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28. 네가 감히? (5)
6월 두 번째 주말.
오전에 북서울꿈의숲에서의 행사를 마친 뒤, 벤츠 쿠페를 끌고 노원구의 단독주택을 찾아갔다.
한사랑을 내려다줬던 집이었다.
주차모드로 놓고 스마트폰을 꺼내는 사이.
똑똑똑-
가벼운 노크 소리에 시선을 들었다.
운전석 창가에 웬 남성이 다가와 있었다.
제법 덩치가 있는 체격이며 각진 턱이 묘하게 익숙하다 싶었는데, 창문을 내리려다가 알았다.
한사랑의 친부, 안드레 한이었다.
덜컥.
문을 열고 내리자, 그가 동그란 눈을 해 보였다.
“안드레 한 씨, 아니…… 한사랑 씨 아버님 맞으시죠?”
“아, 네. 윤수혁 의원님?”
“맞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자, 안드레 한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솥뚜껑만한 손바닥.
악수를 나누는데 마치 돌덩이를 붙잡은 듯한 느낌이었다.
가만 보니 하계 스포츠 웨어 안에 어깨며 가슴 근육이 상당히 부풀어 보였다.
내가 빠르게 훑는 사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하게도 딸이 아직 준비 중이라…….”
“괜찮습니다, 제가 좀 일찍 왔습니다.”
“더운데 안에서 기다리시지요. 음료라도 대접하겠습니다.”
벤츠 안의 에어컨으로 충분했지만, 장인의 요청을 어떻게 거부하리?
더구나 기다렸다는 듯 안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웠지만 그의 말에 따랐다.
설마 위험한 일이 있을까?
내 기억 속의 강 사장을, 한사랑을 믿었고, 손목에 차고 있는 스마트워치를 믿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권팀장과 직원들이 뛰어들어올 것이었다.
그렇게 들어간 대문 안.
“와, 정원이 멋있습니다.”
파란 잔디와 나무, 흰색 석재로 만들어진 분수대, 그리고 어린 천사를 형상화한 조각상들까지.
넓진 않았지만 꽤 호사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제 안사람이 러시아 사람이라서, 러시아식으로 꾸며 본 겁니다.”
이윽고 아이보리 드라이비트로 마감한 2층 주택에 들어갔다.
깨끗한 앞치마와 단색 옷을 입은 중년 여성이 고개 숙였고, 안드레 한이 설명하듯 말을 달았다.
“일 봐주는 사람입니다.”
“아, 예.”
나도 꾸벅 고개 숙이고 들어선 실내는 꽉 찬 부잣집 느낌을 풍겼다.
백색의 대리석과 페인트, 벽난로와 금빛 띠를 두른 화분, 조각상 등등.
호화로웠지만 우리나라의 흔한 부잣집 같진 않았다.
“편히 앉으십시오.”
“예.”
민트색이 섞인 화려한 문양의 소파에 앉자, 예의 아줌마가 기다렸다는 듯 음료를 내왔다.
안드레 한이 금세 말문을 열었다.
“제가 인사가 늦었습니다, 원래 먼저 뵀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제가 인사드렸어야죠. 이렇게 뵐 줄은 몰랐습니다.”
“나랏일 바쁜 거 잘 압니다, 오전에도 공무 보시지 않았습니까?”
“공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떻게 아셨어요?”
“딸아이가 만나는 분이니 좀 찾아봤습니다. 의정 홍보 블로그에 행사 예정표가 있더라고요.”
꼼꼼한 면이 있구나 싶었는데.
“이번에 전당대회에도 나가신다고…….”
금요일에 공식 선언을 했었고, 그럴싸한 미사여구와 확고한 의지를 담은 연설문을 게시했었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등 올릴 만한 곳 전부.
이틀 전인데 그것까지 확인한 모양이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게 없을까요?”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없습니다.”
“아니면 의정활동에 보탬이 될 순 없겠습니까? 제가 러시아를 꿰뚫진 못해도 겉핥기로 아는 부분이 꽤 많습니다.”
그의 태도가 진지해졌다.
“글쎄요, 있긴 합니다만…… 공적인 문제라서…….”
“국가든 개인이든 해결하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재차 말하는 안드레 한의 눈에서 의지가 엿보였다.
해 내고자 하는 결심까지 보였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열성적으로 반응할까?
내가 독대하기 힘든 국회의원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사윗감이라서 그런지 모를 일이지만.
궁금했다.
