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90화 (90/191)

# 90

28. 네가 감히? (4)

6월 초순.

신경배는 일찍부터 전당대회 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위법 사항이지만 방법은 많았다.

예컨대 현수막.

투표 독려로 위장해서 개인 이름을 홍보하는 현수막은 공직선거법에 걸릴 게 없었다.

옥외광고물관리법에 의하면 불법이지만, 그조차도 비영리 목적이라고 정하게 되면 옥외광고물관리법 예외조항에 적용되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정책성을 띤 사업의 서명 운동, 주요 지역구의 행사에 방문하여 축사를 하는 일 등등으로 편법은 숱하게 많았다.

사적인 경우는 더했다.

주요 당직자의 포섭, 시도당위원회나 각 지역 당협위원회에 대한 압박과 회유, 지역 유지들과 회식까지.

방법은 더 많았다.

누군가 떠들게 되면 논란이 될 일이었으나, 신경배는 그 모든 걸 무시했다.

대한민국의 최대 다수당의 당대표는 그 모든 걸 감수하고도 할 만한 자리였다.

당대표는 발언권부터 힘의 크기가 달랐다.

또한 당 전체를 움직여 입법을 추진하고, 정책의 발목을 잡으며, 각종 사업에 관여할 수 있었다.

더구나 정권을 탈환할 능력을 가진 정당이 아니던가?

예비 대통령이나 다름없었다.

신경배가 정책토론을 이유로 대의원과의 오찬 자리를 마련했을 때였다.

4급 보좌관이 신경배에게 달려왔다.

“뭐야?”

“으, 의원님. 기사 확인을…….”

다급하게 뱉는 말에 신경배가 좌우의 대의원들을 보다가 태블릿PC를 받아 들었다.

[(단독)신경배, 정부출연금 20억 비리 의혹]

신경배의 눈가가 움찔했다.

‘쯧…….’

속으로 혀를 찬 신경배가 표정을 고치며 좌우를 둘러봤다.

“잠깐 자리 찬 비울테니 편히 식사들 하고 계세요.”

“아, 다녀오십시오. 의원님.”

훌쩍 일어난 신경배가 잰걸음으로 연회장을 나왔고, 4급 보좌관이 초조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이윽고 연회장 문을 여닫는 순간.

“기사 내리라고 해.”

“지금 신문사하고는 접촉했습니다만…….”

“했는데 뭐?”

“그게, 안 내릴 것 같습니다.”

“무슨 말 같잖은 소리야?!”

“워낙 강경해서…….”

보좌관이 말끝을 흐렸다.

또박또박 말했다가는 신경배에게 쪼인트를 까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뒀어?”

“일단 김 변호사하고 얘기는 했습니다.”

그 말에 신경배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국회의원 즈음 되면 아는 기자들이 꽤 있기 마련이었다.

“신문사 어디라고?”

“온겨레일보입니다.”

“온겨레…….”

나직하게 중얼거린 신경배가 인상을 찡그렸다.

온겨레일보는 반보수, 진보 성향의 신문사였다.

그래도 온겨레 출신의 아는 인맥이 있으니, 전화는 해 봐야 했다.

보도국장 출신의 관훈클럽 회원이 하나 있었다.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른 뒤.

“바쁘신가?”

- 아이고, 신 의원님. 기사 때문에 전화주셨소?

“벌써 아시는 모양이네.”

- 후배가 그랬는데,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거 좀 내리고, 조용히 해결 봤으면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 글쎄요, 이번 건 그게 힘들겠는데.

“아니, 왜? 내가 도와줄 게 있으면…….”

- 확실한 것 같아요.

“뭐요?”

- 가진 게 확실하대서 터트리자마자 검찰하고 통화했다던데…… 차라리 검찰하고 연락하는 게 나을 거요.

신경배의 눈가가 떨렸다.

신문사가 조금도 굽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확실하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신경배가 얼른 태블릿PC를 낚아채서 확인했다.

제목을 누르고 본 기사.

읽지도 않았던 내용을 이제야 보는 것이었다.

방금 보좌관을 통해 기사를 봤을 때는 의혹 자체에 대한 불쾌감이 전부였다.

정부출연금이니, 20억이니, 하는 기사 제목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비슷한 일이 한두 번이던가?

신경배는 언제, 어떻게 저지른 일인지 예상조차 하지 않았다.

편법으로 눈 먼 돈을 착복하는 일도, 그 정황만 가지고 기사를 쓰는 것도 늘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넘기려고 했었는데, 기사 내용이 입술을 씹게 만들었다.

