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1월 중순.
[靑 사드 논의 더 이상 NO 아냐, 美 요청 시 검토할 것]
[혁신정부 사드 도입 검토···중국은 못마땅]
[행복당 조성현, “국민 불안해소와 국가 안보 증강, 외교 문제 해결의 삼박자 무너져···정부는 혁신이 아니라 기본을 해야 할 때”]
사드 검토가 이민수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전생과 같았다.
누가 되더라도 결국 발표할 일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발표 탓에 신년맞이 한러 문화 교류가 금방 묻혔다.
사실 행사가 끝나긴 했지만, 고작 며칠 전이었다.
온라인 홍보를 위해 일부러 초대했던 파워 블로거와 SNS 유명인이 쓴 감상문이 각종 커뮤니티와 카페 등을 떠돌아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온통 사드 얘기로 뒤덮였다.
아직 후보지 검토를 한 것도 아니고 데모도 없었지만, 앞을 내다본 정치권에서 난리를 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공연이 무사히 끝났다는 것.
전에 언급한 비영리사단법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꽤 홍보가 됐다는 점이었다.
단체명 한국문화예술진흥협회.
협회장에 안순익 고문이 이름을 올렸고, 내가 이사 직함을 달았다.
이후 협회원과 후원자들이 몰렸었다.
보통의 정치인에게 이사 같은 자리는 한 줄 이력은 흔하긴 했지만, 내가 직접 돈을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몇 억에 불과한 돈이지만, 내가 관리하는 단체라고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서 힘깨나 쓰는 유지들이 찾아 왔었다.
내 입김으로 공천이 예정된 사람들은 알아서 돈 수백만 원씩 싸들고 방문하기도 했었고.
어쨌든 시작은 좋았는데, 끝나고서 남아 있어야 할 여운이 사라졌다.
사드 검토 발언 때문에 날아간 것이었다.
마침 안 회장한테 전화가 왔다.
- 윤 의원, 사회면 기사 봤는가? 한러 문화 교류 싹 지워졌던데······.
“어쩔 수 없습니다. 앞으로 더 시끄러워질 겁니다.”
- 알지, 아는데. 혹시 챙겨 줄 거 너무 인색하게 준 거 아닌감?
“흐흐흐, 안 회장님. 그 사람들 본업 기자에요, 할 일 하는 겁니다.”
- 내가 아쉬워서 그랬네, 윤 의원이 자리 깔아줬는데 마무리가 흐지부지되니, 원······.
“이만하면 성공적인 겁니다. 국제 행사 원활하게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단체 몇 없는 거, 아시잖습니까?”
- 나는 그치들하곤 다르지, 이 바닥에서 산 게 벌써 몇 십 년인데······. 썩어도 준치라고 하잖는가?
“그래서 안 회장님 모셨던 겁니다.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 참, 둘째는 언젠가?
둘째라는 소리에 한사랑의 뱃속에 있는 콜리가 떠올랐다.
아직 낳지도 않은 첫째를 두고서, 둘째를 묻는 사람들이 종종 많은 탓이었다.
그래서 주춤하자, 안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직 멀었겠지? 봄은 돼야 봄맞이 가족행사라도 할테니, 뭐.
그 말에 다시 정신이 들었다.
“아, 다음 행사는······. 회장님이 알아서 진행하셔도 됩니다.”
- 내가?
“예, 제가 종종 후원하겠습니다. 협회원들도 알아서 다 기부들 할 겁니다.”
- 으허허허, 알았네. 그러면 총선 전에 하나 추진해도 되겠는가? 노인네들 콧바람 쐴 공연 말이야.
“편한대로 하세요. 그리고······ 연예계에도 손을 대셔야 합니다.”
- 노래하고 연기하는 그 연예계 말인가?
“예.”
문화예술을 표방하는 만큼 연예계에도 간섭하는 게 좋았다.
아니, 꼭 해야만 했다.
연예계 대형 스캔들은 여론을 뒤흔들만한 폭탄이었다. 정치면에서 아무리 싸워봐야, 유명 탤런트의 사건 하나면 여론의 방향이 바뀌곤 했으니까.
그 사이 예상치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 아! 접대할 애들 필요한가?
“예? 아뇨! 그런 말씀 함부로 하시면 큰일 납니다.”
그의 나이가 팔순이었다.
군부정권 시절에도 정치했던 사람이니, 연예계에 대한 인식이 조악하리라.
그래도 다행인 건, 그가 내 말을 잘 들어먹는다는 사실이었다.
- 그럼 뭐 때문에 그런가?