안드레 한의 능력도, 의지에 불타는 눈도 과연 어디까진지.
“제가 국방위 위원이라 무역이나 경제 쪽은 많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말씀드릴 것도 그런 쪽인데…… 안 들으시는 게 마음 편하실 겁니다.”
“무역업에 어떻게 무역만 있겠습니까? 국가 간의 외교가 개인 간의 문제로 번지고, 국방의 문제로 무역업이 휘청하니 다 같은 울타리가 아니겠습니까?”
말하는 그의 모습이 꽤 노련했다.
“제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 자체로 영광인데, 어떻게 기회를 걷어차겠습니까.”
“웬만한 의원들만큼 말씀을 잘하시네요.”
“말뿐이겠습니까?”
그러면서 웃는 그의 각진 얼굴이 희한하게 믿음직스러웠다.
투박한 얼굴의 권 팀장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럼 제일 어려운 것부터 말씀드려 볼까요?”
“뭐든 좋습니다.”
“먼저 핫라인.”
“……핫라인이면 직통 전화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국가 원수 간의…….”
농담 삼아서 꺼낸 말인데, 안드레 한의 눈빛이 쉽게 꺼지질 않았다.
핫라인이 어디 개인의 힘으로 해결이 될 일인가?
한국의 핫라인은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미국과 일본이 전부였다.
그 말인즉슨, 코앞이나 다름없는 중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핫라인이 없다는 뜻이었다.
연락하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단계를 거쳐야 했다.
그 사이에 들려온 안드레 한의 목소리에 나도 주춤했다.
“제가 국경수비대는 조금 아는데…… 다음으로 쉬운 게 있습니까?
“그다음은 한러 군사 관계입니다. 한미동맹, 한일 협조체계, 한중도 최근에는 합참의장이 국방외교를 했었는데, 러시아만 빠져 있습니다. 러시아 와 국가 간 외교나 협력이 필요합니다.”
“포괄적인 개념입니까?”
“그런 셈이죠. 할 만한 게 있겠어요?”
“해 볼 만한 게 조금 있는데, 제가 확인해 보고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걸 로도 족합니다.”
“제 집사람도…… 아, 카챠.”
한사랑의 러시아 이름 예카테리나의 애칭, 카챠.
그 말에 시선을 돌리자, 2층에서 내려오는 한사랑이 보였다.
첫 만남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하늘하늘 거리는 블라우스에 연한 화장.
농염함은 어딜 가고 상큼하고 부드러움으로 바뀐 모습이었다.
“그럼 제 딸아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아, 여기 제 명함입니다. 다음에는 집사람까지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지금 사교 모임을 나간 바람에…….”
“고맙습니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
명함교환까지 마치자, 어느새 1층에 내려온 한사랑이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아빠가 일중독이에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준비 다 하신 겁니까?”
“네!”
그녀의 대답에 전당대회 준비 때문에 탁해졌던, 그리고 일 얘기를 하느라 가라앉아 있던 마음에 바람이 불었다.
이래서 여자를 만나야 했다.
그것도 한사랑처럼 아름답고, 매력 넘치는 여자.
나는 그녀를 차로 에스코트하고, 배웅나온 안드레 한과 짧은 악수를 나누었다.
“의원님, 제가 연락 드려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 * *
평택 라마다 호텔.
수원지검 평택지청의 형사2부 부장검사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까만 체어맨을 바라봤다.
기계적으로 차번호를 확인한 그가 옷매무새를 고쳤고, 문 앞에 도착하는 차를 기다렸다.
끼이익.
에폭시 코팅 처리된 표면 위로 타이어 가 마찰음을 내면서 멈췄다.
덜컥.
문이 열리고 신경배가 자리에서 내렸다.
동시에 옆자리에서 나이 지긋한 정장 차림의 사내가 내렸고, 조수석에서는 장년의 사내가 내렸다.
“안녕하십니까, 부장검사 이덕천입니다.”
“…….”
신경배 대신에 옆자리에서 내린 60대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 17기 박재관이야.”
“아, 네. 32기 이덕천입니다.”
“들어가지.”
변호사의 말에 부장검사가 꾸벅 고개 숙인 뒤 앞장서서 움직였다.
갖고 있던 호텔 키로 자동문을 열었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호텔 방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있던 두어 명의 사내들이 일어났다.
90도로 접히는 허리에도 신경배의 안색은 굳어 있었다.
짜증 났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이곳까지 행차하게 만들어서.
