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44화 (144/191)

# 144

44. 타이밍 (3)

작금의 상황은 잘 알았다.

권 팀장의 보고나 손 지검장의 연락 이전에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애초에 누가 나만큼 그를 신경 쓰겠는가?

그것도 촉 바짝 세워 가며 경계하고 사람까지 붙여 둔 게 나였다.

내 작은 언행부터 의정활동까지 줄줄이 꿰기 위해서, 오점 찾기 위해서 장세룡이 눈독 들이는 건 일찌감치 알았다.

황택근 당대표의 전 보좌관 횡령 의혹도 마찬가지로 보수신당에서 손댄 일이었다.

그 의혹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했다.

풍파를 겪었던 보수신당이 모두를 똥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었다.

그래야 총선에서 네거티브를 남발하기도 수월할 테고, 정치 환멸로 보수층의 표를 끌어모으기도 좀 나을 테니까.

이게 아니면 보수신당이 살 길은 없었다.

지금 즈음이면 신민주당에서도 그 정도는 파악하고 대응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눈을 껌뻑거리는 박 보좌관에게 웃어 줬다.

“걱정하지 마시고, 업무마저 보세요.”

“……역시, 의원님이라면 뭘 알고 계실 거 같았습니다.”

“알긴 알죠.”

“근데 알고 계시는 게 아니라, 훤히 보고 계시는 것 같네요. 역시 항상 제 예측을 벗어나십니다.”

“아니면 이 자리까지 못 왔을 겁니다. 이 나이에 어떻게 이러고 있어요? 6급 비서, 잘 쳐줘도 5급 비서관할 나이 아닙니까?”

“흐흐, 의원님 보좌진 계속 하셨으면 그 정도 됐겠네요.”

“박 보좌관님이면 아마…… 5급으로 써 주셨겠죠. 에이스였으니까?”

“에이스긴 에이스인데…… 이렇게 상상 초월하는 에이스일 줄은 몰랐습니다.”

박 보좌관과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다가 박 보좌관의 손에 들린 서류를 바라봤다.

“그건 뭡니까? 아까 말씀하시던 자료예요?”

“네, 신문기사 스크랩한 거 하고 피감기관하고 당협 같은데서 나온 말들 정리한 건데…… 의원님께서 알고 계시다니 보류로 돌려놓겠습니다.”

원래 저런 자료가 많았다.

의견 취합하거나 분석한 것들, 참고할 주장부터 법적 조치할 루머를 정리한 것까지.

박 보좌관이 저걸 준비했다는 건,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래선 총선 체제나 국감 준비에 좋지 못했다.

빨리 해결 보는 게 좋았다.

권 팀장에게 근황 보고나 받고, 손 지검장에게 소식이나 듣는 건, 사태 해결보다는 유지에 가까운 처사였다.

차라리 부딪치는 게 나았다.

장세룡이 원래 대면했을 때 본능이 나오는 인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이러다가는 내가 먼저 다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었다.

특히나 내 보좌진들.

황 대표의 전 보좌관까지 건드렸다는 건 내 보좌진까지 건들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선 안 될 일이었다.

살다보면 먼지 좀 묻는 건 다반사, 그런 걸로 앞길을 막을 순 없었다.

“장세룡 전 대표하고 약속 좀 잡아주세요.”

“네?”

“그거 해결하고 가야죠.”

내가 박 보좌관의 옆구리에 낀 자료를 바보자,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말씀은…….”

놀란 모습이 이 지저분한 수작 뒤에 장세룡이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들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우리 보좌진도 한 번 확인해 주세요, 문제없는지.”

“아, 알겠습니다.”

박 보좌관이 고개 숙인 뒤 급하게 개인 사무실을 나갔다.

곧 장세룡하고 연락이 닿을 터.

그 전에 나도 준비를 좀 해둬야겠지.

바로 금 사장.

과거부터 불법 용역을 맡았던, 업계의 큰손.

