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30화 (130/191)

# 130

40. 후반기 (4)

국회와 기업 대관팀의 줄다리기는 오래된 관습이었다.

애초에 서로 간에 관계된 게 많았다.

평소 상임위원회 소관부처 업무보고 중 기업 상호나 총수의 이름이 거론되는 일부터 사회적 이슈나 국가적 사업과 연관 되어 기업 관계자가 불려 가는 주요 행사 등등.

그 과정에서 언급할 대상이 총수일가인지, 사장급인지 정하고 질의할 내용을 토의하며 도출할 결론을 적절하게 사전 조율해야 했다.

국회의 한 해 농사로 취급되는 국정감사도 마찬가지였다.

증인 및 참고인 선정과 질의 내용 등등.

총수 일가가 국회까지 불려오는 거나 불려 와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 건 좋지 못한 일이라 대관팀은 더 바쁘게 뛰었다.

국정감사를 준비 중인 8월 즈음에는 더욱 바빴다.

10월에 있을 국정감사를 앞두고 상임위 별로 국정감사 증인 채택의 건과 서류제출 요구의 건을 다루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재량을 가진 상임위 위원장이나 당의 의견을 조율하는 간사가 가장 많은 로비를 받곤 했는데, 이는 당 지도부도 마찬가지였다.

상임위 위원장과 간사들의 위에 있는 게 바로 최고위원들이었다.

당대표, 최고위원,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등등.

그중에서도 행복한국당의 당대표 조성현은 특별 취급되는 존재였다.

국회의원 113명과 당원 250만 명의 수장이며 국가의전서열 8위.

그리고 초계파와 당의 쇄신을 주창했던 독불장군 스타일의 종잡기 힘든 사람.

당대표가 된 뒤로 유순해졌지만, 칼잡이의 이력이 있던 사람답게 조성현은 거의 모든 대관팀을 만나질 않았었다.

우연을 가장한 식사자리에서는 먼저 일어났다.

그러던 조성현이 근래에 한 대기업의 대관팀 임원을 오랜 시간 대면했었다.

과거에 보좌진으로 두었던 인연이 작용하긴 했지만, 주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바로 국정감사 로비에 관한 얘기.

“책임이 있으면 대기업 총수라도 휠체어 태워서 국감장에 끌고 나오라고 하셨다죠?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랬지요.”

“그런데 다른 상임위에서 회장들 이름 결국 빠졌어요. 알고 계시는 걸로 아는데…….”

대관팀 임원의 말에 조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위원장의 재량 남용과 간사의 독단을 막기 위해서 올해부터 사전 업무 계획과 사후 보고서를 받아두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점은 충분히…….”

“대표님, 누군들 그런 사유서 하나 못 쓰겠습니까?”

소용없다는 듯한 반문.

조성현이 대꾸하지 않자, 임원이 고개를 저으면 말을 이었다.

“대표님, 제가 기재위 맡는데…… 아는 것만 두 갭니다.”

“두 개라니요?”

“내가 이것까지 말씀 안드리려고 했는데…… 기재위 이 간사하고 최 위원, 두 사람 지역구에 오성하고 치바, 삼원에서 문화 쉼터하고 체육관 설비 보수, 기구 증정하기로 얘기 끝났습니다.”

한마디로 대가를 받았다는 뜻.

“확실한 얘깁니까?”

“제가 감히 누구 앞에서 이빨을 까겠습니까? 아시다시피 기재위에서 회장들 출석 결사반대한 게 이 간사하고 최 위원입니다. 원래 두 사람 파워 가 쎄기도 했고…….”

조성현의 표정이 굳자, 임원은 말을 멈추고 잠깐 딴청을 폈다.

성격이 나쁘진 않아도, 남보다 덜 유연한 편이라서 조성현의 거친 반응을 염려한 것이었다.

조성현은 그사이에 임원이 언급한 두 사람을 떠올렸다.

둘은 어떤 사람인가?

잘은 몰라도 간사로서의 역할이나 상임위 위원으로서 일은 알차게 했던 이들이었다.

그래서 믿었다.

혹여나 두 사람이 대관팀의 로비에 응해서 대가를 받는다고 해도, 당이나 국가를 위한 대가일 것이라고.

그 이상은 안될 일이었다.

개인의 사욕이나 영달을 위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

조성현이 눈앞의 대관팀 임원을 바라봤다.

“또 말해 보세요.”

“네? 아니 제가 아는 건 그 두 개 인데…….”

“말 새어 나갈 일 없으니까, 말 하세요.”

조성현이 다 안다는 듯 말했다.

3선이나 의원을 하고, 당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유연함과 더불어 눈치까지 생긴 이가 바로 그였다.

그래서 지금도 당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었고.

임원이 여전히 주춤하자, 조성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 삼원그룹 대관팀 전부 까라고 지시내리고 지저분하게 나가야 됩니까?”

“아휴…… 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근데 아는 게 많진…….”

“같이 일했던 초선도 벌써 10년 전입니다, 전무님. 그때 생각하지 말고, 아는 거 다 말씀하세요. 저도 대관팀하고 드잡이질 하고 싶진 않습니다.”

