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13화 (113/191)

# 113

35. 물타기 (2)

2014년 1월 중순.

“무슨 소린가?”

장세룡이 의아한 얼굴을 해 보였다.

원내 의원모임을 같이 하는 한 초선의원의 물음 때문이었다.

“게이트만 끝나면 합당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여쭤본 건데, 아직 시기상조인 모양입니다?”

시기상조가 아니라 현재로서는 고려하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매스컴을 통해 기사화되긴 했으나, 하급 실무자 선에서 끝난 계획이라고 발표하지 않았던가?

합당은 나와서는 안 될 말이었다.

당장 자신에게 불이익이었다.

합당하면 계파 구성이나 당직 분배 협상이 어렵게 진행될 것이었다.

나경호 게이트로 인해 참고인 조사 받고, 수사대상에 오른 이들 대다수가 보수신당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공격받고 상처 받으며, 피해 입는 쪽은 보수신당 의원들이리라.

물론 엮인 이들이 전부 법정에 서는 일도 없고, 매스컴을 타지도 않겠지만.

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윤수혁.

작은 엇갈림으로 시작한 악연이 넘기 힘든 장애물이 되었고, 지금은 의도를 모를 합당 얘기를 흘려 대고 있었다.

이윽고 말을 건넸던 초선 의원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물러가고, 장세룡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사무총장과 원내대표에게 합당 얘기에 관해 묻기 위해서였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장세룡에게 압박과 회유를 받아 줄을 선 부장급 검사였다.

“날세.”

- 의원님, 참고인 조사 얘기 들으셨습니까?

다짜고짜 날아든 말.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 있던 장세룡이 몸을 똑바로 했다.

“무슨 소린가?”

나경호 게이트에 관한 기사가 점점 줄어들던 차였다.

검찰총장과 대면해서 원하던 얘기도 받아 냈고, 손기택 지검장 휘하 부하들에게 로비도 했었다.

그래서 이제 대충 끝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던 차였다.

- 의원님 모시러 직원들 출발했습니다. 임의 동행 거부하시면 바로 영장 나올 것 같…….

“그게 무슨 소리냐고!”

장세룡이 고함을 쳤고, 주위의 테이블에 있던 의원들이 눈을 껌뻑거렸다.

장세룡의 목울대에 핏발이 섰다.

- 그게…… 저도 내부 사정은 모르겠습니다만, 증인을 확보한 것 같습니다.

“무슨 증인?”

- 아무래도 참고인 조사 중에 얘기가 나온 거 같습니다…….

부장검사가 말끝을 흐리자, 장세룡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동시에 회의실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의원들의 보좌진이 입구를 막고,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 뚫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

하고자하면 결국 이루어지는 건가, 헛웃음이 났다.

결국 장 의원이 수사관들과 임의 동행하고, 검찰청 뒷문으로 들어가 취조실에 입장했다.

구속이나 구형을 내린 것도 아니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갈 길이 확 줄어들었다.

당연히 이곳저곳에서 태클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애초에 옆에서 참견하고, 제지하는 이들이었다.

검찰총장이든, 법무부 고위 인사든. 그들의 목적은 기를 쓰고 이 일을 망치려는 것이 아니었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보기 좋게 끝내는 게 목적이었다.

너무 확대되면 자신의 근처와 행정부 고위직에도 불똥이 튈 수 있으니까.

그래서 BH에서도 모든 걸 묵인하고 있었다.

특수팀의 수사도, 견제도.

불이 번질 것 같으면 사건을 강제로 종료시키겠지만, 손 지검장의 목표는 명확했다.

장 의원.

내게 동업을 요구할 때도, 손 지검장은 장 의원의 이름을 거론했었다.

몇 번의 압수수색, 포토라인을 통한 참고인 조사와 숱한 임의 동행의 끝에 나온 것도 결국 장 의원이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합당 떡밥을 던지며 다른 둥지를 제시했고, 언론을 타일렀으며, 이곳저곳에 발품을 팔기도 많이 팔았지만.