전생에는 채 알지 못했던, 그러나 이번에는 마늘밭에 100억까지 꺼내 줬던 사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그를 써야 할 때였다.

***

“뭐?”

장세룡이 되묻자, 서 있던 40대 사내가 정중하게 대꾸했다.

“대표님과 미팅 약속을 잡고 싶다고…….”

“윤수혁이가?”

“네, 대표님.”

“허…… 오만한 줄도 모르고…….”

중얼거리던 장세룡이 눈을 번뜩였다.

“그래서 뭐라고 했나?”

“대표님 의견 확인하고 다시 연락 주겠다고 했습니다.”

“됐어, 내가 연락하지. 이제부터 손 떼고 입 닫게.”

“알겠습니다.”

전직 보좌관이던 당직자를 돌려보내고, 장세룡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수신자는 이름 세 글자.

“형님, 사람 좀 빌려 줘.”

장세룡의 형이자, 학원재단의 이사장인 장세철이었다.

- ……비서실에 전화해서 알아서 쓰질, 뭘 전화까지 해?

“걔들 말고.”

- 뭐?

“저번에 파타야 갔던, 그런 놈들.”

- ……같은 실수 두 번은 못 본다, 뭐 하려는 거야?

“실수 할 것도 없어.”

- 그때 무마하려고 내가 가져다 박은 돈이 얼만지 알고 하는 말이냐?

“나는?”

장세룡이 퉁명스레 묻자, 스마트폰 너머에서 한숨이 넘어왔다.

- 후…… 그래서 어디 쓰려고?

“갖고만 있다가 돌려보낼게, 나도 칼 한 자루 쥘려고.”

- 이번에도 일 그르치면…….

“그럴 일 없다니까, 형님도 참.”

장세룡의 단언에도 친형인 장세철은 쉽게 대답하질 못했다.

파타야 리조트사건으로 전직 비서실 직원 둘이 경찰에 구속 됐고, 형사들이 학원재단을 드나든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연루된 전직 비서실 직원들이 죄를 뒤집어썼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상당한 고초를 겪었을 터.

그럼에도 장세룡의 형이자, 이사장인 장세철이 머뭇거리는 이유가 있었다.

장세룡이 친동생이었고, 또한 자신에게 도움이 됐기 때문이었다.

새한국당 시절부터 밀어 준 일이 많았다.

눈 먼 돈으로 불리는 각종 지원금과 정부출연금으로 얻은 이익이 어마어마했다.

재단의 이익보다는 이사장인 장세철에게 큰 도움이 된 것이었지만.

어쨌든 장세룡은 필요한 존재였다.

당대표직을 잃고, 의원직을 상실했음에도 여전히 보수신당을 쥐락펴락하고 있으니까.

이윽고 장세철의 대답이 스마트폰을 건너갔다.

- 두 놈, 더는 안 돼.

“별일 없으면 돌려보낼게.”

그렇게 통화를 끊고, 장세룡은 곧장 연락처를 뒤졌다.

[행복한국당 초선 윤수혁]

통화음이 길게 이어졌다.

업무가 바빠서 신경 쓰지 못한다는 듯, 연결음이 반복적으로 울었다.

장세룡의 미간에 구김이 잡힐 무렵.

- 여보세요.

윤수혁이 전화를 받았다.

가만히 스마트폰만 들고 있던 장세룡이 나직하게 목소리를 냈다.

“붕어 어떤가?”

***

경기도 양평.

차가 익숙한 비포장길로 접어들자, 비로소 체감했다.

“여길 또 올 줄이야.”

내가 죽었던 곳, 바로 그 낚시터였다.

미리 알고 있던 장소긴 했다.

약속을 잡으면서 언급한 주소는 굉장히 익숙한 곳이었다.

장세룡의 가방모찌를 하고,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몇 번이고 드나들던 장소여서 모르기가 더 어려웠다.

지금도 운전대만 잡으면 여기로 곧장 올 수 있었다.

더욱이 내가 죽기까지 한 땅.