전무가 속으로 움찔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딴 데 새나가면 안 됩니다. 현물도 있어서…….”

앞서 언급한 기재위의 간사와 위원이 받은 건 사업으로 포장이 가능했지만, 돈이나 상품권, 골프 회원권 등의 현물은 아니었다.

명백한 대가성 금품.

이윽고 단단히 마음먹은 전무가 입을 열었다.

“대신에 하나만 약속해 주십시오. 국토위 증인에 삼원그룹은 건설본부장으로 해 주는 걸로…….”

“얘기 다 듣고 정하지요.”

“……알겠습니다.”

곧 임원은 여태 알고 있던, 그리고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을 떠들었다.

조성현이 원한 행복한국당의 상임위 위원, 간사, 위원장이 벌인 행태들을.

모든 상임위의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태반이 넘는 상임위의 로비 이야기에 조성현이 당의 잡무를 봐주는 용역업체까지 불렀다.

전부 알아보라고.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조성현은 대관팀 임원의 말을 토대로 대부분의 상임위가 로비를 받아 협상했다는 혐의를 확인했다.

그중 하나인 치바그룹은 모든 상임위에 접근해서 회장 대신에 사장급이나 본부장급이 출석하게끔 만들었다.

이는 다른 굴지의 대기업인 오성그룹이나 삼원그룹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중에 먹히지 않은 곳은 유일하게 국토교통위원회였다.

심지어 웬만한 건설사 회장들도 전부 줄서서 출석하게 생긴 상황.

다른 당의 간사들도 눈치를 보고 있는데 오직 행복한국당만이 출석을 주장했다.

아니, 윤수혁계의 위원들과 간사들이 그랬다.

그것조차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

조성현은 오랜 의심 끝에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단순히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면, 잃는 게 너무 많지 않은가?

아니, 잃는 게 없더라도 얻는 것이 있으니 마땅히 로비에 응해야 했다.

그래서 타 상임위는 전부 회장급의 출석을 조정해 줬다.

윤수혁의 행태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마치 수년 전의 자신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 어쩌면 자신보다도 더 했다.

최고위원이라는 자리에서, 명예와 재력까지 갖고 있으니까 오히려 조심해야 하고 몸을 사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조성현이 의심을 멈추고 깨달은 게 그 즈음이었다.

자신이라면, 과연 윤수혁처럼 했을까?

***

2014년 10월 7일.

한국토지주택공사회의실.

안에 들어섰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내가 증인과 참고인을 건설사 회장급으로 주장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건 결국에 남은 3당과도 합의하다 보니 대관팀 의도대로 됐다. 회장 대신에 사장급이, 사장 대신에 본부장급으로 바뀐 것이었다.

내가 얻은 건 언론 인터뷰와 기사가 다였다.

물론 대관팀의 욕도 좀 있었고.

지금의 분위기는 나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분위기와 맞물려 있었다.

가을이 왔음에도 여전히 시끄러운 구제역과 에볼라 바이러스 얘기가 매일 같이 신문 타이틀을 차지한 탓이엇다.

작업복을 입은 공무원과 일을 돕는 군인들의 사진이 지면에 실릴 때면, 수만 마리의 돼지들이 생매장 됐다는 얘기와 내로라하는 교수들의 강경한 비판도 곁에 실리곤 했었다.

한마디로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가 요지경이었다.

그렇게 10시가 되자, 국토위 위원장이 안으로 들어섰다.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헌법 제61조 그리고 국회법 제127조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대한 2014년도 국정감사를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신민주당의 의원인 위원장이 괜히 내쪽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국정감사에 들어가기 전에 위원장으로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국정감사와 수감 준비에 수고가 많으셨던 이준호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특히 우리 위원회는 증인 채택 문제로 간사 간의 협의가 지연되고 서류 제출도 기한이 초과하였는데도 훌륭하게 응대해 준 점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증인 채택을 논의할 때 압박을 거절하면서 버티니, 위원장으로서의 체면 어쩌고 떠들었는데 여기서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한테는 조금도 부담이 되진 않았다.

애초에 반항도 소심했다.

내가 그보다 가진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재산.

소유한 부동산의 감정가만 약 1,700억 원.

거래요인이나 시세 따위를 고려하면 실거래가의 60퍼센트에 불과한 액수.

한마디로 실제 부동산의 값어치는 2,900억 원에 달했다.

현금과 소유한 주식까지 더하면 거의 8,800억.

재벌들만 가입한다는 1조 클럽이 눈앞에 있다는 뜻으로, 내막을 아는 많은 의원들은 알아서 저자세를 취했다.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다른 요인이 그들을 엎드리게 하곤 했다.

당의 지도부, 그리고 유명인.

그것도 캡틴코리아라는 수식어까지 있는, 나는 명실상부한 국회의 아이콘이었다.

선행도 오죽 많이 했는가?

결혼식 축의금도 정치 후원금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전부 기부했었다.

남의 돈이지만, 내 돈처럼.

추가로 내 돈까지 조금 보태서 10억으로 깔끔하게 끊어서 저소득층에 기부 했었지?

