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39화 (139/191)

# 139

43. 메르스 (2)

[曺대표 메르스법 발의··· 靑“과장된 대처로 국민 혼란만 증가.”]

[행복한국당, 재량 휴교와 종교계 소모임, 집회 감축 요청···일부 학교 수용]

[새정치당 대변인, “정부와 방대본, 여당을 무시하는 행복한국당은 자기들만의 나라에 사는 정신 나간 집단.”]

이 때가 5월 25일.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5일 만의 일이었고, 아직 감염자는 셋에 불과한 때였다.

그러나 일주일 뒤면 격리 대상자가 1,000명을 돌파하고, 첫 사망자까지 발생할 예정.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했다.

내 목표는 사망자를 줄이는 것이었다.

설령 감염자가 발생한다고 해도, 올바른 후속조치로 목숨을 구해야 했다.

가능하다면 내가 개입해 도움을 줄 생각이기도 했다.

그래야 감염자의 회복이 기사화 되고, 이슈가 되어 행복한국당의 지지율을 올려 주고, 조성현 당대표와 내게 힘을 실어 줄 테니까.

더불어 이미지도 좋아지고.

그사이, 타고 있던 차가 멈췄다.

학원재단 정문 앞.

경비가 출입을 확인한 다음에야 다시 차가 굴러 갔고, 안쪽으로 더 들어간 뒤에야 완전히 섰다.

정문 옆에 놓인 내 키 만한 주물현판이 눈길을 끌었다.

절차탁마(切磋琢磨).

글자에 윤이 도는 게 멋들어진 붓글씨처럼 화려했다.

“윤 의원, 벌써 오셨나?!”

마침 학원재단의 이사장이 나왔다.

강북구에 사립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갖고 있는, 일흔이 훌쩍 넘은 노인.

“예, 이사장님.”

“안 들어오고 뭘 보고 계셨어?”

“절차탁마, 현판이 멋져서 좀 보고 있었습니다.”

“윤 의원이 볼 줄 알아, 내가 10년 전에 세 장이나 주고 만들었어.”

3억은 아닐 테니, 3천만 원이나 주고 돌과 주물현판을 사 와 세워놨다는 말이었다.

이윽고 이사장이 친근한 얼굴로 내게 손 안내를 했다.

“날도 더운데 이만 안으로 가실까?”

“그러시죠.”

그렇게 들어간 건물.

이사장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전부 강북에서 알아주는 교육인들이었다.

이사장, 교장, 혹은 은퇴한 원로들까지.

“안녕하십니까, 행복한국당 최고위원 윤수혁입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 인사한 뒤, 내부를 둘러봤다.

달달한 과자와 커피를 먹던 모양.

나도 커피 하나를 받아 들면서 말을 이었다.

“다들 바쁘시고, 저도 바쁜 관계로 짧게 말하겠습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 저희 말대로 따라 주십시오.”

바로 꺼낸 용건에 사람들이 움찔했다.

다들 정부나 지자체에서 각종 지원을 받고 있으니, 나보다는 그쪽 눈치를 더 볼 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일로 피해를 본다면, 제가 전부 커버하겠습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그 뒤에 메르스 대처 방안 자료를 나눠 주었고, 짧게 설명한 뒤 자리를 떴다.

다음은 의료인이었다.

마찬가지로 종교계와 각종 집회, 모임을 주도하는 단체들.

마지막으로 강북구 소재의 기업까지.

비록 내가 강북구 출신 의원도 아니고, 공천을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 중에 나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강북구 출마는 물론, 당선 또한 기정사실로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호남이든, 경남이든 어디를 가도 당선의 여지가 있는 게 나였다.

특히나 강북은 같은 서울임에도 외곽 취급도 종종 받는 땅으로 더 개발시킬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바로 나.

그렇게 강북구를 도는 사이.

환자가 늘어났다.

그것도 내 예측보다 좀 더 많았다.

***

2015년 6월 1일.

행정안전부 소회의실.

퇴근 무렵에 실무자 십수 명이 호출을 받아 모였다.

대상자는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 외교부, 법무부의 2급 이사관 이하 메르스 관련 부서장들.

주재자는 행정안전부 차관이었다.

“지금부터 메르스 대책 긴급회의를 개회하겠습니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므로, 회의 의례와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안건을 진행하도로 하겠습니다.”

차관이 배부된 서류를 넘기면서 말을 이었다.