어쨌든 잘 됐다.

이제 뉴스를 잘 내보낼 때였다.

여러 번 나를 돕고, 내가 써먹었던 백 기자의 번호를 눌렀다.

- 네, 백윤지입니다.

“전에 말한 특종, 지금 드리려고 하는데 시간 됩니까?”

- 어디로 갈까요?

그녀가 얼른 내 위치를 묻기에 엷게 웃었다.

“통화는 가능하단 말이죠?”

- 말씀해 주세요.

“사업가와 유지들로부터 약 120 억, 대기업 임원들로부터 50억…… 그리고 사학재단 자금도 80억 원 정도 횡령해서 부정사용 했다는 혐의점이 발견됐는데, 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 누가요? 의원님?”

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 그녀가 급하게 물었다.

“장세룡 의원이고, 최측근 제보입니다.”

- 최측근이 누군데요? 증거는요? 딴 건 또 없어요?

몰아치는 질문에 딱 끊어서 대답해 줬다.

“지금 그 건으로 조사 중이고, 장 의원 검찰청에 있습니다.”

- 네?!

“그리고 최측근은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걱정 마세요.”

나보다 더 믿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

비록 전직 최측근이지만, 그를 오랫동안 보필하긴 했었으니.

뭔가를 필기하는 듯하더니 백 기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사업가하고 유지들은 장세룡 지역구 사람들이죠? 대기업은 장세룡 장인…….

“내일이나 모레 검찰에서 중간발표가 곧 있을 겁니다.”

- 아…… 그럼 이게 끝이에요? 더 말씀해 주실 거 없어요?

“없습니다.”

- 저 그러면 하나만 물어볼게요! 장세룡이 나경호 게이트 끝판왕이에요? 맞죠?

역시 기자라 그런가 눈치가 빨랐다.

나경호 게이트나 서울중앙지검 특수팀 같은 말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예상하고 묻는 것이었다.

심지어 끝판왕이라는 단어까지 썼다.

나경호 게이트에서 엮을 만한 최대 거물이 장 의원이라는 것도 아는 것이었다.

“맞습니다.”

- 네,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온겨레일보 편집인 고 전무에게도 문자를 하나 넣었다.

마찬가지로 장세룡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금 밝혀진 것만 170억에 달하는 뇌물로 개인이 착복한 것이니 여론에 불이 붙을 것이었다.

물론 2월의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으로 인해 묻힐 테지만.

그 전에 끝날 것이었다.

장 의원은 꿈에도 모를 물증이 바로 내 손에 있었다.

그것도 확실한 증거였다.

***

[(속보)장세룡 약 170억 원 뇌물수수 혐의]

[장세룡 거액 뇌물수수, 보수신당 묵묵부답]

[보수신당 전 당대표 장세룡, 나경호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로 임의동행]

기사가 났을 때만 해도, 손기택 지검장은 약간 당황했었다.

비밀리에 임의동행까지 했는데, 윤수혁이 모두 까발린 꼴이 됐기 때문이었다.

물밑에서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며 진술의 허점을 찾고, 증인과 증거를 확보해 두려는 게 목적이었다.

발표는 그다음이었다.

모든 게 확실해지면, 이번 나경호 게이트의 마지노선에 장세룡을 세워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언론에서 미리 터졌고, 윤수혁이 지검장실에 방문했다.

“한 번 확인해 보십시오.”

들어오자마자, 윤수혁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이른 속보는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언론플레이가 급한 게 아니냐고 물으려던 손기택이 주춤했다.

이게 무어냐고 묻지 않고, 손기택은 서류 봉투를 열었다.

안에 있는 것은 증거물을 촬영해서 출력한 듯 정리된 서류들이었다.

그것도 뇌물 장부.

