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43. 메르스 (4)
6월 중순.
메르스 감염자와 사망자의 증가폭이 둔화되었다.
현재 확진 환자 183명, 격리 대상자 5,500여 명.
사망자는 25명이지만, 합병증으로 인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 외의 나머지 사항은 앞으로 감소할 것이었다.
정부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경유하거나 입원한 병원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고, 관련 법안도 곧 본회의에 회부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결국 전생과 비슷해졌다.
아니, 별 차이가 없었다.
전시성 목적을 첨가했다고 해도, 내 대처는 분명 올바른 것이라서 사태가 축소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감염자도, 격리 대상자도, 더 빨리 늘어났고 사망자도 두 자릿수에 육박했다.
전생보다 나아진 건 조 대표와 우리 당의 이미지뿐이었다.
정부가 우리 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안 그래도 방만한 대처를 질질 끌어서 나아진 게 없는 모양이었다.
나도 마찰을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나마 신민주당이 뒤늦게라도 움직여서 다행이었지, 아니면 더 심해졌을 수도 있었다.
결국 초기 대처 지연과 각종 마찰, 현 정부의 무능함이 더해져 내가 알고 있던 이점(利點)이 상쇄된 것으로 보였다.
그 외에 다른 답은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혁신 정부가 전생의 김정환 정부보다 더 개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양심선언한 일개 공무원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하다니?
바로 추종혁 감염병관리센터장.
잠깐이나마 언론에서 반짝한 그에게 보복성 내사가 시작됐다.
뻔한 수순이었다.
없는 죄명까지 붙여서 고소하고, 낮은 선고에 검찰은 항소하고 밀어붙일 것이었다.
재판에 진절머리가 난 대상은 결국 굴복하고, 그걸 본보기로 삼을 터.
예상대로였다.
우리 당으로 보건복지부의 연락이 왔었다.
“업무비 횡령, 업무 기록지 조작 증거 확보해서 고소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 줬고, 저희 쪽에서 추종혁 센터장님하고 같이 움직일 건지 물어봤습니다.”
박 보좌관의 보고.
맞은편 자리에 있던 추 센터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횡령하고 업무 기록지 조작이요?”
박 보좌관이 그 말에 들고 있던 수첩을 몇 장 넘겼다.
“아, 네. 업무비를 규정 외의 비품 구입에 사용했다는데, 확인해 보니까 부임 기간 동안 15만 원 정도를 규정 외적으로 쓰시긴 하셨습니다. 1년 3개월 동안 썼으니까 매달 만 원씩 잘못 쓰신 거죠.”
“아니, 그게 무슨 횡령이라고…….”
황당한 얼굴의 추 센터장을 내버려 두고 박 보좌관이 말을 이었다.
“기록지는 출장 일과하고 기록된 내용이 다른 건데, 이것도 단순 시간 차이로 볼 수 있습니다.”
“그 기록은 우리 주무관이 한 건데, 아니. 애초에 그게 어떻게 조작한 게 됩니까?”
“출장 때마다 시간 기입이 달라서 고의성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은 그렇게 들었습니다.”
“하…….”
그가 차마 대꾸도 못하는 사이.
박 보좌관이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증거 수집 계속 한 답니다. 센터까지 통째로 압박하니까 아마 딴 것도 금방 나올 거고, 기강해이 잡는다고 감사하는 거라 티끌 같은 것도 다 잡아 낼 텐데…….”
말을 술술 이어 가던 박 보좌관이 나를 바라봤다.
대답을 바라는 표정.
“의원님? 그럼 어떻게…….”
“아까 보건복지부에서 물어봤다고 했죠? 같이 움직일 거냐고.”
“네.”
“나하고 해 보고 싶으면 하라고 하세요. 순화해서 전달하지 마시고요.”
이 정도면 작은 협박 정도는 되리라.
그래도 고소를 강행하겠다면 나한테 연락은 해 보고 진심인지 확인하겠지.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합의를 볼 생각이었다.
그것마저 안 된다면 법정 싸움으로 가야되겠지만, 추 센터장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원래 정치인이라면 적당히 이용해 먹다가 빠지는 게 정석인데, 나는 당장이 아니라 나중을 내다보고 있었다.
변호사 비용이니 정치적 부담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부에서 본보기로 추 센터장을 압박하는 것처럼, 나도 그를 본보기로 써먹을 것이었다.
물론 방향은 달랐다.