“먼저 행안부 재난관리본부의 비상상황관리반 인력을 증가시키는 안건입니다. 보건복지부하고 법무부에서 5급 사무관 이상으로 각 1명씩 차출하여 내일부터 비상상황관리반으로 보내 주세요. 오늘 중으로 공문 전송되니, 파견 서류 작성해 주시고…….”

차관이 시선을 돌려 법무부에서 나온 법무심의관을 쳐다봤다.

“심의관?”

“아, 네.”

“여기서 논의한 걸로 중대본 구성도 가능해요?”

“네, 행안부 장관님께서 허가하신 사항이면 관계부처 요청 없이도 먼저 중대본 구성이 가능합니다. 근데…… 위기관리매뉴얼에 따르면 아직은 불가능합니다. 질병경보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되어야 합니다.”

“이제야 주의 단계 아닌가? 격상 매뉴얼이 뭡니까?”

“인구비율로 계산했을 때, 심각 단계의 경우에는 감염자 300만 명 이상 발생할…….”

차관이 비듬이 맺힌 짧은 구레나룻을 긁었다.

“감염자? 격리 대상 인원 말고 ?”

“네, 격리 인원은 법적인 조치를 받지 않는, 단순 접촉 인원을 규정하는 거라서…….”

그러자 차관의 시선이 보건복지부의 비상기획관에게 닿았다.

“기획관! 그럼 우리 감염자가 33명? 이게 답니까?”

“네, 현재로서는 33명입니다.”

“그 감염자들, 격리 대상이었습니까?”

“네, 전부 격리 대상자입니다.”

“그건 다행이네, 컨트롤이 잘 되고 있긴 한가 봅니다.”

“…….”

비상기획관이 차마 대꾸하지 못했다.

고작 열흘 만에 감염자가 1명에서 33명이 되었고, 격리 대상자가 3명에서 1,000명이 넘은 상황.

오히려 컨트롤이 잘 되고 있지 않았다.

그 사이, 차관은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심의관.”

“네.”

다시 법무심의관이 대답하자, 차관이 서류를 팔락거렸다.

“그럼…… 중대본 말인데.”

“네.”

“임시 기구 같은 걸로 중대본 대체 구성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법무부에서 매뉴얼 확인해서 기구 구성해 주고…… 요즘 논란되는 거 있죠? 15페이지, 그거 방안 없어요?”

파락, 파라락.

종잇장 넘어가는 소리가 일제히 회의실을 채운 뒤.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행복한국당 개별 행위 대책의 건]

그 아래로 행복한국당이 여태까지 해 온 일들이 경험담처럼 적혀 있었다.

당 예산을 이용해 메르스 대책 포스터를 제공한 것과 주요 단체와 기관에 임시 휴업을 제안한 내용, 의료 기관의 연락과 통합 제안 등등.

그리고 조성현 당대표의 법안 발의까지.

차관이 회의 테이블을 둘러보며 입을 뗐다.

“이거 대책들 없겠어요?”

“…….”

“…….”

2급 이사관들과 이하 실무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들 모두가 상임위 관련 감사를 받는 탓에 국회의원과 연줄이 있지만, 이 문제는 그것과 별도로 대답하기 힘든 것이었다.

차마 행복한국당이 잘하고 있다고 대답할 순 없으니까.

특히 조성현이 주장하는 병원과 환자 명단 공개, 격리 대상자에 대한 법적인 제재는 당장 시급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격리 대상자.

그들은 집에서 대기하라는 요청을 수용한 사람들이었다.

격리라는 표현과는 멀었다.

따로 감시 인력도 없고, 전화해서 위치나 꼬치꼬치 묻는 정도.

만일 격리 대상자가 생업을 위해 집을 떠난다면 막을 도리가 없었다.

메르스를 전파한다고 해도, 강제 구속도 불가능했다.

대한민국 법에 의거하면 메르스는 감염병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성현이 이 모든 걸 해결할 법안을 발의했고, 행복한국당은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메르스에 대처하고 있었다.

구구절절 옳은 것뿐이었다.

현안 보고 중에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대책 마련하라고 말로만 떠드는 것보다 수만 배는 나았다.

이윽고 참여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아, 말해 봐요. 뭡니까?”

“조성현 대표가 발의한 메르스법안의 일부라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반영하고, 신속하게 병원 명단을 공개하고 환자 신상을 공유해야 합니다.”

