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43. 메르스 (1)
“그래도 이건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전염성 입증이 전혀 안 된 상황인데.”
“대표님.”
“……알았습니다.”
역시 독불장군의 성질이 완전히 죽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내 말을 따르기로 해 놓고도 과하다고 여겨지는 것에는 틈틈이 태클을 걸고 있었다.
예컨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2조 2항에 메르스를 추가하자고 한 것과 보건복지위를 움직이고 청와대를 압박하자는 등등의 얘기들.
거기에 의문을 표하는 것이었다.
사실 전생을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과하고, 이른 주장이니 당연한 반응이긴 했다.
그러나 지금부터 준비해야 했고, 주장해야만 했다.
그래야 나중에 가서 ‘저 말이 맞았구나.’하고 탄식이라도 할 테니까.
다만 미리 납득시키는 건 어려웠다.
급하게 말이 통하는 교수를 동원해서 그럴싸한 자료를 만들긴 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관한 말에 불과했다.
나처럼 단언하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나 보수적인 이 정치판에서만큼은.
그래서 밀어붙이고 있었고, 조 대표가 억지로 수용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완전히 이해하고 납득한 것은 아니겠지만, 상관없었다.
시키는 대로만 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행복한국당에 이 사람 말고 쓸 만한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 정의나 사상, 이념이 틀려 먹은 탓이었다.
내가 뽑은 초선 중에 괜찮은 이들이 있긴 했지만, 아직 깜냥이 모자라서 선택지는 이 사람 밖에 없었다.
그 사이 눈치를 보던 박 보좌관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다음은 지역구 대처 방안입니다. 먼저 초중고교와 대학교에 책임자 재량의 휴교를 요구하고, 교회 등의 인파 집결지에 메르스 주의 사항을 전파하고, 안내지를 게시할 수 있게 협조를 요청하며…….”
“……이미 메르스가 전국을 감염시키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조 대표가 홀로 중얼거리듯 말하자, 기계처럼 설명을 이어 가던 박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상정해서 만든 계획입니다.”
반사적인 대답.
그러나 박 보좌관도 조 대표와 같은 입장일 것이었다.
과장이라고 생각할 터.
그도 내 말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처음에만 바쁘게 뛰어다녔을 뿐, 내가 하나둘씩 추가 대책을 요청하자, 박 보좌관도 주춤했었다.
내가 지시한 건 가능성 이상의 확신에서 기초한 것들이었으니까.
그래도 박 보좌관은 열심이었다.
조 대표와는 다르게 그는 보좌진의 신분이고, 내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었다.
어쩌면 내 말을 믿고 움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그건 모를 일이고.
어찌 됐든 간에 박 보좌관은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원내의 손꼽는 보좌관다웠다.
의원실에서 야근 중일 우리 보좌진도 마찬가지로 훌륭한 이들이었고.
***
2015년 5월 22일.
사흘 만에 메르스 확진 환자가 셋으로 늘었고, 환자와 접촉한 인원 64명이 격리됐다.
언론사에서는 메르스 관련 기사를 쏟아 냈다.
그러나 사스, 혹은 40퍼센트의 치사율 같은 단어는 이미 이틀 만에 소진한 상황.
또한 당청과 관련 기관에서 로비와 압박까지 들어오자, 언론사의 메르스 기사는 수천 갈래로 나뉘었다.
보건당국의 늑장 대응을 비판하는 방송, 메르스의 전파 가능성이 낮다는 보도, 의사협회의 메르스 예방과 치료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단신, 사스와 비교하는 스트레이트 기사 등등.
거의 난립과 다름없는 과정.
그 와중에 정치면만 달랐다.
주요 일간지부터 군소 지방지의 정치면에 비슷한 내용이 실린 것이었다.
[행복당 曺대표, “메르스 초기부터 전력투구하여 진압할 문제“]
[조성현, 메르스 확진자 경로 및 진료 병원 공개 요구···지역구 ‘인천 남동구을‘에도 협조 요청 예정]
[행복한국당 조성현, 메르스 감염병 법률로 조속히 관리 취급해야···의학 전문가와 함께 법률안 개정 예고]
이는 로비를 받거나 받지 않은 곳 모두 실을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언급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 촉구‘같은 탁상공론식의 당연한 주장보다, 자극적이고 구체적인 요구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주체의 인물이 원내 제1야당 당대표인 조성현이었다.
비록 신민주당의 당대표나 지금의 대통령에 비하면 인지도가 낮긴 하지만, 발언권의 강도는 결코 약하지 않은 인물.
기다렸다는 듯 온갖 요구를 쏟아 내는 조성현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기삿거리였다.
쉽게 말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뜻.
