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25. 봄이 가기 전에 (3)
저녁 무렵, 광화문 골목.
생선구이 백반집.
강 부장을 통해 권창훈의 번호를 알아내자마자, 바로 약속을 잡았다.
시간이 촉박한 것은 아니지만, 단축해야 이득이었다.
지금도 프락치가 활동하고 있을 테니까.
이윽고 그가 나타났다.
권창훈.
일명 권 팀장.
강력계에서 경위까지 달고 팀장 노릇하다가 그만뒀기에 권 팀장이라고 불렸다.
원래는 그의 후배 형사들이나 정보원, 범죄자들이 붙이던 명칭인데 그게 이 바닥까지 퍼진 것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흥신소 사장 호칭보다 익숙해서 팀장이라 부르기도 했고.
하여튼 쓸 만한 사람이었다.
일개 형사 출신으로 흥신소 사업체나 운영해서 별거 없어 보였지마는.
같이 일해 봐서 잘 알았다.
상황이나 조건을 재지 않고, 일에 충실했으며 입까지 무거웠다.
착수금을 주면 본전 생각나지 않게 일해 주는 사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이 바닥 경험이 꽤 많았다.
이윽고 식당으로 들어온 권 팀장이 주위를 훑더니 조심스레 다가왔다.
조금은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권창훈입니다.”
“윤수혁입니다. 자,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의원님.”
“제가 미리 식사 시켜 놨습니다. 괜찮으시죠?”
“네, 뭐든 좋습니다.”
“그럼 드시면서 말씀 나누시죠,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내가 웃으며 말하자, 권 팀장이 살짝 주춤했다.
내 속내를 모르니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국회의원이 일개 흥신소 사장을 불러서 밥을 같이 먹는 건, 인생에서 한두 번 경험하기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잘 알았다.
“그렇긴 합니다만…… 워낙 뜻밖이어서 놀랍습니다.”
“원래 새한국당 일을 종종 맡으셨던 걸로 아는데, 놀랄 게 있으십니까? 아, 보수신당 일도 맡으셔서 그런가요?”
“저도 아직 새한국당 당원입니다. 일도 마찬가지고요.”
제법 담담하게 대꾸한 그가 수저를 쥐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의원님께서 저를 부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의원님 정도면 알아서 움직여 줄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많기야 하지만, 권 팀장님만 하겠습니까?”
내 말에 권 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를 아십니까?”
“조금 압니다. 아, 식사 하시면서 말씀하시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시작했고.
거의 다 먹을 무렵.
입가심 중인 권 팀장에게 말을 붙였다.
“직원분들 중에 일 잘하시는 분 계시죠?”
“다들 잘 합니다.”
“문 과장님 같은 직원인가요?”
“문 과장을 아세요?”
권 팀장이 깜짝 놀랐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권 팀장님을 아는데, 문 과장님을 왜 모르겠어요?”
권 팀장의 직속 후배로 흥신소를 같이 차린 이었다.
내가 모를 수가 없었다.
호흡을 오래 맞추진 않았어도 어쨌든 더러운 짓하면서 안면을 익힌 사이가 아니던가?
내가 그쪽으로는 감이 좀 발달해서 잘 기억했다.
유독 비리나 범죄 연루 정보 같은 것도 기억이 잘 나는 걸 보면 타고난 것 같기도 했고.
그사이, 권 팀장이 얼떨떨한 얼굴로 숟가락을 놨다.
“보통 의원님하고는 많이 다르십니다. 아니, 고위 당직자만해도…….”
그가 말끝을 흐렸다.
반말로 불렀을 것이었다. 그들에게 문 과장이 누군지 알게 뭐겠는가?
당시에 열 살이나 어렸던 나도 권 팀장에게 반 존대를 썼었다.
나 스스로를 장 의원의 오른팔이라고 믿어서 그랬었지만.
생각해 보면 존대를 붙이는 지금이 더 여유로워졌다.
허울만 좋던 가짜 직함 대신에 진짜 돈과 뱃지를 가져서 그런가?
굳이 하대하지 않아도 됐다.
날 소개할 필요 없이, 내 힘이 얼마나 되는지 자랑할 필요 없이 모두가 한 수 접어 주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권 팀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먼저 묻기가 실례되지만, 저를 부르신 연유가 뭡니까?”
궁금한 얼굴이었다.
일을 지시하는 게 아니라 밥을 먼저 먹이고, 후배 형사였던 문 과장까지 알고 있으니.
아직 남은 국을 뜨면서 대답했다.
“저도 일 맡기려는 겁니다.”
물론 단순히 일만 맡길 생각은 없었다.
아예 내 수족으로 쓸 참이었다.
겁박하고 협박하는 것보다는 살살 달래는 게 효과가 좋으니 그럴 생각이었고.
나는 그에게 명함 하나를 줬다.
“이분에게 전화하시고, 제가 보냈다고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그래요, 앞으로도 종종 봅시다.”