“비영리사단법인이잖습니까? 그에 맞게 행동 해야 합니다. 공익, 권익 같은 단어에 초점을 맞추고, 연예계에 깊게 개입하세요.”
- 정말 봉사활동 하라고?
“봉사활동만 하는 건 아닙니다, 하면서 스캔들 같은 것도 잡고 계시란 뜻입니다. 여론 흔들만한 것들 종종 나오지 않습니까?”
유명 연예인의 대마초 흡연이면 신문 지면을 가득 채우리라.
안 회장이 알아 들었다는 듯 대답했다.
- 아! 무슨 말인지 잘 알겠네. 그럼 지검장 법무법인 좀 통해야 될텐데, 자네가 언질 좀 넣어주게.
“그냥 하셔도 됩니다, 제가 전에 말해놨었습니다.”
- 흐흐, 일처리는 역시······. 알겠네, 내 바로 진행함세.
“그럼 수고하십시오.”
그와 전화를 끊고, 남은 기사를 확인했다.
[중국 압박 카드가 사드?···역효과 낳을 가능성만 높아]
[새정치당, “사드 카드 벌써부터 물고 뜯어선 안 돼, 효과 입증 된 뒤에 토론해야”]
[대중(對中) 전문가 쑤엔웨이 소장, “사드 검토는 중국을 향한 공격으로 비칠 우려 있어”]
기사 발표한 지 며칠 째.
중국발 사드 폭풍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 *
2월 초, 늦은 저녁.
저녁 식탁에 앉아 있던 윤수혁이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02로 시작되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
스팸 전화처럼 보였다.
스팸이 아니더라도 국회의원 전화번호란 이유로 온갖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왔고.
그러나 그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업무용 전화에 한해서였다.
지금 윤수혁의 손에 있는 건 철저히 사적으로 쓰는 스마트폰이었다.
안순익, 오준범 등의 내부자와 쓰는 번호.
그렇게 몇 번인가 신호가 울리다가 끊어졌고, 두 번째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수저를 들던 한사랑이 물었다.
“그냥 모르는 번호라서요.”
“혹시 열혈 팬?”
“······아뇨, 이제 누군지 알 것 같기도 하네요.”
끈질긴 전화에 윤수혁이 결국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 비서실장입니다. 댁 앞에 와 있습니다, 잠깐 말씀 좀 나누시죠.
윤수혁이 옅은 웃음을 띠었다.
생각해보겠다며 헤어진 지 3개월 만에 다시 걸려온 전화였다.
“저녁 식사 중이라 내려가기도 그렇고, 모셔오기도 좀 그런데요.”
- 의원님, 부탁드립니다.
그사이 젓가락질을 하던 한사랑이 고개를 기울였다.
“누군데요? 집에 누가 온 대요?”
“대통령 비서실장.”
“······수혁 씨 벌써 입각해요?”
한사랑이 눈을 껌뻑거리며 묻는 사이, 스마트폰 너머에서 다시 목소리가 나왔다.
- 네? 의원님?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다시 전화 드릴게요.”
전화를 끊자, 한사랑이 반찬을 집어주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내 도움이 필요해서 그래요. 아, 비서실장 집으로 좀 불러와도 되겠죠?”
“그럼요, 근데 비서실장이 집으로 와요? 지금?”
“예, 많이 급해서요.”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윤수혁이 전화를 걸어 비서실장을 집안으로 들였다.
정장 차림에 맨손으로 들어온 그를 향해 윤수혁이 가볍게 고개 숙였다.
“어서 오세요.”
“늦은 시간에 결례를 끼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제 방으로 들어가시죠.”
윤수혁을 따라 서재로 들어간 비서실장이 방을 둘러봤다.
일반 방 두 개를 합친 큼직한 사이즈와 사장실 버금가는 인테리어는 자연스레 눈이 돌아갔다.
비서실장이 어느새 응대용 소파에 앉으며 자연스레 입을 뗐다.
“이런데서 생활해야 정치 성과가 좋은 모양입니다.”
“당연한 얘기를······. 당사 구형 사무실보다 여기서 일보는 게 훨씬 편합니다.”
윤수혁이 맞은편에 앉으며 핀잔을 주자, 비서실장이 눈치를 살폈다.
“다시 한 번 늦은 시간 방문에 대해서는 사과를······.”
“비서실장님이 가정집까지 찾아 오셨으니, 사과는 더 안 하셔도 됩니다.”
자존심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되는 권력자가 개인 가정집까지 찾아올 정도면 말은 다 한 셈이었다.
수많은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아직까지도 자존심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비서실장이 헛기침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아, 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드, 맞죠?”
윤수혁이 말을 자르자, 비서실장이 입을 달싹거렸다.
