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41. 벌써 (1)
2014년 11월.
10월의 마지막 날까지 늘어진 모든 국정감사가 끝나자, 그들만의 파티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국정감사 우수의원 시상.
각 정당과 사단법인, 시민단체, 언론사, 관훈클럽 등등 각종 모임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으로 규모와 관계없이 시행하는 것이었다.
사람 간의, 집단 간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사명감이나 올바른 의정 활동을 치하하기 위한 일부 시상식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익이나 연줄, 압박 등의 이유 때문에 시행하는 것이엇다.
애초에 사람들의 욕심이란 게 그랬다.
나도 내 욕심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돈을 뿌렸지 않았던가?
정확히는 돈으로 산 술상과 밥상으로 접대한 것이지만.
어쨌든 한 상에 기백만 원 넘어가는 돈을 썼고, 종종 기천만 원씩 날리기도 했었다.
물론 나도 봐가면서 썼다.
앞으로 잘 될 사람과 받아도 좋을 상, 괜찮은 단체를 구별했었다.
그렇게 오른 단상은 그럴싸했다.
나름 돈깨나 쓴 듯 카펫이 꼼꼼하게도 깔렸고, 상패도 단순 크리스탈이 아니라 A4사이즈의 자개상패였다.
해 봤자, 2, 30만 원이면 사겠지만.
어쨌든 나는 네 개 중소 언론사가 주최하는 2014년 국정감사 우수의원 수상자가 됐다.
시상자로 나온 보도전문 방송사의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윤수혁 의원님. 수상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이 상을 받게끔 도와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앞으로도 안불망위(安不忘危)의 정신을 지향하며, 자만하지 않고 의정활동을 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박수가 쏟아져 나온 뒤, 공동 수상자로 선 의원들도 수상 소감을 발표했다.
그렇게 나는 예산안 처리가 시작된 11월 내내 몇 번인가 단상에 더 올랐다.
그때마다 크리스탈 상패나 주석 상패, 은쟁반 상패 따위를 받았고, 마찬가지로 비슷한 수상 소감을 발표했었다.
“앞으로 더욱 분전하라는 채찍질로 이해하고,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마음으로 일하겠습니다.”
“제게 주신 이 상패와 박수가 변색되지 않도록 항상 거안사위(居安思危)하여…….”
“제게 주신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앞으로도 주마가편(走馬加鞭)하고…….”
굳이 사자성어까지 섞어가면서 있어 보이는 척했다.
그냥 겸손하면 없어 보여서, 한두 개 넣은 단어 들이었다.
대개 유권자에게 그런 게 인기가 좋았다.
겸손하지만 유능한 것.
그걸 초과해서 잘난 놈이 되거나 자만한 놈이 되면 유권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므로 나름 신경 쓴 것이었다.
그래서 수상소감 한두 문장에 그 두 가지를 담아보려고 했었고, 조 대표가 사자성어 리스트를 뽑아준 덕에 몇 개 써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소감문 암기하고 말하고, 상 받느라 바빴다.
그거 빼고도 원래가 바빴기 때문이었다.
국정감사 기간에 국토위 소관부처의 업무와 주요 현안을 배우고 이해하며 시간을 쓴 것처럼, 이번에는 예산안 공부하느라 또 시간이 모자랐다.
아니, 더욱 부족했다.
국토위 예산안 처리는 처음이었고, 심지어 내 소위원회가 바로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여서 더욱 빡셌다.
그나마 국토위로 옮긴 뒤 공부해서 다행이었지, 아니면 문맥 파악도 버거울 뻔했었다.
뭐, 그 과정에서 국토위 기조실에서 파견된 5급 공무원과 회계전문 변호사하고 개인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11월을 내내보냈지만.
어쨌든 순조로웠다.
11월이 끝날 즈음에는 매주에 한두 개씩 상을 받아서 언론에서 좋은 말들을 많이 해 줬다.
밥값과 술값을 하는 모양이었다.
뭐, 기본적으로 내가 잘했으니 가능한 것이지만.
***
[윤수혁 경실련 2014 국정감사 우수의원 수상]
[국정감사NGO모니터단 2014년 국감 우수의원에 윤수혁 선정···당선 이후 3년 연속해서 수상해]
[국정감사 스타의원 투표에 윤수혁 득표율 81퍼센트 단연 독보적···11월에만 국감 우수의원 수상만 7번]
신문기사를 보던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다, 대단해.’
