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32. 자, 이제 시작이야 (3)
전화를 받은 나경호의 눈가가 떨렸다.
- ……문을 열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열긴 했는데, 일단 제가 최대한…….
스마트폰 너머에서는 4급 보좌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넘어왔다.
주요 문건은 따로 치웠으며 막으려 했지만 별 수가 없었다는 변명.
그러나 나경호에게 그런 말은 들리지 않았다.
갑작스레 닥친 상황 때문이었다.
압수수색.
의원실은 물론이고, 충북의 지역구 사무소와 아파트까지 검찰 수사관과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도대체 왜? 누가? 어떻게? 나한테?
나경호의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그가 여전히 당황스러워하는 사이, 목소리 하나가 그를 흔들었다.
“도착했습니다, 의원님.”
7급 비서의 목소리.
정신을 차린 나경호가 얼른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강남의 한 호텔.
당 중진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던 장소였다.
레스토랑으로 곧장 올라가던 그가 돌연 한 사내에게 가로 막혔다.
“최고위원님.”
“뭐야? 아, 김 비서!”
장세룡의 수행비서인 사내를 알아보고, 나경호가 반갑다는 듯 물음을 이었다.
“대표님은 안에 계시지?”
그러나 수행비서는 딱딱한 대답을 내놓았다.
“죄송합니다만, 오늘 식사 자리는 취소한다고 하셨습니다.”
“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게 무슨…….”
나경호가 당황스런 감정을 드러내는 사이, 사내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통화 연결 중인 상황.
나경호의 눈이 화면의 번호를 확인하고는 스마트폰을 받았다.
- 어, 날세.
장세룡이었다.
“대표님!”
- 그래, 나 최고. 지금 보니까…… 만날 상황이 아니야. 자네도 일 터졌으면 얼른 의원실이든, 집이든 수습하러 가야지?
“제가 가서 무슨 수습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 그럼 지금 이 상황에 우리 당이 모여서 밥 먹는 게 좋은 그림 같은가?
“하지만…….”
- 어허, 이 사람이. 자네 최고위원까지 단 사람이 왜 이리 감이 없나? 재선은 운으로 했어?
약간 높아진 장세룡의 언성.
나경호가 결국 한숨을 뱉었다.
“……아닙니다.”
여기서 말을 덧달거나 대들 수는 없었다.
자신을 정치계에 입문시킨 것도, 보수신당에 이끌고 간 것도, 최고위원이란 자리를 만들어 준 것도 바로 장세룡이었다.
쉽게 말해 왕.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개인적인 관계 이전에, 장세룡은 당의 자금을 대는 사학재단의 일원이며, 정관계에 다양한 인맥을 자랑하는 재벌가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머리까지 좋았다.
재선이후부터는 당의 전략통으로 알려질 만큼 뛰어난 사람이었다.
새한국당 시절, 정책위의장이란 자리도 단순히 당연직 최고위원에 껴 주기 위해 내준 게 아니었다.
당의 입장과 정책을 조율할 실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장세룡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가서 자네 식구들 달래기나 해, 지금 같이 어수선한 때에 모여서 좋을 거 하나 없어. 작당한다고 분탕이나 치지, 알겠나?
“알지요…….”
- 쯧쯧쯧, 목소리에 힘이 왜 이리 없나? 압수수색 갖고…… 이거 그냥 오해야, 오해. 구속 될 일도 없고 시간 지나면 엎어질 문제야.
“…….”
나경호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로만 쉽게 넘어갈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의 품에 있는 스마트폰은 열심히 진동하고 있었다. 기자, 지역 유지, 보좌진, 가족들…….
그사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던 장세룡이 말을 이었다.
- 그럼 가 봐. 아…… 그리고 그것들 단속은 해놨나?
불법사찰에 이용한 폭력 조직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돈으로 무마했고, 만난 건 기록으로도 남기지 않았었다.
추궁하면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그건 걱정 안하셔도…….”
- 확실한가?
“혹시 뭐 걸리는 게 있으신지…….”
- 아냐, 됐네. 이만 끊지. 내가 다시 연락하겠네.