***
4월 말.
국방부 및 방위사업청 소관의 2013년 추가경정예산안이 다뤄졌고, 인선이 마무리된 청와대는 방미 준비에 한창이었다.
순탄해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임명 강행한 장관 논란이 사그라지기 전에, 대선캠프 출신의 새정치당 간부나 청와대 고위급이 구설수에 휘말린 탓이었다.
호텔 종업원 성추행.
항공사 여직원에게 욕설.
공기관 및 정부부처 낙하산 임명 논란까지.
그럴 때마다 신문 꼭지는 기다렸다는 듯 비판조의 기사를 써냈다.
정권 초기의 우호적인 기사는 진즉에 다 썼다는 듯.
[청와대 비서관 항공사 직원에게 쌍욕…… 임명된 지 한 달 만에 권력에 취했나?]
[이 대통령의 대선 캠프 논공행상, 낙하산 임명으로 이어져]
[보수신당 장세룡, “정권 교체 오히려 악영향, 정부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어.”]
그리고 나온 보수신당의 입장.
이건 정부가 인사 작업과 부서 정리에 정신을 못 차릴 때, 보수신당이 펜대를 쥐게 만든 것이었다.
정확히는 장세룡.
그가 일선 기자나 중견 기자, 간부들의 옆구리를 찌르는 게 아니라, 언론사 사주와 손을 맞잡은 것이었다.
김포의 한 컨트리클럽에서도 장세룡이 4대 일간지로 평가 받는 동부일보의 사장과 만나고 있었다.
“장 의원님 힘이 여전하시네, 오비 말뚝 넘어갔겠어요.”
김태호 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말에 장세룡이 여유 있게 대꾸했다.
“남자 50대면 한창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우리 의원님께서 50대 마음을 쿡 찔러 주시네. 벌타 받았던 게 싹 씻깁니다.”
“김 사장님은 4벌타까지 받으셔도 됩니다, 워낙 실력이 좋으셔야지.”
“너무 비행기 태우신다, 이러다 해저드에 불시착할까 겁납니다. 안 그래도 비서실장 전화가 와서 긴장을 좀 했는데…….”
“박 실장이요?”
“네, 자기들 비행기 태워 달라더군요. 제대로 이륙도 못해 봤다고.”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하셨습니까?”
장세룡이 은근한 얼굴로 묻자, 골프공 앞에 선 김태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나도 광고주 약속을 지켜 줘야 하니까, 일단 말은 들어 줄 참인데…….”
그 말에 장세룡이 고개를 저었다.
“김 사장님.”
“네.”
“박 실장, 그 새끼 내 후밴데 강단 없는 놈입니다. 올해 안에 바뀔 겁니다.”
“그렇게 빨리요?”
“MB 초대 비서실장, 4개월하고 짤린 거 아시잖습니까?”
“알긴 합니다만, 박 실장은 비위를 잘 맞추던데? 대통령이 걷어찰까요?”
“대통령도 강단 없는 거 똑같습디다.”
그 말에 김 사장이 피식 웃더니, 동시에 둘이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하하!”
“하하하!”
둘의 웃음에 약간 떨어져 있던 캐디들은 저들끼리 눈치를 봤다.
오늘 들은 둘의 웃음 중에 가장 유쾌하고 기분 좋아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내 장세룡이 웃음을 그친 뒤, 말을 이었다.
“버틸 만큼 버텨주시오, 김 사장님. 우리 당 이번 보궐선거 성과 보셨잖습니까? 내가 자리 몇 개 빼두고 있어요.”
“새한국당에 있을 때는 티오가 너무 짜던데?”
“그거야 신경배 같은 게 끼어서 그랬고, 지금은 내가 꽉 쥐고 있잖습니까? 아시잖습니까?”
명백한 장세룡 독주체제.
김태호가 볼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의 대권 후보였다.
이미 경선 준비라도 하는 것처럼 장세룡은 당을 휘어잡았고, 언론플레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관례처럼 봐주는 허니문 기간마저 무시했고, 인사 난항과 국무위원 임명 강행을 이유로 혁신정부를 까 내리고 있었다.
초짜 프레임을 씌워서.
그건 다른 보수 언론사 몇 곳도 마찬가지였다.
당대표로서 장세룡이 매번 골프를 치고, 식사를 하며, 바쁘게 움직인 결과였다.
오죽하면 밖에서 국회 결재 업무를 봤다.
당내 업무나 국회 일을 돌볼 시간이 없던 탓이었다.
애초에 대부분의 당대표나 대권 후보급 의원들이 국회에 나오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상임위 회의 출석은 물론이고, 법안 발의도 불가능했다. 당장 행사 관리하고 언론 상대하는 게 보좌진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장세룡이 나직하게 목소리를 냈다.
“내가 조만간 특종도 하나 드리리다.”
“특종이요? 묻어 두셨던 겁니까?”