언론사에서 하나같이 윤수혁을 지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시민단체와 단순 통계까지.
시상식이 자기들만의 잔치라고 해도, 시상에 성과 말고 다른 요소가 작용한다고 해도, 이렇게 일관적인 결과가 나오긴 힘들었다.
술이나 밥, 뇌물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많았다.
물론 청와대가 일을 못하고, 대통령도 비난을 면치 못하는 정치 환멸의 시대가 한몫을 하긴 했지만.
윤수혁이 잘해 줬다. 그것도 아주.
‘국감 전에 각오해서 다행이었지. 더 의심해 보겠다고, 확인해 보겠다고 질질 끌었으면 여태 머리만 굴렸을 테니.’
조성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웃었다.
윤수혁은 인기는 하늘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단순한 쇼맨십이나 겉으로 보이는 재산이나 선행과 더불어 능력마저 입증된 덕분이었다.
아주 훌륭했다.
이는 조성현이 가장 잘 아는 부분이었다.
상임위 모니터단의 보고 내용을 확인하고, 국정감사 내용이 기록된 국회회의록까지 출력해서 모자란 부분까지 모두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돈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편법을 자행하고, 불합리한 일을 이행한다고 한들, 이렇게 까진 할 수는 없었다.
의지가 있어야 했고, 실행력이 있어야 했다.
올바른 의정 활동과 꼼꼼한 국정감사에 목표를 둬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인기스타가 되기 위해 움직이는 걸로는 부족했다.
만약 미래라도 미리 알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애초에 조성현은 종교도 무당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종교와 무당이 정치계 곳곳을 파고 들어왔음에도, 조성현은 조금도 물들지 않았다.
의원들이 저마다 부적이나 인형을 끼고 다니고, 미신을 막기 위해 여자 속옷을 챙겨 입을 때도 그저 할 일을 했었다.
예언이라든지, 예지 같은 건 소설 속 얘기일 뿐.
이윽고 인터폰이 울렸다.
- 대표님, 시상식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그래요, 갑시다.”
오늘은 행복한국당의 국정감사 우수의원 대상 시상식이 있는 날이었다.
대상은 당연히 윤수혁.
당대표실을 나가던 조성현은 미소를 머금었다.
혼자였고, 혼자일 거라고 생각했던 정치생활이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정당 쇄신, 그 이상을 이뤄 낼 동지가 생겼다.
어쩌면 나라마저 뒤바꿀 능력과 잠재력이 있는 사람.
물론 그 과정에서 편법이나 계파 형성 같은 티끌이 생기지만, 윤수혁의 능력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재산, 정치 모두 다.
***
11월 말, 국토교통위원회소회의실.
329회 1차 국토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가 시작됐다.
회의명은 길었지만, 피감기관의 예산안을 심사하는 과정으로 정부 측 의견을 듣고, 위원들이 떠들며 서로 조율하는 게 전부였다.
물론 말은 쉽지, 현장은 달랐다.
일단 국정감사나 상임위의 회의하고는 달랐다.
소위원회는 매번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반상회 같았다.
가끔씩 신입이나 기가 눌린 실무자들이 일어서서 보고하면 위원장이 앉으라고 했고, 위원들은 저들끼리 농담도 던져 가면서 말끝을 잘라 먹곤 했었다.
지금도 그랬다.
2015년도 회계연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의 13번 항목이 언급되는 상황이었다.
“13번은 환승센터 구축 지원 사업으로, 박성연 위원께서 광역환승센터 조기 완공을 위해 67억 증액을 요청하셨던 건입니다. 정부 측에서는 일부 감액해서 22억 원까지는 반영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박성연 대신에 같은 동료 의원이 입을 열었다.
“아니, 왜 수원역만 22억이지? 대구도 다 해 주면서, 이것도 한 20억 더해서 42억 해 주면 되지.”
일단 반말.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자리한 삼촌뻘의 공무원들과 국회의 전문위원을 향한 말이라고 보기에 너무 저렴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원래부터 그랬다.
대부분의 소위원회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국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67억 증액을 요청한 박성연 의원도 마찬가지.
“거 다 해 줘도 되지 않나? 어차피 할 건데?”
그러자 국토교통부종합교통정책관이 얼른 변명했다.