“들어가십시오, 대표님.”
통화 종료 뒤, 비서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준 나경호가 이를 악물었다.
‘말로 떠들어서 될 일이 아니지, 이게 무슨…….’
조금의 언질도 없었다.
장세룡조차 자신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그조차도 모르고 있던 게 분명했다.
알았더라면 당연히 말을 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만약에 알고도 말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그냥 넘어가기 힘든 일이었다.
나경호가 뒤따라 올라오던 수행비서에게 손짓했다.
“차 빼!”
“네? 아, 네!”
수행비서가 다시금 황급하게 몸을 돌리는 사이.
나경호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
불이 붙을 대로 붙었다.
보수 신문사에서 눈치를 보고 있긴 했으나, 지상파와 진보 언론사, 그리고 여론이 가만있질 않았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가 있던 오후부터는 시민단체들이 모였다.
[진실을 밝혀라!]
[나경호 사퇴 OUT]
조악한 피켓이었지만, 기자들이 찍기에는 괜찮은 그림이었다.
국회 정문과 그의 충북 사무소 앞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걸 어떻게 안 거요?”
두 의원이 나를 찾아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고, 조 대표는 나를 당대표실로 호출했다.
그리고 내게 한 첫 마디는 앞서 찾아왔던 둘과 같았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제가 당한 게 있었습니다. 그걸 쫓다 보니 나경호 의원까지 나온 겁니다.”
“당했다니요?”
그 말에 고민하는 척 연기했다.
대답을 해야 할지, 말지,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원래부터 말해 줄 생각이 없었지만, 일부러 좀 시간을 좀 끌었다.
대답을 미리 준비했다는 인상을 주기도 싫었고, 그렇다고 그의 말을 칼처럼 자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게 나았다.
그를 내 편으로 만들 생각이니까.
웬만하면 조 대표를 내 편으로 데려 갈 생각이었다.
이 바닥에서 몇 안 되는 쓸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조 대표가 당의 쇄신이나 정치 변혁을 도모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행복한국당에 조 대표에 준하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만큼의 인지도와 권한을 가진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느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건 개인적인 일이라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습니다.”
내 말에 조 대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요. 그럼 이게 전부입니까?”
“실은 더 있긴 한데…… 이건 듣지 않는 게 낫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워낙 저급한 거라서…….”
내 말에 조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에 해당(害黨)으로 의심되거나, 그런 기미가 보이면 미리 말해 주세요. 아무리 윤 최고라고 해도…… 당대표로서 두고 볼 순 없습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요, 그럼 가보세요. 우리 당 입장은 내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정하니까 필히 참석하세요.”
“예, 꼭 참석하겠습니다.”
그렇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당대표실을 나오던 무렵.
스마트폰이 바쁘게 진동했다.
누군가 확인하는 순간, 웃음이 났다.
장 의원이었다.
***
지금의 4대 일간지나 지상파 3사는 매번 비슷한 타이틀을 내놓는 상황이었다.
[李대통령, 수자원 가치 저평가 말실수해]
[혁신정부, 국무위원 후보자 자진 사퇴…… 끝없는 인사 난항]
준비가 덜 되고, 부족한 대통령 때문에 청와대를 향한 비난이 들끓는 와중이었다.
장세룡은 그 상황을 이용했다.
정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덜어 주겠다며, 야당인 행복한국당을 걸고넘어진 것이었다.
정확히는 정무수석인 박우식과 연락했었다.
판을 깔아줄 테니, 검찰을 움직여달라고 부탁했고.
그래서 박우식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증거 불충분에 혐의 입증이 어려우므로, 검찰 압박은 흉내만 내기로 사전에 협의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연예인 스캔들이 터지거나, 강력 사건이 터지면 금방 묻히니까.
그리고 그런 사건은 검찰에서 시기를 봐서 종종 터뜨리기도 했었으니, 때를 살피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일이 진행됐었는데.
그게 세 시간 만에 묻힌 것이었다.
웃긴 건 그다음이었다.
