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40. 후반기 (1)
8월 1일 목요일.
서울 중구, 치바호텔 메인빌딩 3층 사파이어 볼룸.
들어서는 길목부터 입식 판넬이 서 있었고, 입구에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행복한국당 광역‧기초자치단체장 및 국회의원 당선자 축하연]
말 그대로 연회 모임.
그것도 행복한국당 역사에 없던 규모였다.
종친회, 대학 동문회, 후원회, 고등학교 총동창회 등등에서 열어 주는 것과 달랐다.
모인 사람들 전부가 행복한국당 소속의 당선자들이었고, 기존 의원들이었다.
이 사파이어 볼룸 안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이끈다고 해도 무색할 만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윤수혁 의원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행사전문 업체 인력이 입구에서 나를 에스코트했다.
돈이 많이 나가는 짓이지만, 어쨌든 보기엔 좋았다.
물론 3, 400명씩 수용 가능한 연회장 대여비와 인당 25만 원의 식대, 축하연 기념품 비용 등등이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그만큼 대내외적인 효과가 좋았다.
안으로는 결집력, 결속력을 키우며 화합하고, 밖으로는 제1야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위세를 자랑할 수 있었다.
고작 행사 하나로 그게 되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한 번에 수억 원이 깨지는 일이었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환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허영이 됐든, 자랑거리가 됐든.
들어서자마자, 안에 있던 이들이 나를 반겼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윤수혁 의원님!”
“윤 의원님, 그간 지체 강녕하셨는지요?”
“안녕하십니까, 최고위원님. 저 이번에 충주시장에 당선된…….”
행복한국당 소속의 당선자들이 내게 거의 달려들다시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고위원이거나 국회의 아이콘, 캡틴코리아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저들은 내 사람들이었다.
6.4지방선거와 7.30재보궐선거에서 내 영향력으로 공천을 받았고 당선이 된 이들.
그리고 공천이든, 당선이든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애초에 전생에 선거에서 이겼던 사람들을 골랐고, 그들이 아니더라도 단순 인맥이 아니라 가망성 있는 사람을 뽑았으니까.
말이 추천이지, 결과와 능력 위주의 선발이었다.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내 부담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애초에 공천 후보자가 아주 많아서 골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나는 청탁의 기본인 뇌물을 받은 것도 아니고, 받을 것도 아니라서 상관도 없었다.
그래서 엑셀 작업하듯 뽑았다.
그것도 ‘나’라는 울타리에 속해 있으니 순수한 능력제는 아니지만, 내 힘을 키우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그 정도 차이는 눈에 뵈지도 않았다.
웬만한 병신이 아닌 이상, 정치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 공심위 점수 1, 2점 정도에 불과한 차이는 티도 안 났다.
굳이 티가 난다고 해도, 현장에서 돈이나 인력을 이용하면 당락을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TK나 호남 같은 지역색 강한 지역구를 제외하면 국회의원 사무소 간판이 바뀌는 건 늘 있는 일이었고.
특히나 지역구에서는 우리 지역을, 내 삶을 더 좋게 해 줄만한 사람을 뽑으니 명분도 있었다.
나 같아도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줄 사람을 뽑을 것이었다.
이윽고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흐…… 윤 최고, 반갑습니다.”
충북충주시 국회의원 김정수, 바로 외삼촌이었다.
“이런 데서 뵈니까 기분이 많이 새롭네요, 김 의원님. 흐흐흐.”
그 말에 외삼촌이 멋쩍게 웃고는 내 손을 맞잡았다.
그러곤 가까이 다가왔다.
“고맙다, 수혁아. 앞으로 잘해 보자, 내가 잘 하마.”
나직한 목소리.
고개를 끄덕이고, 맞잡은 손을 나도 단단히 잡았다.
“든든합니다, 외삼촌.”
곧 나하고 눈을 맞춘 외삼촌이 물러갔고, 손 지검장의 부친인 손병주가 다가왔다.
이 연회장에서 열손가락 안에 들어갈 고령자였다.
