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14화 (114/191)

# 114

36. 최고의 결혼 (1)

2월 초.

[장세룡 체포영장 발부]

[보수신당, 장세룡 구속은 李정부의 정치 탄압]

[나경호 게이트 연루된 장세룡 구속…… 연루된 인원만 100명 넘어]

장 의원이 결국 체포되었다.

322회 임시회 직전, 폐회기간 중에 구속된 것이었다.

알기로는 손 지검장이 조건을 달았다고 했다.

나경호 게이트를 끝내겠다고.

행정부 고위직과 대통령의 측근들까지 엮여 있을 확률이 높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애초에 게이트라는 게 파면 끝도 없이 나오는 것이었다.

주는 놈, 받는 놈이 따로 없었고,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주고받아서 연관된 사람이 많았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사람들은 지인과 가족들까지 끌여들이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걸 장 의원 한 명으로 마무리 지은 것이었다.

당연히 장 의원의 형량도 협상으로 결정될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얽힌 이들이 먼저 나와서 형량 조절에 앞장설 가능성이 높았다.

기사에 언급된 5억을 수뢰죄보다 비교적 낮은 처벌 용도로 바꾸거나, 징역형을 살다가 특사로 석방하기로 약속했거나.

나야 검찰청 취조실에 따라 들어가서 구경하진 못해서 구체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어쨌든 손 지검장은 의원직 상실을 확신했다.

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여론의 관심을 높인 덕분이었고, 전국 각지에서 장 의원을 구속시키라고 시위한 덕분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시원하거나 통쾌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애초에 과정이 정치적이고, 복잡하고, 지지부진해서 그런가?

“괜찮으십니까?”

운전 중이던 영석이가 물어 왔다. 백미러로 눈치를 살핀 모양이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그러게, 좋아야 정상인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있긴 있는데…… 아냐. 너도 호텔에서 좀 쉬어라, 나 끝나는데로 전화 할게.”

“알겠습니다, 의원님.”

영석이의 정중한 대답을 흘려 보내고, 차창 너머를 내다봤다.

여전히 장 의원이 구속된 여파가 내 속에 남아 있었다.

사실 복수라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전생의 일이었다. 그걸 지금까지 질질 끌고 온 게 잘못일 수도 있었다.

물론 여기서도 형과 나에게 위협이 있긴 했었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고, 나는 전생의 죽음에 집착했었다.

죽지 않았으면 두 번이나 같은 삶을 살진 않았겠지만.

오늘따라 복잡했다.

그사이, 차가 서대문구의 그랜드힐튼 호텔에 도착했다.

재작년 가을부터 이수하기 시작한 Y경영전문대학원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의원님! 오셨습니까!”

Y경전원의 원우회장이 연회장 입구부터 뛰어왔다.

그의 뒤로 원우회 간부들과 Y경전원 교원들도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아, 예.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 사람들과 악수도 나눴다.

“학점 채우시는 동안 경전원도 그렇지만, 저희 원우회도 꾸준히 도와주신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 덕분에 저희가 행사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오늘 졸업식도 역시…….”

예순은 족히 됐을 원우회장이 나를 띄워 주는 말을 늘어놨다.

각종 행사 참석과 뒤풀이, 백두대간 등정 같은 번거로운 일을 무마하기 위해서 후원금을 좀 냈더니 입이 마르도록 떠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연회장 상석에 나를 앉히고, 그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어수선했고, 소란스러웠지만 내 기분은 여전히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후에 유명 연예인이 나와서 사회자 마이크를 잡으며 졸업식을 진행해도 마찬가지였다.

약식의 식순이 지나고, 내가 거부했던 졸업식 대표자가 올라가 떠들고, 대학원장과 총장도 나와서 기념사를 했다.

이후에는 발라드 가수와 여 아이돌 그룹의 축하 공연이 있었고.

그게 다였다.

순금 테를 둘렀다는 무슨 상패와 졸업장과 앨범을 받고 연회장을 나왔다.

로비에서 영석이를 기다리는데 쓴웃음이 나왔다.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오늘의 졸업식처럼 허울만 그럴싸하고, 실속이 없는 게 이 바닥이었다.