행복한국당에 심어 둔 의원 하나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 대표님! 이거 윤수혁이가 준비한 겁니다, 그리고 좀 불경한 말을 했는데…….
지금 이 상황보다 불경한 게 더 있을까 싶은 장세룡은 다음 말에 쌍욕을 뱉었다.
‘이제 시작이라고?’
화가 났으나, 장세룡이 고를만한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그중 가장 적절한 게 바로 합의였다.
사회적 연륜과 정치력이 노회한 그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명백한 위법 증거도, 윤수혁을 압살할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 땅이 중국이나 러시아였으면 모르겠지만, 여긴 한국이었다.
더구나 정치판.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곳이었다.
애초에 윤수혁이 눈엣가시로 여겨지긴 했으나, 절대 악인 적은 없었다.
그저 본능과 직감이 윤수혁을 짓누르라고 지시했을 뿐.
결국 장세룡은 윤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상황을 떠보고, 이제 시작이라는 말의 진위를 알아보며, 합의를 구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짧지 않은 통화연결음이 지나고.
윤수혁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을 넘어왔다.
- 여보세요.
“날세.”
- 예, 그런데요.
장세룡의 눈썹이 움찔했다.
선배에 대한 예우나 연장자에 대한 예의가 전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하고 있었다.
“이번에 나 최고위원 찌른 게 자네라면서?”
- 말씀 계속하세요.
연이은 태연한 목소리.
자신이 이래서 윤수혁을 꺼린 것인지, 짤막하게 생각하다가 말을 이어 갔다.
“……이렇게 시끄럽게 만들 필요 있나? 어차피 구속영장 청구도 못해.”
국회의원에게는 불체포특권이 있었다.
현행범을 제외하고는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하지 못하게 만든 법.
한마디로 국회의 동의 없이는 구속 영장 청구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들려온 목소리에 장세룡이 멈칫하고 말았다.
- 그래서요?
쓰…….
다문 치아 사이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장세룡이 결국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윤수혁이! 너 뭐하자는 거야? 네가 원하는 게 뭐야?”
- 본인이 전화주시지 않았어요?
장세룡이 이를 갈았다.
‘내 이래서 처음부터 싹을 밟아 놓으려고 했는데…….’
바로 이거였다.
원내에서 윤수혁이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은근한 적의, 그리고 경계.
그걸 일찌감치 느낀 것이었다.
지금만 해도 모른 척하고 가볍게 말하고 있었으나 말투나 내용, 숨소리까지 전부 적개심이 스며 있었다.
명백한 악의.
- 여보세요? 안 들리나…… 엘리베이터 타셨어요?
“너……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지?”
- 무슨 말씀이세요?
“첫날, 네 눈빛이 이제 생각나는구나. 모르는 사이인데 아는 것처럼 쳐다봤지.”
- …….
대답이 없자, 장세룡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건 확신이었다.
“아는 놈 정도가 아니지, 죽일 놈이야. 안 그런가?”
- 그게 용건이세요?
긍정으로 들린 대답에 장세룡의 입가가 찢어졌다.
“흐하하, 이 새끼 봐라. 너 뭐야? 너 같은 놈이 나를 어떻게 알아?”
- ……전생에 악연이었나 봅니다.
“같잖은 소리 집어치우고 말해 봐. 그게 뭔지 알아야 풀어 줄 거 아닌가? 아니면 내가 알아야 네 비위라도 맞춰 주지?”
연이은 장세룡의 말.
잠시 잠잠하던 스마트폰 너머에서 딴 말이 건너왔다.
- 때려잡았다는 개가 덤벼든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편할 겁니다.
“……뭐?”
장세룡이 주춤하는 사이.
전화가 끊어졌다.
개를 때려잡았다는 건 윤수혁에게 말한 적 없던 얘기였다.
정치권에 들어서는 떠올린 적도 없던 것이었고,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굳이 꼽자면 고향 친구들에게 캐물어야 들을 수 있는 얘기였다.
설마 윤수혁이 찾아간 걸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랬을 것 같진 않았다.
머뭇대던 장세룡의 입이 뒤늦게 열렸다.
“도대체 뭐하는 새끼야,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