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35. 물타기 (1)
2014년, 드디어 해가 바뀌었다.
동시에 유명 아이돌과 인기 가수의 열애설이 터졌다.
새해 벽두부터 연예전문 온라인신문사에서 보도한 것이었다.
보도와 동시에 4대 일간지는 물론이고, 방송사, 케이블 등의 전국 언론사에서 일제히 열애설을 알렸다.
열애설 당사자를 취재하고, 과거 인터뷰를 재방영했으며 관련 발언이나 사진 등이 금세 스크린과 지면을 통해 뿌려졌다.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통해 전국민에게 알려진 탓이었다.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는 종일 두 사람과 관련된 검색어로 도배가 됐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경호 게이트는 묻혔다.
언론사 몇 군데에서만 꼭지 한 두개에 특별수사팀의 참고인 조사 소식을 알렸을 뿐.
그래도 수면 위로 나경호 게이트를 끄집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충격적인 기삿거리만 하나 나오면 됐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성상납과 폭행, 가족의 마약 투여 등이 있으니 증거 나오는 대로 충분히 이슈거리가 될 것이었다.
애초에 여론몰이가 다 비슷했다.
매번 발생하는 강력사건이나 연예계 이슈, 스포츠 스타의 논란 속에서도 여론을 움직이려면, 이따금씩 강력한 것들을 터뜨려 줘야 했다.
마치 시리즈물처럼.
그 와중에 손 지검장에게 전화가 왔다.
장 의원을 엮어 낼 기사를 준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 윤 최고, 일 하나만 해결해 주십시오.
급한 목소리.
단번에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알았다.
“말씀하세요.”
- 이번에 게이트 관련된 건데, 자리가 좀 필요합니다.
“자리요?”
예상치 못한 말에 되물었다.
검사에게 자리는 퇴직 후의 변호사 자리를 말했다.
하지만 손 지검장에게는 이미 공동 대표이사 자리가 기다리고 있지 않던가?
그것도 내 돈으로 만들어 준 법무법인이었는데.
손 지검장의 나직한 대답이 들려왔다.
- 평검 여섯, 부부장하고 부장급 하나씩…… 대기업이나 그에 준하는 수준이면 좋겠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할 수는 있었다.
내가 아는 대기업의 대관팀을 통하면 될 일이고, 정 안 되면 대화투자자문이나 내 개인 변호사로 고용해도 그만이었다.
애초에 손 지검장도 이곳저곳에 청탁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검찰 내부에서도, 언론에서도 특수팀을 예의주시하니 그럴 순 없으니 내게 부탁했을 터.
그러나 지금의 손 지검장에게 왜 자리가 필요할까?
“가능합니다만, 얘기를 좀 들어 봐야 되겠습니다.”
- 특수팀 전체가 출생지부터 샅샅이 털리고 있습니다. 특히 제 직속 후배들 위주고…… 그 중에 한 명은 징계에 회부됐습니다.
“총장 짓이겠네요.”
- 네, 상황 봐서는 특수팀 수사 대충 마무리 짓고 애들 지청으로 찢어 던질 거 같습니다. 저도 땅끝이나 바다 건너로 발령 날 겁니다.
그래서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구나.
지방으로 발령이 나고 언질을 들은 상관이 갈구기 시작하면, 결국 변호사 뱃지를 달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 사이, 손 지검장의 말이 이어졌다.
- 그리고…… 공안부장한테는 따로 로비까지 들어왔었습니다. 다행히 저한테 보고가 들어오긴 했는데, 이런 식이면…….
듣자마자 감이 왔다.
장 의원.
그가 위아래로 압박을 주고 있었다.
하여튼 머리는 잘 돌아갔다.
특수팀 구성이 끝나니까, 발등에 불 떨어진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검찰총장이나 법무부 라인으로 압박 주는 것뿐만 아니라, 밑에 부하 직원들까지 흔들다니.
내가 지검장 하나 믿고 움직여도 되는 건지, 헛웃음이 났다.
“감당되시겠습니까?”
- 됩니다, 지검장 고스톱 쳐서 딴 게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만, 자리만 약속 받으면 될 것 같습니다. 저야 갈 곳이 있지만, 밑에 애들 돌아갈 자리는 마련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법 단단한 대답.
