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28. 네가 감히? (3)
룸살롱의 중식이 바닥을 비울 무렵.
권 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 강남서 마약수사팀하고 중앙지검 수사과에서 도착했습니다. 지금 피의자 인계 마쳤습니다.
“수고하셨어요.”
- 따로 시키실 일 없으시면 주변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의원님 신상에 위험이 생길 수도 있고…….
“바쁜 일은 없습니까?”
- 의원님 일을 할 때는 다른 일과 병행하지 않습니다.
“잘 됐네요, 나도 동업자가 다른 일은 안 했으면 했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족한테도 사람 좀 붙였으면 합니다.”
- 오늘 같은 일을 또 걱정하시는 겁니까?
눈치가 좋았다.
“예, 상대가 좀 그래요.”
- 알겠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분까지만 커버하면 되겠습니까?
“그거면 됩니다. 그리고…… 그거 좋아 보이던데요, 4단봉.”
- 네?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권 팀장의 말에서 당황스런 감정이 느껴졌다.
국회의원이 4단봉을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을까?
장 의원이 있긴 했지만, 직접 머리 깨는 국회의원은 번외로 쳐야 했다.
“저도 하나 구입할게요, 그거 말고도 쓸 만한 거 있으면 같이 챙겨 주세요.”
싸움꾼은 아니지만, 주먹질은 해 봤었다.
그래서 내게 옆구리와 뒷모습을 노출한 웨이터들에게 거리낌 없이 훅을 꽂아 넣을 수 있었고.
지금도 손가락이 꽤 얼얼했다.
그래서 뭐라도 소지해 볼 생각이었다.
장 의원도 3단봉을 꺼내서 내 머리통을 깨지 않았던가?
- 의원님께서 직접 사용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권 팀장이 침착하게 되물었다.
“예.”
- 알겠습니다. 호신용품 마련해서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그래요. 수고해 주세요, 금액 청구도 하시고요.”
- 알겠습니다, 의원님.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내 수발을 들다시피 하는 김 총무에게 눈치를 줬다.
그가 황급하게 입을 뗐다.
“의원님, 벌써 일어나시게요?”
“예, 밖에서 비서가 기다립니다.”
“아이고, 같이 마저 드시고 나가시지. 끝나고 2차도 갈 겁니다.”
“2차 갈 시간이 없어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참, 제 식대는 제가 냈습니다.”
“네? 어차피 저희가 낼 건데 굳이…….”
“감사합니다만, 김영란법 발의된 게 작년입니다, 국회의원이 법 앞에서 그러면 되겠습니까?”
“아아, 근데 그거 시행 되겠습니까? 반발이 많은데…….”
“무조건 됩니다.”
내가 낙마시킨 김정환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도, 새한국당이 여당으로 있을 때도 결국 시행된 법안이었다.
언론인과 학교 교직원까지 포함해서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막는 법.
앞으로 3년 뒤면 김영란 법으로 처벌 받는 사람까지 나올 예정이었다.
그리고 마침 문이 열렸다.
“의원님?”
내게 문자 받고서 영석이가 달려온 것이었다.
“이만 가봐야 되겠습니다.”
“좀 더 계시지…….”
“죄송합니다, 편히들 드십시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나온 뒤.
영석이의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원님.”
“어.”
“안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왜?”
“이 건물 앞으로 경찰들이 왔다가서…….”
“글쎄. 참, 너 싸움 좀 하냐?”
“네? 싸움이요?”
갑작스런 질문에 놀란 듯한 눈을 마주했다.
“어, 싸움.”
“중학생 때 싸워 보긴 했는데…….”
“푸하하하, 중학생 때?”
“네…….”
“소고기나 먹으러 가자.”
“네, 근데 싸움은 왜…….”
“그냥 물어봤다, 여기 근처에 소고기 전문점 있는데…….”
대답하던 중에 문자가 하나 왔다.
[일은 다 끝났어요?]
한사랑이었다.
“의원님?”
“잠깐만.”
영석이의 물음을 무시하고 답장을 적어 넣었다.
[예, 지금 점심 먹으러 가고 있어요. 사랑 씨는요?]
[공부 중, 지쳤어요.]
[영어 공부 한다고 했었죠?]
[오픽 말구요. 저 학생이잖아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기말고사 있어요.]
그랬다, 교환학생 제도를 통해서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온 게 그녀였다.
성균관대라고 했었나?
새삼 한사랑의 나이가 피부에 와 닿았다.