죽이려 드는 게 정부라면, 나는 살리려 하는 사람이었다.
바로 구원자.
대한민국 행정부를 떠받치는 수많은 공무원들을 위한 영웅이 될 생각이었다.
만약에 내부고발과 양심선언을 해도 이 땅에서 멀쩡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거 자체로 희망이지 않겠는가?
투기 넘치고, 정의가 남아 있는 극소수의 부류도, 망설이는 사람도, 눈치보이던 이도 움직이게 될 것이었다.
그것도 나 윤수혁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 준다면, 좋은 사례가 될 터.
그 효과가 서민을 위한 이미지와 표로 되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내가 바라는 건 다른 부수적인 것이었다.
그들이 쥐고 있는 부정, 비리들.
그건 써먹기 좋은 것들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정보를 팔고자 하는 사람도 뒤탈을 염려해서 내게 올 가능성까지 있었다.
한 단어로 일석이조.
그걸 이루는 과정이 어렵겠지만, 이룬다면 소득은 많았다.
나는 어두운 안색의 추 센터장을 위로했다.
“대한민국 변호사를 전부 사서라도 아무 문제없게 하겠습니다. 센터장님의 연구와 업무, 필요하시다면 생계까지 지원하겠습니다.”
“네? 아니, 그렇게까지는…….”
“정부에서 본보기로 센터장님을 이 잡듯 털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표적 감사가 아닙니다, 정치 보복입니다. 제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누가 센터장님처럼 양심선언할 수 있겠습니까?”.”
“아……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센터장님의 희생에 제가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추 센터장을 보내고 얼마 뒤.
확인 전화가 걸려왔다.
***
“윤수혁 의원님,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 할 도리를 하는 겁니다.
“아직 혁신정부 임기 반 밖에 안 됐습니다. 원활한 의정 활동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손을 떼시는 게…….”
- 장관님.
나직한 목소리에 말이 끊겼으나, 보건복지부 장관은 오히려 좋다는 듯 대꾸했다,
“네, 말씀하세요.”
- 그게 정부 임기지, 장관님 임기는 아니잖습니까?
“…….”
- 이번에 메르스 사태 때문에 내각 물갈이 한다는데, 차라리 장관님이 손을 떼는 게 어떻습니까?
장관이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보면 무례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내각 교체가 코앞에 있었다.
국무회의에서 언급되기도 했었고, 청와대 내 실세들은 이미 공공연히 아는 사실이었다.
자신은 잘릴 게 뻔했다.
그다음에 받을 보직은 부처 산하의 기관장, 아니면 은퇴.
그러나 기관장도 1년을 유지하긴 힘들었다.
경력이 필요하거나 뭐라도 하나 챙겨줄 사람들에게 장관급, 차관급, 1, 2급의 고위 공무원 직함을 단기 세 놓듯 나눠 주기 때문이었다.
임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그래서 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 인사 업무는 아주 바빴다.
정권이 완전하게 교체된 뒤에는 별 볼 일 없는 대학의 명예교수 정도나 해먹게 될 터.
그다음은 없었다.
어쩌면 새정치당을 기웃거릴 수도 있겠지만, 정계 생활은 불가능했다.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전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에게 공천을 줄 사람도, 명분도 없으니까.
결국 권력이고 명예고 허상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이미 많은 장관들의 말년이 그러했으므로,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말하지 않자, 윤수혁이 말을 이었다.
- 장관님, 약속 받으신 거 있어요? 아니, 있어도 들어 두세요. 저울질 하시기에 나쁘지 않을 겁니다.
“…….”
- 제가 잘 아는 법무법인이 하나 있는데, 거기 고문자리 어떻습니까? 운 나쁜 장관 말년 치고는 좋은 자리라고 생각되는데…….
그제야 보건복지부 장관의 입이 열렸다.
“원하는 게…… 센터장 일 덮어 두는 겁니까?”
- 어차피 사직서 낸 걸로 압니다. 징계하시든, 받으시든 알아서 하시면 되는데, 지저분한 일만 없도록 해 주시면 됩니다.
“흠…… VIP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이라 내 선에서 못 막을 수도 있습니다.”
- 그걸 막아야 방금 약속이 유효한 겁니다. 일만 잘 해결되면 내가 선물도 하나 드리겠습니다.
“참…….”
장관이 입맛을 다셨다.
메르스가 터진 시점에서 이미 자신의 앞날이 글러먹었고, 권력과 명예가 줄줄이 떨어져 나갈 일만 남았다지만.
