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40. 후반기 (2)
8월 초순.
국토교통위원회 회의는 며칠 뒤에나 한 차례 있고, 본회의 일정은 아예 없었다.
7월부터 그랬다.
선거철이기도 했지만, 여름이 정기회와 국정감사를 앞두고 쉴 수 있는 유일한 때여서 그런 것이었다.
여태 국회 스케줄이 빡셌다.
임시회 종료하고 이튿날 뒤에 임시회를 열었고, 한 달 뒤 종료되면 다음 날 바로 임시회를 다시 열었다.
한마디로 월화수목금금금의 시간들.
이제야 휴일이 됐다는 뜻인데, 나는 쉴 수 없었다.
새로 옮긴 국토위 때문이었다.
국방위하고는 전혀 다른 성격의 상임위.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교통안전공단, 주택관리공단 등등 총 26개의 소관기관을 두고 있는 곳으로 전과 다른 지식과 능력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열공 중이었다.
국민적인 기대와 인기를 등에 업고 있는 유일한 의원이 상임위에서 버벅거릴 순 없으니까.
그래서 국방위 전문가로 고용했던 송 비서관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 국토위 베테랑인 오영현 비서관을 불러 왔다.
물론 송 비서관은 뒷말 안 나오게 위로금도 쥐어 주었고, 여의도연구소 안보통일센터의 객원연구위원 자리도 줬다.
나중에 잘 데려다 쓰겠다고 약속도 했고.
그렇게 개인사무실에서 과외 아닌 과외를 받고 있을 때.
우우우웅-
진동음이 울렸다.
한 차례 더 진동이 울리는 동안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봤다.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통화는 낯선 사람.
치바그룹 대외협력단장 총괄사장 주명규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그하고는 같은 월요회라서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긴 했지만, 따로 연락한 적은 없었다.
대부분 월요회 안건을 협의할 때나 얘기를 나눌 뿐.
그렇게 두 번이나 진동이 더 울릴 무렵.
같이 있던 오 비서관과 국토부에서 나온 과장급 실무자가 눈치껏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닫힌 문을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주명규입니다.
“예,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 긴히 할 말이 있는데, 만나서 얘기하는 게 도리 같아 허락을 구하려고 합니다.
통화가 처음이라서 그런 걸까, 정말 중요한 얘기를 하려는 걸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주 사장이 할 얘기는 예상이 됐다.
9월에는 정기회가, 10월에는 국정감사가 있었고, 그 사이에 소관부처 보고나 증인 출석, 질의 등을 하게 되면 잠실에서 짓고 있는 국내 초고층 빌딩 치바월드타워의 안전문제 따위가 언급될 예정이었다.
그중 주 사장이 내게 전화할 정도면 월요회 보다는 내 개인적인 능력이 필요한 일일 터.
아마도 국정감사 질의 내용이나 증인 선정에 관한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 중에서도 증인 선정은 이미 치바그룹의 대관팀이 물밑에서 움직였고, 월요회에서도 별 말이 없었으니 나하고는 상관이 없을 것 같았는데.
금세 주 사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오늘이나 내일, 저희 호텔에서 뵙고 싶은데 시간이 나십니까?
“오늘 저녁에 퇴근하고 들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의원님. 입구에서 저희 직원이 안내할 겁니다.
“예, 그럼 끊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닫힌 문을 바라봤다.
“오 비서관님!”
한 차례 목청을 높이자, 다시 문이 열렸고 오 비서관과 국토부 과장급이 얼른 들어왔다.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들.”
“아, 아닙니다.”
내 농담에 과장급이 얼른 손을 내저었고, 두어 달 같이 생활해 온 오 비서관은 엷게 웃기만 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주 사장이 할 말이 뭔지 내심 궁금했다.
***
그날 저녁, 치바호텔.
기다리고 있던 치바그룹의 이사급 임원이 윤수혁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준식 상무이사입니다.”
“아, 예. 윤수혁입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그가 손 안내를 했고, 윤수혁보다 반걸음 앞서며 로비를 가로질렀다.
기다렸다는 듯 임원용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둘이 안에 올랐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플로어-디럭스 스위트룸이었다.
