠다.
보아하니 조 대표도 그 보도 자료를 이미 확인한 모양이었다.
[보수신당 “행복당 방중은 매국노짓, 굴욕 외교 중단해라.”]
[靑대변인과 입장 다른 새정치당, 행복당 방중 총선 앞둔 쇼에 비유]
[신민주당 황택근 “행복당 방중 취소해야 마땅, 사대주의나 다름없는 사신 행렬.”]
정치면에 비슷한 기사들이 연달아 꼭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발언 수위가 당마다 달랐지만, 목적은 같았다.
비난뿐이었다.
성과를 내기 전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려는 것이었다.
그들로서는 그 수밖에 없었다.
방중을 자처하기에는 이미 한 발 늦었고, 그렇다고 성과를 낼 수도 없으니까.
아마도 우리 당에서 성과를 내리라 예상하고 있을 가능성도 컸다.
이 바닥에서 정치 짬밥 먹고 인맥 굴리다보면 눈치가 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정치적, 외교적인 부분에서는 나보다 감 좋은 사람들이 많기도 했고.
어느새 조 대표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여론 방어는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 믿고 다녀오겠습니다.”
* * *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가 행복한국당의 방중 환영기사를 타이틀에 실었다.
양국 간의 의견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소통의 과정을 단순 사대주의와 매국으로 치부했다며 다른 정당을 비판했고, 수개월 전에 메르스 사태를 해결하려 앞장섰던 대선후보 조성현의 방문을 직접적으로 기재한 것이었다.
버스의 덜컹거림에 신문을 덮은 베이징대 출신의 의원이 입을 열었다.
“음, 요약하면 환영한다는 내용입니다.”
“기사 반응은 좋네요.”
조성현이 대답하자, 다른 의원이 얼른 대답했다.
“아무렴요, 차기 대통령 후보가 총선도 젖혀놓고 왔는데, 중국에서 싫어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나보다도 우리 윤 최고가 더 추앙받는 거 알면서 하시는 말씀이세요?”
“그래도 윤 최고님은 나이가 아직 안 되니, 대선 후보는 당대표님 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초선의원의 웃음에 지도부 국회의원 몇이 웃자, 조성현이 손을 저었다.
“비행기는 그만 태워주셔도 됩니다. 이제부터 오늘 논의에 집중해야 합니다.”
조성현이 그러면서 앞좌석을 바라봤다.
윤수혁의 자리였다.
“내리기 전에 전략통 한 말씀은 들어야 겠지요? 자, 윤 최고.”
모두의 주목이 쏠린 뒤, 윤수혁이 입을 열었다.
“얼른 끝내고 총선 준비하러 가시죠.”
“······.”
짧은 정적 끝에 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마치 점심 식사라도 하러 온 것처럼 가벼운 말투였다.
“아휴, 참. 윤 최고님은 젊어서 그런가 깡이 좋으시네.”
“아니지! 거 맞는 말이지요. 다다음 주부터 선거 운동 기간이니까 얼른 해치워 버리고 귀국들 하셔야지.”
“맞습니다, 벌써 3월 중순인데, 총선 준비들 하셔야죠.”
의원들이 한바탕 떠든 뒤.
버스가 섰다.
중국 베이징 만수호텔.
붉은 카펫을 밟고 이동하는 내내 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한국 주요 일간지의 특파원들, 행복한국당 기자들, 중국측 기자들이었다.
그렇게 이동한 곳은 그리 넓지 않은 회의장이었다.
의자가 ‘ㄷ’자로 줄을 맞춰서 놓여 있었고, 좌우를 기점으로 한국측과 중국측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윽고 일어서 있던 상무위원 중 1인, 중앙당서기 왕뱌오(王彪)가 행복한국당 의원들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중국측 간부들도 모두 따라 움직였다.
왕뱌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환영합니다.”
“很高兴见到你。(반갑습니다.)”
조성현이 부족한 성조로 대답하며 악수를 나눴고, 곧 자리로 이동했다.
시작은 한국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기자들을 불러들여서 촬영하게 놔두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일종의 언론 공개용.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소규모 회의장을 채웠고, 플래시가 터졌다.
둘이 미소를 띠거나 찻잔을 들때면 더욱 많은 플래시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끝난 뒤.
진행 요원이 기자들을 물렸고,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던 왕뱌오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중얼거리자 동시 통역이 이어폰으로 전해졌다.
“잠깐만 쉬었다가 얘기 합시다.”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쉬자고 대답하는 사이, 통역사의 목소리가 다시 전해졌다.
“쉬는 중에 윤수혁 의원하고만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자리 좀 옮겨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윤수혁이 시선을 돌렸고, 왕뱌오가 작은 쪽문 하나로 눈짓했다.
의원들이 모두 윤수혁을 바라봤고, 시선을 의식한 윤수혁이 조성현을 쳐다봤다.
“대표님, 잠깐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조성현에게 허락 받은 윤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왕뱌오도 홀로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둘이 들어간 곳은 대기실처럼 꾸며진 빈 방이었다.
있는 건 소파와 티테이블, 거울 같은 것이 전부.
왕뱌오와 통역사, 윤수혁 셋만이 들어온 뒤, 왕뱌오가 곧장 손짓했다.
마이크와 인이어 버튼을 끄라는 신호였다.
송수신기 버튼이 꺼지고.
왕뱌오가 중국말을 하는 동시에 통역사가 재빨리 한국어를 구사했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한국의 차기 리더라고 소문이 났지요.”
통역사의 말에 윤수혁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기본적인 예의였다.
장유유서가 아니라, 권력자에 대한 예의.
왕뱌오가 나이 지긋한 사람이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가진 힘이 달랐다.
직책만 해도 상무위원.