“······맞습니다.”
그가 쓴맛을 오르는 걸 삼켰다.
중국 대사의 항의는 물론이고, 이틀 전에는 주석 직속과 다름 없는 외교부장에게 비난 전화까지 왔었다.
해결책은 찾기 힘들었다.
나온 것이라고는 정석적인 방중(訪中) 외교가 전부였다.
물론 사드 도입을 요청한 미국이 도와준다고는 했지만, 그걸 로는 모자랐다.
기껏해야 의회의 성명서 발표와 백악관 대변인의 비판이 전부였다.
한마디로 일 벌어진 다음에 한두 마디 위로해주는 격.
반면에 지금 정부에게 필요한 건 즉각적인 조치였다.
그것도 방중 이상의 효과를 가진 것.
그건 윤수혁 밖에 없었다.
다른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은 중국 채널도 없었다. 채널이 아닌, 급 낮은 가벼운 인맥 정도.
그들이 국가 수장과 통하려면 몇 다리는 건너야 하는 걸로는 택도 없었다.
반면에 윤수혁은 직통이라고 봐도 될 만한 이고르 그레프와 아는 사이였다.
추가로 미 대사하고도 각별한 인연이 있었고.
비서실장이 고개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벌써 3개월 정도 됐죠?”
11월 중순에 독대해서 대화를 나눴던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고개를 들었던 비서실장이 얼른 대답했다.
“그때 일은 저희가 미숙해서······.”
“수수료가 더 생겼습니다.”
“네?”
윤수혁이 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을 일대로 벌이고 수습해달라는 거 아닙니까? 3개월 전이면 모를까, 상황 돌아가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윤수혁의 물음에 비서실장이 주춤했다.
다시 협의한다고 해도 밑지고 들어갈 게 많았다.
그렇게 하나, 둘 넘기다보면 언론과 국민은 방중이 아니라, 조공이라고 비난할지도 몰랐다.
만약에 밑지기 싫어서 버틴다면, 중국은 직접적인 제재를 가할지도 몰랐다.
예컨대 경제 보복.
자국 내의 한국 기업을 상대로 강력한 제재를 가하거나 여러 법적조치를 할 수도 있었다.
더 나아가 경제 보복도 가능했다.
조금 과한 상상이긴 하지만, 중국 같은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못할 것도 없으니.
비서실장은 짧지 않은 상념 끝에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수수료도 내라면 내겠습니다. 다만······.”
“다만?”
“확실해야 할 겁니다.”
“확실합니다, 연락도 했었습니다.”
그 말에 비서실장이 눈을 번뜩였다.
“그렇게 쳐다보시진 마시고, 아! 손님인데 커피를 안 드렸네요. 뭐 드시겠습니까?”
윤수혁이 일어나며 묻자, 비서실장이 주춤했다.
금방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기 때문이었다.
“블랙으로 마시겠습니다.”
“잠시만 계세요, 제가 타오겠습니다.”
“아, 그러면 안 마셔도······.”
“됐습니다, 계세요.”
윤수혁이 담담하게 대답한 뒤 일어서다가 물었다.
“아, 대신에 수수료가 많이 비쌉니다. 대답 잘 하셔야 합니다.”
“어떤 수수료길래······.”
“조 단위인데, 괜찮겠습니까?”
“네?”
“러시아와의 무역입니다. 몇 퍼센트 정도만 손해 보면 되니······ 조 단 위라도 실제 피해는 천억도 안 될 겁니다.”
비서실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윤수혁이 하는 말을 알아들은 것이었다.
러시아 실세에게 뒷돈을 마련해주고 사드 관련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수혁의 말에 비서실장이 입술을 씹었다.
그 말 대로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있어야 했고, 기회도 가져야 했다.
비서실장이 순순히 대답했다.
오늘은 기분 긁으러 온 것도 아니고, 해결책을 강구하러 온 자리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돈, 사드 협의에도 쓰일 겁니다. 크게 생각하세요. 중국에서 사드 보복 들어오면 수십 조 단위로 손해 볼 겁니다.”
전생에 숙박 업계만 7조 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자료가 있었다.
그리고 관광업계를 비롯해 중국 수출 업계 등의 피해를 더하면 총 손해 추정액은 수십조에 달했다.
“사드 보복이 들어온다는 정보입니까? 그 러시아 채널의?”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예측이라고 보세요.”
담담하게 대답한 윤수혁이 완전히 일어서서는 커피를 내왔다.
비서실장은 지친 얼굴로 커피를 받았다.
“······잘 마시겠습니다.”
“예, 드시면서 들으세요. 이제 사드 협의도 준비하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