[근데 저번 주에 만날 시간이 됐던 거예요?]
[왜요? 공부 못할 까 봐?]
[학생들 놀 때 놀아도 시험 기간 때는 바쁘잖아요. 저도 대학생 해 보긴 했습니다.]
[저 극동연방대에서 장학금 탄 모범학생이에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는데?
피식 웃음이 나는 걸 삼키고, 늦은 걸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가슴 한편에 남아 있던 불쾌함이 청량하게 씻긴 기분이었다.
기분이 밝아졌다.
방금 겪었던 일들도 이미 구석 어딘가로 밀려 나간 것 같았다.
액정에 뜬 글자 몇 개가 이렇게도 풋풋하다니.
영석이의 묘한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 * *
선글라스를 낀 장신의 사내가 홍성우의 앞을 가로 막았다.
나름 체격 좋은 홍성우가 올려다 볼 정도.
사내가 금속 탐지기를 들었다.
“팔 벌려 주십시오.”
“…….”
굳은 얼굴의 홍성우가 얌전히 팔을 들었고, 잠깐의 검사 끝에 걸음을 옮겼다.
주홍색 타일이 깔린 작은 식당.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구석 자리에 장세룡이 앉아 있었다.
“의원님.”
“앉지.”
그 말에 홍성우가 조심스레 앉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네모반듯한 기기를 쳐다봤다.
소형 램프가 깜빡깜빡거리는 디자인이었다.
홍성우의 눈초리가 기기에 닿자, 장세룡이 굳은 낯빛으로 말했다.
“도청 방지용이야.”
“아, 네.”
“그래서 당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대답이나 바로 해, 경찰이야?”
“아닙니다, 파악하기로는 흥신소 쪽 놈들이라고…….”
“흥신소?”
장세룡이 곱씹듯 되묻고는 홍성우를 쳐다봤다.
“당에서 잡일 해 주는 애들 있으니까 거기 물어보게, 누군지 알아야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마무리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다행히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려는 것 같습니다. 단순 마약 취급으로 처리될 예정입니다.”
“조용히 처리한다?”
“네.”
“검찰에서도?”
“내부 사정까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같을 겁니다.”
장세룡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래서 홍 전무가 아는 거, 더 없나?”
“……죄송합니다.”
“내가 그 말 듣자고 불렀어?”
“…….”
홍성우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아, 양 부장 말로는…… 윤수혁이 자기를 알았답니다.”
“무슨 소리야?”
“웨이터 복장에 명찰을 따로 달았는데, 주사 놓기 막판에 양 부장이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장세룡이 눈알을 부라렸다.
“고작 한다는 말이…….”
“네?”
“야 이 새끼야! 네가 애새끼들 간수 못해서 정보 흘렸다는 소리 아니야?! 그걸 자랑이라고 말해?”
갑작스레 높아진 언성.
아차 싶은 홍성우가 얼른 고개 숙였고, 장세룡이 팔을 휘둘렀다.
짜악-
머리통이 휘청거렸고, 장세룡이 다시금 홍성우의 얼굴을 가격했다.
짜악!
“윤수혁이 신내림 받고 예지했어?! 알고서 흥신소고, 경찰이고 부른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이어진 정적.
장세룡이 얼얼해진 손을 쥐었다 피며 분을 삭였다.
“그런데 조용히 넘어가고 있어, 이게 무슨 뜻인 줄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까 넘어가는 거야, 아니까. 모르면 가만있겠어?”
“아, 맞습니다.”
홍성우의 반사적인 대답에 장세룡이 혀를 찼다.
‘머리 돌아가는 놈을 밑에 뒀어야 했는데.’
이윽고 장세룡이 한숨을 뱉고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게 다야?”
홍성우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말 할 게 있긴 했으나, 말했다가는 방금처럼 관자놀이를 후려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룸 안에서의 일.
윤수혁은 거리낌 없이 발을 내질렀고, 주먹을 휘둘렀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마약과 폭력이 섞인 현장이 아니던가?
심지어 납치와 협박까지 당한 상태였고, 급박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일반인이라면 굳거나 숨거나,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익숙한 것처럼 움직인 이가 바로 윤수혁이었다.
치고 들어온 흥신소 직원하고 다를 게 없을 정도.
이걸 과연 말해도 될까?
찰나의 고민 끝에 홍성우는 입을 다물었다.
‘말한다고 뭐 달라지나.’
골이 찡하게 울리도록 쳐 맞을 뿐.
