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18화 (118/191)

# 118

37. 영원호 (2)

김백현 경호팀장.

그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평소에 무표정으로 경호하는 것과 달랐다. 마치 심기가 불편한 듯 미간과 입가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감이 나빴다.

단순히 파타야에서의 사건을 인지해서, 단순 출장에 경호원을 다섯 명이나 고용했을리 없다는 판단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예측과 예상과는 달랐다.

약 십 년, 신분이 2급 기밀로 취급되는 군부대에서 복무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훈련과 작전을 수행하며 품고 있던 본능이 꿈틀거린 것이었다.

무슨 사달이 날 것 같았다.

옆에 있는 윤수혁이 풍기는 분위기도 그랬다.

난간에 기대어 이른 아침의 해풍을 쐬는 게 마치 삐져나오는 긴장을 감추는 것처럼 보였다.

‘뭐가 있지?’

김백현은 사주경계하는 팀원을 보고, 다시금 주변을 촘촘하게 확인했다.

영원호의 좌현 난간, 복도, 3층과 5층으로 통하는 계단, 복도로 나오는 출입구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좀 크긴 해도 결국 일반 여객선.

특이사항도, 특이사항이 될 법한 것도 없었다.

아직 옅은 안개가 낀 아침이라 복도에는 자신과 경호팀원, 윤수혁, 다해서 셋이 전부였다.

객실이 있는 내부 복도도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사람이 적었다.

어제 밤 11시에 선상 폭죽 파티를 진행했고, 배 안에 할 일이 없어 다들 누워 있던 탓이었다.

그사이, 윤수혁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배가 많이 흔들리네요.”

급하진 않아도 배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난간 아래를 살핀 김백현이 입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갈게요. 그리고…… 우리 보좌진들 어디 가지 말고 객실에 대기하라고 해 주세요. 화장실이나 어디 이동 할 때는 팀원 분께서 꼭 동행하시고요.”

먼 바다를 내다보며 하는 말치고는 묵직했다.

의문이 있긴 했지만, 김백현은 경호팀장으로서 일단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후 군말 없이 무전기로 지시를 내렸고, 수신을 확인하고서 다시 윤수혁을 쳐다봤다.

잠깐의 고민 뒤, 김백현이 먼저 목소리를 냈다.

“의원님.”

“예.”

“혹시 말씀해 주실 게 있으십니까?”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물은 것이었다. 윤수혁이 길게 숨을 내쉬며 대답을 늦추자, 김백현이 얼른 말을 이었다.

“경호에 만반을 기하기 위한 것이니 가벼운 것이라도 말씀하시면 됩니다. 제가 판단하겠습니다.”

그 말에 윤수혁이 쓰게 웃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제 들어가시죠.”

“알겠습니다.”

대답한 김백현이 팀원에게 눈짓했고, 윤수혁의 곁에 서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객실에 들어간 시간이 오전 8시 40분.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선체가 급하게 기울었다.

쿠웅-

동시에 선내 먼 곳에서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고, 사람들은 누군가 확 민 것처럼 휘청했다.

“꺄악!”

“으아, 씨팔!”

“어머머! 이게 뭐래?!”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고, 옆자리에 있던 김백현의 손은 반사적으로 의자와 윤수혁을 붙잡았다.

그는 이어서 윤수혁의 신변 상태를 확인하다가 멈칫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윤수혁의 양손이 의자를 꽉 붙들고 있었다.

졸고 있던 승선객들이 바닥을 구르며 깨어낫고, 사람들이 놀라서 목소리를 냈다.

“아휴, 허리야…….”

“어디 갖다 박았나?! 뭔 상황이야?”

“술 처먹고 운전하나 선장 놈의 새끼가, 아휴 염병할…….”

그 사이, 박민표가 급하게 목소리를 냈다.

“의, 의원님! 괜찮으십니까?”

“보좌관님은요?”

“저는 괜찮습니다. 안내실에 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그 말에 객실에 있던 사람들이 윤수혁을 쳐다봤다.

새삼 깨달은 얼굴이었다.

영원호에 지체 높은 국회의원이 타고 있었다.

적어도 큰일이 나진 않을 것이었다. 무슨 일이 난다고 해도, 장차관급의 국회의원이라면 강짜를 놓아서라도 일을 해결하리라.

