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37. 영원호 (4)
부상자를 둘러업었다.
“끄으으…….”
그가 뼈라도 부러진 듯 신음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이미 근무복 앞자락이 피로 축축한 걸로 봐서 부상이 심한 듯했지만, 별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꺼내지 않으면 죽을 게 뻔했다.
당장 1, 20분만 지나도 배는 점점 기울어서 우현의 갑판으로 빠져나가기 힘들어질 것이었다.
더구나 남아 있는 부상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조리도구와 바퀴 달린 주방 가전에 치여서 벽 구석에서 신음하는 이었다.
그 와중에 업는 걸 돕던 김백현 경호팀장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무래도 제가 업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뇨, 앞장서서 제가 나가도록 도와주세요. 부탁 아니고, 지시입니다.”
단호하게 말하자, 김 팀장이 알겠다고 대답하더니니 구석에 처박혀 있는 다른 부상자를 쳐다봤다.
“그럼 저분은 의원님이 갑판에 나가시면 제가 데리러 오겠습니다.”
“아뇨, 같은 방식으로 갑시다.”
“저는 의원님을 보호할…….”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젭니다. 제 말대로 하세요. 계약 조항에 지시 이행하는 거 추가한 거 아시죠?”
내 말에 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후부터는 김 팀장이 애를 썼다.
앞서 가며 소방호스를 풀어 밧줄처럼 내려 주기도 했고, 뒤로 와서 나를 받쳐주고 밀어 줬다.
업힌 이가 힘을 쓰지 못해서 시간이 몇 분이나 지체될 무렵.
드디어 갑판에 나왔다.
등허리가 그의 피 때문인지, 내 땀 때문인지 모르게 눅눅해졌다.
덥고 힘들었다.
다시 들어가서 구조를 반복해야 했기에 근처에 있던 승객 몇을 지목했다.
때마침 학생 대신에 성인 남성이 몇 명 있었다.
“거기 검은색 잠바 입으신 분, 흰 운동화 신으신 분. 잠깐 오세요.”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말로 부르자, 초로의 사내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이 분 보호 좀 부탁합니다. 구조대 오면 가장 먼저 태워 주세요.”
“아, 네.”
“그럼 팀장님, 다시 들어갑시다.”
그렇게 거친 호흡을 누르고 김 팀장과 다시 들어갈 때.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고개만 돌려 바라보자, 난간을 붙잡고 있던 젊은 여성과 남성 하나가 사람들을 비집고 다가왔다.
“안에 다친 사람 있어요?”
“예.”
“같이 가요, 우리도 도와줄게요.”
“고맙습니다.”
정치인답게 바로 대꾸하며 악수를 나눈 뒤, 두 사람과 함께 안으로 움직이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서둘러 움직이며 번호를 확인하니, 해군작전사령관이었다.
“사령관!”
- 위원님. UDT하고 헬기도 출동했습니다, 상황 좀 알 수 있겠습니까?
“상황은…… 하, 선내외로 인원 다 풀어서…… 수색하세요. 물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겁니다.”
후아, 후아.
뜀박질이라도 한 듯 밀려오는 숨을 고른 뒤, 바로 말을 이었다.
“부상자도 있고요. 후…… 상태가 심각하니까 응급조치 준비해야 됩니다.”
- 알겠습니다. 배는 얼마나 침몰했습니까?
“급속도로 침몰 중입니다. 일단…… 사람 구하러 들어가니까 끊읍시다.”
뚝, 끊으면서 미끄러지듯 주방으로 들어갔다.
부상자를 덮친 물건을 치워 내고, 내가 먼저 등을 내밀었다.
“승객분도 오셨으니, 이번에는 제가…….”
“빨리요.”
말을 끊었다.
지금 해야만 했다.
교과서에나 나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나는 그걸 실천해야 했다.
갑판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일장연설 하는 것보다, 들어가서 사람 하나 업고 나오는 게 내게는 더 중요했다.
나한테는 훈장이 필요했다.
몇 번인가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만든 정강이와 팔뚝의 상처로는 부족했다.
피 묻은 내 정장과 젖은 와이셔츠도 모자랐다.
나는 영웅이 되어야 했다.
