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45. 밥값 (1)
“언성 좀 높아진 겁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아니, 그래도…….”
“사장님, 내가 같은 말이나 또 해야 되겠습니까?”
눈에 힘을 주며 말하자, 다가오던 가게 주인이 움찔하며 멈췄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가 나이 많은 가게 주인이긴 했지만, 나는 윤수혁이었다.
따로 설명도 필요 없는 국회의원.
그가 아무리 장세룡의 아랫사람이라고는 해도, 내 심기를 거스르긴 힘들 터.
안에서 주먹 날린 걸 알았다면 나를 밀치고 들어왔겠으나, 그가 들은 건 큰소리 뿐이어서 결국 몸을 돌렸다.
이후에 다른 수족들에게 연락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걱정되지 않았다.
밖에도 내 사람들이 있었다.
스마트워치 버튼만 누르면 뛰어들어올 권 팀장, 돈 받고 일 해 주는 금 사장까지.
나는 안에 들어와서 영석이를 쳐다봤다.
“네가 뭘 한 걸로 하겠다고?”
“제가…… 장세룡 대표를…….”
“흐흐흐. 영석아, 마음은 가상한데, 그럴 필요 없다.”
“네? 그럼…….”
여전히 당황한 영석이의 어깨를 짚었다.
“내가 사람이라도 죽였냐?”
“아, 아닙니다.”
“몸싸움 좀 한 거야, 별거 없어.”
“아…… 네.”
“그리고 저 새끼 맞을 만한 새끼야, 모르냐?”
“아, 압니다.”
영석이가 눈에 띄게 당황한 걸로 봐서는 내가 때리는 걸 본 모양이었다.
그랬으니 자신이 한 걸로 하겠다는, 그런 영화 대사 같은 말을 했겠지.
물론 내가 바라던 것이었다.
자처해서 나 대신 방패가 되는 건, 언제라도 환영하는 일이었다.
다만 그런 훌륭한 방패를 지금 쓸 순 없었다.
정말 내가 위험할 때나 써야지, 끽해야 훈방으로 끝날 주먹질에 쓰는 건 말도 안 될 일이었다.
그사이, 인기척이 들렸다.
바깥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서.
“너, 너 이 새끼…….”
장세룡이 깼다.
“아, 몸은 좀 어떠세요?”
“감히 주먹질을 해? 너 여기서 나가면 죽을 줄…….”
“제가요? 무슨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혼자 식탁을 받으셨어요. 제가 넘어지는 장세룡 씨 부축하려고 했고요.”
“뭐……?”
장세룡의 얼굴이 아주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내 시치미에 열이 받은 건지, 아니면 장세룡 씨가 포인트인지는 모르겠지만.
“너 이 새끼…….”
주저앉아 떠는 장세룡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물러서려던 그의 옷깃을 쥐었다.
“증거 있어?”
“너…… 너…….”
그의 눈빛에 온갖 감정이 느껴졌다.
분노, 당황, 두려움…….
중얼거리는 장세룡을 두고, 몸을 일으켰다.
“그럼 식사마저 하시고, 밥값은 나중에 다 합쳐서 드릴게요. 기대하세요.”
대답은 없었다.
내가 본인의 생각보다 미친놈이라는 걸 깨달은 것인지, 입은 열렸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장세룡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만하면 됐다.
방을 나오자 영석이가 얼른 따라붙었고, 눈치 보던 사장은 허겁지겁 뛰어들어갔다.
내 도발은 여기까지였다.
앞으로는 내 사람들이 움직여서 장세룡의 팔을 꺾고, 다리를 잡아채야 했다.
내가 직접 할 순 없었다.
계획을 지시하고, 책임을 지는 게 바로 내가 할 일이었다.
현장을 뛰어다니는 건 권 팀장과 금 사장으로 족했다.
오늘은 모든 일의 출발점이 될 터.
장세룡이 곧 움직일 것이었다.
계획은 바뀌고, 더 거칠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리라.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쳐 맞고 가만히 있는 건 장세룡이 아니었다.
특히나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은 보복을 좋아했고, 장세룡은 그 중에서도 단연코 톱이었다.
내가 그와 살붙이며 산 것은 아니지만, 하수인이라서, 그리고 말 한마디 했다가 죽어서 잘 알았다.
장세룡이 어떤 인간인지.
***
[윤수혁 전 직장 대화투자자문 공동대표 오 씨 탈세 혐의로 수사]
[행복당 윤수혁, 공동대표로 재직했던 대화투자자문 압수수색 영장 발부]
[대화투자자문 오준범 대표 “부주의로 발생한 탈세, 성실하게 납부하고 처분 기다릴 것.”]
