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46. 꽃길만 걷자 (1)
[(속보)장세룡 교통사고 사망]
[장세룡 운전하다 낚시터로 추락 사망···경찰 블랙박스 확인 중]
[장세룡 검찰 수사 앞두고 사망, 자살 가능성 있나···국과수 부검 예정]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코앞에서 교통사고가 났고, 사람이 죽은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장세룡.
죽이고 싶도록 증오했지만,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막상 통쾌하진 않았다.
내가 직접 죽였다면 좀 시원하기라도 했을까?
모를 일이었다.
아니, 갖고 다니던 4단봉으로 줘 패도 내 마음이 풀어질 것 같진 않았다.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몰랐다.
더 이상 번거로울 일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사망에 직접 관련돼서 어떻게든 이름이 오르내리면 그것도 불편할 터.
반면에 지금은 그 어디에도 내 이름이 없었다.
마치 현장에 없던 것처럼.
물론 죽음 자체를 다루는 탓에 언론에서는 시끄러웠지만, 목격자인 내 이름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4대 일간지부터 케이블, 종편을 포함한 방송사와 찌라시까지.
오직 장세룡의 죽음만을 다뤘다.
물론 그것도 사고사인지, 자살인지에 관해 시끄러울 뿐.
이윽고 이 사건을 최초 수습해준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중앙지검장 손기택]
내 이름이 나돌지 않게 도와준 이였다.
“여보세요.”
- 네, 의원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저야 멀쩡합니다.”
- 사고 이후에 결리거나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한 번 내원하십시오.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참, 장세철 이사장은 처분이 어떻게 됩니까?”
- 장 이사장은 장례 끝나고 조용히 수사 진행하기로 협의했습니다. 저희 쪽에 적극 협조할 겁니다.
사학재단 장세철 이사장, 그가 이번 일을 덮은 다른 한 명이었다.
손 지검장이 최초 수습을, 장 이사장이 뒷마무리를 조용히 해준 것이었다.
애초에 이 길 밖에 없었다.
만일 내가 목격자로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마른 들판에 불 번지듯 난리가 날 게 뻔했다.
예정된 수순으로 운전기사와 블랙박스, 김정환이 알려준 증인까지 줄줄이 언론에 공개되고, 그 과정에서 전 비서실 직원까지 언급될 터.
자연스레 그의 하나뿐인 동생, 장세룡은 천하의 쓰레기가 되어 죽어서도 가문에 먹칠을 하게 되겠지.
이건 단순 실화(失火)의 수준이 아니라, 기둥까지 태우는 화마나 마찬가지.
사학재단 주인으로서 책임져야 할 게 많은 장 이사장으로서는 이 결과보다는 조용히 넘어가야만 했다.
동생이 죽었어도 별 방법이 없었다.
장세룡의 죽음이 자살이 될지, 사고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조용히 수사하고 마무리하는 게 옳았다.
더구나 피해자가 누군가?
바로 나였다.
연예계 탑스타 버금가는 인기와 인지도를 가진 정치인.
이윽고 손 지검장의 말이 들려왔다.
- 의원님, 이제 정말 보중하셔야 합니다. 극렬분자들이 달려들지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지검장님도 몸조리하십시오. 지방 내려가서도 실적 잘 쌓으셔야 합니다.”
- 명심하겠습니다.
그와 전화를 끊고서, 손목을 한 번 돌려봤다.
욱씬.
아릿한 게 통증이 있었다. 넘어지면서 바닥을 빗겨 짚은 모양이었다.
병원을 정말 가야 하나 싶었는데, 문득 딴 게 하나 떠올랐다.
산부인과.
한사랑이 임신한 지 벌써 2달이 넘었고, 오늘이 산부인과에 내원하는 날이었다.
몇 주 차인지 계산하다가 헛웃음을 뱉었다.
어디서는 사람이 죽었는데,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고 있다는 게 묘했다.
죽을 놈이 죽은 거라 별 감정이 없긴 했지만.
어쨌든 이제 그 일은 끝났다.
이제 앞으로 수많은 다른 일들을 해야 했다.
코앞의 국정감사와 러시아와의 행사, 20대 총선까지.
* * *
9월 말.
비영리사단법인 중소기업진흥협회가 창립됐다.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존속과 발전을 명목으로 만들어진 흔한 단체 같았지만, 첫날부터 기사가 많이 났다.
그것도 정치면과 경제면을 동시에 채웠다.
첫째로는 진흥원 이사장이 윤수혁이라서, 둘째로는 진흥원의 첫 행보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출장이어서 그런 것이었다.
[행복당 윤수혁, 중소기업 부흥 위해 비영리사단법인 설립]
[캡틴코리아 윤수혁, 사람 목숨 구하고 이제는 경제까지 구하나···중소기업진흥협회 설립 후 러시아行]
[윤수혁 “열악한 중소기업 환경을 개선 위해 중기협 창설, 블라디보스토크는 중소기업 활로 개척을 위해 가는 것]
신문을 보던 윤수혁이 옆 좌석을 쳐다봤다.
