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21화 (121/191)

# 121

38. 캡틴코리아 (1)

광주공항 도착 대합실.

50대의 중년 사내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까만 정장에 넥타이도 없이 나온 그는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을 지역구로 둔 행복한국당 원외당협위원장 이갑수였다.

“흐어…… 왔나?”

그가 혼잣말을 하며 바쁘게 대합실을 둘러봤다.

몇몇의 여행객만 있을 뿐, 이갑수가 찾던 이들은 없었다.

바로 행복한국당의 당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국회의원들.

몇 명이 오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중앙당사에서 이번 영원호 침몰을 위로하고 현장을 시찰하기 위해 이동하니 광주 공항에서 의전하라고 전화가 왔었다.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이갑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니었다.

이갑수의 직업이 지역 군소신문사의 사장이었고, 이번에 침몰한 영원호에 윤수혁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장으로 가서 윤수혁에게 잘 보이려던 생각도 하고 있었고.

그사이, 주차장에 차를 댄 그의 아들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인마, 넥타이 똑바로 해.”

“흐유…… 네.”

숨을 몰아쉰 아들이 넥타이를 고쳐 맸고, 어느새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려 왔다.

이갑수와 아들이 차려 자세로 입구를 바라보다가, 허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해남군완도군진도군 원외당협위원장 이갑수입니다!”

고개 들며 외쳤는데,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나오고 있었다.

이갑수가 놀라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돌아봤고, 아들이 중얼거리듯 목소리를 냈다.

“아버지, 저 사람들 아니요? 가다마이 차려입은 것이 맞는 거 같은데.”

“……거시기 따라가봐야 쓰나?”

이갑수와 아들이 그렇게 상황을 파악하는 무렵.

조성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앗, 안녕하십니까! 해남군완도군진도군 원외당협위원장 이갑수입니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가장 앞에서 걷던 조성현이 손을 내밀었다.

“조성현입니다. 원래 인사도 나누고 당협사무실도 둘러봐야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먼저 항구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대표님.”

“아니, 차 같이 탑시다. 우리 보좌진이 차 대놨을 겁니다.”

이갑수가 숨을 꼴깍 삼켰다.

원외당협위원장을 하면서 당대표와 대면하긴 했어도, 이렇게 말을 섞은 게 처음이었고 같은 차에 타는 것도 최초였다.

“아, 알겠습니다.”

얼결에 조성현의 옆에 서게 된 이갑수가 손을 휘저어서 아들을 멀찍이 보냈다.

그렇게 대합실을 나가자, 공항 입구에 까만색 벤이 시동을 건 채 대기 중이었다.

그래서 보좌진이 뛰어다녔음을 깨달은 사이, 조성현이 가장 앞에 있는 벤으로 손 안내를 했다.

“먼저 타시죠.”

“아휴, 네네. 알겠습니다.”

심지어 옆자리.

이갑수가 긴장을 감추며 해야 될 말을 고르는 사이, 차가 금방 출발했다.

조수석에 앉은 4급 보좌관이 뒤를 돌아왔다.

“원외당협위원장님께서는 빠른 지름길 있으면 알려 주십시오.”

“그러믄요, 제일 빨리 갈 수 있게 하겠습니다.”

“네, 그럼 라디오 켜겠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4급 보좌관의 말에 라디오 전원이 켜졌고, 채널이 돌아갔다.

- ……이건 선장이 탈출 지시를 했다는 영원호 관계자의 인터뷰를 뒤엎는, 전혀 상반되는 주장인데요. 승객 탈출을 도왔다는 윤수혁 의원이 실제로는 구조 상황을 지휘했을 가능성까지 있습니다. 이번에는 현장에 나가 있는…….

차창을 내다보던 조성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윤수혁의 이름까지 언론에 나왔다.

이미 예상한 바이긴 했으나, 막상 윤수혁의 이름을 들으니 더 신경 쓰인 것이었다.

조성현이 조수석의 보좌관을 향해 말했다.

“볼륨 더 키우세요.”

***

“의원님, 이걸로 일단 갈아입으시는 게…….”

어디선가 구해 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마크가 인쇄된 바지와 점퍼였다.

더 볼 필요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떨고 있는 학생들한테 가져다주세요.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피도 묻고, 정장도 찢어지셨으니…….”

중대본 과장급의 말에 픽 웃을 뻔했다.

내가 그래서 입고 있었다.

얼룩지고, 찢어지고, 핏자국이 난 내 정장이야말로 언론 플레이의 훌륭한 소재가 아닌가?

부상까지 마다하고 지휘소 텐트에서 승객 구조를 위해 치료까지 미루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

생각만 해도 근사했다.

내가 대꾸도 않고 펼쳐진 영원호 구조도를 바라보자, 옆에 있던 영석이가 끼어들었다.

“그만 하시죠.”

“아…… 네.”

과장급이 의기소침하게 돌아가자, 내 맞은편에 있던 중대본 관계자와 해경, 군 간부들이 눈치를 봤다.