결국 두 승객이 업는 걸 도왔고, 김 팀장이 앞장섰다.
한 걸음, 두 걸음.
힘겹게 경사면을 오르는데 호흡이 달렸다.
후…… 후…….
코가 아닌 입으로 숨이 밀려나왔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힘들어서 그런 것이었다.
몸도 못 가누는 사람을 업고 경사면을 오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간간이 헬스하고 골프하는 몸뚱이로는 버거웠다.
“읏!”
주욱 미끄러지자,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의원님!”
김 팀장이 나를 붙잡았고, 뒤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서 나를 받쳐줬다.
김 팀장한테 맡길 걸 그랬나.
한숨을 삭히고, 다시 바깥으로 발을 디디는 사이.
메아리가 들리는 듯했다.
의원님, 의원님.
김 팀장이 놀라 외쳤던 말이 반복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니, 메아리가 아니었다.
영석이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송 비서관과 김 비서의 목소리기도 했다.
***
행복한국당 당대표실.
안으로 비서실장인 초선의원이 들어왔다.
사무책상 옆에서 보고하던 4급 보좌관이 고개를 숙였고, 자리에 앉아 있던 조성현은 고개를 들었다.
비서실장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확인하면서 입을 뗐다.
“대표님, 차량 준비 끝났습니다. 지금 출발하셔야 합니다.”
“……최 실장, 내가 막상 출발하려고 하니까 좀 걸리는 게 있어서 그래요.”
“네?”
비서실장의 놀란 물음에 조성현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윤수혁 최고위원을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기존 정치권의 구태를 답습하는 행태처럼 느껴지다 보니…….”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이해했다.
4급 보좌관이 출발하지 않는 당대표를 설득하고 있던 것이었다.
비서실장이 얼른 목소리를 냈다.
“대표님, 방금 당 지도부 임시 회의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말 그대로 임시 회의를 열어 합의까지 봤었다.
바로 진도 팽목항 방문.
윤수혁이 영원호 침몰에 휘말렸기 때문에, 피해자 위로와 현장 시찰을 빌미로 방문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목적은 최근 불거진 게이트 등으로 인한 이미지 회복.
사실 윤수혁이 없어도 당 차원에서 영원호 사건을 여러 방면으로 이용해먹겠지만, 마침 윤수혁이 탑승객이어서 소식을 접하자마자 회의를 열어 이동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것도 당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 국방위 위원장과 행안부를 소관부처로 둔 행안위 위원 등등.
다해서 무려 일곱 명의 의원들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들을 따르는 보좌진과 기자들을 포함하면 거의 오십 명에 다다르는 숫자.
지금 바깥에서 그 숫자가 이동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비서실장이 급하게 목소리를 냈다.
“대표님! 지방선거하고 재보궐선거 생각하셔야 합니다. 거기서 패배하면 책임론 들먹이면서 사퇴하라고 할 텐데…… 그렇게 당대표 연임도 못하게 되면 당 혁신이고 뭐고 소용없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래서 저도 동의는 했습니다마는…….”
조성현이 말끝을 흐렸다.
어차피 현장에 가 봤자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의전이나 받고, 기사나 써내는 일종의 쇼였다.
굳이 현장 조사를 하겠다면 이런 식으로 가서는 안 됐다.
안그래도 복잡한 구조 현장에 방해만 될 게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비서실장의 말을 거부하지 못했다.
당의 이미지 변신과 선거 준비, 그리고 윤수혁을 비롯한 탑승객 위로가 이유기 때문이었다.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얼른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거꾸로 생각해 보십시오. 윤 최고는 이 상황을 그냥 두고 봤겠습니까?”
그건 아닐 것이었다.
윤수혁은 필요하면 편법도 자행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전당대회 선거자금 수억 원을 지원해 주지 않았던가?
자신도 당의 개혁을 위해 결국 받아들였고.
당과 나라가 이롭다면, 윤수혁은 구조 뒤에도 이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 애쓸 게 분명했다.
“윤 최고는 사람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답니다. 그런데 저희가 그냥 있으면 되겠습니까?”
이어진 채근과 동시에 인터폰이 울렸고, 조성현과 비서실장의 핸드폰도 울었다.
조성현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출발합시다.”
