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06화 (106/191)

# 106

33. 먹잇감 (1)

사퇴설이 나온 지 사흘 뒤.

장 의원이 결국 중앙당사 기자회견장에서 사퇴문을 낭독했다.

- 저는 당대표로서 이 모든 의혹과 비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수신당과 당원 동지들을 위해 이만 자리에서 내려오려고 합니다. 그동안 보수신당과 저 장세룡에게 응원의 말씀을 보내 주시고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혐의를 인정하거나 죗값을 받겠다는 말은 당연히 없었다.

그가 언급한 건 도의적 책임이 전부였다.

웬만한 의원들이 그러듯 당연한 말을 했고, 뻔한 변명을 한 것이었다.

들어 줄 말도 없었다.

이제 나도 남은 일을 진행해야 했다.

내부 단속과 결집을 위해 합당설을 흘려 보고, 백 기자에게 단독 기삿거리도 줘야 했다.

그래서 문건을 확인할 무렵.

한 통의 전화에 그 모든 게 싹 밀려났다.

박우식 정무수석.

그가 안부를 묻는 듯하더니 이내 예상치도 못한 말을 내놨다.

- 장세룡 대표 사퇴하고…… 김정환 고문 재 등판 한다던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김정환이라니?

전 대선후보에서 칩거하다시피 도망갔던 그를 말하는 건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월요회에서 국회를 담당하는 게 나와 그의 역할이었다.

어찌 모른다고 하랴?

심지어 그도 내가 아는 걸 확신하고 묻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얼른 머리를 굴렸다. 찰나 같은 시간에 판단하고, 응답하는 건 내가 오랜 세월 해 온 일이었다.

내 경험은 허투루 쌓은 게 아니었다.

아마도 김정환 당대표는 내정됐을 확률이 크고, 준비까지 마쳤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서 박 수석의 귀에 흘러들어갔을 것이었다.

판단이 끝나자 헛웃음이 날 뻔했다.

그래서 장 의원이 당 지도부에 복귀하더라도 딴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한 건가?

역시 그냥 물러날 리가 없지.

결론적으로 김정환을 당대표 자리에 두고, 2선으로 물러나서 손을 쓰겠다는 소리였다.

마침 김정환에 대한 소문도 잠잠해진 상황이었다.

친일 의혹과 논란 모두 옛날일이 된 지 오래.

이제 김정환이라는 빛바랜 흥행 카드를 다시 꺼내 쓰겠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당을 감싸고 죽을 만한 총알받이로 김정환을 장 의원이 골랐을 확률이 높았다.

대선은 먼 일이었고, 아직 정권은 1년차로 쌩쌩했으니까.

그래 놓고 자신은 일종의 비선이 되겠다는 속셈이겠지.

그래서 쉽게 물러난 것일 터.

나는 박 수석의 말에 동조하는 척하면서 되물었다.

“들었습니다, 그래도 장 의원은 어차피 옆에 붙어 있을 겁니다, 지도부에 복귀도 할 거고…… 수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저야 나라를 위해 일할 뿐이죠. 욕 덜 먹고, 좋은 말 듣게.

임기 1년차 정권답지 않은 말이었다.

욕을 너무 먹어서 그런가?

그의 태연한 말에 얼른 말을 이었다.

“그래요? 근데 제가 장세룡 대표하고 얘기한 게 있는데…….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다른 말을 꺼내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예전의 합당설 협상을 깨고, 펀치를 날려야 했다.

김정환은 야당이어도 도움이 안 되는 쓰레기였다. 머리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더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낙마 시키기.

아니면 장 의원이 했던 당대표 사퇴는 의미가 없었다.

어느새 박 수석이 물어 왔다.

- 얘기요? 무슨 얘기를 말하는 겁니까?

“당대표 사퇴를 조건으로 걸고, 조용히 넘어가자고 했었습니다.”

- 넘어가자는 건…… 요 근래에 있던 일들을 말하는 겁니까?

“비슷합니다.”

- 아! 윤 최고 작품이라는 거죠, 보수신당 난도질 했던 것들이 전부 다?

그가 약간 놀랐다는 듯 물어 왔다.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저도 나라를 위해서 잘못된 것을 고치려고 했었죠. 그게 답니다.”

- 하하, 우리 윤 최고 능력 좋네요. 10월이면 국정감사하고, 또 예산 딸 준비하느라 바쁠텐데…….

“저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 그럼 청와대에 불똥 튈 일은…….

“수석님도 아시잖습니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그건 그런데…….

고민하는 그를 압박하기 위해 얼른 뒷말을 이어 갔다.