날짜, 장소, 뇌물, 사람까지 기록된 꼼꼼한 것이었다.

내용을 확인한 손기택이 고개를 들었다.

“이거…… 장세룡 겁니까?”

“예, 그거면 되겠죠?”

170억에 대한 오롯한 증거는 아니었다.

그러나 갖은 뇌물 수수가 기록된 내용으로 관련자를 수사하면 며칠 내로 기소도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이걸 어디서…….”

놀란 손기택이 말을 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어느새 태연하게 소파에 앉은 윤수혁은 정장 상의 단추를 풀면서 입을 열었다.

“제가 따로 확보한 겁니다. 그리고 언론에 먼저 푼 건 죄송합니다. 2월에 소치 올림픽이 있어서 불리하다고 판단했고, 어쩔 수 없이 급하게 터뜨렸습니다.”

“아, 아닙니다. 이런 게 있으면…… 그런 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손기택이 조금 얼떨떨한 눈으로 다시 내용을 확인했다.

전 보좌진들을 압수수색하고 체포도 했었지만, 명문화 할 수 있는 증거는 마련이 어려웠다.

했다고 해도 의도한 대로 구형이 선고될지도 몰랐고.

손기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팀장 부르겠습니다.”

“그러세요.”

인터폰 버튼을 누르자, 지검장 비서실에서 바로 응답했다.

“진 팀장 호출해.”

- 알겠습니다.

대답한 지 2분 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고, 부장급 검사인 나경호 게이트 특수수사팀 팀장 진도환이 모습을 드러냈다.

“윤수혁 최고위원님이시다, 알지?”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진도환이 꾸벅 고개 숙였고, 윤수혁이 인사를 받았다.

나이가 족히 스무 살은 더 많았으나, 진도환은 거리낌 없이 고개 숙였다.

윤수혁이 고개 인사로 받는 사이, 손기택이 입을 열었다.

“이거 받고, 수사 자료하고 대조해서 맞는 건 전부 영장 때려.”

뜬금없이 내미는 서류에 진도환이 머뭇대다가 손을 내밀었다.

손기택이 그랬듯, 진도환도 놀라서 눈을 껌뻑거리는 사이.

윤수혁이 입을 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 검사님.”

***

1월 말, 국회 의원회관.

“윤 최고,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예, 제가 나서서 굳이 합당하자고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조성현 당대표의 물음에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가 내게 합당 얘기를 흘렸느냐고 추궁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아니라고 했고.

합당에 관한 얘기는 어디까지나 보수신당의 불안한 심리를 흔들기 위한 것이었다.

약간의 성과도 있었다.

검찰청 취조실에서 쭈뼛대며 한두 마디 흘린 정도.

내가 바랐던 것은 그게 전부였다. 그랬기에 우리 당에는 조금도 얘기를 푼 적이 없었다.

풀 이유도 없었다.

보수신당을 좀 더 와해 하기 위해 친MB계의 전 최고를 이용했을 분.

“당대표님, 보수신당 찌라시 믿지 마십시오. 우리 당에서 직접 들은 사람이 있답니까?”

“보수신당에는 이미 소문이 퍼졌다고 들었습니다. 윤수혁 의원이 많이들 만나고 다녔다고.”

“업무 때문에 만나긴 했습니다만, 그게 답니다.”

“안 그래도 나경호 게이트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몸가짐 잘해야 할 겁니다.”

“그 점은 주의하겠습니다.”

“그래요, 가보세요.”

조 대표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당대표실을 나올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송신자는 보수신당의 한 의원.

그대로 통화를 종료시키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받을 가치가 없었다.

내가 말한 합당은 그저 쇼에 불과했다.

두 걸음 걷자마자 또 걸려 와서 이번에는 아예 스팸 처리해 버렸다.

국회의원끼리의 신의, 업계 평판 같은 게 있긴 하겠지만, 지금과는 사람과 상황이 모두 달랐다.