불편하고,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내가 누군가?

탑승객 이전에 야당의 최고위원이었다.

정부를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바로 그 야당.

더구나 차관보에 준하는 현장 지휘관보다 내 의전서열이 한 끗발 더 높았다.

내게 함부로 할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무언가?

생존자 구조와 선내 상황을 진술하고 구조를 돕기 위한 명목이었다. 괜히 나를 내보내봤자 좋을 게 없었다.

그래서 나를 내쫓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그때, 텐트 한편에서 쉬지 않고 통화 중이던 박 보좌관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이윽고 박 보좌관이 내게 귓속말을 전했다.

“당대표님 오고 계신 답니다. 다해서 일곱 명이고, 총 오십 명 정도 되는 숫자인데…… 어떻게 할까요?”

저들끼리 조용히 의견을 주고받던 이들이 내 쪽을 흘깃댔다.

구조 직후 전화만 붙잡고 있던 박 보좌관이 움직인 게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기자회견 자리 마련하는 거 어때요?”

“저희가 말입니까?”

박 보좌관이 묻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내 최선의 수였다.

나를 위로한답시고 오는 이들을 맞이하면 내가 들러리 역할이 될 가능성이 컸다.

당대표를 앞세운 지도부와 의원들이 생존자를 위로한 뒤, 사열 하듯 중대본을 둘러보고서는 기자들 앞에서 그럴싸하게 인터뷰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소재로 쓰일 뿐.

그래서는 안 됐다.

안그래도 생존자와 중대본 틈바귀에서 비벼대느라 젖은 옷을 입은 채 밥도 안 먹고 이 텐트에 처 박혀 있었다.

좀 더 극적인 상황을 위해 모든 전화는 박 보좌관이 대신 받아서 차단했고, 나는 처음에 생존자를 위로한 뒤 텐트 바깥으로 나가지도 않았었다.

무엇보다도 걸리는 게 있어서 나가질 못하고 있었다.

[탑승객 476명, 구출 473명, 실종 3명]

저 3이라는 숫자.

저게 10여 분 전부터 줄지 않고 있었다.

설마 여전히 배 안에 있나 싶어서, 선내에 진입한 잠수사들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걸 확인해야 될 것 같아서 그랬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우리 당 지도부가 곧 찾아올 예정이고, 해경과 중대본에서 발표한 면피용 헛소리도 참기가 힘들었다.

정리해야 될 때였다.

금세 분위기 파악을 마친 박 보좌관이 목소리를 냈다.

“그럼 당대표님 도착 예정 시간에 맞춰서 준비하겠습니다. 기자회견 장소는 제가 세팅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기자회견 자료는 어떻게 할까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네, 의원님.”

그렇게 박 보좌관이 텐트를 나간 지 3분 정도 됐을까?

무전을 하고, 저들끼리 떠들며, 전화 통화만 바쁘게 하던 중대본의 간부가 몸을 떨었다.

이윽고 귓속말이 오고가더니, 국장급이 다가와선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의원님…… 국가안보실장님이십니다.”

“그런데요?”

“그…… 전화 좀 받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의원님 전화는 통화 중이라고 하셔서…….”

그가 손에 폭탄이라도 쥔 것처럼 목소리를 떨었다.

하긴 국가안보실장이 일개 국장한테 다이렉트로 전화를 걸었으니.

내가 손을 내밀자, 그가 황송한 얼굴을 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국장의 인사를 받으며 스마트폰을 받자마자, 국가안보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윤 의원, 기자회견 한다는 거 진짜요?

“예.”

기자들에게 알린 게 그의 귀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 어디까지, 어떻게 할 거요?

“지금 야당 감시하고 통제 하시는 겁니까?”

- 어허, 지금 말장난하자는 거 아닙니다.

“그럼 할 말씀만 하세요. 뭉뚱그려서 묻지 마시고.”

딱 잘라 말하자, 국가안보실장이 헛기침을 해 댔다.

잘못한 걸 아는 것이었다.

내가 사고를 미리 알려 줬는데도 발 빠르게 대처하질 못했고, 오히려 내 입과 눈이나 가리려고 들었으며, 이제 와서는 기자회견에 대놓고 찜찜한 기색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내가 기자들에게 풀 게 오죽 많겠는가?

사고 당시 통화, 중대본의 느린 보고 및 지시 체계, 잦은 통계 오류 등등.

뭐라도 흠이 될 게 생길까 봐, 도둑이 제 발 저려서 떠드는 것이었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그럼 당하고는 협의 하셨소? 당대표가 거기 간다는데, 그거 당의 입장이요?

“아닙니다. 기자들 인터뷰 요청 받을 겸 해서 하는 겁니다.”

- 그럼 선은 어디까지 정했소? 우리하고 협의라도 해야 되지 않겠소?

“협의? 하려면 대면하고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 바닥 생활 할 만큼 하신 분이 그걸 모르십니까?”

전생에는 장관이며 총리, 대통령까지 왔었지만 지금은 차관보급 하나와 저 국장급이 전부였다.