같은 객실의 승객들은 모두 그 생각을 했다.

더구나 보통 국회의원도 아닌, 재산도 많은 행복한국당의 최고위원이 아닌가?

그 윤수혁의 입이 열렸다.

그런데 정작 나온 말은 달랐다.

박민표의 말에 대답하거나 그러라고 허락하는 게 아니었다.

어느새 비스듬히 일어선 윤수혁이 모두를 돌아보며 말하고 있었다.

“우측 구명조끼 보관함에서 구명조끼들 꺼내서 소지하고 갑판으로 나가 계세요. 학교 관계자 분들은 3등 객실에 있는 인솔교사한테 전화해서 학생들 전부 갑판으로 나가게 하세요.”

***

내 말에 사람들이 어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나치다는 얼굴이었다.

바닥이 제법 기운 상황이었는데도 아직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전생에 나도 그랬었다.

수백 명의 인사사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국회 출근해서 업무 보던 중에 뉴스를 봤고, 가라앉는 영원호를 보면서 수장될 소지품이 얼마인지, 뒤처리가 얼마나 번거로울지를 예상하는 우스운 짓을 했었다.

당연히 살 거라고 생각했었다.

타고 있는 승객이 수백 명이었고, 헬기로 생중계까지 되고 있었으니까.

더구나 안에 타고 있던 이들은 안내 방송도 듣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앞으로 30분 뒤면 기어 오르기 힘들 정도로 선체가 기울어져서 탈출이 힘들어질 것이었다.

바닥과 벽을 타 올라야 했다.

그 전에 모든 일을 끝낼 생각이었고, 이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쉬운 일이었다.

더구나 나는 일반인도 아닌 국회의원이 아닌가?

사람들을 향해 다시금 목소리를 냈다.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당장 움직이세요. 송 비서관, 구명조끼 나눠 주세요.”

말하며 어벙한 얼굴의 박 보좌관을 바라보자, 그가 알아들었다는 듯 목청을 돋웠다.

“뭐 합니까?! 의원님 말씀 안 들려요?”

그의 호통에 사람들이 움찔했고, 송비서관이 얼른 움직여서 구명조끼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람들도 구명조끼를 받아 들며 선실을 나갔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나는 곧장 박 보좌관을 쳐다봤다.

“박 보좌관님은 해경에 전화하세요. 122입니다.”

“아, 네!”

“송 비서관님하고 김 비서님.”

“네!”

“5층 조타실과 선장실로 가서 승객 갑판 대피하는 거 도우라고 하세요. 여기 팀장님이 경호원 한 분씩 붙여 줄 겁니다.”

김백현 경호팀장을 바라보자, 주춤한 그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김진혁, 최현수. 움직여.”

그의 말과 손짓에 바로 송 비서관과 김 비서 옆에 정장 차림의 건장한 사내가 달라붙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내 지시만 이행하세요. 설득도 안 되고 지시도 없으면 15분 내로 탈출하세요. 알겠습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내 채근에 둘이 알겠다고 대답하며 급하게 선실을 나갔고, 나는 신고 중인 박 보좌관에게 말을 덧달아 줬다.

“배 이름 영원호고 위치는 진도군 병풍도 부근입니다. 배가 기울고 침몰 중이니까 인근 해역에 경비정, 어선 싹 다 불러 오라고 하세요.”

박 보좌관이 눈짓으로 대답하고는 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경도하고 위도는 모르겠고, 여기가 진도군 병풍도 부근이고…… 배 이름은 영원호입니다. 몇 도? 몇 도 기울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 내 신분이요? 윤수혁 국회의원님 보좌관 박민표요! 그러니까 승객이라고…… 뭐요?”

박 보좌관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사이, 김백현 팀장을 바라봤다.

“우리는 3층 안내실로 갑시다.”

***

김백현이 윤수혁을 도와 안내실로 움직였다.

몇 분의 시간이 소모된 뒤.

3층 안내실의 코앞에 다다른 순간, 웅성거리는 복도의 소란 위로 안내 방송이 깔렸다.

-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안전봉을 잡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전봉을 잡고 현재 자리에서 이동하지 말고…….

순간 김백혁을 비롯한 보좌진과 경호원들이 윤수혁을 쳐다봤다.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은 윤수혁의 지시와는 상충하는 내용이었다.