윤수혁에게 받은 것이 아직 남아 있던 탓이었다.
선거 자금이 다가 아니었다.
지도부 회의에서 힘을 보태주거나 당과 나라를 위해 애쓴 게 모두 떠오른 것이었다.
이윽고 까만색 그랜드 카니발을 비롯해 국내산 대형 세단이 줄줄이 국회 정문을 빠져나갔다.
그 뒤로는 행복한국당 차량과 기자 차량도 같이 움직였다.
목적지는 김포공항.
속도만 나면 20분 내외로 도착할 것이었다.
***
바람이 불었다.
귀를 얼얼하게 하는 헬기 소음도 들려왔다.
눈을 찡그리며 바라본 상공에는 해경에서 보내왔을 헬기가 가까이 떠 있었다.
구조자를 내려놓는데, 헬기 소음 사이로 고함 소리가 섞여 있었다.
뭔가 했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의원님!”
영석이었다.
“찾았습니다! 비서관님!”
그 말에 송 비서관과 김 비서도 사람 몇을 헤쳐 가며 급하게 다가왔다.
“구명조끼 입으십시오! 헬기 타고 나가셔야 합니다!”
영석이가 들고 있던 구명조끼를 내 팔에 끼우려하기에 손을 붙잡았다.
“박 보좌관은?”
그에게 방송을 맡겨 놨었다.
늦어도 20분 내로 나오라고 했었는데, 아직도 방송하고 있을지 몰랐다.
주방에서 바로 우현 갑판으로 나오는 바람에 좌현에 치우쳐 있는 안내 데스크를 확인하지 못했었다.
영석이의 눈이 내 뒤를 바라봤다.
“저기 나옵니다!”
뒤를 돌아보자, 박 보좌관이 경호원의 보조를 받아가며 문으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서 우리 보좌진의 머릿수를 셌다.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
다행이었다.
우리 보좌진은 내가 내린 임무 수행을 하면서도 전부 무사했다.
다시금 영석이의 손아귀가 내 팔뚝을 잡았다.
“이제 입으셔야 합니다!”
“안에 승객은? 더 없어? 확인 다 했어?”
반 정도는 진심으로, 그리고 절반은 내 이미지를 위해 되묻자, 영석이의 손가락이 바다를 향했다.
“다들 옮겨 타고 있습니다!”
구조 중이었다.
경비정과 어선에서 사람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주황색의 구명조끼 덕분에 잘 보였다.
꽤 많은 숫자.
그래서 갑판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박 보좌관도 내 말을 거들었다.
“의원님! 헬기 이쪽으로 옵니다! 저기 탑승하시죠! 배 안에 물차고 있습니다!”
그 말에 시계를 확인했다.
9시 45분.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다시 쳐다봐도 같은 시간이었다.
사고가 터진 지 채 20분도 안 된 것 같았는데,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아니, 퇴선 했어야 하는 보좌진이 왜 여태 여기 있나 싶었는데.
다시금 박 보좌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의원님! 이제 가시죠!”
“안에 사람은? 박 보좌관, 확인 다 했어요?”
“일단 타십시오, 저 안에 물이 차서 더 이상 확인도 못합니다! 배도 너무 기울었습니다!”
“저도 경호팀장으로서 더 이상의 선체 진입은 반대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김 팀장까지 말을 거들었다.
잠깐을 고민하는데 선체로 해경들이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해경 숫자가 꽤 많았다.
갑판까지 올라온 해경이 사람들을 난간 너머로 꺼내어 구조했고, 객실 창문을 일일이 확인하며 승객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멀찍이선 군용 헬기도 보였다.
전생에는 없던 광경.
선체로 향하는 어둑한 문을 바라보는데,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저희도 의원님 안 나가시면 여기서 못 나갑니다.”
박 보좌관이었다.
그래서 나가지 않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사이 해경 헬기가 탈것을 내려 부상자를 태워 갔고, 나는 비어가는 갑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갑시다.”
어느새 체력이 달린 듯 몸이 떨렸고, 정강이와 팔뚝 같은 곳이 많이도 쓰라렸다.
내가 구조하는 게 아니라, 구조 당해야 할 차례였다.
그리고 이제 미디어를 탈 차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