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37. 영원호 (1)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
여기가 신혼집이었다.
전용면적 73평.
방 4개에 욕실 3개, 호별 주차장이 2개씩 있었고, 베란다가 넓어 채광과 한강 조망이 괜찮았다.
한마디로 마음에 들었다.
내 부동산 관리인이 국회 등원과 지역구 관리, 풍광, 시설, 보안 등을 따져 가며 매입한 덕분이었다.
부동산 관리인이 카톡으로 이미지를 보내 주긴 했지만, 323회 임시회로 바쁜 탓에 방문하질 못해서 직접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대신에 한사랑이 신혼집을 보고 싶다고 해서 관리인과 함께 보내긴 했었다.
그 과정에서 업자에게 인테리어를 수정하게 했고, 카탈로그를 읽으며 가구와 가전을 직접 골랐다고 했었다.
심지어 나한테는 일말의 고민도 되지 않을 것까지 한사랑은 제법 꼼꼼하게 챙겼다.
몰딩 색깔이 화이트인지, 화이트펄인지…….
옆에서 보진 않았지만, 관리인이 내게 보고해서 잘 알았다.
그래선지 인테리어는 좀 나아 보였다.
전 주인의 인테리어나 업자의 양산형 디자인이 아니라, 흰색과 회색으로 모던한 느낌이었다.
그 외에는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현관등이나 주방의 레일등 같은 것도 직접 골랐다고 하니 나로선 수고해 준 한사랑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그렇게 이 집에 들어오기까지 내가 한 거라고는 ‘예’ 같은 허락의 대답 밖에 없었고, 관리인과 업자, 한사랑의 노력이 나머지를 채운 것이었다.
“집 예쁘네요, 사랑 씨가 고생 많았겠어요.”
“음…… 제가 살 곳이 여기니까 당연히 신경 써야죠. 앞으로 이 집에서 생활하고, 밥도 먹고, 잠도 잘 거잖아요.”
착한 아이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결혼식 하기 전에 나눈 얘기 때문이었다.
학교와 직업 등을 포기하고, 간단한 레저나 사교 활동을 포함한 내조에 충실해야 한다는 대화를 나눴었다.
정치인이라는 내 직업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도, 장인도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했지만, 그게 속에서 우러나와서 한 것으로 생각되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원래 삶이라는 게 원하는 걸 전부 취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한사랑은 이제 스물둘이 된 아리따운 여인이어서 감정적이거나 조금 엇나갈 가능성도 있었다.
그게 조금 걱정이었다.
그럴 것 같진 않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어느새 한사랑이 짧게 웃었다.
“보여 줄 거 있어요.”
“뭔데요?”
“서재요. 방 두 개 합쳐서…… 아, 혹시 사진 봤어요? 관리인 아저씨가 찍은 거 못 보내게 했는데…….”
“공사 전만 봤어요.”
생각해 보니 다른 건 전부 확인했지만, 서재는 ‘사모님께서 리모델링 중입니다.’라는 카톡만 보내왔었다.
나야 별 상관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했었을 뿐.
“내가 진짜 신경 많이 썼어요. 한 번 봐요.”
그녀를 따라 어느 방문을 열었고, 나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결재 받으러 온 것 같았다.
침실 두 개를 합쳐서 안방 보다 커다란 게 대기업은 아니더라도, 중견기업 사장실처럼 느껴졌다.
벽 한 쪽을 책장으로 메웠고, 업무용 책상이 책장을 등지고 있었다.
단순 디자인의 하얀 난과 큼직한 중역의자까지.
회의용 테이블이나 손님 응대용 탁자라도 있었으면 어디서 볼법한 대표이사실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별로예요?”
“흐하하, 아뇨. 사장실처럼 꾸며서 그랬어요, 좋네요.”
“좋은 거 맞아요?”
“예, 완전 내 스타일입니다.”
그제야 그녀가 웃었다. 미처 놓친 게 떠올랐다는 듯.
***
급물살을 탔던 나경호 게이트는 어느새 하류에 다다랐다.
그것도 퇴적이 한참이나 된 얄팍한 깊이의 물길.
굴곡졌던 물속은 완만해졌고, 녹조가 꼈으며, 흐르는 건지 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느려졌고, 조용해졌다.
그래야만 했다.