“김정환 후보 올려놓은 이유 하나입니다. 대권 다시 잡겠다는 건데, 시작을 어떻게 끊겠어요? VIP 따라잡기가 아니라, 걷어차기 할 겁니다. 제가 시나리오 읊어드릴 필요는 없겠죠?

그제야 스마트폰 너머가 잠잠해졌다.

박 수석이 흔들린 것처럼 보였다.

아니, 흔들릴 게 뻔했다.

내가 별다른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당연한 말을 했었다.

심지어 이건 전생에 박 수석이 쓰던 언론 플레이의 한 방법이었다.

쉽게 말해 대통령 코스프레.

대통령의 시찰이나 행사를 분석해서 더한 이슈몰이를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소방서에서 장비를 둘러봤다면, 더 큰 소방서에서 아예 소방관 체험까지 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었다.

원래 당대표나 대권 후보들이 자주 써먹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면 대통령과 날을 세우며 라이벌 구도를 만드는 것인데, 이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대통령은 무조건적으로 타깃이 되는 법이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과 정부가 욕먹는 건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윽고 반 정도 넘어온 듯, 무거워진 목소리가 스피커를 넘어왔다.

- 생각해 둔 게 있습니까?

“예, 김정환 고문 나오기 전에 팔다리라도 하나 잘라야 됩니다.”

- 그게 무슨…… 아! 나경호 의원이요?

“예.”

- 아…… 그게 되겠습니까? 장 의원이 보이콧하고, 이거저거 걸고넘어지면서 협조 안 해 주면 쉽지 않습니다. 성미가 어디 보통입니까?

박 수석이 기다렸다는 듯 놀란 소리를 뱉어댔다.

내가 듣고 싶던 말이었다.

“청와대는 괜찮을 겁니다.”

- 그럼…… 방패를 자처하시겠다, 그겁니까?

“네, 나 의원 자료도 제가 준비했던 겁니다.”

- 으음…….

계산기를 두드리듯 침음을 흘리던 박 수석이 늦지 않게 말을 이었다.

- 확답만 주십시오, 장 의원 카바친다고 약속해 주시면 충북에 보궐석 만들어 놓겠습니다.

충북의 보궐석.

나 의원의 의원직을 상실시키고, 그 자리에서 선거를 치르게 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이건 검찰이 작정해야만 이뤄 낼 수 있는 일이었다.

만족스러운 말이었다.

“약속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러면 폐회 날짜 맞춰서 일 진행하겠습니다. 윤 최고님도 그 부분은 신경 써 주십시오.

국회 폐회일을 언급한 건 나 의원을 구속시키겠다는 의미였다.

폐회 시에는 불체포특권이 발효되지 않았으니까.

“물론입니다. 그럼 9일이나 10일인데, 준비되시겠습니까?”

- 여유가 없는 게 좀 걸리지만, 해 봐야지요.

폐회 당일은 12월 9일, 이튿날이 10일.

헌법에서 정한 폐회일로 진행 중인 게 있더라도, 무조건 폐회하고 다시 임시회를 열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폐회와 임시회 사이의 여유를 늘려 둘 생각이었다.

그게 마음대로 될진 모르겠지만, 여유롭게 하루 이틀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럼 나 의원의 구속도 확실해질 테니까.

“참고로 완전하게 비밀 유지 하셔야 합니다. 장세룡 의원 발 넓은 거 아시죠?”

- 그럼요, 저도 제 라인 꽉 쥐고 있습니다.

***

장세룡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12월 초순이었다.

그것도 국회 폐회일 즈음.

곧 임시회가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에 폐회가 갖는 의미는 없었으나,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게 따로 있었다.

바로 윤수혁과 합당설.

그것과 관련해서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이제 분위기 환기를 위해서 합당설이 터져야 했는데, 여전히 조용했다.

윤수혁도 내부 단속이나 정보통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라도 슬슬 다뤄야 할 텐데?

장세룡은 그 생각에 입가에 주름을 그렸다.

새로 생산되던 찌라시나 기사가 줄긴 했으나, 보수신당이나 자신을 향한 비난 여론이 쉽게 가시질 않않았다.

진보 성향의 언론에서 끈질기게 물고 놔주질 않는 것이었다.

물론 정부도 임기 1년차답지 않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렇게 장세룡이 본회의장에 입장할 무렵이었다.

우우웅-

품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

스마트폰을 꺼낸 장세룡의 표정이 굳었다.

검사 출신의 법무부 고위 공무원의 전화였다.

지금 이 시점에 전화를 걸어오다니?