역시 손 지검장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전부 한 급 위로 대우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던 여론만 커버해 주십시오. 연예계 스캔들도 그렇고, 조짐이 수상합니다.
이것도 장 의원이 손댔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재수가 따라 줬다는 말인데 그건 비현실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난 뒤.
계산기를 좀 두드렸다.
왠지 이번 일은 흐지부지 끝나게 될 것 같았다.
나 의원을 비롯해서 게이트에 엮인 몇몇은 징역을 살거나 벌금을 맞긴 하겠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원하는 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장 의원의 몰락.
결정적으로 그게 힘들었다.
자극적인 증거나 나오긴 하겠지만, 방해할 방법이 너무나도 많았다.
여론을 흔들만한 물타기 수단만 해도 어디 한두 개인가?
당장 며칠 전만 해도 대한민국 언론사가 열애설 보도하느라 난리를 쳤고, 여론도 눈이 돌아갔었다.
여기저기 로비한다고 해도 애초에 나한테 불리한 게임이었다.
무턱대고 찾아가 장 의원의 옆구리에 칼을 찔러 넣는 게임이면 모르겠지만,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절차를 밟아야 했다.
압수수색, 참고인 조사, 강제 구인…….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뻗쳐오는 마수를 견뎌야 했다.
나 의원의 장부는 그저 게이트의 시발점에 불과하고, 마무리는 결국 특별수사팀의 몫이었다.
나는 과정을 도울 뿐.
그렇게 머리를 굴리다 보니, 그래도 하던 이력이 있어서 그런지 몇 가지 방안이 떠올랐다.
한 번 시도 해 봐야 할 일이었다.
***
“윤 최고는 조 대표 라인 아닌가? 왜 나를 찾아와?”
친MB계로 분류 되는 행복한국당 최고위원 전성국이 묘한 눈을 해 보였다.
맞은편의 윤수혁이 어느새 쓰게 웃고 있었다.
“여태 저한테 라인이 있다고 보셨어요? 전 최고님?”
“그쪽이랑 죽이 잘 맞으니까 하는 소린데, 아니야?”
“그런 거 아닙니다, 조 대표한테 가서 물어보십시오. 제가 그 사람 라인인지.”
윤수혁의 덤덤한 말에 전성국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래 조성현 자체가 소위 독고다이로 유명했고, 윤수혁도 홀로 세력권을 형성하는 독자적인 존재였다.
“저는 우리 행복한국당의 번영을 꿈꾸는 일원입니다. 조 대표야 서로 합이 맞았으니까 어울린 게 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번에는 전 최고님하고 합 좀 맞춰보고 싶은데, 생각 있으십니까?”
“나하고?”
전성국이 한쪽 눈썹을 휘었다.
뭘 하려는 건지 궁금해서, 동시에 의심이 수반되어 그러는 것이었다.
“뭐가 남는데?”
“말씀드렸잖습니까, 우리 행복한국당의 번영. 그리고 의원님하고 저는 사람이 남지 않을까 하는데…….”
“사람? 무슨 소리야?”
의심이 끄트머리에 걸리고, 호기심이 훌쩍 튀어나왔다.
윤수혁의 얼굴은 그새 진중해져 있었다.
“그거 못 들으셨습니까?”
“뭐?”
“합당론이요.”
“애저녁에 나온 걸 무슨…….”
“아뇨, 장세룡 전 대표가 준비한 겁니다.”
대충 넘기려던 전성국이 움찔했다.
장세룡이 준비했다면 말이 달랐다.
당대표에서 물러났다지만, 장세룡은 여전히 세력이 강대했고 김정환을 옹립해서 다시금 당권을 틀어쥐려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가 추진했다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분당의 끝은 결국 합당이었다.
그사이, 전성국은 윤수혁을 향해 의심을 뱉었다.
“그걸 윤 최고가 어디서 들어? 장 대표하고 자네 사이 뻔히 아는데.”
“예, 아시면 잘 됐네요. 왜 이번에 조용히 넘어갔겠습니까?”
“그거야…….”
전성국이 말끝을 흐렸다.
