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38. 캡틴코리아 (3)
“윤 의원, 도대체 무슨 얘길 한 겁니까?”
“뭐가요?”
내가 되묻자, 박 수석이 인상을 찡그렸다.
“김 실장한테 했던 말, 그거 진의가 뭡니까? 뭘 쥐고 있길래 그런 협박을 해요?”
“협박은 제가 먼저 당했습니다. 중대본이 통제하고, 수사도 검찰이 하니까 괜한 짓 말라던데요.”
“안보실장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그런 건 신경 쓰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요?”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미디어 앞에서가 아니라, 대면하는 자리에서도 이럴 줄이야.
당당하다 못해 뻔뻔했다.
월요회에 들어가고 몇 번 식사하다 보니 내 편처럼 느껴졌지만, 역시 내 사람은 아니었다.
흡사 대드는 모습이 아닌가?
아니, 내가 했다는 협박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월요회를 주도하는 일원으로서 나를 자신의 아랫사람으로 여겼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가입을 허가하느니, 마느니 했으니까.
나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 거 치고는 대책이 없던데요. 그래서 중대본이 욕먹지 않았습니까? 통계도 틀려먹으면서, 사후 조치도 미흡해서 자원봉사자들이 먼저 도와주겠노라고 찾아왔고. 아닙니까?”
“일이 많으니 그리된 거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 협박이요?”
“지금 본인 입으로 인정하는 겁니까, 협박이라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재선 국회의원이자 철새 출신답게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전생부터 지금까지 한두 번 겪는가?
“인정은요, 무슨. 수석님 말 따서 써본 겁니다. 그리고 저도 인터뷰 약속 있으니…… 요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해 보세요.”
이제는 아예 박 수석의 대답이 대놓고 까칠해졌다.
사람이 위기에 몰리면 본색이 나온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아니, 더 성급했다.
애초에 철새 정치인으로 조용히 사라질 인간이었다.
그런 사람이 여태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버틴 게 용했다.
결국 정무수석이라는 직급을 달고도 이렇게 흥분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진짜 사건이 터지면 어떻게 될지 뻔히 보였다.
낙상.
조용히 잠기든, 집안 사정에 삐끗하든, 비리에 연루되든.
결국 나자빠질 것이었다.
월요회 멤버 중 경제특보 현정길과 총괄사장 주명규가 옥살이와 죽음으로 삶을 끝냈듯.
그 생각에 월요회의 끝이 보였다.
정계와 연루된 수많은 단체가 사라지고 생기듯, 곧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된 것 같았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먼 날은 아니었다.
나도 조만간 나가야 하리라.
자칫 잘못해서 지나치게 오래 있다가는 밀물에 발이 젖을 수도 있으니.
덤덤하게 목소리를 냈다.
“영원호 안에 들어가면서부터 나올 때…… 아니, 15일부터 17일까지의 모든 영상과 음성을 녹음했습니다.”
“……녹음했다고?”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사이, 얼른 설명을 달았다.
까딱하면 욕이라도 나올 얼굴이 아닌가?
“제가 한 건 아니고 경호원들이 한 겁니다. 요즘 경호업체에서는 액션캠이라고 휴대용 블랙박스 같은 걸 달고 다닙니다. 업무 녹화용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실 흔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제안한 뒤 후원한 돈으로 사서 장착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무궁의 대표가 내 말이라면 껌뻑 죽고 사람을 붙여 주고 있던 것이었고.
물론 비용도 따로 주긴 했고.
이윽고 구겨진 얼굴의 박 수석이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딴 말 하지 말라? 영상을 풀 수도 있다, 이겁니까?”
“그렇게는 안 했습니다만, 해경이나 중대본과의 대화도 녹화본 안에 있으니까 반박 기사나 딴 말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겁니다. 저도 코너에 몰리면 기자들한테 풀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반박 기사든, 뭐든 입 다물라는 거요? 입 벙긋하면 별거 아닌 일을 한 번 키워 보겠다는 겁니까?”
박 수석이 언성을 높였다.
그의 말 대로였다.
다행히 아직 반박기사가 없었다.