재보궐 선거 중에 종종 질환이나 노령으로 인해 사망하는 공석이 나곤 했는데, 손 의원의 자리가 그 공석이 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좋을 게 없으니.
“윤수혁 최고위원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자리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의원님께서도 잘해 주셨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고 의정 활동 열심히 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최고위원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숙어진 허리.
그를 일으켜 세운 뒤에 악수 수십 번을 나누며 앞으로 나아갔고, 가장 앞에 놓인 내 자리에 도착했다.
[최고위원 윤수혁]
삼각 모양으로 접은 고급지에 인쇄된 이름표 앞에 앉자, 나를 에스코트한 직원이 코스 요리를 내와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해 갔다.
이후 당선자들과 셀카 좀 찍어 주고, 악수하고, 덕담을 던지던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성현 당대표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나운서 출신의 국회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사회자 노릇을 했고, 시무식이라도 하듯 사회를 진행했다.
국민의례와 기념사가 이어진 뒤.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을 때였다.
“윤 의원, 얘기 좀 하지요.”
조 대표가 은근히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그래서 말씀하시라고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그가 바깥으로 눈치를 주고 있었다.
따라 나오라는 소리였다.
그를 따라 복도로 나가자, 보좌관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듯 작은 문을 하나 열어 줬다.
소규모 연회를 위한 방.
끽해야 50명 정도 들어올 수 있을까?
들어오자마자 문이 닫혔고 조 대표가 나를 돌아봤다.
“윤 최고.”
짐짓 무거운 목소리.
“옮긴 상임위는 어떻습니까? 할 만합니까?”
국회의원은 2년마다 상임위를 옮기기 때문에 묻는 것이었다.
내가 옮긴 곳은 국토교통위원회, 줄여서 국토위라는 곳이었다.
교통과 건설 등 각 지역의 사회간접자본 공약을 직접 다루는 위원회.
그 상임위를 배정 받았다.
아니, 배정 받게 만든 것이었다.
국방위하고 다르게 국토위는 인기가 많은 곳이라서 얌전히 대기 순서를 기다려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위원정수 31명에 대기인원이 두 배가 넘어서 경쟁률이 치열하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하나.
지역구에 공약하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국토위로 옮긴 것도 같은 이유였다.
“아, 예. 선배 동료 의원들이 잘 챙겨줘서 빨리 적응했습니다.”
“그렇겠지요.”
“……?”
약간은 차가운 말에 그를 바라보는데, 조 대표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윤 최고한테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세라도 불리는 것처럼 말이요.”
말투가 차가운 이유를 알았다.
계파를 말하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도 부수고자 열망했고, 결국 없애버린 행복한국당의 계파.
그걸 내가 되살리고 있으니,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
내가 대답하지 않자, 조 대표의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윤수혁계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것도 저 당선자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분명 윤 최고는 나한테 초계파에 당 쇄신에 혁신, 다 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그런데 파벌을 만들면 어떻게 합니까?”
조금 차갑긴 했으나, 화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당대표가 되면서 성정이 점점 부드러워진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랬을 확률이 컸다.
의견 안 맞는 최고위원회의를 끌어가고, 행복한국당이라는 거대한 정당을 지휘해야 하니까.
나는 그의 물음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윤수혁계는 저들이 편한 대로 만든 말입니다. 저는 연구모임도 하나 만든 적 없고, 그나마 가입했던 것도 폐쇄돼서 더 이상 모임도 없습니다. 원외에 있는 사교 모임도 하나 없습니다.”
“그래요, 나도 다 압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씀 하십니까?”
내 물음에 조 대표가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마치 속이라도 뚫어 본다는 듯.
이윽고 조 대표의 입이 열렸다. 차갑지만 날선 말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좀 누그러든 듯 보였다.
“친김파도 장세룡계도, 친MB계도…… 명문화(明文化)한 게 아닙니다. 모여서 떠드니까 계파가 되고, 파벌이 된 겁니다. 비록 윤 최고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아랫사람들이 모이면 그게 파벌이죠.”
