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43. 메르스 (3)
신민주당 노희태 원내대표.
그가 메르스 사태를 논의하자며 말을 꺼내기에 대꾸했다.
“김원석 원내대표가 있는데, 왜 저한테 전화를 주셨습니까?”
- 김원석이 얘기 하지 말어. 결재 서명도 못 받는 게 무슨 원내대표라고.
그가 다 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 그러니까 우리끼리 얘기하자고. 당대표 서명 직빵으로 받을 사람끼리, 오케이?
당대표의 오른팔이라더니 그가 자신만만하게 물어 왔다.
“말씀 하십시오.”
- 그래, 역시 사람이 빠릿빠릿하네. 그럼 바쁜 사람끼리 말 돌려 하지 말고, 스트레이트로 가자고.
“…….”
- 메르스 법안 날릴 거 몇 개만 날려 주면, 본회의로 올려줄게.
조 대표가 추진한 메르스 법안이 지금은 보건복지위에서 걸려 있었다.
메르스 법안을 원한 건 지금은 우리 당 밖에 없었으니까.
그걸 신민주당이 도와주면 보건복지위 총 위원정수의 과반이 넘게 될 터.
이후에 법사위에서도 신민주당의 협조를 받으면 본회의장에서 표결을 받는 것도 가능했다.
전생에는 겨울이 다 돼서야 통과된 법안인 걸 감안하면, 이런 가정은 말도 안 되는 초스피드였다.
“……그게 다 입니까?”
- 더 있지, 휴업이니 병원 명단 공개니 하는 것도 옆에서 같이 악 써줄게.
“그리고요?”
- 성명서도 내고, 기자회견도 열고. 요 정도면 조건 괜찮잖아? 대신에…….
그가 말꼬리를 흐리더니 지금부터 할 말이 진짜라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 지금 보건복지위에서 우리 당대표가 올린 연금법 계류되고 있는 거…….
그의 말이 설명조로 이어지는 순간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 응? 왜?
“지금 설마 노 대표님이 조건 말씀하시는 겁니까?”
- 그래, 줬으니까 받아야지.
“주다니요…….”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여태 행복한국당이 보수라서, 정권을 놓고 싸워 온 정당이라서, 그 외의 별 같잖은 이유로 가만있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우리 쪽이 유리해 보이니 움직인 게 바로 신민주당이었다.
그런데 줄 걸 줬다니.
그가 대꾸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여태 판세 기우는 거 보다가 상황 파악하고 배 갈아타는 거 아닙니까?
- 아냐아냐, 나 멀미해. 배 못타.
여전히 처음과 다름없는 농담조의 말투에 짐짓 목소리를 깔았다.
“아실만한 분이 왜 이렇게 시치미를 떼십니까?”
- 알기는 뭘…….
그가 말꼬리를 흐렸다.
신민주당에서 차기 당대표 감으로 유명한 사람이 내 말을 모를 리 없었다.
알면서 입 닫고 있는 것이었다.
“저희 아쉬울 거 없습니다, 이만 끊습니다?”
- 에헤, 윤 의원! 젊어서 그런가, 성격이 급하네?
“…….”
-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나도 무슨 말인지 안다는 그런 말이지, 그래서 윤 의원이 할 말은 뭔데?
“메르스 법안에는 날릴 거 일절 없습니다.”
법안의 일부, 혹은 전부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경우를 날린다고들 표현했다.
특히나 로비를 받거나, 자신들에게 불리한 게 있을 때면 더더욱.
“그리고 뒤에 말씀하신 건 전부 지키셔야 하고요.”
- 그래, 그건 원래 하려고 했어.
“대신에 조건은 제가 겁니다.”
내 말에 황당하다는 듯한 노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윤 의원, 소매에 장땡이라도 숨겨 놨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 데려올 감염병관리센터장 추종혁이 장땡 정도는 될 터.
단단하게 대답했다.
“궁금하시면 지켜보셔도 됩니다.”
내 말에 머리를 굴리는지 늦은 대답이 들려왔다.
- ……일단 조건 드러나 보자.
“헤드는 우립니다. 동맹이라고 착각하고 간섭하시면 안 됩니다.”
헤드, 즉 지휘통제실.
계속해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말이었다.
- 그 정도야, 뭐…… 더 없어?
자신이 그랬듯 법안 통과에 협력하거나 다른 현안을 제시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예, 없습니다.”
그러자 노 대표가 다시 툭 던지듯 물었다.
- 그럼 군소리 없기다?
이게 그의 진심이었다.
불협화음 없이 등장하길 원하는 것이었다.
메르스 대책이니, 정부 비판이니, 떠드는 건 본인 마음이지만, 떠든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이 바닥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 당에서 신민주당을 뒷북이라고, 전시성 이벤트라고 비판한다면?