아니면 낭떠러지의 폭포수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일 물줄기를 잘못 타고 들어가게 된다면 수사 중이던 정치 검사나 일선 경찰들의 이름까지 거론될 확률이 컸다.
한마디로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모두 떨어져 죽게 된다는 말이었다.
타이밍을 봐서 적당히 마무리 지어야 했고, 손기택 지검장이 약속한 장세룡이 나왔으므로 사건은 사실상 끝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압력이나 합의에 의해서 끝내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맺어지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안그래도 떡검이다, 견찰이다 말이 많은 상황.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사결과 브리핑을 했다.
- 안녕하십니까, 서울중앙지검 공보담당관 차장검사 이형근입니다. 먼저 사건 개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작년 12월 피고인 나경호의 구속 과정에서 장부를 획득하여 관련 내용을 수사하였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행사 유치와 일감 몰아주기 등을 대가로 전현직 국회의원과 공무원, 기업 임직원이 총 10억여 원의 뇌물을 공여하거나 수수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전현직 국회의원은 18명, 공무원 27명, 기업 임직원 46명으로 총 91명이 연루되었으며, 이 중 대부분이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정상을 참작하여…….
검찰은 그렇게 대다수의 불구속 기소 처분을 발표했고, 이 사건의 특징을 언급할 때는 91명이라는 관련자의 숫자만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향후 대한민국 정관계의 유착이 사라지길 바란다면서 말을 끝냈다.
5분 만에 끝낸 것이었다.
공보담당관인 차장검사는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고 자리를 떴으며, 이 발표는 금세 묻혔다.
이튿날, 나경호의 첫 재판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나경호 첫 재판 출석]
[나경호 뇌물 혐의 재판···관련자 무려 91명]
[나경호 변호 법무법인 퍼시픽···전직 대검 차장검사까지 있어]
신문을 보던 민정수석 노용석은 집무실에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멈췄나 싶으면 문자와 카톡이 날아오고 있었다.
서울지검장을 좌천시키거나 옷 벗기라는 압박과 그만한 칼잡이가 어디 있느냐고 놔두라는 내용이 번갈아 오는 것이었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이 왔지만, 노용석은 PC와 연계해서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모두 저장했다.
그게 노용석의 일이었다.
누가 장세룡계고, 나경호의 사람인지, 서울지검장인 손기택의 뒷배인지 기록해 두는 것이었다.
국가의 칼인 민정수석으로서 미리 상대를 구분지어 놓는 것이었다.
이미 잦은 일이었다.
검찰이 으레 주요 사건을 묻혀 두듯이 그렇게 계속해서 저장하고 보관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전 행정부에서 남겨 둔 미폐기된 서류들을 따로 분류하여 보관하는 것도 같은 이치였다.
그 모든 건 나중에 써먹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노용석이 주춤했다.
‘손기택이 뒤에 누가 있는 거야…… 대단하네.’
메시지의 숫자가 비등비등했다.
나경호 게이트에 연루된, 그리고 연루될까 두려운 이들이 인맥을 동원하는 게 기본이었다.
다급하니 압박을 넣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이었다.
반면에 손기택을 옹호하는 쪽은 오히려 위험을 무릅써야 했는데도 압박이 적잖았다.
헛웃음을 뱉은 노용석이 턱을 긁었다.
‘이러면 좌천시키긴 힘들겠는데.’
***
2014년 4월 15일, 저녁 8시 30분.
인천여객터미널.
옆자리의 박 보좌관이 안개 낀 차창 바깥을 내다보다가 날 돌아봤다.
조금 걱정되는 얼굴이었다.
“차라리 내일 아침 인천공항으로 가시는 게…….”
“괜찮습니다.”
“여태까지 세비 많이 아끼셨으니까 비행기로 이동하셔도 뭐라고 할 사람 없습니다. 의원님 훌륭하신 거는…….”
“해군기지 가는 겁니다. 민간여객선 그냥 타는 게 아닌 거 아시잖아요? 뭐라도 말 한마디 하려면 이렇게 가는 게 낫습니다. 어차피 제주항 둘러볼 거 아니에요?”
거짓말이었다.
굳이 오늘 배를 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국가적인 재난으로 기록될 영원호 참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빠른 침몰, 대기하라는 방송, 무대응으로 만들어진 300여명의 사망자를 낸 비극.
이걸 막아야 했다.