[신경배의 친척과 지인 등이 운영하는 7개 업체가 2008년,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하 산기평)으로부터 기술개발비 명목으로 정부출연금 20억 원을 지원 받았으나, 이후 부도처리하거나 폐업하여 돈만 받아 챙긴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는 산기평의 정부출연금 20억이 18대 총선에 흘러 들어갔는지 여부를 파악 중에 있으며, 평택지청에서 해당 사건을…….]

신경배의 인중에 땀이 맺혔다.

연회장부터 복도까지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내려앉는데도, 신경배는 이마며 목덜미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무엇인지 기억난 것이었다.

2008년도의 일이었다.

액수에 차이가 있긴 했지만, 기사에 명시된 연도, 산기평, 정부출연금, 그리고 19대 총선에 자금을 사용한 것도 전부 사실이었다.

급하게 머리를 굴린 그가 입을 열었다.

“김 보.”

“네, 의원님.”

“기자들한테 전화 돌리고, 걸려오는 연락은 수습해. 여기도 알아서 하고.”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떨리는 속내를 감추며 대답했다.

이 사건이 왠지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예상을 한 것이었다.

보통 일 터지기 전에 미리 언질이 있거나, 무마될 게 빤히 보였는데 이번은 아니었다.

친인척 비리를 신경배 본인의 비리로 몰고, 18대 총선 자금이라고 의심한다?

터져도 크게 터질 것 같았다.

이런 단독 보도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뭔가가 있지 않는 한.

* * *

“이게 무슨…….”

신 의원에 관한 기사였다.

뜬금없는 2008년도의 정부출연금 비리 의혹.

더구나 총선과 엮는 내용이라니?

보자마자 감이 왔다.

월요회를 진행해 달라고 말한 지 며칠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건 단순히 월요회 퇴출과 가입이 아니었다.

신 의원을 아예 언덕배기에서 밀어 버리겠다는 속셈이었다.

비록 시작은 신문사의 보도에 불과하지만, 검경에서 움직일 게 뻔했다.

그다음은 수사, 구속, 기소였다.

현직 의원이니 회기 중에 잡아넣을 수는 없을 테고, 거물이니 수사 계속 여부나 형량 조절을 하겠지만, 그게 쉬울 것 같진 않았다.

대통령도 여당 출신이 아니니 전처럼 간섭하기도 어려울 게 뻔했다.

월요회에서도 제외시키기로 마음먹었으니 도와줄리 없었고.

“가만, 이러면…….”

내 지명직 최고위원은?

“에라이…….”

헛웃음마저 나왔다.

원활한 전당대회 운영을 목적으로 이미 수십억의 돈을 지불한 상태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돈을 낼 예정이었으며, 그 대가로 나는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를 보장 받았었다.

물론 그것도 신 의원이 당대표가 되어야 성립되는 약속이었다.

이 상태가 지속 된다면 약속은 물 건너 간 셈이었다.

그렇듯 내 직감도 차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선거운동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것듯 전당대회 직전이었다.

검경이 들쑤시기 시작하면 선거 운동은 더 힘들어질게 뻔했다.

이러면 내가 선택할 차선책은 몇 개 없었다.

바로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박 보좌관님 계세요?”

- 정조위 실무 회의 참석했습니다. 호출 할까요?

“제가 할게요.”

스마트폰을 꺼내서 바로 키패드 화면을 두드렸다.

[전당대회 후보자 등록하고 선거운동 준비해 주세요.]

보낸 지 몇 초 뒤.

[의원님 본인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 지시를 믿지 못한 박 보좌관의 답장이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여태 일언반구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나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다만 어쩔 수 없었다.

월요회라는 음지의 힘이 있다면, 최고위원이라는 양지의 힘도 갖춰야 했다.

최고위원은 행정부로 치자면 장관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종의 국무위원.

국가를 운영하는 최고 회의가 국무위원 회의라면, 당을 운영하는 최고 회의는 당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과 정책위의장 등의 국회의원들이었다.

당론과 공천까지 손댈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늙은 다선 의원들 꼬리라도 쥐고 흔들려면, 최고위원 정도는 되어야 했다.

보수신당 당대표인 장 의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그 정도 급은 되어야 했고.

[예, 제가 할 겁니다.]

이번에는 30초가 넘게 지났나?

[의원님 시간이 조금 촉박합니다. 전당대회 후보자들 대다수가 사전 선거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락 유무를 확정 지을 수 없습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진행합시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내 의지를 확인한 것인지, 알겠다는 답장은 곧장 왔다.

나는 회견문 결재와 공청회 원고 확인을 옆으로 밀어 두고, 갖고 다니는 두 개의 스마트폰을 모두 꺼냈다.