지저분해질 것이었다.
괜히 시끄러워지고, 신민주당은 졸지에 정부와 여당, 행복한국당과 다대일 싸움을 벌이게 터.
그들 입장에선 좋을 게 없었다.
진흙길 대신 아스팔트 포장도로 밟으면서 나오는 게 훨씬 편한 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군소리 없기다, 라는 그의 말에 깔끔하게 대답해 줬다.
“예.”
- 그럼 공문 좀 주고받자, 나도 보고할 자료는 올려야지.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내가 이룰 긍정적인 이미지는 충분히 얻었다.
앞으로는 메르스 사태를 축소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그게 이미지를 공고하게 만들 것이었다.
이후 퇴근 무렵의 오후.
노희태 원내대표와 약속을 마친 바로 그 날.
사안의 시급함을 알았는지, 아니면 얼른 배를 갈아타려는 것인지, 신민주당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론관에 등장한 사람은 원내수석부대표.
노 대표 측근인 그가 직접 나와서 정론관 기자회견을 시작한 것이었다.
- ……이건 야당공조가 아닙니다! 정부의 미온한 대책을 견디다 못해 발 벗고 나서는 것입니다! 진보와 보수, 이념과 사상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국민의 바램을 따르는 것입니다!
웅변가 같은 팔 벌림.
동시에 원고를 확인한 신민주당의 원내수석부대표가 변사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 신민주당은 정부의 미온한 대처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작금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메르스 진료 병원 명단의 공개와 환자 신상 공유, 메르스 법안의 신속한 통과를 위해…….
틱-
TV를 껐다.
계속 보고 있자니 신물이 올라올 뻔했다.
굳이 나한테 다이렉트로 전화해서 내걸었던 조건을 취소하고 급하게 합의를 받아 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뒤늦게 나타난 백마 탄 왕자님 흉내를 내기 위해서였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참다못해서 분연히 일어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투사가 아닌가?
원래라면 힐난을 해 줘야 하겠지만, 지금은 합의가 끝난 상황.
그냥 넘어가도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메르스 사태를 얼른 해결해야 했고.
똑똑똑-
다운된 기분을 날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의원님, 박민표 보좌관입니다.”
“들어오세요.”
기다리던 사람이 드디어 왔다.
문이 열리고, 박 보좌관이 내게 인사했다. 동시에 그를 따라서 숙어지는 머리가 보였다.
정수리에 숱이 없는 헛헛한 머리.
그가 바로 질병관리본부의 추종혁 감염병관리센터장이었다.
“반갑습니다, 윤수혁입니다.”
내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 * *
[보건복지부 공무원, 정부 메르스 대책 못 참아 양심선언해]
[질병관리본부 추종혁 센터장, 정부 메르스 대처 힐난···긴급회의에서도 쓴 소리 하고 뛰쳐나와]
[보건복지부 감염병센터관리장 추종혁, “차라리 행복한국당이 초기 대처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
두껍고 널찍한 테이블 위.
주요 일간지의 신문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안면에 노기가 등등한 이민수가 테이블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회의 테이블에 앉은 국무위원들을 향했다.
국무총리와 주요 장관들.
“공무원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겁니까? 차라리 행복당이 대처하는 게 낫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얼른 답했으나, 이민수는 호통을 쳤다.
“그런다고 해결이 될 문젭니까!”
보건복지부 장관의 고개가 숙어졌고, 이민수는 분을 삭이지 못하는 듯 이를 물었다.
상황이 나빴다.
보수와 진보로 대표되는 두 정당이 합세했고, 내부자나 다름없는 질병관리센터의 공무원 추종혁이 양심선언까지 했다.
언론이 불이 붙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특히나 정당에서 메르스 사태를 걸고넘어지고, 기름을 끼얹는 와중에 터진 일.
정권을 잡은 이후로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근래는 심각했다.
사태 수습은 멀었고, 내외부에서 총탄이 쏟아졌다.
그 와중에 국무총리가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고정하십시오. 현재는 전체 부서에 각별히 주의를 준 상황이고, 성향이 확실한 실무자들만 대책본부에 배치했으니…….”
“됐습니다.”
이민수가 화를 참듯 말하자, 국무총리가 입을 다물었다.
신문을 눈에 담던 이민수가 법무부장관을 쳐다봤다.
“메르스 법안하고, 행복당 요구 검토는 다 해 봤습니까?”
“네, 총 3회에 걸쳐 반복 확인했습니다.”
“문제 소지는 없습니까?”
“중동 호흡기 증후군이 감염병으로 등록되는 경우에 전체 요청사항은 법적으로 문제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병원 명단 공개도 말입니까?”
“그것도 가능합니다.”