나와 접촉한 이들은 모두 장부에 이름이 있던, 그리고 장 의원과 접점이 있던 쓰레기들이었다.

쉽게 말해 내 적이었다.

그들에게 거짓말 좀 했다고 해서 내 신의가 어떻게 되진 않았다.

아무데나 집적거린 게 아니라, 넘어질 인간들을 골라서 붙잡는 척 쇼를 했을 뿐이었다.

영원한 적도, 아군도 어디 있겠냐고 하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들은 안 봐도 그만인 사람들이었다.

애초에 능력도 수준 이하인 이들이었고.

그렇게 몇 걸음을 더 걷는 사이.

또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장 의원의 기소를 알리는 연락이었다.

***

그날 저녁, 강남의 주상복합.

대검 차장 출신의 김상철이 한숨을 뱉었다.

“왜 한숨이야?”

맞은편의 장세룡이 인상을 썼다.

“어디서 200억짜리 뇌물이라고 기사까지 나서 국세청까지 움직인다더라, 한숨이 안 나올 수가 없다.”

“200억은 니미, 확인된 거 5억 밖에 안 되잖아. 어차피 나올 것도 더 없어. 5억만 막으면 그만이잖아?”

“안 그래도 다 검찰청으로 뛰어갔다.”

사학재단의 법무팀부터 인맥으로 이어진 검찰출신 변호사 몇이 검찰청에서 로비 중이었다.

이윽고 김상철이 무거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일단 법무팀에서 기자회견문 썼거든, 그거나 발표하자.”

“꼴랑 5억이야, 이 사람아. 무슨 기자회견문까지 발표해?”

장세룡이 짜증을 내자, 김상철이 고개를 저었다.

“여론은 지금 200억으로 알고 있으니까 문제지, 그러니까 회견문 발표해서 축소도 하고, 사과해서 분위기 좀 가라앉혀야 돼. 생각보다 밖에 많이 시끄럽다.”

“니미…….”

장세룡이 욕을 곱씹으며 두 장 짜리 회견문을 집어 갔다.

화도 나고, 마땅치 않았으나 장세룡은 반사적으로 회견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형광펜과 볼펜으로 표시한 중간중간의 포인트까지 봤다.

수십 년 정치하면서 익은 본능이었다. 그도 이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게 회견문 발표라는 것을 잘 알았다.

더구나 이틀 뒤면 임시회 일정이 끝나서 폐회가 선언될 것이었다.

구속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했다.

구속되면 직접 매스컴 앞에 서서 회견문 낭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능할 때 해야 했다.

이윽고 회견문을 완독한 장세룡이 김상철을 쳐다봤다.

표정이 유독 무거웠다.

“내 의원실에 있던 장부가 검찰 손에 있어, 알지?”

“……어, 내부자 소행 같아서 확인 중인데 보니까 다들 참고인 조사 받고, 이리저리 임의동행도 많이 했더라.”

“그래서? 누군데?”

“다들 말실수 한두 번은 했어. 파악하려면 시간 좀 걸린다.”

이번에는 장세룡이 한숨을 뱉었다.

윤수혁이 떠오른 것이었다.

합당론을 매스컴에 흘렸고, 보수신당 내부에서 떠들지 않았던가?

그 수작이 지금에 이른 게 아닐까, 장세룡이 생각하는 와중에 김상철이 몸을 일으켰다.

“내일 중앙당사 발표야, 차는 우리 걸로 타고 가자.”

그 말에 장세룡이 다시금 욕을 곱씹었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5억짜리 사건이 너무나 커져 있었다.

나경호 게이트며 200억이라는 소문, 보수신당 의원들의 조사까지.

어쩌면 구속되고 징역을 선고 받은 뒤, 3.1절 특사나 광복절 특사를 기다려야 할지도 몰랐다.

수의를 입는 생각에 장세룡의 입이 벌어졌다.

“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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