이상한 낌새를 느낀 장세룡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날세.”

- 의원님, 긴급입니다! 회사에서 움직였습니다.

“무슨 소린가?”

- 국회, 국회로 갔습니다. 아직 담당검사하고 수사관까지는 파악되진 않았는데, 무슨 사고 치려는 거 같습니다.

장세룡의 이마가 꿈틀했다.

본회의장의 가장 뒷자리에 위치한 의석에 막 앉으려던 참이었다.

의원들 대부분이 도착한 상황이었고, 동시에 국회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곧 본회의가 시작될 참이었다.

“누굴 잡으려고 움직여?”

- 저나 다른 직원들은 철저하게 배제된 상태여서 저도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함구한 직원들 보면 전부 법무부 장관 라인입니다.

법무부 장관 라인.

쉽게 말해 대통령의 끗발을 가진, 대통령 전용 칼잡이들이었다.

민정수석실에서 검찰 출신의 비서관과 사무관 등이 있긴 했지만, 서류상 현직이 아니니 수사나 기소권은 없었다.

있는 건 유일하게 검찰 뿐.

“자네는 누구 덕에 밥 벌어 먹고 사는데 그거 하나 파악을 못해?”

- 죄, 죄송합니다. 저도 갑자기 이럴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보고 하려면 내용이 있어야지, 딸랑 움직인 걸 보고라고 해? 본회의 시작 했으니 알아보고 다시 연락하게.”

- 알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장세룡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통령이 왜? 나하고 드잡이질이라고 하겠다고?’

감이 오질 않았다.

법무부장관 라인이라니.

그러다 의석을 가로지른 복도 반대편에 눈길이 닿았다.

행복한국당의 당 지도부가 있었고, 윤수혁의 얼굴도 보였다.

장세룡이 막 시선을 옮길 때.

“……!”

윤수혁의 안광이 강렬하게 찔러 왔다.

그 순간 장세룡의 얼굴이 굳었다.

적의.

갑작스런 시선에 장세룡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굴이 굳었다.

‘윤수혁이……!’

이 모든 게 윤수혁의 수작이었다.

법무부 장관 라인이 움직였다는 것도 그러면 말이 됐다.

월요회를 이용해서 대통령을 우회하고, 검찰 옆구리를 찔렀을 수도 있었다.

‘저 놈이다, 저놈이 일부러 합당설도 감추고…….’

이렇게 되면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윤수혁이 딴 맘을 먹으리라 예상하진 못했으나, 대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보수신당에서 합당설을 흘리면 될 일이었다. 윤수혁과 의논했었다는 구체적인 내용과 증인으로 왔던 민간단체장의 신분까지 알려 주면 그만이었다.

여론은 금방 불이 붙으리라.

윤수혁을 배신자로 몰아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중요한 게 따로 있었다.

바로 김정환의 부활.

전 대권 후보였던 그가 뒷방에서 슬그머니 나오고 있었다.

다시금 미디어에 얼굴을 노출시키며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었다.

당대표 집권을 위해.

그리고 보수신당의 이미지 탈피와 변화를 위한 것이었다.

비록 김정환이 조금 주저하고 있긴 했으나, 장세룡 자신이 뒤에 있기에 상관없었다.

전략통으로 다시 한 번 움직일 때였다.

이윽고 장세룡이 전화를 들었다.

본회의장 2층에 있는 기자실에서 통화하는 게 보이겠지만, 지금 그런 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오늘은 윤수혁의 합당설로 시끄러워질 것이었다.

- 네, 의원님.

“합당 준비했던 거 흘려.”

- 지금 당장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장세룡이 법무부 고위 공무원의 전화를 떠올렸다.

사고 치려는 것 같다던 그 말.

고심 끝에 장세룡이 입을 열었다.

“……폐회하자마자 터뜨려.”

-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강의 준비를 해뒀다고 생각했었다.

본회의가 끝나고, 폐회 선언까지 했을 때 장세룡은 만족했다.

보좌관이 급하게 달려와 합당설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장세룡은 없었고, 윤수혁만 있었다.

나중 되면 다 드러날 일이지만, 후속보도 보다는 초기 보도가 중요한 법이었다.

정정보도도 결국 조용히 나갈 뿐.

우우웅-

다시 이어진 진동음.

예의 법무부 고위 공무원이었다.

“그래, 확인은 해 봤…….”

- 구속영장 때렸습니다! 나, 나경호 의원! 방금 구속영장 났습니다!

국회를 나오던 장세룡의 시선이 멈췄다.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아주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먹잇감을 찾은 육식동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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