그사이에 장세룡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윤수혁이 내부 정보를 알았다고 의심되는 상황.
‘이걸 죽여야 되나…….’
허공을 향해 있던 장세룡의 시선이 홍성우를 지나쳐서 다시 허공을 향했다.
쉽게 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눈앞의 홍성우는 쓸모가 다하질 않았고, 윤수혁은 국회의원이었다.
홍성우는 몰라도, 국회의원 살해는 더 힘든 일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에 없던 일이었다.
암이나 노화, 질환으로 국회의원이 죽어서 재보궐 선거를 치르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국회의원 피살은 없었다.
표시가 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들킬 확률이 더 컸다.
일개 비서나 당직자가 아니었으니까.
후폭풍이 몰려올 것이었다.
당에서 들고 일어나고, 공권력에 대한 공격으로 문제를 키울 것이었다.
‘음모론까지 떠들겠지.’
생각을 마친 장세룡이 홍성우를 쳐다봤다.
“홍 전무, 숨을 데는 있나?”
“네, 필리핀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부를 때까지 오지 말고 조용히 있게.”
“알겠습니다.”
홍성우가 얼른 대답했다.
잠깐 마주한 장세룡의 두 눈에 살의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드물게 본 눈빛이었다.
사람 죽이는 칼잡이에게서 비치는 광기, 그것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비위를 거슬러서는 안 됐다.
그냥 사이코도 칼 들고 덤벼드는데, 돈 많고 권력까지 있는 사이코라면?
더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도 가능했다.
홍성우는 속으로 욕을 곱씹었다.
‘씨발, 있는 새끼들이 더 한다더니…….’
* * *
한사랑과의 애프터 약속을 잡은 뒤.
소고기 전문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영석이의 손에 손질한 소고기 두 근을 들려줬다.
“감사합니다.”
“받을 땐 감사하다면서, 왜 두 근만 받아?”
“무겁습니다.”
“자식이 엄살은…… 그래 잘 들어가. 휴일에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의원님…….”
“왜?”
영석이가 멈칫하더니 빈손을 들어더니 주먹을 쥐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가 봐.”
“네, 의원님.”
나를 오피스텔 앞에 내려다 준 영석이가 운전석에 올랐다.
그렇게 차가 출발한 뒤.
멀찍이 있던 권 팀장이 양손에 종이백을 들고 왔다.
“말씀하셨던 4단봉과 호신용품입니다.”
“호신용품…… 얼맙니까?”
“계약금에서 차감했습니다. 받아 두십시오.”
“그래요, 어휴. 무겁네요.”
“네, 그런데 의원님…….”
권 팀장도 영석이처럼 멈칫했다.
설마 이 양반까지 축하한다거나 파이팅하라는 말을 하진 않겠지?
별생각이 다 드는 와중이었다.
“방금 전에 룸에서 말입니다.”
그 말에 아, 하는 소리가 났다. 내가 양 부장을 명찰로 안 부르고 양 부장이라고 불렀었다.
“양 부장이요?”
“아, 네. 혹시 알고 계십니까? 그럼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웨이터들 말하는 거 들었습니다. 그거 외에는 모르죠.”
그렇게만 말했다.
권 팀장도 분명 내가 써야 할 사람이지만, 아직 장 의원에 관한 얘기를 알려 줄 생각은 없었다.
될 수 있으면 늦게 들어야 했다.
중간에 새어 나갈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고, 역으로 이용당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리고 권 팀장의 일은 실행이었다.
공모나 계획이 아니었다.
나는 아직 서 있는 그를 향해 말을 이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죠?”
“아, 네.”
“그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 들어갑니다.”
그를 등지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장 의원에게 힘을 행사할 때였다.
그게 물리적인 힘인지, 권력인지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했지만.
장 의원을 가만 둘래야 가만 둘 수가 없었다.
최소한 뭐라도 보여 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든 계획이든 힘이든, 뭐가 됐든 많을수록 좋았다.
그리고 그 첫 번째는 월요회였다.
신경배의 대타지만, 청와대와 검찰, 국회 요직이 모인 자리였다.
라인과 연고를 뛰어넘는 인맥.
이윽고 손기택 서울중앙지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의원님. 경황이 없어서 여쭈질 못했네요. 몸은 괜찮으십니까?
“덕분에 괜찮습니다. 그런데 지검장님, 아까 말씀하셨던 거…….”
내 말에 손 지검장이 다 안다는 듯 웃고는 물었다.
- 진행할까요?
척하면 척이었다.
“예, 그래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