내가 한 인터뷰에 정부는 확인 중이라며 대답을 늦췄고 사후 대처에 충실하겠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했을 뿐, 별다른 발표를 하지 않았었다.
대신에 내부에서 확인이 끝났는지 박 수석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불편한 기색의 수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건 대답이 아니었다.
“수석님.”
그가 나를 바라보기에 같은 말을 해 주었다.
“별거 아닌 일 맞습니다. 그거 키우려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하실 말씀이 뭡니까?”
“…….”
그제야 박 수석이 길게 숨을 내쉬며 감정을 삭히는 듯 보였다.
내 말이 불쾌하긴 해도, 여기서 싸움질해서 얻을 게 없다는 것 정도는 아는 인간이었다.
이내 굳은 얼굴의 박 수석이 입을 열었다.
“……그거 묻읍시다.”
액션캠의 녹화 및 녹음 영상.
영원호 전 침몰 과정과 해경, 중대본의 대화 내용 등등.
그게 전부 들어 있으니 부담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안 그래도 정부 욕이 판을 치는 마당에 액션캠까지 공개 되면 해경이고 중대본이고 해체해야 할지 몰랐다.
실무자 징계 이상의 대대적인 인사 교체가 시작되리라.
전생에서도 영원호 참사로 인해 내각 인사 교체가 이뤄졌었다.
지금에야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책임자 몇의 목이 날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재선이나 했고, 정무수석질도 벌서 2년째 하고 있으니 박 수석도 모를 수가 없을 터.
이윽고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대신 언론 포커스 제대로 맞춰요. 정부 힐난은 이쯤으로 그치고, 영웅 놀이를 하시라고.”
“오늘 인터뷰가 그겁니다.”
“……그리고 영상, 볼 수 있겠어요?”
궁금한 것인지, 내 말을 못 믿는 것인지.
“파일은 못 드리고, 시간도 없으니 짧게만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조작해서 화면을 보여 주었다.
정무수석이든 누구든 보여 주기 위해 좀 편집한 영상이었다.
구조하러 온 해경과 박 보좌관의 대화, 조타실에서 송 비서관이 선장과 말싸움을 한 것과 내가 사람을 구한 일 등등.
1, 2분여 만에 편집된 영상들과 목소리가 넘어가자, 박 수석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이 정도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럼 진도항 기자회견, 미리 말이라도 하지 그랬어요? 우리도 보고할 여지는 줬어야지.”
아직 퉁명스러웠지만, 감정은 꽤 누그러든 듯 보였다.
영상은 생각보다 선명했고, 안의 내용물은 생각보다도 심각한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건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당에서 찾아온다고 돌발행동을 하는 바람에…… 그나저나 인터뷰 예정 시간이 다 돼 가서 일어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좀 있으면 기자가 올라올 텐데 수석님하고 대면하면 뭐라고 할지…….”
내 말에 시간을 본 박 수석이 얼른 일어났다.
“지금 갑니다, 그럼 몸조리하세요.”
“예, 멀리 안 나갑니다.”
내 말에 그가 작은 음료 박스만 하나 놓고 나갔다.
아마도 병문안이라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들고 온 것처럼 보였다.
물론 혹시 뭐가 있을지 몰라서 박스를 까보고 밑바닥을 전부 확인한 뒤에 보좌진을 불러 들였다.
들어오면서 박 보좌관이 바로 입을 열었다.
“의원님, 취재진 병원에 도착했답니다. 손님하고 얘기는 끝나셨습니까?”
“예, 잘 끝났어요.”
내 말에 박 보좌관이 태블릿 PC며 노트북, 각종 서류를 서둘러 병실에 세팅했다.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국회 근처의 대학병원에서 의원실 업무를 본다는 컨셉이었다.
보좌진들도 국회와 거리가 가까우니 오간다는 설정도 있었고.
전부 다 박 보좌관이 만들어 준 것이었는데, 이내 병실 문을 연 이는 외국인이었다.
그것도 CNN의 기자.
절로 미소가 번졌다.
벌써 월드스타 반열에 오른다는 우스운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 것이었다.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입가와 눈초리의 미소로만 보여 주고, CNN의 기자와 악수를 나눴다.
며칠 새 혀를 굴리며 연습한 영어 문장을 발음했다.