“더 이상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다 긍정적인 기사만 올라왔습니다. 온라인에도 이사님 이름 실린 데는 없다네요.”
그 말에 오준범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앞으로는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보필하겠습니다.”
“그럼요, 정말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저보다는 이사님이 실질적으로 이사장 역할도 하셔야 하고, 협회도 관리해주셔야 하니까요. 저야 바지 아닙니까?”
“아, 아닙니다. 의원님.”
고개를 들던 오준범이 대답하면서 머리를 떨구었다.
탈세 혐의로 대화투자자문 대표이사를 그만두고, 하릴없이 백수가 될 뻔했는데 다시 윤수혁이 그를 불러줬었다.
이후 이사 직함까지 달아준 단체는 중소기업진흥협회.
중기협은 비영리사단법인이었지만, 윤수혁이 이사장으로 있고 막강한 자금 덕분에 창립 하자마자 주요 경제단체가 된 곳이었다.
심지어 돼지머리 고사를 지낸 다음 날인 오늘, 바로 아시아나 국제선에 타고 있지 않은가?
목적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지역의 무역 허브로서 장차관급 이상 국가 요인들도 여러 협상을 위해 방문하는 곳이었다.
특히 북한과도 가까워서 유라시아 열차의 요충지니, 통일의 간접 지역이니 하는 말까지 있는 땅이기도 했고.
어느새 신문을 내려둔 윤수혁이 엷게 미소 지었다.
“그래도 힘든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 협회 이사님들 끗발 날리는 분들로 모셨거든요, 혹시 알고 계십니까?”
“죄송합니다. 아직 이사회의 개인적인 업무 능력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업무 능력이라기보다는······, 대인 능력에 가깝죠.”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했던 오준범이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무원 생활을 해봐서 아는 것이었다.
바로 인맥.
윤수혁이 말한 대인능력은 관련 기관의 실무자들이나 책임자급과의 연줄을 뜻했다.
이는 직원 여럿 두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내는 힘이었다.
관련 지원 사업을 우선적으로 알려주거나 통화 한 번으로 각종 프로젝트 신청과 심사가 이뤄지는 일들이 그 예였다.
보조금 따위가 연관된 사업은 맹점을 알려주며 통과를 돕기도 했으며, 다양한 민원 처리부터 의견 전달도 보다 쉽고 편하게 해결이 가능했다.
그래서 정작 경제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체육계 인사나 시민사회단체 임원, 혹은 지방대학 교수 등이 이사직을 겸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한두 다리 건너서 관계자들을 꿰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러시아 측하고 얘기만 잘 하면 될 텐데, 그건 장인어른께 맡기겠습니다.”
그러자 앞좌석에 있던 안드레 한이 좌석 틈으로 눈을 맞췄다.
“음,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ㅅ······, 않아도 되네.”
주변인을 의식한 하대에 윤수혁이 가볍게 웃었다.
* * *
“기분 좋은 일 있어요?”
“좋죠, 미 대사가 선물도 줬는데.”
버번 위스키였다.
이번에 중소기업진흥협회를 통해 한러 중소기업 무역박람회 유치 성공을 기념으로 받은 것이었다.
비록 러시아 전체가 아닌 블라디보스토크와 나홋카 같은 극동지역에 한해서 교류하기로 했으나, 한러의원외교협의회나 외교부를 거치지 않고 내가 주관했다는 게 큰 성과였다.
정부가 할 일을 개인이 했다는 칭찬이 언론을 도배했었다.
그래서 존 패터슨 미 대사가 선물까지 줬다.
그건 조금 웃기기까지 했다.
러시아와의 교류를 축하하는 미 대사라니.
그것도 미국 역사를 함께 한 대표적인 술, 아메리칸 버번 위스키가 선물이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건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건지, 아니면 그 두 가지를 다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았다.
미 대사가 관리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니까.
과도 피습 사건 이후로 안부를 핑계로 몇 번인가 통화했을 때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이렇게 깨달았다.
카드 첫머리의 말도 다시 보니 겉치레가 아닐 것 같았다.
[My friend, Mr.Yoon.]
내가 그의 친구라면, 순위로 몇 등 정도 될까?
국내 정치의 핵심이라는 것을 제외해도 피습에서 구해준 빚이 있으니, 국가 원수와 외교부 수장을 제외하면 1, 2등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느새 한사랑의 새초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못 마시잖아요.”
“그럼······, 콜리 태어나면 같이 마셔요.”
콜리는 태명이었다.
양치기 개로 유명한 갈색 털을 가진 바로 그 콜리.
그 개가 한사랑의 태몽에 나온 바람에 아기 태명까지 콜리가 된 것이었다.
갈색 턱을 휘날리면서 콜리 한 마리가 자신의 품에 폭 안겼다고, 그 꿈이 너무 생생해서 집에 콜리가 있을 것만 같다고 했었다.