조 대표의 속내가 무엇일까?
말투가 일견 차갑게 느껴졌지만, 말하는 내용은 또 달랐다.
아군임에도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것 같기도 했고.
“윤 최고가 그 말 안 나오게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자, 조 대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윤 최고.”
“예, 대표님.”
“……그 대답은 진심입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계파라는 말 안 나오게 한다는 거 말입니다.”
조 대표가 예의 알듯 모를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윤 최고의 말을 믿기가 힘듭니다.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 속을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차갑게 대하면서도 적의를 드러내진 않았고, 내게 돈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이용하지 못하게 선을 그은 모양이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는 국가와 당의 발전을…….”
“그 대답은 전에도 들었습니다. 정말 대답 할 생각이 없는 거요?”
“…….”
“제 한 몸 던져 사람을 구해 내면서도, 이 안에서는 편법에, 술수를 부리고…… 법안 개정이며 지역구 현안을 알뜰하게 챙기다가도 파벌이나 만들고…… 도대체 윤 최고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하긴 조 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이상한 놈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었다.
제 이익을 탐한다기에는 일을 너무 열심히 했고, 그렇다고 열심히 일만 한다고 하기에는 딴 짓도 많이 했다.
물론 어중간한 의원도 꽤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진 게 많은 특별한 놈이었다. 공적 권한부터 사적인 힘까지.
다른 의원들과는 달랐다.
내 행동에 따라서 사익이 극대화 될 수도 있고, 국가 발전에 한 획을 그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중간하게 있으니, 저의를 궁금해 하는 것이겠지.
잠깐 생각해 봐도 할 대답은 없었다.
인생을 두 번 살고, 복수와 내 목표, 그리고 온갖 계산이 더해진 게 바로 현재였다.
나는 앞으로도 무려 6년을 더 알기에 더 이상적이거나 현실적으로 살 수 없었다.
적당히 해야 했다.
잘못하면 내가 가진 미래의 기억이 더 쓸모없게 되거나, 내 앞날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대답이라고 할 순 없었다. 인생을 두 번이나 살고 있다니?
대신에 그에게 해 줄 말은 있었다.
“당대표님.”
“그래요, 윤 최고.”
궁금하다는 듯 바라보는 그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대표님께서 하실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게 대답입니까? 내 물음에 대한?”
“예, 만약에 제가 대표님한테 방해되는 놈처럼 보인다면, 결단을 내리고 쳐 내셔도 좋습니다.”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 판단이 되질 않아서 물었던 겁니다.”
“……다 진심입니다.”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 최고 말대로 되는 것 같긴 하네요. 이번 선거에서도 당의 승리를 위해서 노력했고…….”
내가 가볍게 고개 숙이자, 그가 좀 더 무겁게 말을 이었다.
“그게 본인의 계파로 연결이 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표면적인 목적과 이면적인 실속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어느 정도 알긴 아는 모양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가 문 쪽으로 손 안내를 했다.
“이만 가도 좋습니다, 축하연 편히 즐기다 가세요. 윤 최고가 낸 당비가 많아서 열 수 있던 겁니다.”
“예, 대표님.”
대답하고 나오는데, 기분이 미묘했다.
조만간 조 대표가 일을 벌일 것 같았다.
뭘 어떻게 할까?
당대표 이전의 조 대표를 떠올려 보면 답이 나오긴 했다.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로 만들어진 내 계파를 부수던가, 나를 부수던가.
하지만 그건 당대표 되기 전이었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일단 유연해졌다.
내게 돈을 지원받아 전당대회를 한 것부터 오늘의 사건을 나직하게 얘기한 것까지.
그래서 더욱 걱정이 됐다.
이렇게 변하고 있는 조 대표하고 척을 지게 될까 봐.
그는 그나마 우리 당에서 쓸 만한 사람이었다. 앞으로는 더 중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만약, 그런 조 대표가 잘못된 결단을 내리게 된다면?
결국 나도 칼을 뽑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