“Nice to meet you.(만나서 반갑습니다.)“
***
[행복한국당 윤수혁, 외신에서 캡틴코리아로 소개해]
[영원호의 히어로 윤수혁, CNN에서 캡틴코리아로 보도···대한민국 국회 위신 높여]
[영원호의 캡틴코리아 윤수혁, 한동안 환자복 차림으로 병실 등원 이어 갈 듯···타박상과 찰과상, 뼈에 실금까지 총 전치 6주 받아]
윤수혁이 각종 언론사의 타이틀이 찍힌 뉴스 프린트물을 확인하자, 변호사가 이번에는 다른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영원호 침몰로 인한 탑승자 피해 정리의 건]
곧 변호사가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선장을 포함한 탑승자 전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했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중상자의 경우에는 유가족과 대화하고 필요한 서류를 인계받아 정리했습니다.”
서류 뭉치만 손가락 마디가 넘어갈 정도.
윤수혁이 앞장의 목차와 개요를 살피다가 고개를 들었다.
“요점은요?”
변호사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손보사나 영광해운, 정부와 상세한 논의가 없어서 못해 구체적인 피해액 산정이 어렵지만, 말씀하셨던 우선 지원 대상은 추려냈습니다. 일단 중상자에 대한 병원비가 우선 지급되어야 하고, 화물차를 자가 소유하거나 사측으로부터 임대해 운송업을 하는 운전자에게 지원하는 게 이순위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부담해야 하는 총 비용이 얼맙니까?”
“최소한으로 잡을 경우 2억 5천만 원, 최대한으로 산정할 경우에는 103억 원입니다. 이 경우 병원비 전액을 부담하고, 유실물 보상과 차량 할부금, 생계 지원까지 가능합니다.”
변호사가 환자복 차림으로 보고를 듣는 윤수혁을 바라봤다.
과연 뭐라고 할까?
시원하게 103억을 부담할 것인지, 2억 5천으로 생색을 낼지.
궁금한 가운데, 윤수혁의 입이 열렸다.
“103억은 과합니다.”
변호사가 속으로 긍정했다.
부자가 괜히 부자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생판 모르는 남에게 100억 넘게 쓴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런데 윤수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반대편이라면 과한 보상이라고 물고 늘어질 수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사망자 하나 없는데, 처리 과정이 지나치다고 떠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말씀은……?”
“일단 최소 비용으로 후원하되,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걸로 하죠. 일시금으로 비용이 부풀려져도 안 되고, 너무 늦어져도 안 됩니다. 당장 시급한 일 아닙니까?”
“아, 맞습니다. 그러면 다시 계획을 수정해서…….”
“아뇨, 일단 최소 비용 지원은 우선 시작하세요.”
“알겠습니다.”
변호사가 대답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괜히 코리아캡틴이겠느냐고.
자신의 오너지만, 윤수혁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브리핑과 인터뷰 건은 여기 박 보좌관이 도와줄 겁니다.”
그 말에 박민표가 변호사와 눈인사를 나눈 뒤, 배포 자료에 대한 설명을 나누고 자리를 떴다.
그다음에는 윤수혁 특집 프로그램을 촬영하기로 한 피디가 왔었고, 바빠서 병문안을 못 왔던 동료 의원과 공무원들, 지역 유지들이 다녀갔다.
그렇게 4월의 밤이 하늘과 한강을 까맣게 물들일 무렵.
종일 간호인 침대와 가죽 소파에 앉아 있던 한사랑이 윤수혁의 곁으로 다가갔다.
“일하는 거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보좌진이나 변호사한테도 존댓말 써요?”
“7급 비서 빼고는…… 그러네요.”
“부하 직원 아니에요? 아빠는 반말도 많이 하고, 섞어서도 쓰거든요. 그리고 수혁 씨는 국회의원이잖아요. 존댓말만 쓰면 체면도 없어 보일 텐데…… 아니에요?”
맞는 말이었다.
대접받는 사람은 상대를 낮춰보기 마련이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한 영화의 대사처럼.
윤수혁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런데 왜요?”
한사랑의 물음에 윤수혁이 싱긋 웃었다.
“저는 이게 시작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