윤수혁이 양평에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언론이 시끌벅적했다.
이는 지면뿐만 아니라 TV스크린도 마찬가지였다.
오후에 방송하는 뉴스와 24시간 송출하는 보도전문프로그램에서도 대화투자자문 대표이사 오준범의 탈세를 보도했다.
일개 투자자문 회사 대표의 보도치고는 거창했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윤수혁 때문이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윤수혁이 대표로 재직했던 투자회사였고, 현재도 비상장된 주식을 갖고 있는 곳이 바로 대화투자자문이었다.
그리고 관련 찌라시가 많았다.
윤수혁의 재산, 회사의 자산에 대한 미스테리 때문이었다.
대단한 실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말도 안 되는 결과가 아닌가?
편법은 당연하고, 불법이 끼어들어야 말이 됐다.
그게 아니라면 미래라도 알고 있거나.
어쨌든 대화투자자문도, 윤수혁에게도 루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고작 수 년 만에 수천억 원의 투자금을 굴리고, 70여 명이나 되는 직원들을 부리는 건 로또 이상의 확률이 아닌가?
그래서 오준범 개인의 탈세가 회사와 윤수혁에게 옮아갔다.
물론 언론에서 찌라시를 떠들 수는 없으니, 오준범의 비리를 열심히 보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추징금과 벌금으로 끝날 사안이지만, 중요한 건 윤수혁이니까.
그러나 당사자인 윤수혁은 언론사 배포자료 최종안을 보면서 중얼거리기만 했다.
“두 대 맞고 이렇게 화가 나셨어?”
이어서 바쁘게 울리는 스마트폰을 엎어 두고,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삐-
“배포자료 이대로 돌리세요.”
- 알겠습니다, 의원님.
9급 비서가 대답한 뒤, 윤수혁은 챙겨야 할 기자들에게 따로 보낼 문자 메시지를 적기 시작했다.
[따로 전화 드리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문자로 연락드립니다. 오준범 대표에 대한 입장은 배포자료로 갈음할 것이며, 해당 사안이 끝나면 따로 뵈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따로 뵙는다는 네 글자에는 돈이나 술, 여자, 라운딩이 있지만, 굳이 적을 필요 없이 모두 생략했다.
문자 받는 언론인들은 전부 대가를 받아먹던 이들이었다.
직접적인 청탁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 가벼운 안부 인사처럼 보이는 게 오히려 안정적이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장세룡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때는.
그리고 오준범.
윤수혁은 그의 이름을 보다가 전화 대신에 스마트폰을 내려 두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어제 장세룡의 입에서 오준범과 안순익의 이름이 나온 뒤로 이미 입을 맞춰 둔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오준범이 알아서 자진납세를 했었다.
“회사 자금을 만지거나 의원님께 해가 될 만 한 건 없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혼자 끌어안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물론 윤수혁도 약속을 해 줬다.
법무법인의 고문 자리.
대화투자자문에서 받았던 월급의 반도 안 되겠지만, 말년의 체면을 지키기에는 좋은 자리였다.
보건복지부 장관도 벌써 이직을 마친 곳이기도 했고.
그러던 중 전화가 걸려왔다.
070으로 시작하는 흔한 스팸 광고 번호.
윤수혁은 자연스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금 사장님.”
***
9월 초.
서울 기온이 30도에 가까울 정도로 더운 낮.
국감을 앞두고 의원실에서 국토위 피감기관 관련 내용을 암기하고 공부할 때였다.
장세룡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너 정말 죽고 싶어?!
순간적으로 스피커가 지직 거릴 만큼 커다란 고함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 이거 자멸하는 길이야, 미친 새끼야! 이 바닥에 상도덕도 없는 줄 알아?!
“제가 상도덕을 어쨌다고요?”
- 돈 많으면 네 좃대로 될 거 같아?! 너만 병신 되는 거야, 이 개 같은…….
“욕설 그만하시고, 무슨 말입니까?”
- 허, 이 새끼 봐라.
“계속 욕이나 하실 거면 끊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점잖을 떨자, 드디어 장세룡이 욕을 멈췄다.
- ……너 원하는 게 뭐야?
“협상하시게요?”
- 네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들어야 되겠다. 네가 진짜 자멸하고 싶어서 그 지랄을 하는 건지, 아닌지.
내가 하는 게 자멸은 아니었다.
그저 장세룡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1,000억 원의 돈을 썼을 뿐이었다.
장세룡의 동료 의원을 매수하고, 수족을 흔들며, 관계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소위 돈지랄을 하고 있었다.
실행자는 금 사장.
전과까지 고려해서 움직이는 것이었는데, 그의 입장에서 보면 자멸일 수는 있었다.