장 의원의 구속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이 그랬다.

그걸 잘 아는 내가 미지근한 감정에 한숨을 뱉었다는 게 웃겼다.

이거면 됐다.

Y경영전문대학원이라는 학벌을 얻은 것처럼, 장 의원을 이 바닥에서 밀어내는데 성공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장 의원을 만나겠지만, 일단 지금은 끝났다.

재판결과는 나중에 나올 것이었다. 앞으로 한두 달, 길어도 서너 달.

이제 내 일을 해야 할 때였다.

마음을 다잡았다.

***

2월 중순, 종로3가.

다다미가 깔린 일본 전통식 방에 윤수혁이 들어섰다.

앉아 있던 이들이 눈인사를 했고, 윤수혁이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무래도 여의도가 BH보다 멀어서 그런지 좀 늦었습니다.”

“우리도 방금 왔어요, 식탁에 젓가락뿐이잖소?”

짧은 웃음.

이윽고 정무수석 박우식이 안에 들어오더니 남은 자리를 채웠다.

“몸이 두 개가 돼도 모자랄 지경이니 원…… 바쁘실텐데 용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벌써 말이오?”

“아마 생각하실 시간도 필요하실 겁니다, 말씀 들으시고 식사 하시면서 오늘 안건 검토해 주시면 됩니다.”

“그럽시다.”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김정섭 원장이 대답했고, 옆 자리의 치바그룹 대외협력단장 총괄사장 주명규도 고개를 끄덕였다.

월요회의 모임.

손기택 서울중앙지검장만 없는 자리였다.

다시금 박우식이 입을 열었다.

“그럼 월요회 회원 손기택 지검장의 처리 안건을 다루겠습니다. 의견 있으신 분 계십니까?”

“처리라면 탈퇴를 말하는 겁니까?”

윤수혁이 묻자, 박우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경호 게이트를 독단적으로 진행하면서 물의를 일으켰지요. 장세룡으로 게이트를 마무리하긴 했지만, 관련자들의 반발이 심해서 아마 지방으로 발령 날 거고, 월요회 입장에서 무리해서 안고 갈 이유는 없잖습니까?”

그 말에 지켜보고 있던 주명규 총괄사장이 물었다.

“손 지검장, 나가면 대체할 인력은 있습니까?”

“네, 후보군도 있고 여기 계신 회원님들의 추천을 받아서 진행하면 됩니다.”

“허…… 사람 너무 자주 바뀌어도 안 좋소, 손 지검장 나가면 벌써 세 번째 아니요?”

이번에는 김정섭 원장의 말이었다.

“그 덕에 유능한 윤수혁 최고위원도 함께하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김정섭이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는데.

윤수혁이 돌연 목소리를 냈다.

“품고 가시죠.”

“네?”

박우식이 놀라 되물었고, 가만있던 경제특보 현정길을 비롯한 의원들이 윤수혁을 쳐다봤다.

“다 이해합니다만, 월요회가 동네 북카페에서 모이는 독서클럽입니까?”

“그게 무슨……?”

박우식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바라보자, 윤수혁이 말을 이었다.

“손 지검장 처리라는 게 감당하기 힘드니 손 떼겠다는 말 아닙니까? 이러면 빽 없는 일개 지검장하고 뭐가 다릅니까? 이런 것도 카바를 못 치면, 월요회가 대한민국의 시작을 이끄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윤수혁이 물으며 사람들을 둘러봤다.

눈에 힘이 들어간 모습.

회원들이 대답을 헤아리는 사이, 치바그룹의 주명규 총괄사장이 몫소리를 냈다.

“어려서 호기 넘치는 건 이해하는데, 우리가 남 뒤치다꺼리 하려고 모인 건 아닙니다.”

윤수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래서 신경배를 빼고 나를 넣었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이었다.

그사이, 이번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고깝게 들을 필요 있소? 호기 넘치니까 얘기나 마저 들어 봅시다. 윤 최고, 말해 봐요.”