중국에서 서열로 치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물이었다.
회의장에 앉아 있는 조성현과 같은 급이라고 보면 됐는데, 나라가 다르니 힘도 달랐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강자였다.
이윽고 윤수혁을 들여다보던 왕뱌오가 다시 목소리를 냈다.
“보통 사람 같은데, 어떻게 이고르 그레프의 눈에 들었습니까? 그 사람 여간 까탈스러운 게 아닌데.”
“운이 따랐습니다.”
“그럼 미국은 뭡니까?”
훅 찌르는 듯한 어투에 윤수혁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그 순간, 왕뱌오가 고개를 젖혔다.
“하하하하하! 그것 참 굉장한 운입니다! 러시아와 미국이라니.”
이고르 그레프는 수하를 통해 연락해 왔었고, 미국은 국무부를 통해 협상 자리를 요청했었다.
이윽고 웃음이 가라앉은 왕뱌오가 다시 중후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운이 통하질 않습니다.”
약간은 낮아진 목소리.
윤수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시려는 말씀이······?”
“러시아도, 미국도 제 입장이 아니니까 편히 훈수나 두고 있는 겁니다. 나는, 우리 중국은 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그 말에 윤수혁이 주춤했다.
이미 이고르 그레프와 존 패터슨 미 대사하고 얘기가 된 줄 알고 있었다.
둘이 돕는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도 왕뱌오가 자존심을 꺾지 않고 있다니?
예상치 못한 말에 윤수혁이 입을 닫자, 왕뱌오가 말을 이었다.
“한국에 대한 대응을 하겠습니다만, 대신에 조건을 걸겠습니다.”
“······조건이요?”
“기존에 논의되던 관광객 한국 방문 금지를 일부만 제한하도록 수준을 격하하겠습니다.”
“일부 제한이라고 한다면······.”
“토지 구입이나 투자 금지 정도입니다. 관광객은 둘 겁니다.”
윤수혁이 속으로 안도의 숨을 삼켰다. 그 정도만 되도 큰 성과였다.
전생에는 관광 산업이 타격을 입었고, 피해액이 엄청났었다.
중국인 거리가 텅텅 빌 정도.
그사이 왕뱌오의 목소리가 다시금 이어졌다.
“그리고 중국 내 한국 기업에 대한 조치도 있을 겁니다. 검사를 똑바로 하고, 법적 절차를 밟아 진행할 겁니다. 부당한 행위는 아니니 한국 기업에 공문 돌려서 준비시키면 됩니다.”
이 역시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꽌시로 봐주고 넘어가던 부정을 적발하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그 정도는 기업 선에서 해결이 가능했다.
“그리고 한국.”
“······?”
“외교부장을 통해 공식적으로 비난 성명을 발표할 겁니다.”
“한국을 대상으로 말입니까?”
“그래요.”
통역사가 왕뱌오 상무위원의 억양까지 흉내내며 대답했다.
그 사이 가만 있던 윤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하나만 협상을 보시죠.”
“무슨 협상 말입니까?”
“비난 성명 대상을 줄이는게 어떻겠습니까?”
“한국을 줄일 수도 있습니까? 여기서 더 작아지면 지도에서 지워질텐데?”
약간은 비꼬는 어투였다.
그러나 윤수혁은 상관치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 내용도, 말꼬리도, 말투도 아닌 결과였다.
더구나 밀실의 대화.
무시해도 상관없는 말은 넘겨야 했다.
윤수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타깃을 정부로 바꾸시죠.”
“정부?”
“예. 한국이 아니라, 이민수 정부 말입니다.”
그러자 왕뱌오가 입꼬리를 올렸다.
“글자 몇 개 바꿔서 비난을 피해가겠다?”
“우리나라는 이민수의 나라가 아닙니다. 정부는 5년 집권할 때마다 바뀌고, 내각은 연 단위로 바뀝니다.”
“나도 압니다. 그러면······ 나도 약속 하나 받아야 되겠습니다.”
“약속이라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저울질 할 때, 우리 쪽으로 추를 올려놓으시오.”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우방국가입니다.”
“한 번이면 됩니다.”
말을 마치고 왕뱌오가 웃었다.
이고르 그레프가 윤수혁을 점찍은 이유가 있고, 미국 국무부가 직접 사드 협상을 요청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로서는 소국에 불과한 한국의 정치인을 알아둘 이유가 없지만, 호기심이 인 것이었다.
“그리고 우방국 타령 마시오. 내가 바라는 건 한국이 아니라 당신의 추니까.”
개인의 신용을 말하는 것이었다. 윤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의 중대사가 아니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도 중대사까지 간섭할 생각은 없습니다. 궁금해서 그런 것이니까.”
“······그럼 가벼운 부탁하나만 들어주십시오.”
그 말에 왕뱌오가 헛웃음을 뱉었다.
“하······, 약속 하는데 부탁까지 요청합니까?”
“어려운 거 아닙니다, 상무위원님.”
“들어나 봅시다.”
“이번 일 마무리도 저희하고 하시죠.”
차후에 경제 보복을 완전히 해제하고 소원한 사이를 푸는 역할을 행복한국당이 하겠다는 뜻이었다.
단번에 알아들은 왕뱌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쉽습니다. 다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내려다보는 말투에 윤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릅니다. 제가 있으니까요.”
“으하하하하!”
다시금 화통하게 웃은 왕뱌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몇 시간 잡담이나 나누고, 좋은 협상이었다고 인터뷰나 하시오. 나는 바빠서 나가야 합니다.”
대기실 의자에서 일어서던 왕뱌오가 손을 내밀었다.
“타결했으니 기념으로 악수나 합시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악수를 나누는 윤수혁이 비로소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