정치가 돈을 먹는 게 아니라, 돈이 정치를 먹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돈과 정치의 역전.
정치꾼들이 갖는 알량한 믿음이 깨진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상인이 아니라, 정치가가 국가를 좌지우지한다고 믿는 이들이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더구나 위험성도 높았다.
거금일수록 발각될 가능성도 있었고, 동료 의원 간의 신뢰마저 깨질 수도 있었다.
나는 상관없었다.
비트코인을 환전한 돈이라서 추적당할 우려 없는 깨끗한 돈이었다.
그 탓에 두 달 내내 비트코인 수량 십 만 개가 풀려서 값이 폭락한 게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비트코인 자체가 범죄와 투기로 쓰였으니, 감수할 만했다.
그동안의 돈은 이미 따로 써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고.
지난 3년간 갖고 있던 비자금이 바닥날 때까지, 적잖게 기름칠을 했었다.
동료 의원, 언론인, 기업인, 청와대 등등.
여기저기 찔러 주니 검은 돈이라고 부르는 비자금도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물론 가끔씩 당무와 관련된 사업으로 리베이트를 받아서 돈을 마련하긴 했지만, 그건 당협에 뿌려 주고 행복당 업무보는데 쓰면 남지도 않는 푼돈이었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장세룡을 향해 말했다.
“말은 똑바로 하세요. 내 입이 아니라, 장세룡 씨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야죠.”
- 뭐?
여전히 ‘씨’ 붙이는 말에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금방이라도 분노할 것 같던 그의 숨소리가 당황해서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아, 대답은 그게 답니까?”
- 이게 끝까지…….
“그럼 끊습니다. 밥값은 조만간 두둑하게 돌려받으실 겁니다.”
그것도 1,000억짜리 밥.
사람 한 명 매장시키겠다고 쓰는 돈 치고는 액수가 컸지만, 뭐 어떠랴?
어중간한 집행유예와 의원직 상실로는 성에 안 찼다.
나는 더한 게 필요했다.
그 카드도 조만간 내 손에 들어올 예정이었고.
***
경기도 평택시.
아파트 신축 현장 인근의 주택가.
허접한 셔터가 올라가고, 휑한 주차 공간에 까만 세단 한 대가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김정환.
전 보수신당 대권후보였고, 이후 친일 논란으로 잠적했다가 보수신당에 슬그머니 복귀한 사람.
그가 주택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 오셨습니까?”
거실의 주홍 소파에 앉아 있던 윤수혁이 일어났다.
“오랜만이네.”
“예, 전에 대선 직전에 뵙고 처음입니다.”
친일 논란이 발생하고, 윤수혁을 보려고 찾아갔던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쓰게 웃던 김정환이 거실을 둘러보며 소파에 앉았다.
“여기도 자네 집인가?”
“그렇습니다.”
“위치가 노른자위야, 땅 보는 눈이 좋은가보네.”
“그럼 이번에 부동산 마련하시면 되겠습니다.”
“끌끌, 자 여기 있네.”
웃는 낯으로 김정환이 수첩 하나를 내밀었다.
오래된 가죽 수첩이었다.
윤수혁이 받아가서 종잇장을 넘기자, 김정환이 입을 열었다.
“장세룡이 수첩질하는 거, 내가 가르쳤어. 알고 있나?”
“그건 몰랐습니다.”
“그건 몰랐다? 그럼 아는 건 뭔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장세룡이 망할 건 확실히 알겠습니다.”
윤수혁의 대답에 김정환이 속으로 감탄했다.
몇 년 전에 봤을 때도 그랬지만, 윤수혁은 감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 나이대의 여유가 아니었다.
또한 결과적으로 자신이 장세룡까지 팔아넘기게 만들었다.
물론 대가는 있었다.
5,000만 달러, 한화로는 약 590억 원.
마음이 충분히 움직일만한 거금이지만, 그게 이 모든 일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아니었다.
단순한 시발점에 불과했다.
지저분한 법정 싸움을 한 장세룡이 해체 직전의 보수신당을 억지로 잡아끌고, 자신을 홍보용 전단지 따위로 쓰고 처박아 뒀으며, 같은 당 의원들마저 통제하지 못하고 내부 고발을 당한 일련의 과정이 김정환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주동자가 윤수혁이었기에, 김정환은 결심을 내렸다.
이 일을 끝내기로.
어차피 보수신당도, 장세룡도 다 망해 가는 마당. 이런 기회를 걷어찰 순 없었다.
어쩌면 윤수혁에게 호의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 년 전에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면서도 윤수혁에게 욕 한마디 하질 않았었으니.
곧 김정환이 입을 열었다.
“자, 쓸 만한가?”
“……괜히 대선 후보가 아니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