“아시는 곳입니까?”

영석이의 목소리가 회상을 깨고 들어왔다.

“……그건 아닌데, 익숙해서.”

“혹시 낚시 하셨습니까?”

들어가는 입구의 푯말에 낚시터가 페인트로 투박하게 적혀 있었다.

“못했지.”

내 말에 영석이의 의아한 시선이 백미러로 넘어오는 사이, 말을 돌렸다.

“참, 너 결혼식은? 결정 못했다고 했지?”

“아, 네. 결혼은 애기 낳고 할 것 같습니다. 국감 준비도 바쁘고, 재선도 있어서…….”

“그래도 결혼 중요할 텐데.”

“여자 친구는 임신해서 살 오르는 거 같다고, 웨딩드레스 입기가 좀…….”

“그럼 결혼 준비는 한참 남았다는 거지? 그건 다행이다.”

“아, 네.”

“내가 비용 대줄게, 근사하게 식 올리고 신혼여행도 다녀와라.”

“아, 네?”

백미러로 영석이의 동그래진 눈이 보였다.

“뭘 놀라, 당연히 너한테는 좀 더 해 줘야지. 박 보좌관 결혼할 때도 축의금 준 거 잘 알잖아?”

“저는 괜찮습니다. 이미 받은 거 많아서, 그래서 마음 놔서 사고 치기도 했고…….”

역시나 성실하고 믿음직한 동생이었다.

대학시절부터 봐 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애초에 내가 그런 이유로 같이 일하자고 데려오긴 했지만.

그래서 거절할 때도 억지로 쥐어 줘야 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에는 호의를 바라기 때문에 알아서 나설 것이었다.

영석이 같은 경우에는 권리 대신에 빚으로 기억할 부류였고.

“그냥 내 사람이라서 챙기는 거 아니야, 내가 너한테 고마워서 그래. 이거 선물로 안 받으면…… 내가 서운해.”

내 말에 한참 동안 대답이 안 넘어왔다.

영석이의 입이 몇 번이고 달썩거리는 모습만 백미러로 보였다.

그렇게 차가 낚시터에 도착해서야, 영석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가자.”

낚시터 뒤로 낯익은 가건물이 보였다.

플라스틱 접이식 테이블에 매운탕을 먹었던, 그리고 장세룡에게 맞아 죽었던 곳.

가슴 한편에 움찔했다.

그 안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화가 치밀 것 같았는데, 다행히 내가 가는 곳은 반대편의 시멘트로 만든 건물이었다.

입어료를 받는 창구가 딸린 식당.

주택을 개조한 디자인으로 내부는 관리라도 한 듯 제법 깨끗했다.

곧장 사장이 사람이 달려와 내게 고개 숙였다.

“제가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이 역시 봤던 얼굴.

그를 따라 들어간 방에는 장세룡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매운탕.

익숙한 냄새와 상 차림이었지만, 그래도 얼굴이 굳진 않았다.

붕어 얘기할 때부터 예상했었다.

“일단 앉지.”

내가 장세룡의 맞은편에 앉자, 영석이가 자연스럽게 도청탐지기를 꺼내 작동시켰다.

무궁에서 대여해 온 260만 원짜리 기기.

“뭐 저런 것까지 하고 그래?”

“이렇게 얼굴 볼 사이도 아닌데 해야죠.”

“허, 이 사람 보게. 자네가 먼저 전화한 거 아닌가?”

장세룡이 점잖을 떨고 있었다.

구치소를 다녀와서 교화됐을 리는 없을 테니, 이건 쇼하는 모습이었다.

“할 말이 있어서 온 겁니다.”

“그래, 할 말 해 봐. 내 들어 주지.”

그사이, 영석이가 금세 방을 훑고 자리를 떴다.

“일단 식사 먼저 하죠, 오랜만이라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붕어도 먹어 봤나?”

“매운탕으로 먹긴 했습니다.”