더구나 와이프도 예뻤는데, 뭐…… 이건 의원들이 다른 의미로 눈치를 보는 것이었고.

어쨌든 나는 잘 나갔다.

그리고 7분의 발언 기회가 주어질 지금, 더 잘나갈 예정이었다.

국토위가 국방위처럼 깔 게 많은 덕분이었다.

아니, 국방위보다 한참 더 많았다.

엄청난 돈이 굴러다니는 노다지 중에 노다지여서 그런지, 그만큼 더러운 것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위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씀하신 부분은 정회 후에 서면제출 하시고, 이제 존경하는 윤수혁 위원님. 질의하시겠습니다.”

“행복한국당 비례대표 윤수혁입니다. 이준호 사장님, 원도급업자가 A건설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정산이 다 끝나기도 전에 B하도급업자와 계약을 체결하여 공사를 하면 건설산업기본법상의 불법 하도급입니다. 맞습니까?”

“그렇게 되어 있는 것으로 알긴 합니다만, 세세한 항목까지는…….”

“그럼 답변할 수 있는 분이 나오세요.”

내 말에 사장 뒤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일어났다.

정해진 질의 이상의 대답이나 세세한 항목은 실무자가 대신하여 말하곤 했기에, 그가 자연스레 나온 것이었다.

“국토교통부주택토지실장 양재훈입니다. 의원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럼 건설산업기본법상에서 원도급업자가 하도급업자한테 공사비를 받으면 15일 이내에 하수급인한테 현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까?”

“아, 그건 제 소관이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말씀대로…….”

“그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세요.”

웅성거림이 일었으나, 마이크를 잡는 사람이 없었다.

한마디로 아무도 모른다는 뜻.

아니, 애초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박 보좌관과 오 비서관이 순서대로 질문을 짜놓은 것일 터.

이럴 땐 성질을 내야 했다.

“뭡니까, 이게! 국정감사에서 첫 질의를 했는데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건설산업기본법 34조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이 많은 사람 중에 아무도 모르는 게 말이나 됩니까?!”

“……법 조항은 실무자가 담당하는 부분이어서…….”

이 사장의 변명을 끊었다.

“저는 그럼 뭡니까?”

“…….”

대답하지 못하는 이 사장을 향해 연달아 말을 쏘아 댔다.

언론도, 국민들도 좋아하게끔 자극적으로 언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지금 얘기할 것도 그 법 위에 있는 얘깁니다! 대답 못할 거면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불러 오세요! 국정감사 질의에 대답도 못할 거면 앉아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의 쓴 대답을 들은 뒤, 곧장 말을 이었다.

“LH공사 동탄지구 제1고등학교 건설공사 중에 하도급업체인 한상건설은 선급금 3억 2,000만 원 중에 절반만 받았고 기성금은 일체 받지 못했습니다. 한상건설은 고용한 자영업자와 소규모 건설업체는 소송 중입니다. 그리고…… LH공사 동탄지구의 68퍼센트의 업체가 마찬가지로 기성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해당 사항 알고 계십니까?”

“현재 그 사항은 조사를 하고 있으며,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질 않아서 …….”

“6개월 전에 벌어진 일을 여태 조사만 한 것도 웃기지만, 그래서 원인은 아십니까?”

“아직 조사 중이므로…….”

“공기(工期) 단축을 실행하지 못한 이유로 직불을 거절했고, 손해를 이유로 지급액을 낮춘 겁니다.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말을 마치면서 종이를 한 장 들었다.

동시에 회의장 전면의 롤스크린에도 서류가 나타났다.

[제목 : LH공사 동탄지구 제1고등학교 토목, 토공, 철근 콘크리트 완공일 변경 알림]

내 눈치를 받은 오 비서관이 증인석으로 다가가 같은 서류를 전달했다.

“보세요, 준공기일이 2015년 1월 16일인데 이걸 9월 26일로 변경했습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4일도, 4주도 아니고 4개월? 이걸 정말 모르셨습니까?”

“일개 공사 현장이어서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아직…….”

“모르신다고요?”

“네, 송구하게도…….”

그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정말 모른 것 일수도 있고, 모른 척하는 것 일수도 있겠지만.

둘 다 사장으로서는 실격이었다.

내 고갯짓에 롤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었고, 증인석 위에는 두꺼운 서류더미가 올라갔다.

고개 숙였던 사장은 눈을 껌뻑거렸고, 롤스크린 화면에는 단번에 헤아리기도 힘든 많은 서류가 빼곡하게 나타났다.

시각적 효과를 위해 바닥에 쫘악 깔아두고 촬영한 서류들이었다.

“가좌지구, 수원고등지구, 양산 사송지구…… 기타 등등. 138건입니다. 이걸 정말 몰랐다면…….”

말을 흐리면서 그를 쳐다봤다.

“도대체 그 자리에 왜 있는 겁니까?”

난감한 이 사장의 안색.

슬슬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주택공사 측에서 질의 내용 달라고 매달렸던 게 떠오른 탓이었다.

이럴 줄 알았나?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원활한 나의 국회 후반기를 위해서는 더 내질러야 했다.

남은 3분의 질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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