그것도 단순히 영원호의 출항을 막거나 정상적으로 운항하게 만들자는 게 아니었다.
연평도에서 그랬듯 영웅이 될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침몰하는 영원호에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구하는 게 내 목표였다.
2010년의 포격 사건과는 다르게 사람이 많긴 했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쉬웠다.
즉각 퇴선 방송하고 CCTV로 잔존 승객을 확인하며, 동시에 구명조끼를 배분하고 구명정을 펼치면 될 일이었다.
이 모든 건 배가 기우는 시점에 해결 가능한 것이었다. 국회에서도 이 영원호 사건으로 탈출 시뮬레이션을 어마어마하게 해서 잘 알았다.
그렇게 배는 침몰시키고 사람을 구한 다음에는 해경과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등의 일명 무능과 유착, 일명 해피아를 지적하면서 깨어 있는 정치인 흉내를 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대신에 딴생각이 들긴 했다.
영원호 참사가 그대로 재현되는 걸까?
이미 대통령과 여야가 바뀌었고, 탈당과 창당의 시기가 몇 년이나 앞서며 역사가 바뀐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천재지변은 몰라도, 인재는 바뀔 여지가 있었다.
국정 상황을 보면 전생의 김정환 정부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나비의 날갯짓이 토네이도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분당과 창당이 몇 년이나 빨리 일어났었고.
그렇게 영원호로 오르는 차량 행렬에 따라 움직이는 사이, 박 보좌관이 카니발 뒷자리를 돌아봤다.
“송 비서관, 김 비서. 둘 다 멀미약 복용했죠?”
“네, 다 먹었습니다.”
“의원님은 드셨습니까?”
“저는 멀미 안 합니다.”
“그럼 경호원분들까지는…… 제가 챙길 필요는 없겠죠?”
박 보좌관이 크로스백을 열면서 묻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분들 우리나라 최고예요. 알아서들 하실 겁니다.”
경호업체 무궁에서 베테랑 경호원 다섯 명을 고용했다.
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유사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한 인력으로 부른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해군기지 방문 건에도 보좌진을 넷이나 데려왔다.
백짓장이라도 맞들면 나으니까.
추가로 진도 인근에 헬기를 둔 군부대 연락처까지 갖고 있었고, 미리 영원호의 내부 구조 확인까지 마쳤다.
전생에서도 영원호 참사를 들여다봤었기에 사건 과정도 전부 꿰고 있었고.
그렇게 들어간 곳은 2층의 화물칸.
차를 세우고서 4층에 있는 2등객실로 올라갔다.
3층에 있는 3등객실은 수학여행 팀으로 채워진 상황이었고, 의자가 있는 2등객실에는 일반 손님과 학교 관계자들이 몇 있었다.
한 번 쓱 둘러보고, 자리에 앉았다.
여기야말로 내게 최적의 장소였다.
5층에 조타실이 있고 같은 층에 VIP 객실이 있긴 했지만, 굳이 독실을 쓸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야 했다.
경호원과 보좌진 말고도 내가 지시하면 움직일 사람들이 필요했다.
동시에 증인이 될 사람이기도 했고.
이번 일이 끝나면 내가 앞장서서 사람을 구했다고 떠벌릴 생각이기도 했지만, 제 3자 입에서 증언이 나온다면 그 파급력과 신뢰성은 정식 보도보다도 나았다.
그때, 웬 나이 든 사내 한 명이 다가왔다.
“혹시 국회의원…… 맞죠?”
짐을 풀어 놓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맞습니다. 행복한국당 비례대표 윤수혁입니다.”
“와아, 제주도로 업무 보러 가시는 겁니까?”
악수를 나누며 묻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주 해군기지에 갑니다.”
“그러시구나, 참. 위층에 VIP실도 있는데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
“원래 3등객실 쓰려고 했는데, 예약이 꽉 차서 2등객실로 온 겁니다. 출장비도 전부 세비인데, 절감해야죠.”
“아하하, 그거 저희 학교 애들입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거든요.”
피해 고등학교 관계자인 모양이었다.
그와 같이 있던 이들이 나를 인식했고, 몇 명 더 다가와 악수를 나눴다.
셀카도 찍었고.
당연하게도 박 보좌관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들어오는 타이밍은 말이 길어지거나 흰소리를 늘어놓을 때였다.
그렇게 15일의 밤을 보낸 뒤.
4월 16일,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