면적은 92.2㎡에 6인용 테이블과 개인 책상, 소파 등이 있는 1박 숙박료 225만원의 객실.
문을 열고 비켜선 이준식 상무이사 대신 윤수혁이 앞장섰다.
그렇게 몇 걸음 들어가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명규 사장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예, 제가 퇴근 중에 들른 거라 차림새가 좀 그렇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윤수혁의 옷은 월요회 참석 때와는 전혀 달랐다.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차림이 아니라, 강북구의 한 상가에서 맞춘 35만 원짜리 정장과 그 옆의 신발가게에서 산 8만 원 상당의 구두, 그리고 3만 원에 불과한 카시오 시계가 윤수혁의 전부였다.
그나마 까만 정장과 구두, 흰 와이셔츠 같은 구색을 맞춰서 국회에서도 별 말이 없을 뿐, 국회의원 체면 떨어진다고 욕먹기 충분한 차림이었다.
주명규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고위직 중에 서민 행세 할 만한 직업은 몇 개 없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게 정치인, 그 중에서도 국회의원이어서 잘 아는 것이었다.
더욱이 윤수혁은 이미지 메이킹은 주명규도 아는 사실이었고.
“괜찮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겠습니까?”
“예.”
“커피 곧 올 겁니다. 올라오실 때 맞춰서 끓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마주 보고 앉은 뒤, 심부름을 마친 상무이사는 나갔고, 커피가 들어왔다.
널찍한 객실에 커피 향이 차는 사이.
“제가 바빠서 그런데, 만나자는 용건이……?”
“아, 다시 한 번 국토위 들어가신 거 축하드립니다.”
그 말에 윤수혁이 커피를 들다 말고
“상임위 업무입니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실은…… 네, 맞습니다. 국토위 국정감사 증인에 관한 겁니다.”
“증인은 제가 아니라 상임위 간사하고 나눌 얘기 같습니다.”
생각보다 단호한 답.
그러나 윤수혁은 덤덤했고, 불쾌한 티도 내질 않았다.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뜻.
주명규가 얼른 입을 열었다.
“압니다, 하지만 행복당 간사도 윤 의원님 계파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도 무슨 말만 하면 최고위원회의 방침이 있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주명규가 은근한 웃음을 띠자, 윤수혁이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시려는 말씀이?”
“듣기로는 윤 의원님께서 챙기셔야 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많긴 합니다.”
주명규가 그 말에 엷게 웃었다.
단순히 강북구에서 재선하기 위해 발을 넓힌 것치고, 윤수혁의 인맥은 중구난방으로 많았다.
그들의 욕구를 전부 충족시키기 어려울 만큼.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희가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슨 도움이요?”
연이은 직설적인 물음.
주명규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 홈쇼핑하고 면세점 사업을 확장하고, 타워를 올리다 보니 손이 많이 모자라게 됐습니다. 인재들을 채워야 하는데…… 그런 자리가 비어서 말입니다.”
일종의 취직 알선.
당원부터 대의원, 당직자들과 지역 유지 등등 많은 사람들이 하는 수많은 청탁 중 하나가 바로 구직이었다.
윤수혁도 이미 수십, 수백 건 이상 받은 청탁이기에 단번에 알아들었다.
주명규가 그들의 일자리를 해결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저한테 바라시는 게 뭔가요?”
그 물음에 주명규가 거짓 웃음을 감추었고, 단단하게 말했다.
“증인 신청 명단에서 회장님 존함만 빼주십시오.”
치바그룹 회장 천기윤.
형제끼리의 싸움 끝에 회장직을 얻어 낸 이로 최근에도 지저분한 소송 중에 있었다.
국정감사장에 불려온다면 기자들의 먹잇감이 될 터.
윤수혁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간사 간에 합의가 된다면 빠질 수도 있겠죠.”
“아니, 의원님…….”
주명규가 당황한 사이, 윤수혁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사장님 판단에는 누가 들어가야 된다고 보십니까?”
“아, 건설사장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부회장도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주명규가 난색을 표했다.
부회장은 회장 천기윤의 아들인 천의찬이었다.
한마디로 총수 일가.