“그랬어? 이건 4자인데, 한 번 맛보게. 다를 거야.”

그의 말에 수저를 들었다.

딱 국물 한 입.

머금고 있던 걸 삼키지도 않고 바로 숟가락을 놨다.

비렸다.

오래된 생선 냄새를 맡은 것처럼 비위가 상했다.

“그 땐 어떻게 먹었는지…….”

죽기 전을 떠올려 봤지만, 맛이 어떤지는 생각나지도 않았다.

국물에 생선살까지 발라먹었는데, 악착같이 참고 먹은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윽고 장세룡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이것저것 한참 집어 먹은 다음이었다.

“왜? 못 먹겠나?”

“예.”

“쯧쯧쯧, 붕어 먹어 봤단 사람이 입맛이 왜 그래?”

“그러게요.”

가볍게 대꾸한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드시면서 들으세요, 할 말 하겠습니다.”

“말하게.”

그의 젓가락이 움직일 때.

“그때 한 말이 반은 맞았네,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공천 주겠다면서.”

“뭐?”

“근데 나는 다음 생에 해야 될 각오가 따로 있었거든.”

“이 새끼가 지금…… 무슨 개소리야?”

“내 손으로 죽여 버린다고.”

그 말에 장세룡의 얼굴이 확 굳었다.

돼도 않는 반말에 헛소리까지 지껄이는데, 감정까지 섞으니 멈칫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상황 판단을 하는 듯 보였는데,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건 그의 기억 속에는 없는 것이니까.

“근데 죽일 순 없더라고, 이 기회를 사람 죽이는 데 쓰긴 좀 그렇잖아? 여태 참은 것도 있고.”

탕-

장세룡이 젓가락을 거칠게 내려놨고, 앞접시에 씹던 음식물을 뱉었다.

퉤-

뭉개진 음식물이 그릇 바깥으로도 튀었다.

고함이 이어졌다.

“지금 막 가자는 거야?! 너 내가 뭐 쥐고 있는 게 뭔 줄 알아?! 대화투자자문 오준범이, 그 새끼가 똥 닦은 휴지가 다 나한테 있어! 안순익이 권력 남용에…….”

역시나 수작을 또 부리고 있었다.

언제 오 대표에 안 위원장까지 알았는지.

“그래, 말로 하면 안 돼. 너는 좀 맞아야겠다.”

그의 눈빛에 순간 움찔하는 게 보였다.

당황한 모양이었다.

반신반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설마 현직 최고위원이 전직 당대표를 때린다는 상상을 하기나 할까?

저항이 엄청날 것이었다.

나도 국회의원 품위 유지를 위반해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거나 논란에 휘말릴 터.

그러나 감수 할 만 했다.

내가 가진 힘은 그냥 초선 의원도 아니고, 당 지도부도 아니었다.

내 파워는 이미 행복당을 넘었다.

나도 내내 계산한 것이었다.

“일단 한 대 맞자.”

무릎을 세우고, 바닥을 짚자, 장세룡이 상체를 뒤로 젖혔다.

“무, 무슨……!”

이렇게 소원을 조금이라도 이루게 됐다.

비록 죽빵이지만.

뻐억-

테이블을 넘어가서 주먹을 내리 휘두르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이런 정신 나간! 바, 밖에 누구……!”

“한 대로는 정 없지, 씹쌔끼야?”

세팅 돼 있던 그릇들이 엎어지고, 장세룡이 손을 휘젓는 사이.

빠악!

턱주가리에 주먹을 갈겼다.

동시에 방문이 덜컥 열리고,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 으, 의원님?! 괘, 괜찮으십니까?”

“나는, 그래.”

“의원님, 도대체 이, 이게 무슨…….”

장세룡이 고개까지 젖혀진 채 나자빠져 있었다.

기절한 모양이었다.

이만하면 반은 성공인가 싶었는데, 영석이가 내 팔을 붙들었다.

“이, 이거 제가 한 걸로 하겠습니다.”

팔을 붙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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