예상했다는 듯 윤수혁이 곧장 입을 열었다.

“방송 무시하고 그대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단단히 대답한 김백현은 윤수혁의 길안내를 마저 도왔지만, 피어오르는 호기심마저 없애진 못했다.

이상했다.

윤수혁이란 사람 자체가 의심스러웠다.

3층의 복도를 내려와 안내실로 가면서도 윤수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승객들에게 갑판으로 나가라고 지시했었고, 최영석과 경호원 한 명에게 승객들을 대피시키도록 지시했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한 이래로 한결같았다.

최초에 사람들이 ‘윽’하는 신음을 뱉을 때에는 충격을 대비했었고,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기 전부터 여객선의 침몰을 가정한 듯 지시했고, 행동했었다.

한마디로 미리 상황을 아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말이나 되는 걸까?

승객 수백 명을 실은 여객선이 침몰할 것을 알고 있다는 건 공작설이나 음모론에 불과한 소리였다.

가당치도 않은 말.

더구나 15일 저녁부터 윤수혁의 곁에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은 게 바로 김백현, 그였다.

수상한 점도 없었다.

차라리 신내림이라도 받았다는 가정이 더 그럴싸했다.

그러다 문득 김백현은 윤수혁이 연평도에서도 해병대원을 둘이나 구해 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진짜 신기라도 있나? 무당들도 정치인들 여럿 쥐락펴락 한다던데…… ···.’

생각을 이어 가던 김백현은 안내실 데스크를 쳐다봤다.

어느새 방송을 마친 선원 한 명이 귀에 핸드폰을 대고는 급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곧 안내실 데스크를 붙잡은 윤수혁이 입을 열었다.

“당장 대피 방송하세요.”

“뭐? 당신 누구요?”

통화 중에 고개를 돌린 선원이 짜증 난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그러나 선원의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민표의 고함이 그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당신 미쳤어?! 감히 누구한테 당신이야! 당신이!”

고압적인 태도에 선원이 움찔했다. 유사 상황이긴 해도 선원은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권위와 압박에 움츠러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누, 누구시길래?”

“당신은 배에 국회의원님이 탄 것도 몰라?! 체크도 안 해?”

알 수가 없었다.

국내 여객선은 관리가 허술한 편이라서 이름 적고, 신분증만 확인하면 탑승이 가능했다.

입구에서 확인하지 못하고, 따로 알리지 않는다면 알 수 없었다.

선원이 할 말을 고를 때 윤수혁이 입을 열었다.

“행복한국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윤수혁입니다. 구명조끼 챙기고 모든 승객한테 퇴실 지시 내리세요.”

“그게 조타실에서 일단 대기하라는…….”

“그게 유사시 매뉴얼입니까? 아니면 선내에 비치된 교본은 있어요? 비상시 대응 교육은?”

“…….”

선원이 입을 다물었다.

대답할 수 있는 물음이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영원호를 운항하는 영광해운에서 안전교육 등의 선원 교육비로 지출하는 비용 자체가 아주 작았다.

고작 54만원.

연간 접대비 6,000여만 원의 1퍼센트도 되지 않는 액수였다.

그마저도 구실 맞추기로 기록된 것이라서 교육비용은 실제로 선내의 안전 포스터 구입이나 경광봉 교체 따위에 사용됐었다.

이론 교육과 모의 훈련 같은 제대로 된 비상시 교육은 서류에 기록된 글자가 전부였다.

애초에 해양수산부와 마피아의 합성어인 해피아가 판을 치는 판국에 영광해운에서 신경 써서 교육 시킬 리 만무했다.

선장을 포함해서 선원들도 1년짜리 계약직이 많았고.

주저하는 선원의 분위기를 파악한 윤수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겁박보다도 훌륭한 수단이 바로 책임지겠다는 말 한마디였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책임질 위치에 있어야 했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그것도 제1야당의 최고위원.

선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조타실에 다시…….”

순간 윤수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기회를 줬으면 받아야지.”

“네?”

“영원호 선장부터 영광해운 사장 싹 다 국회로 불러서 당신 이름 암기하게 해 줘?”

옆에 있던 두 경호원과 박민표가 움찔하는 사이, 윤수혁이 나직하게 목소리를 냈다.

“직접 못하겠으면 마이크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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