머리에 서리가 내린 김정섭 원장이 웃어른 흉내를 내자, 윤수혁이 바로 입을 열었다.

“주변 눈치 안 보고 사건을 이만큼 끌고 가서 장세룡 의원까지 집어넣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BH에서도 겁 좀 집어 먹었겠지만, 결국에 득 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방 발령만 막아줘도, 손 지검장은 은혜를 입은 게 됩니다. 나중에 갚을 빚이라는 말입니다.”

윤수혁의 설명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젊은 축에 속하는 현정길 경제특보가 입을 열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주 사장님도 그렇고, 원장님도…… 그러니까 비용이 덜 드는 쪽으로 선택하시죠. 뭘 해도 돈이 들어갈 테니까, 그게 낫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의 눈이 윤수혁을 향했다. 이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이가 윤수혁이기 때문이었다.

윤수혁도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뭐든 초과되는 건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윤수혁이 대답하고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안그래도 없는 검사 인맥을 제주도로 유배 보내? 총장까지 만들어 주고 써먹어야지.’

***

“지금 보고 계시는 상품이 대한민국에 있는 프러포즈 반지 중에 가장 값비싼 것으로 국내 탑배우나 할리우드 스타들이 구매하며, 이 디자인의 경우에는…….”

“이거 10호로 주세요.”

설명이 길어져서 말을 끊자, 응대하던 여직원이 자연스럽게 말을 멈추고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제작 일정 확인 후 바로 배송 일정까지 잡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백화점 VIP실 직원답게 능숙하게 대답하고는 구매에 필요한 카드 기기와 서류를 가져왔다.

9억짜리라 그런지, 카드 한 번만 긁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서명을 몇 군데에 하고, 설명을 더 듣고, 백화점 사장과 악수까지 나눈 뒤에야 차에 탈 수 있었다.

물론 입구까지 임직원 몇이 따라 나와서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번거로운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나는 벤츠 쿠페에 올라 그대로 조컨설팅 사무실로 향했다.

정치컨설팅 회사의 대표, 조양준.

매년 나오는 정책보고서와 내 홍보활동을 도맡아 오던 그에게 다른 일도 맡길 생각이었다.

바로 결혼식.

내 말을 듣고서는 조 대표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결혼하십니까?”

“정치컨설턴트한테 결혼식을 부탁하는 게 포인트가 아니에요?”

내 말에 그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것도 그렇지만 갑작스러워서…… 하하하.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초등학생 자제들이 있다던 그가 멋쩍은 웃음을 건네더니 다시금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저한테 결혼식을 맡기신 다고요? 신라호텔가면 임원이 달려 나와서 맞이해 줄 텐데요?”

“그건 평범한 결혼이고, 저는 명색이 정치인 아닙니까?”

“음,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진행하라는 말씀이시죠? 축하 받는 게 전부가 아니라…….”

“예, 잘 보셨습니다. 저 이제 서른 됐습니다. 살아온 날 만큼 정치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되지 않겠어요?”

“하하, 정말 윤수혁 최고위원님은 뵐 때마다 대단하십니다. 정치 컨설팅을 365일 받는 것도 그렇고, 결혼식도 컨설팅으로…… 참! 날짜만 정해 주십시오. 식장과 하객, 결혼식 구성, 전부 준비해놓겠습니다.”

“늦어도 4월 초까지 입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약 두 달…… 알겠습니다.”

조 대표가 5월이나 가을에 할 수 있냐고 묻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회의를 예약했다.

역시 눈치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추가로 준비할 게 있습니까?”

“여태 해 왔듯 해 주세요.”

돈 신경 쓰지 말고, 효율을 극대화해서, 좋은 결과를 뽑아내라는 뜻.

“알겠습니다, 일주일 내로 중간보고 드리겠습니다.”

그의 단단한 대답을 듣고 조컨설팅 사무실을 나왔다.

이제 반지 들고 찾아가서 프러포즈를 해야 될 일이었다.

조금 떨렸다.

결혼에 대한 중압감인지, 아니면 사랑한다거나 결혼하자는 간질거리는 말을 꺼내야 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결혼이 코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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