진료 병원 공개나 감염병 취급, 지역구에 협조 요청하겠다는 얘기 하나하나가 반향을 일으킬 게 뻔했다.
반대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을 흔들 테니까.
조성현이 그 여파를 느낀 건 기자회견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한 지 다음 날, 그러니까 정치면에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된 다음부터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문자 알림 진동이 전화 벨소리라도 울리는 듯 연이어 반복됐고, 개인 사무실과 지역구 사무소로 사람들이 몰렸다.
기자는 물론이고, 지역 유지와 동료 의원, 기업 대관팀까지 움직인 것이었다.
“그럼 최고위 회의는 초반 공개로 갈 생각입니까?”
윤수혁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조성현의 물음이었다.
자체 제작한 가이드라인을 보며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던 윤수혁이 시선을 들었다.
“이미 언론에 불붙인 상황이니만큼, 부채질은 필요 없을 거 같습니다.”
“비공개란 거지요?”
“예, 비서실에 회의 일정 고지하시고 준비한대로 가시죠.”
“그럽시다, 그런데…….”
“예, 대표님.”
“집에 안 들어갔습니까?”
조성현이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기대어 잔 듯 정장 상의에 제멋대로 주름이 잡혀 있었고, 보기 좋게 가르마를 탔던 머리가 흐트러져 있었다.
영락없이 밤을 샌 꼴.
구두 대신 슬리퍼를 신은 발을 보다가 윤수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 게 좀 많아야죠.”
“정말 여러모로 대단합니다. 참…… 성실하기까지 할 줄이야.”
“……아닙니다.”
말끝에 쓰게 웃은 윤수혁이 스마트폰을 다시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전에도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가는 길이 달랐던 거지…….”
***
당내 의견 수렴 절차는 비교적 쉬웠다.
버릴 놈 버리고 챙길 놈만 챙길 생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조 대표가 싫어하는 계파 형성이 저절로 이루어 졌으나, 그도 별다른 말은 없었다.
애초에 윤수혁계는 사적 이익을 위한 끈끈한 집단과는 성격이 다르고, 내가 주도한 것도 하나 없어서 외견상 알기가 계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
조 대표가 먼저 찾아와서 같이 일하자고 했던 예외적인 사람이었다.
아마도 일부러 신경 써 주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투쟁하는 독불장군이라고 해도, 그건 벌써 몇 년 전의 얘기였으니까.
그사이, 목소리가 건너왔다.
“이러다 내분 이야기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윤 최고.”
경기도당협위원장이자 3선이나 한 고일준 의원이 묻기에 고개를 끄덕여 줬다.
“괜찮습니다.”
“혹시 뭐 있어? 지금 우리끼리 이러는 거, 미디어에서도 집안싸움이라고 욕할 거 아냐?”
내 말을 선선히 듣는 3선 의원이지만, 조금 불안하긴 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이 상황이 엇나갈 경우를 우려하는 것이겠지.
정치도 할 만큼 했으니, 몰려올 후폭풍이 어떤지 예상하고 있으리라.
물론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일 터.
“만약에 말입니다.”
“응?”
“당대표님이, 그리고 제가 주장하는 게 옳다면요?”
“그럼…….”
말끝을 흐리던 그가 고개를 모로 끄덕였다.
“잘했다는 소리 나오고 진즉에 그랬어야 했다고 소란들 피겠지. 당대표님이야 전국적으로 인지도 뛸 거고…….”
역시나 앞으로 이뤄질 것과 내가 바라는 걸 술술 읊어 댔다.
“예, 그렇게 될 겁니다.”
단호하게 대답하자, 고 의원의 눈빛이 바뀌었다.
“……아! 뭐 있구나, 그치?”
“있습니다.”
한 번 살아 봐서 안다고는 못하고 정보라도 쥐고 있는 듯 대꾸하자, 고 의원이 활짝 웃었다.
“역시 윤 최고가 정보 없이 움직일 리가 없지.”
“그럼 다른 의원들한테도 바람 좀 넣어 주십시오. 의원님이야 저를 잘 아셔서 도와주시지만, 다른 분들은 모르니까 영 시원찮네요.”
“누가 윤 최고 말을 안 듣는데?”
“많이들 그러십니다, 반대는 안하는데 선수가 낮아서 그런가 반응이 시큰둥하네요.”
“거참, 윤 최고가 누군 줄 알고. 내가 한 바퀴 싹 돌게, 걱정 말고 일봐.”
고 의원이 걱정 말라는 듯 엄포를 놓고 개인 사무실을 나갔다.
그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를 잘 안다기보다는 받아먹은 돈이 많고, 앞으로도 받아 먹어야 하니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여태 빌려 준, 사실상 준 것과 다름없는 돈이 이미 작년 초순에 억을 넘은 상황이었다.