호텔 방 안은 취조실처럼 대면할 수 있게 테이블과 의자, 노트북과 각종 서류들이 세팅된 상태였다.
수사관들이 조용히 방에서 나오는 사이, 부장검사가 신경배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의자 앞에 선 신경배가 꾹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지청장이 뭐라든?”
“최대한 편의를…….”
“헛소리 하지 말고, 내가 지금 조사 받으러 여기까지 왔겠어? 지청장 지시 받았을 거 아냐? 그거 말하라고!”
신경배가 힘을 주자, 부장검사가 옆에 선 보좌관을 바라봤다.
“따로 들으시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의원님.”
“뭐?”
신경배가 얼굴을 구겼다.
보좌관까지 빼라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만한 사이즈의 일이 아니었다.
08년도 총선 얘기는 공직선거법에 해당하므로 공소시효가 끝난 일이었고, 보도된 일은 자신이 아닌 친척과 지인의 명의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호텔 방에 온 게 아니었다.
당장 옆에 대동한 변호사만 해도 평택지청장의 직속 선배였다.
또한 검찰 출신의 새한국당 의원들과 현직 법조계 고위층,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을 통해 평택지청에 전방위로 압박을 넣었다.
조금 과한 조치였다.
그러나 신경배는 본능에 따라서 바쁘게 통화를 했고, 접대를 했었다.
감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온겨레 일보도 그렇고, 검찰도 그렇고 정중했으나, 태도가 묘하게 강경했다.
아직 제대로 된 칼을 드러낸 게 아니라는 뜻.
신경배는 결국 보좌관에게 눈짓했다.
“나가 있어.”
“네, 의원님.”
보좌관이 얼른 나가고 난 뒤, 여전히 서 있는 신경배가 마주 선 부장검사에게 턱짓했다.
“말 해.”
“앉으시면…….”
“오래 있을 생각 없어, 말이나 해.”
고압적인 태도.
그러나 부장검사는 깍듯하게 고개 숙였다.
신경배라는 사람 한 명 때문에 평택지청에 청탁과 부탁을 이유로 온갖 전화가 왔었다.
그것도 거절하기 힘든 선배나 지인들이었다.
부장검사는 자신의 자리에도 앉지 못한 채, 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으로 마무리 지으시겠답니다.”
“무슨…….”
신경배가 움찔했고, 정신 차린 변호사가 얼른 물었다.
“그게 선고 형량이 아니고, 최종 판결이라고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야, 이……!”
변호사가 일갈할 무렵.
“정부출연금 42억 상당을 횡령한 허위업체 파피하이테크, 루스어패럴의 실소유주가 의원님이시잖습니까?”
“……!”
신경배의 동공이 커다래졌다.
“그리고 28억의 정부 출연금을 횡령한 7개의 허위 업체의 자금 역시 총선 무렵 선거사무소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선거 직전인 3월 15일, 16일 두 차례에 걸쳐서요. 당협위원회 간부 마흔일곱 명에게 총액 1억5천만 원이 전달되었고…….”
“그만!”
견디다 못한 신경배가 소리쳤다.
부장검사가 마치 본 것처럼 읊어 대고 있었다.
‘육시럴…….’
정적이 내려앉는 사이,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의원님 편의 봐드리는 선에서 진행하겠습니다. 형량도 가장 낮게 조절한 겁니다. 그 이하는 더 이상 어렵습니다.”
“……그래서?”
“네?”
“재판세우는 거 알려 주려고 불렀어? 조건이 있을 거 아냐?!”
“다른 법적조치나 논란 없이 순응하시길 바랍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날로 커지고 있어서…….”
“희생양도 필요하다, 이 말인가?”
“……죄송합니다.”
부장검사가 깍듯하게 고개 숙였으나, 신경배가 한숨을 뱉었다.
이번 건 해결 방도가 보이질 않았다.
정치인생이 끝난 건 아니겠지만, 당대표도, 월요회도 물 건너간 셈이었다.
이건 평택지청장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었다.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
그도 아니면 민정수석의 수준에서 내려올 지시였다.
짧은 추측 끝에 신경배가 미간을 구겼다.
‘이래서 정무수석도 한 발 뺐다는 거지…….’
자신은 아직 당대표가 아니었다.
새한국당의 권력도 자신에게 몰린 게 아니었고.
신경배가 앞에 놓인 물을 마셨다.
그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다.
‘두 달만 늦게 터졌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