“아직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유력 정치인 얘깁니다, 그것도 마약류.”
“……!”
마약이면 중범죄였다. 처벌도, 취급 자체도 심각한 사안.
무엇보다도 자극적인 얘깃거리였다.
그것도 유력 정치인의 마약?
동부일보의 특종 생각에 김태호의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마약 한 번 골라보시겠어요?”
“그러면…… 대마 같은 건 흔하고, 프로포폴도 연예인들 꽤 맞으니까, 히로뽕 어떻습니까?”
“하하하, 좋습니다.”
“벌써 양성 판정 난 겁니까?”
당장이라도 타이틀을 쓸 듯 묻자, 장세룡이 실실 웃었다.
“아직 입니다. 엠바고니까 기억만 해 두셨다가, 딱하면 딱! 터뜨리세요.”
말을 마친 장세룡이 중지와 엄지를 부딪쳐 소리를 냈다.
딱-
***
5월 초.
국회가 휴회기에 들어갔다. 국방위 차원의 해외 출장이나 국내 시찰도 없었고.
그러나 바쁜 게 달라지진 않았다.
임청학 의원은 돌연 원내대표 경선에 뛰어들었고, 봄맞이 지역구 행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각종 체육대회부터 무슨 춘계모임, 그리고 각종 축제까지.
그리고 내 예비군 날짜까지 잡혔다.
5월 말.
한창 더워질 무렵이었다.
그냥 3일짜리 훈련 받고 오면 그만인데, 내가 뱉은 말 때문에 쓴웃음이 나긴 했다.
얼마나 빡세게 할지.
그나마 내년부터 5년차라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마음체육대회가 열리는 송중초등학교로 갈 무렵.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안순익 위원장]
통화 버튼을 누르자,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 뿌락치 찾았네.
“누구입니까?”
- 하나는 청와대발(發)이고…….
“더 있다는 말씀인가요?”
- 그래, 하나는 새정치당인데 이게 다가 아니야. 더 있네, 내가 봤을 때는 신민주당 쪽이야.
이상할 건 없었다.
위원장만 해도 내 사람이었고, 저마다 자기 사람을 꽂기 마련이었다.
언론보도까지 난 기구에 제 사람들 앉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걸리면 솎아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연한 것이었고, 뒷배마다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일단 갈아내실 순 있습니까?”
- 그거야 어려운 건 아닌데, 청와대발이…… 정무수석이야. 왠지 윤 의원 아는 사람 같은데, 아닌가?
여소야대 상황에서 누구보다 바쁠 사람이 민혁위 같은데 심력을 낭비한다?
고개가 저어졌다.
정무수석의 목적은 나하고 연관 짓는 게 편했다.
동향 파악, 혹은 개별 업무 보고, 안 위원장 조사 등등.
할 것도, 이유도 많았다.
물론 정무수석이라고 가만히 놔둘 필요는 없었다.
“다 솎아버리세요, 그리고 행동 조심하시고요.”
- 그러겠네, 그리고 자네가 보내 준 사람들 쓸 만했네, 고마우이.
“뭘요, 블랙리스트 건은 어떻습니까?”
- 내가 악바리처럼 긁어모으고 있네, 언제 쓰려고? 급한가?
“이왕이면 전당대회 전이면 좋겠습니다.”
- 두 달이구만, 내가 신경 써봄세.
“예, 그럼 끊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하자, 이번에는 비 업무용 스마트폰이 짤막하게 진동했다.
카톡 메시지의 사진 파일.
강 사장이 보내온 것이었다.
상대 여성이라도 정해진 건가 싶었는데.
채팅창에 들어가는 순간.
“와 시발…….”
엄청 예뻤다.
한눈에 들어온 여자.
정확히는 긴 머리를 귓등으로 넘긴 흰색 배경의 여권 사진이었다.
“……의원님?”
혼혈인가?
어디지? 러시아?
보정하나 하지 않았을 사진인데 광채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눈, 코, 입, 얼굴형, 피부, 머리카락 한 올까지 완벽했다.
“무슨 일이신지…….”
그야말로 내가 바랐던 여자.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좋아하지 않을까?
우웅-
이어진 메시지에 얼른 정신을 차렸다.
간단한 정보, 그리고 약속 장소와 날짜까지 연달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잠깐 예상했듯.
아름다운 여성 분은 이중국적이 따로 있었다.
“역시 러시아…… 아, 영석아 뭐라고?”
“네? 러시아요?”
“아냐, 그런 게 있어.”
“좋은 일 있으십니까?”
“어떻게 알았어?”
“웃고 계시길래…….”
그제야 내 입이 귀에 걸려 있다는 걸 알았다. 대답하는데도 웃음소리가 실실 났다.
여자가 이렇게도 좋았나?
아니, 예쁜 여자가 좋은 거겠지만.
“그래, 내가 전생에 그냥 맞아 뒤졌을리가 없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