그 때가 산부인과 피검사 직후.
다른 태명은 고려할 필요도 없이, 뱃속 아기는 콜리가 돼버렸다.
태명이 하필 견종인 게 썩 반갑진 않았으나, 우리 부모님이나 장인장모가 좋아해서 다른 말은 꺼내지도 못했었다.
이윽고 풀죽은 듯한 한사랑의 대답이 들려왔다.
“콜리 태어나도 술 먹으면 안 돼요, 수유해야 될 텐데.”
“······분유는요?”
“분유는 모유하고 혼합 수유하고, 적게 먹일 거예요. 아기 건강에는 모유가 좋대요.”
알아서 하겠거니 고개를 끄덕이다가 생각난 게 있어서 얼른 물었다.
“참, 아들이래요, 딸이래요?”
벌써 임신 12주차였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성별 확인이 가능할 수도 있는 시기.
한사랑이 가사 도우미와 산부인과에 다녀오는 걸 알기에 묻는 것이었다.
한사랑이 오묘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걸 이제야 물어봐요?”
아, 퇴근하고 씻고 난 뒤 저녁까지 먹은 상황이었다,
반면에 한사랑이 병원에 다녀간 건 낮 시간.
생각지도 못한 내 부주의 때문에 변명이 먼저 나왔다.
“내가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변명이지만, 정말 많았다.
장세룡과 관련된 사안부터 총선과 국정감사 준비, 중소기업진흥협회 일까지.
몸이 두개여도 모자랄 정도였다.
내 말이 어수선하게 마무리되기 전에, 그녀가 특유의 중저음으로 대꾸했다.
“농담이에요. 나도 수혁 씨 바쁠 거 다 알고 만났잖아요. 결혼도, 임신도.”
그 말대로 한사랑과 내 사이는 절대적인 사랑으로 이뤄진 게 아니었다.
애초에 연애결혼이 아닌 중매였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았고, 아름다운 미모에 사려 깊은 면이 있어서 좋아하게 됐고, 결혼한 것이었다.
나는 어쨌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이 필요했으니까.
“잠깐만요, 보여줄게요.”
한사랑이 말과 동시에 서랍장을 열었다.
안에서 꺼낸 것은 양장본 책처럼 생긴 가죽커버의 산모수첩이었다.
피검사 받으러 병원에 방문했을 때 준 것이었다.
임신부터 출산, 이후 유아 예방접종까지 기록할 수 있게 만들어진 일종의 가이드북.
차라락-
금박으로 또렷하게 새겨진 산부인과 브랜드가 넘어가고, 몇 장의 고급지가 넘어간 다음.
한사랑이 내게 초음파 사진을 보여줬다.
“어때 보여요?”
“아, 음······.”
알 수 없었다.
태아인지, 무슨 형체인지 설명을 들어야 보는 척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흑백이라 이게 명암인지, 뭔지 구분 되지도 않았고.
내가 대답을 못하자, 한사랑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푸흐, 확실하진 않지만, 왕자님 같대요. 한 번 더 확인하면 잘 알 수 있다고 그러셨어요.”
“아······.”
아들이라.
굳이 아들딸을 가리진 않았지만, 나이 든 유권자를 고려하면 아들이 좋긴 했다.
다만 내가 애아빠가 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실감하기 힘들었다.
알아보기 힘든 콜리의 초음파 사진도 썩 와 닿지 않았고, 한사랑의 몸매도 여전히 매끈했기에 임신했다는 것도 잊을 때가 있었고.
그래서 한사랑이 낮에 산부인과 다녀온 걸 이 늦은 밤에야 묻게 된 것이었다.
산모수첩을 바라보는 한사랑이 괜히 대견했다.
아직 스물셋에 불과한데, 부모로서는 나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산모수첩을 가져다 놓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몸은 어때요, 괜찮아요?”
나도 사람이기에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애아빠가 될 사람이 임신한 아내보다 일에 더 집중하고 있으니.
“몸이 조금씩 무거워지는 것 같긴 한데, 아직 괜찮아요.”
“벌써요? 도우미는 한 분이면 되겠어요?”
“네, 괜찮아요.”
“그럼 내가 도와줄 건······?”
“있어요!”
“뭔데요?”
아이처럼 곧장 대답할 것 같던 한사랑이 멋쩍다는 듯 웃었다.
“음······, 주말에 나하고 있으면 안 돼요?”
“주말에?”
국회에 출근하지 않는 날이지만, 집에서 쉰 적은 거의 없었다.
골프 라운딩이나 유권자들 만나고, 지역구 행사에 나가야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당무나 상임위 관련 공부를 하고, 피부 미용이나 헬스를 하면 쉴 짬이 없었다.
그 사이, 한사랑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백화점 같이 가요.”
그 정도는 괜찮았다. 백화점 쇼핑이 하루 종일 걸릴 일도 아니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