상대할 사람은 대통령이었다.
부담이 적잖은 일.
“생각할 시간 좀 갖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참고로 선물이 저렴하진 않을 겁니다. 이번에 1조 클럽 들어갔거든요.
그 말에 장관의 목울대가 꿀렁했다.
조 단 위라니.
작년 국회 예결산특위에서 다뤘던 총금액이 3조를 좀 웃도는 수준이었다.
개인의 재산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액수였다.
그것도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기업 재벌가도 아닌 정치인이 아닌가?
고민하던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대통령에게 해야 할 변명이 급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
“고맙습니다, 의원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 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그간 마음고생 많으셨습니다, 센터장님.”
감사를 표하는 추 센터장을 돌려보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통령한테 거짓말을 했는지, 무릎 꿇고 빌었는지 모르겠지만, 감사는 끝났고 고소도 없었다.
물론 장관에게 전화는 왔었다.
선물을 기대하겠다고.
1조 클럽이라는 말 때문인지, 되게 설레는 모양이었는데 선물은 일찌감치 정해놓은 상태였다.
제주 신공항 후보지 중 하나로 거론되는 대정읍 신도리의 임야.
2011년도 말에 신공항 후보지가 4곳으로 추려지면서 거의 10배 가까이 땅값이 뛴 곳이었다.
현재 소유한 임야의 매매가만 30억.
더욱이 신공항 부지 선정의 기대 효과로 인해 계속해서 땅값이 오르고 있었다.
공항 개발비가 가장 저렴하고, 업계 관계자들의 추측 때문에 땅 주인이나 주민들은 신도리에 공항이 들어선다고 믿고 있기도 했다.
제주 부동산 업계에서는 확정 됐다는 말이 떠돈다고 했고.
그러나 그건 올해 말까지.
몇 개월 뒤면 부지는 바뀌게 될 예정이었다.
한라산 능선처럼 오르던 땅값 상승률은 금세 완만해질 터, 더 이상 내게 값어치가 없었다.
물론 갖고 있으면 돈이 되긴 하지만, 30억짜리 임야는 장관 같은 사람한테 주는 게 남는 장사였다.
그냥 30억이 아니라, 프리미엄까지 있으니까.
바로 신공항 부지라는 기대.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부지 선정 이후의 땅값 상승률을 고려하면 100억 짜리가 될 수도 있었다.
당연히 그렇게 될 일은 없지만, 장관은 100억의 기대를 품게 되리라.
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가 받을 건 100억 대의 선물.
이만하면 성공적이었다.
마침 메르스도 진행이 서서히 멈추고 있었다.
정확히 짚자면 메르스 완치까지 걸릴 기간은 앞으로 몇 개월.
그 사이에 사망자가 몇 명 정도 늘고, 의심 환자도 몇 번인가 추가로 생기기도 하겠지만, 확진 환자는 늘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사망 증가율도 급하게 떨어졌고, 6,000명까지 치솟던 격리 대상자는 2,000명 대로 줄었다.
비판적 견해를 보이거나 사태를 관망하던 전문가들 모두가 긍정적인 신호라고 입을 모았다.
동시에 나는 조 대표를 다시 앞세웠다.
여론몰이 한 지가 꽤 돼서 잊히기 전에 한 번 더 우려먹는 것이었다.
아는 기자들을 바쁘게 동원했다.
[행복당 曺대표 “메르스 사태 끝까지 얕봐선 안 돼.”]
[메르스 최대 수혜자 조성현, 한 달 만에 지지율 6퍼센트에서 23퍼센트 달성해]
[‘메르스 리더’ 조성현, 대한민국 리더에도 어울리나?···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1위]
다시금 이뤄진 정치면 장식.
사드 논의가 있고, 대정부 질문 논란이 지면을 차지 했지만, 꽤 많은 꼭지에 조 대표의 이름이 올라갔다.
갈수록 자기자랑 같아 보였으나, 의도한 바가 잘 드러난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전부 사실이 아닌가?
한국갤럽의 표본오차 ±3.1퍼센트포인트, 신뢰수준 95퍼센트의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고, 한 달 만에 지지율을 17퍼센트나 끌어올렸다.
이건 기적적인 일이었다.
메르스 정국 같은 특별한 사태라서 가능한 것.
그래서 여론조사가 기사 곳곳에서 언급 됐는데, 내 눈에 가장 좋은 문구는 따로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리더.
대통령,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