“기재부가 1개 사업당 150억 정도를 지원하는 것으로 정해놓고 있는데, 수원역은 기존에 예산 지원한 금액을 따져 보면 22억 밖에 여유가 안나오다 보니 저희로서는…….”
당연히 깍듯한 존댓말.
마치 갑을의 관계를 보는 듯했다.
그들도 처자식이 딸린 가장이고, 부서장으로 존경 받을 텐데.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물론 내가 이들을 동정하거나, 이 상황에 대해 분노한 건 아니었다.
내가 겪었던 것이라서 그런지, 좀 마뜩잖을 뿐.
“그게 뭔 말이에요?”
“금년도 예산이 이미 97억이 반영되어 있고, 추가된 게 31억이고 이번에 환승역 조기 완공 예산을 신청하신 게 67억 원이라…….”
“어차피 될 거라니까? 그 67억? 근데 늦어지니까 내가 달라는 거 아니에요. 내년 예산에서 빼세요, 그럼.”
더구나 나오는 말마다 억의 향연이었다.
뭐랄까, 현실성이 없었다.
내 재산도 그렇지만, 왠지 이 상황이 더 그랬다.
돈의 단 위는 억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눈앞에 돈다발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기 돈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소위원회 위원들은 모두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다.
다른 지역구 얘기라고 정신 놓고 있는 의원도 많았다.
“그러니까 22억이 더하면 150억이 꽉 찼다 이건가.”
“그렇지, 그거야.”
“맞네, 맞아.”
저들끼리 동조했다.
신민주당과 새정치당, 보수신당이었다.
한심했다.
당연히 행복한국당은 67억 달라고 우기는 더 한심한 놈이었고.
저들에게는 나와 같은 위선적인, 표면적인 이유조차 없었다.
아니, 있을 수가 없었다.
돈이 없으니까.
리베이트로 정치 자금을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사업 유치한 걸 자랑으로 내세워 인지도를 올리려고 할 터였다.
당이나 나라를 위한 조금의 관심도 없을 것이고.
있는 것이라고는 재물 욕심, 명예욕 정도.
그러니 사업 벌이고, 예산 타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래서 국토위를 지망하고, 총 재적의원 31인 중 1인이 됐을 확률이 컸다.
나는 제대로 된 사업을 벌이기 위해 여길 들어왔었다.
어차피 받을 예산 적절히 쓰기 위해서, 또한 건설사며 공무원 협조도 용이하니까.
그게 국토위에 들어온 내 이유였다.
여기서 푼돈 밖에 안 되는 리베이트를 받거나, 용역 수주를 위한 뇌물을 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1, 2조면 몰라도 그 아래 일 테니까.
이윽고 최고로 한심한 박 의원의 입이 열렸다.
“그럼 기재부가 150억 한도로 정한 건데…… 어디 다른 부처로 못 돌리나? 아니, 방안이 아예 없어요? 이거 임기 안에 나도 끝내야 될 사업인데, 이러면 안 되지.”
국토교통부제1차관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 부분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박 의원이 대답했다.
“그럼 이따 논의하고, 일단 딴 거 봅시다.”
이후에 수용이니 불수용이니, 오케이, 날린다 같은 대답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나만 입을 다물었다.
평소에도 소위원회에서는 할 말만 했고,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가만히 있는 것이었는데.
드디어 말할 거리가 생겼다.
큰 건 아니고, 재선을 위한 밑간 중에 하나였다.
강북구의 육교 공사.
“……133번 도로병목지점 개선 강북 육교 공사비용 15억 증액과 용지보상비 42억 증액은 각각 11억과 37억만 집행 가능합니다.”
“오케이.”
바로 대답하자, 의원들이 나를 돌아봤다.
깎이면 보통 왜 깎였냐고 묻기 때문인데, 내가 쉽게 대답해서 그런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이게 원래 내 목표였다.
박 보좌관과 오 비서관이 머리를 굴린 끝에 낸 액수로, 집행 가능한 수준에서 조금 더한 금액.
더 되면 좋고, 안 돼도 괜찮고.
모자란 건 내 돈으로 처발라도 그만이었다. 내 돈 썼다고 생색도 낼 수 있었고.
어쨌든 조금은 이르지만, 이게 내 재선의 시작이 될 것이었다.
벌써 15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