이제부터 전화를 돌려야 할 차례였다.

일단 나를 도와주는 실무자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놔야 했다.

조컨설팅 조양준 대표, 민간 문혁위 안순익 위원장, 대화투자자문 오준범 대표에게 등.

그리고 힘이 될 만한 이들에게 밑밥을 깔아둬야 했다.

가장 먼저 조성현 비대위원장, 3선의 외통위 위원장인 고일준 의원, 국방위원장인 임청학 의원까지.

그 외에도 경제민주화연구모임의 의원들이나 언론사 간부, 기자들, 당협위원회와 중앙당 간부 등등, 전화할 곳은 숱하게 많았다.

전화통화만 해도 하루 종일 바쁠 게 빤히 보였다.

목을 풀고 차례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 *

- VIP 눈치 봐야 하는 거 아시잖습니까? 기사 몇 줄 때문에 움직이면 좋은 소리 못 듣습니다.

“박 수석, 내가 감이 이상해서 그래요. 이거 표적 수사 같습디다, 이번 선거도 아니고 18대 총선 얘기를 지금 꺼내다니요?”

- 의원님, 내가 온겨레에 다리 놔드리고 손 지검장이 평택지청에 자리 만들어 줄 순 있습니다. 근데 거기까집니다. 더 확대시켜서 월요회에 문제 만들 순 없잖습니까?

온겨레와 수원지검, 두 곳에 접촉하는 건 신경배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박우식은 아무것도 해 주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알아서 하라는 뜻.

더구나 월요회에서 문제를 만들지 말라는 건, 해결 못하면 나가라는 소리였다.

신경배의 미간이 구겨졌다.

- VIP께서도 조용히 넘어가시길 바라십니다.

이어지는 박우식의 말에 신경배가 다시 요구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안그래도 혁신정부 출범 몇 달 만에 욕을 하고 있었다.

언론 일부와 시민단체가 조악한 사업과 탁상공론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었다.

신경배가 쓰게 대답했다.

“알았어요, 알아서 해결 보겠습니다. 조용히 넘어가는 걸로 하십시다.”

- 그래주시면 고맙습니다, 못 도와줘서 미안합니다.

박우식의 형식적인 말에 신경배가 대충 대꾸하고 전화를 끊었다.

혼자서 처리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이곳저곳에 깔아둔 인맥으로 사건을 무마하곤 했었고, 이런 의혹이 드문 것도 아니었다.

다만 감이 이상했다.

언론사 어디에서도 자신의 꽁무니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없었다.

은퇴 기자들이 모인 관훈클럽과 현직 언론사 간부 인맥이 잠잠했었다.

온겨레에서 따로 연락도 없었고.

더구나 08년도 사건을 총선이랑 엮으려는 조짐까지 보였다.

이게 과연 정상일까?

신경배는 고개를 저었다.

표적수사면 쉽게 무마하기는 어려웠다.

정치인생 일부를 버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어서 신경배가 월요회의 박우식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VIP까지 들먹였으니, 더 이상 뭐라고 대꾸할 수도 없었다.

혁신정부도 평이 좋질 않았다.

이윽고 신경배가 평택지청에 전화를 넣었다.

“나 신경배요.”

평택은 자신의 지역구였다.

그것도 연달아 3선이나 한 지역.

평택지청장 정도는 곧장 통화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 아, 네.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고 했습니다. 보고 받고 지시하느라 좀 늦어져서…….

“그래요, 한 번 들어봅시다.”

- 신속하고 조용하게 넘어가려면, 아무래도 조용히 조사 한 번은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인근 호텔룸을 하나 잡아서…….

“뭐요?”

- 의원님…… 아니면 포토라인에 서실지도 모릅니다. 제가 봐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편의입니다.

“이봐요, 지청장. 정치하겠다면서? 이러면 쓰겠어요?”

거기에도더해서 평택지청장이 은밀히 눈감아준 비리들이 여러 개 있었다.

- 저도 다른 데서도 압박 받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없고…….

신경배의 눈동자가 떨렸다.

알고 지내던 평택지청장마저 뜻을 거스르고 있었다.

잘못 돼도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었다.

원내 최대 야당을 무시할 순 없었다. 더군다나 적잖게 먼지 묻힌 지청장이 이렇게까지 말하다니?

- 죄송합니다, 보좌관에게 호텔룸하고 일자 말해 두겠습니다. 그때 출석하지 않으시면 힘듭니다.

“지청장!”

- 이만 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신경배가 고함을 내질렀다.

“이런 육시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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