서류로 만들진 않았지만, 스스로 채무관계는 느끼고 있을 터.
이렇게 움직인 사람이 고 의원 말고도 몇 명 더 있었다.
그래서 조 대표의 초계파 정책 때문에 제대로 된 연구모임부터 계파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도, 내 이름으로 된 윤수혁계라는 단어가 있던 것이었다.
물론 형태는 달랐다.
뭉쳐서 으쌰으쌰하고 뒤 봐주는 것과 다르게, 서로 간에 어울리는 수준.
그러나 단순히 뭉친 것 이상으로, 윤수혁계는 내 영향력이 꽤 셌다.
그래서 윤수혁계였다.
일반적인 계파보다는 유기성이 적긴 해도, 단순히 뭉친 것 이상으로 내가 준 돈이며 도와준 것들이 적잖았으니까.
쉽게 말해 당사자간의 거래.
누구도 알 길이 없는 나만이 갖는 영향력이었다.
대놓고 유세하고, 과시하며 있는 힘을 자랑하는 대다수의 정치인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비선 같은 은밀한 권력을 줘도 자랑하는 게 바로 정치인들이 아닌가?
물론 정치인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지만, 나는 달랐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 목표는 떵떵거리며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내가 잘났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올려다 볼 정도로.
지금도 좋은 말이 많긴 했지만.
한참은 부족했다.
***
강북구의 한 고등학교.
“메르스 예방 포스터는 복도에 부착했고, 재생용지로 복사해서 학급 인원에 맞춰 배부했습니다.”
행정실장이 교장에게 보고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말씀하셨던 휴교령은 교육청에 문의했는데…….”
잠깐 주저하던 행정실장이 교장의 눈초리에 천천히 목소리를 냈다.
“그…… 안 사무관 하는 말이 정치적 의도로 비칠 수 있는 거 감안하고 휴교령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불이익 감수할 자신 있으면 하라고…….”
“안 사무관이?”
“네.”
“협박이 따로 없네, 염병. 그래서 휴교 논의되는 것도 없대?”
“네, 휴교하면 괜히 국민 불안감 조성하니까 따로 가이드라인 내려올 때까지는 정상 등교 시키라고 했습니다.”
“안 사무관 지 새끼 유학 보냈다더니, 말 참 쉽게 하네. 전염병이 도네, 마네 하는 판국에…… 쯧.”
“…….”
행정실장은 꾹 입을 다물었다.
정치적이면 안 될 문제가 정치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원내 제 1야당이 초반부터 휴교령을 들고 나왔고, 실제로 지역구 학교에게 휴교를 요청하는 국회발 공문까지 보냈기 때문이었다.
추가로 안내 포스터와 메르스 예방 포스터까지 수십 장을 보냈고.
이런 상황에서 휴교에 응한다면 야당을 지지하는 모양새가 되니, 교육청에서도 협박에 가까운 만류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교무부장하고 얘기해서 다음 주부터 휴교하는 계획이나…….”
교장이 말을 잇던 중.
띠리리리-
띠리리리-
고동색의 사무책상에 놓인 전화기가 바쁘게 울었다.
“이원호 교장입니다. 네, …… 네? 어디…… 아아! 네, 안녕하십니까!”
커진 목소리에 가만 서 있던 행정실장이 움찔했다.
막 취업한 20대 계약직 강사보다도 큰 목소리가 아닌가?
올해 한 번 밖에 못 봤던 이사장이랑 통화하는 건가 싶던 무렵.
“네! 그럼요! 아휴…… 감사합니다. …… 네, 고맙습니다! …… 그럼요, 명심하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의원님!”
전화 말미에 나온 말은 의원을 부르고 있었다.
무슨 의원일까 싶었는데.
전화를 끊은 교장이 의기양양하게 행정실장을 돌아봤다.
“박 실장! 교무부장하고 휴교 계획 짜, 다음 주부터 바로 들어가게!”
“네?”
“학생들 건강이 위험한 판국에 지금 수업이 대순가?!”
“아, 아닙니다.”
“자네는 빨랑 교무부장하고 계획 짜고, 퇴근 전에 담임들 전부 호출해.”
“아, 네. 알겠습니다.”
급하게 대꾸하면서도 행정실장은 의아한 시선을 지워 내지 못했다.
도대체 누구랑 통화했을까?
구 의원이나 시 의원? 아니, 그 정도로 저렇게 난리를 피울 것 같진 않았다.
남은 건 국회의원뿐.
그 중에서도 강북구 소재의 학교에 전화 통화할 만한 사람은 포스터를 보내 준 이 밖에 없었다.
행복한국당의 윤수혁.
행정실장이 설마하는 사이, 교장이 재촉했다.
“얼른 안 가고 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