감히 국정감사장에 들여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일 처리를 제대로 못한 비서실이나 자신 같은 월급 사장들은 모두 징계를 먹으리라.
주명규가 얼른 말을 뱉었다.
“아시다시피 국토위의 업무 전문성을 고려해 보면 단순 책임자보다는, 실무를 아는 건설사장이…….”
“그럼 1지망은 건설사장, 2지망은 부회장. 마지막 후보가 회장이지요?”
윤수혁이 요약하듯 딱 잘라 맛했다.
속내를 알기 힘든 어감.
입술을 달싹이던 주명규는 차마 대답하질 못했다.
안 그래도 대관팀과 대책을 논의하느라 머리가 깨질 듯한 상황이었다.
회장 천기윤의 이름이 국토교통위원회 말고도 기획재정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등에서 언급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기업 길들이기.
정계에서 국정감사 참석이나 소관부처를 통한 법적 조치, 경고 따위로 기업을 길들이곤 했다.
청와대와 국회가 나라를 주무른다는 생각을 하는 탓인데, 치바그룹의 회장이 바뀐 게 바로 올해 초여서 그런 것이었다.
천기윤이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바뀐 건 고작 몇 개월 전의 일.
아직도 소송 중이었고, 국내 최고층 건물을 짓는 등 논란될 게 많아 정치권의 타깃이 된 것이었다.
그 탓에 대관팀이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머물면서 각 당의 간사들과 접촉 중이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원내 교섭단체만 4개, 각 위원회 간사들 숫자는 수십 명.
난항일수밖에 없었다.
결국 총괄사장인 주명규도 직접 움직인 것이었다.
월요회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뿐, 이미 청와대 쪽으로도 푸시(Push)를 넣고 있었다.
다시금 윤수혁의 입이 열렸다.
“다른 부탁은요?
“일단은 그것뿐입니다만…….”
“알겠습니다. 아, 일자리 청탁까지 해결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방에서 쉴 일도 없을 것 같고요.”
거절하는 것인가 싶어 주명규가 되물으려던 찰나.
“주 사장님 뜻은 잘 알았습니다.”
윤수혁이 말을 마치며 미소를 머금었고, 곧장 말을 이었다.
“표정 좀 푸십시오, 사장님.”
“아아, 네.”
주명규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하자, 윤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하실 말씀도 들었고, 저도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그렇지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마주서서 악수를 나누면서 주명규가 웃음을 머금었다.
그가 느낀 윤수혁의 시선은 긍정이었다.
방금 한 말도 마찬가지였고.
윤수혁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끝나는 말투와 표정은 해결해 주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주명규가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이준식 상무이사를 부르려던 찰나.
“사장님! 부회장님께서 오고 계십니다.”
이준식이 들어오면서 보고했다.
주명규가 윤수혁을 돌아보며 당황하는 사이, 열린 문으로 천의찬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반갑습니다, 천의찬입니다.”
손을 내밀면서 천의찬이 윤수혁을 바라봤다.
“예, 윤수혁입니다.”
천의찬은 윤수혁을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훑었다.
유명하다더니 생각보다 볼품없는 모습이 아닌가?
차림새도 그렇고, 서 있는 모습에서도 별다른 위압감이 없었다.
그냥 서른의 청년, 그 정도.
물론 재산도 많고, 직업도 국회의원이라 보통 사람이 아니란 것은 천의찬도 잘 알았다.
그렇게 악수를 나누던 천의찬이 다시 말을 이었다.
“벌써 가시려는 겁니까?”
“예, 할 말 있으세요?”
덤덤한 말투.
천의찬은 그 어감에 비죽이듯 웃었다.
“아, 그런 건 아니고…… 얼굴 궁금해서 와 봤습니다. 유명하신 분 아닙니까?”
천의찬이 입꼬리를 올려 가며 말했고, 윤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다 망했지.”
“뭐라고요?”
“아닙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윤수혁이 그렇게 말하고 나가려다가, 어쩔 줄 모르는 주명규를 쳐다봤다.
“2지망까지 가면 큰일 나겠습니다.”
마치 인사 같은 말.
이후 등을 돌리자, 주명규의 입이 가느다랗게 벌어졌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