“……뭐?”

이사관들이 움찔하고, 차관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 뭐야? ……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센터 추종혁? 이봐, 추 센터장. 당신 프락치야, 뭐야?”

“……사망자 두 자릿수 돼서 병원 명단 공개해 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입니다.”

“이 사람이!?”

“…….”

“지금 나라가 둘로 쪼개지느니, 반란 세력이라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판국에 누구 편을 들어? 월급 주는 게 누군지 몰라서 그래요?!”

차관이 그러고선 혀를 찼다.

“쯧쯧, 센터장은 이번 일 잘해야 될 겁니다. 아니면 그 발언, 정치적 목적으로 징계 받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주의해서…….”

“내 월급은 국민들이 주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마땅히 해야 될 일을, 차관이 요청한 방안에 대해서 얘기 했을 뿐입니다. 어느 당이 좋다고 떠든 게 아니라.”

“……뭐? 차관?”

“나중에 징계하지 말고, 지금 자르십시오. 긴급회의라고 해 놓고, 일 잘하고 있는 행복한국당에 고춧가루 뿌릴 생각이나 하고…….”

차관의 인상이 점점 굳는 사이, 감염병관리센터 센터장인 추종혁이 벌떡 일어났다.

“행복한국당에서 메르스 대책위를 꾸린 게 벌써 저번 주입니다. 여기는 아직도 고작 7명밖에 없는 비상관리반을 대책이라고 세워선 인원 파견하게 하고, 말도 안 되는 매뉴얼 때문에 중대본도 못 만들고…… 제발 정신들 차리십시오!”

한 바탕 일갈을 내지른 뒤, 추 국장이 회의실을 나갔다.

상위 기관인 보건복지부의 비상안전기획관은 황망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고, 차관도 입만 벌릴 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

“이 사람 섭외해 주세요.”

“네?”

박 보좌관의 놀란 눈이 내가 들이민 서류로 향했다.

보건복지후 산하 기관 질병관리본부의 감염병관리센터장 추종혁의 이력서.

서울대 의대 출신, 이후 국립보건원 말단부터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를 오가며 전염병과 질병 관계 부서를 도맡은 경력자라고 기재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장관이나 대통령 표창도 한두 차례 받았었고.

어느새 서류를 받아 든 박 보좌관이 고개를 들었다.

“이 사람은 왜…….”

“어제 저녁에 메르스 대책 긴급회의 하다가 폭탄 터뜨리고 나간 사람입니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박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폭탄이라고만 했는데도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조건은 어떻게 할까요?”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선까지.”

“오, 그럼 막 던져도 된다는 말씀으로 알고…….”

“막 던져요?”

“의원님 선에서 불가능한 게 있긴 있습니까? 흐흐흐.”

박 보좌관이 웃음을 흘리면서 고개까지 기울이길래 나도 웃고 말았다.

“그럼 무슨 조건으로 데려오는지 지켜보겠습니다.”

“아무렴요, 걱정 마십시오.”

박 보좌관이 믿음직스럽게 대꾸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이후에 나는 그가 정리해 왔던 기사와 지역별 현황을 확인했다.

[행복한국당의 과잉 대응 결국 옳았나···메르스 격리 대상자 1,500명 돌파]

[메르스 확산에 유치원‧학교 850곳 휴업···교육부 지침 아닌 행복한국당 권고 수용해]

[행안부 이어서 교육부도 뒷북, 이제야 메르스 대책 긴급회의 열어···전국 단위 휴업 논의 되나?]

메르스가 발생한 지 이제 열흘째.

교육기관 휴업이 확 불어났다.

일단 지역구나 다름없는 강북구가 내 제안을 대부분 수용했고, 행복한국당 지역구에서도 많이 반응한 덕분이었다.

전생에는 휴업한 곳이 100개 좀 안 됐던 기억이 났는데.

어쨌든 효과가 있었다.

그게 메르스 예방이나 치료로 연결되는 직접적인 결과는 아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국민들이 우리 당의 대응을 반긴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의 정부는 개판에 뒷북이지만, 우리 당은 표면적으로나마 조 대표가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박 보좌관이 데려올 추 센터장도 그 갈증을 다 채워 주진 못할 것 같았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화면에 뜬 송신자 이름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원내 제2야당인 신민주당 원내대표, 노희태.

그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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