그 뒷얘기까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기죽이려는 게 아니냐, 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게 아니냐는 추측만 했을 뿐.
“합당론 때문에 그랬던 겁니다. 자, 보십시오.”
윤수혁이 서류 봉투에서 내용물을 꺼냈다.
“정 그러면 가서 물어보셔도 됩니다. 이게 구라인지, 진짜인지. 장 의원님이 준비했던 거니까 바로 알아보실 겁니다.”
전성국이 얼른 서류를 확인했다.
합당설을 시작으로 명분과 언론 플레이의 가이드라인 따위가 제법 상세하게 적힌 것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박힌 보수신당의 워터마크.
장세룡에게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윤수혁이 거짓말을 칠 것 같지도 않았다.
전성국이 종이를 탁 내려놨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말투에 가시가 있었다.
모든 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윤수혁의 속내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맞은편의 윤수혁이 엷게 웃었다.
그리고 이틀 뒤.
[보수신당과 행복한국당 합당하나?]
[위기의 보수신당, 논란 끝에 결국 둥지 찾아가나?]
[행복한국당 대변인, “합당은 내부 논의한 적 없고, 보수신당의 자체 계획으로 보여.”]
신문을 확인한 장세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걸 왜 지금 터뜨려?’
그가 윤수혁에게 한참 전에 줬던 합당설이었다.
적당히 언론플레이할 수 있게 내준 것이고, 조건만 맞으면 합당할 생각으로 준 것이었다.
일이 틀어져도 윤수혁만 배신자 꼴이 나니 일 거양득이었고.
그런데 그게 지금에야 기사로 났다.
그것도 주체도 없이.
“어떻게 할까요, 의원님.”
공손하게 서 있던 4급 보좌관의 말에 장세룡이 콧바람을 내뿜었다.
“하급 실무자들이 논의하던 거고, 폐기했다고 해.”
“알겠습니다.”
“취재 요청, 인터뷰 알아서 다 끊고 원내대표 불러 와.”
“네.”
보좌관이 거듭 대답하고서 방을 물러갔다.
‘이걸 왜 지금 터뜨렸을까? 탈렌트 스캔들 지우려는 모양인가, 나 원…….’
입가를 씰룩거리는 사이.
그의 개인 사무실로 보수신당의 원내대표가 들어왔다.
장세룡과 동갑에 선수까지 같은 원내대표가 오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장 의원은 이거 무슨 일인지 아는구나?”
“알기는, 됐고. 우리 보좌관이 공보국하고 협조하니까 가이드라인 확인해서 콘트롤 좀 해 줘.”
“조용히 넘어가는 거야?”
“그래야지, 무슨 합당을 이런 식으로 해?”
“그래, 근데 뭐 좀 하기 전에 말이라도 해 줘. 나도 원내대표 가오가 있지.”
“흐흐, 알았네. 그럼 말나온 김에…… 이번에 전대에서 김정환 후보님으로 밀고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둬.”
“아니, 장 의원은?”
“나는 뒤에서 참모 노릇하는 게 어울려.”
“허, 당대표 자리 어울렸는데…… 알았어, 내가 우리 지역구 대 의원들 소집 한 번 할게.”
“그래, 행사도 하나 크게 해서 잡아주고.”
“어련히 하지, 그런 건.”
원내대표가 다 안다는 듯 웃었고, 장세룡이 신문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딴 거 얘기 나오는 거 없지?”
갑작스런 합당설이 신경 쓰이는 것이었다.
물론 여론 환기용으로 적당하긴 했지만, 상대인 윤수혁이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원내대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얘기?”
“신경 쓸 만한 거, 이상한 거…… 없나?”
장세룡의 말에 원내대표가 손을 내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휴, 원내대표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 써야 돼. 요새 그거 때문에 정수리 머리가 한 움큼씩 빠져.”
“……알았네.”
장세룡이 쓰게 대답하고 말았다.
어차피 나경호 게이트는 결국 대표자 몇 명만 처벌받고 흐지부지 끝나게 될 것이었다.
그 안에 있는 자신의 이름은 거론도 되지 않으리라.
장세룡은 그렇게 생각했다.
폐기한 합당론이 당내에서 돌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