법무부장관의 담담한 대답에 이민수의 미간이 구겨졌다.
병원은 주요 대기업 의료재단과 의사협회가 뒤에 있어서 여태 함부로 손대지 않고 있었다.
특히 병원 명단 공개를 막은 의사협회 부회장 김정섭은 대학 선배이며 친인척으로 각별한 사이기도 했다.
대통령 전문의도 부회장인 김정섭의 아들이었고.
가장 중요한 건 김정섭이 강남에 소유한 대형병원에도 메르스 확진을 받은 환자가 내원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명단이 공개된다면, 그 병원에 앞으로 예정된 진료는 물론이고 치료와 수술도 취소되고, 메르스 사태가 끝날 때까지 손님이 급감할 게 분명했다.
어쩌면 그 이후에도 날파리만 날릴지 몰랐다.
그랬기에 로비가 계속되고 있었다.
김정섭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나 의사협회의 주요 간부들도 마찬가지로 청와대에 접근하고 있었다.
메르스 관련 병원의 태반이 3차 병원으로 대기업의 의료재단에 속해 있는 상급종합병원이거나 의과대학 부속병원이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거물들.
이민수가 고심하는 사이, 국무총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결단을 내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병원과 협의를 볼 테니, 명단 공개를 허가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총리의 말이 맞습니다, 언론과 야당의 압박이 있으니 면피 구실도 있습니다.”
“그리고 메르스 사태도 더 이상의 확산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총리를 뒤따라 장관 몇이 말을 덧달았다.
반대로 남은 몇 명은 굳은 안색으로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이윽고 이민수가 포기한 어조로 물었다.
“야당은 어떻습니까?”
“요청 사항만 받으면 됩니다. 우선 당정 협의회를 열어서 모양새를 갖추겠습니다.”
그 말에 한숨을 뱉은 이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에 메르스 법안이 본회의 올라가기 전에 병원과 협의 보고 명단 공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놈의 뒷북 소리라도 안 듣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대통령님.”
국무총리의 대답에 분위기가 마무리되는 듯했는데, 이민수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향한 건 보건복지부 장관.
“저 사람은 사직처리 됐습니까?”
이민수가 고갯짓으로 신문을 가리키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얼른 신문을 쳐다봤다.
타이틀에 감염병관리센터 추종혁이 있었다.
“아직입니다. 현재는 징계 절차를…….”
“징계가 다가 아닙니다. 아예 파면하고, 가능한 형법까지 적용시키세요.”
이민수가 굳은 어조로 말하자, 장관은 곧장 대답하질 못했다.
형법을 적용하라는 건 단순히 업무태반이나 정치적 중립 위반을 따지는 게 아니었다.
감염병관리센터를 압수수색하듯 털어서 주요 연구부터 간식비까지 문제 여부를 파악해서 고발하라는 뜻이었다.
그럼 문젯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숫자 기입 실수를 업무비 횡령의 빌미로 삼을 수도 있었다.
이는 보건복지부 장관인 자신의 오점으로 남을 터.
장관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님, 그러기에는 현재 메르스 여파로 인해 여론도 좋지 않은 상황이고, 행복당에서 감싸고 돌 게 분명한…… “
“이런 건 일벌백계(一罰百戒)를 보여 줘야 하는 일입니다.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고 야당에 들러붙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도 사직하지도 않은 공무원이!”
“……그 말씀은 맞습니다만, 그럼 병원 명단이라도 우선 공개하고, 여론이 반전된 이후에…….”
장관이 어떻게든 이 상황을 피하려 말을 이었으나, 곧 움찔하고 말았다.
이민수의 언성이 높아졌다.
“장관! 안 그래도 국정 운영이 제대로 안 되는 판에 이런 위계질서까지 눈치를 보면서 다뤄야 합니까!”
“……죄송합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조심히 대답한 뒤, 이민수가 말을 덧달았다.
“이 사태의 책임을 지게 만드세요.”
“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이민수가 강조했다.
어쩌면 자신이 지게 될 메르스의 책임을 추종혁이 나눠질 수도 있었다.
만약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잘만 한다면, 여론의 이목을 돌리는 것 이상의 더 나은 효과를 낼지도 몰랐다.
예컨대, 추종혁이 죄를 은닉하고 정치 입문에 욕심을 부려서 거짓 선언한 공무원이라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것이었다.
당분간 여론이 물고 뜯고 맛보기에 이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어차피 병원 명단이 공개되고, 메르스 법안마저 통과되면 이번 사태는 결국 잠잠해질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풍파를 피해갈 수도 있었다.
비록 욕은 먹을 대로 먹고, 양보는 양보 대로 했지만, 이만하면 다행이었다.
갑자기 전염병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민수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