그나마 차관보급 책임자는 차에 들어가 있었고, 실무는 국장급이 맡아 지휘했으며, 군 인사도 소장 한 명이 다가와 인사한 게 전부였다.

현장에 윗대가리 하나 없었다.

- 인명사고도 없는데 진도까지 내려갈 순 없잖소?

“인명사고 날 걸 막았다고는 생각 안 하십니까? 그리고 실종자도 아직 셋이나 있습니다.”

- 안 죽었으면 그만이지, 그리고 사람 셋 죽는 게 별거요? 교통사고 한 해 사망자가 수천 명이요. 안그래도 바쁜데 사람 한둘 죽는 것까지 신경 쓰라는 거요?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사고 당시에 통화할 때도 느꼈지만, 정말 답답한 인간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국가안보실장이 내 아랫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아닌가?

오히려 상대하기 좋았다.

때려 달라고 약점을 드러내는 꼴이었다.

“야당 최고위원 앞에서 그런 말해서 좋을 게 없을 텐데요.”

- 거 알 만한 사람이 왜 자꾸 그래요? 서울로 올라오면 한 번 봅시다. 그럼 됐지요? 기자회견을 해도 정론관 같은데서 해야지, 어디 항구 바닥에서 할 것도 아니잖소? 국회의원이나 돼서 품위 없게…….

“남의 품위 그만 따지시고, 속보로 기자회견이나 들으십시오.”

- 어허, 참. 내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그렇게 언플 하고 싶어요?

“아, 언플이란 말도 아세요?”

- 말 돌리지 말고. 윤 의원, 이래서 좋을 거 없어요. 결국 구조 결과 브리핑하는 거 중대본이에요. 진상조사도 검찰이 하는 거고. 다 알지 않소?

“다 압니다만, 실장님은 제가 뭘 갖고 계신지 모르시죠?”

순간 대답이 늦어졌다.

- ……윤 의원, 사적인 영역까지 떠드는 건 안 됩니다. 엄연히 상도덕이…….

“통화내역까지 까발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구조 요청 정도로 말할 겁니다.”

- 그럼? 뭘 말하는 거요?

“듣고 싶으면 항구로 오셨어야죠, 이만 끊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고 멀찍이 서 있던 국장급 인사를 쳐다봤다.

그가 잰걸음으로 다가와 스마트폰을 받아 들었고, 몇 번인가 더 통화하더니 내게 전화를 받아달라고 매달렸다.

거부하자 다른 이들의 이름까지 나왔다.

국가안보실장에 이은 행안위 고위 간부들 전화.

나는 그들의 전화를 전부 무시하고 기자회견 준비에 들어갔다.

예상 질문 같은 것 대신에 내가 할 말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논점을 어디에 둘 건지, 뭘 부각할 건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자, 국장급 인사가 직접 입을 열었다.

“저…… 의원님. 실장님께서 오후 중에 장관님이 오시니까 얘기를 나눠보라고 하시는데…….”

“내가 까라면 까고, 말라면 말아야 합니까? 아예 사진 촬영하게 오라가라 하시죠.”

“그럼 거부하신다는 말씀이신지…….”

국장급이 상황 파악을 못한 듯 묻기에 고개를 끄덕여 줬다.

이게 전생의 정부와 다를 게 있나 싶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한 것처럼 느껴졌다.

현장 확인을 안 하면, 탁상공론 같은 대책이라도 내놔야 하는데 대충 봐도 그럴 것 같진 않았다.

신민주당 소속의 전남 도지사나 새정치당의 지역구 의원이 온 게 전부였는데, 그것도 위로차 온 방문에 불과했다.

실질적인 대책은 느려터진 중대본에서 마련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국장급이 몇 번인가 더 묻는 우스운 짓을 할 때.

무전 소리가 시끄럽게 텐트를 채웠다.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는데, 무전을 확인한 사람의 말에 불편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실종자 3명 동거차도에서 찾았습니다!”

결국 전원구조를 해냈다.

밑에 부상자 숫자가 세 자릿수를 넘어가고, 그중 중상자도 수십 명이긴 했지만.

구조한 게 어딘가?

슬슬 웃는 사이, 밖에 나가 있던 박 보좌관이 뛰어들어왔다.

“기자회견 시작하시면 됩니다. 현장 세팅해뒀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곁에 있던 영석이가 텐트 입구를 걷어 주었다.

마련된 장소는 항구 시멘트 바닥에 놓은 나무 파레트 몇 개.

그 앞에 기자들이 무릎앉아 자세를 했고, 뒷줄에서는 사다리까지 동원해서 카메라 렌즈로 파레트를 겨누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카메라 플래시가 일시에 나를 덮쳤다.

밴딩된 여러 방송사의 마이크를 든 김 비서가 파레트 아래쪽에 쭈그려 앉는 사이, 나는 파레트 위에 올라섰다.

한 차례 숨을 뱉고, 입을 열었다.

멀리서는 까만색 차량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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