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25. 봄이 가기 전에 (1)
어느덧 4월 중순.
다음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내정되었고, 청문회 일정까지 잡혔다.
픽 웃음이 났다.
이번 후보자도 조금 알았다.
16년도에 신민주당으로 출마해 당선 됐던 군 장성으로, 나중에 새정치당으로 줄섰던 사람이었다.
원래 정해진 운명인건지, 아니면 쓸 만한 사람이 이렇게도 없는 건지.
우스웠다.
굳이 비교하자면 새 후보자가 조금 낫긴 했다.
그는 장관을 대놓고 희롱하지도 않았고, 나름 점잖기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물론 군 출신답긴 했다.
방산비리에 대한 애매모호한 입장, 제 식구 감싸기, 군 시절의 비리 의혹 등등.
그런 면에서는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표현이 적당한 정도.
내가 굳이 문제아처럼 나대지 않아도, 인사청문회에서 씹힐 만한 건 다분히 많았다.
“방추위에서 K-2파워팩을 도입할 때, 코너테크에서 급여 외 일시급을 7,000만 원이나 받았습니다. 이게 MUT사에 소개해 주고받은 대가가 아니고 뭡니까?”
“대가가 아니고, 곧 퇴직을 앞둔 상황이어서 위로금 형식으로 받은 겁니다.”
“받고나서 두 달 뒤에 그만뒀잖습니까!”
“네, 원래는 구두 합의가 된 상태였는데, 좀 더 연장해 달라고 요청해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도 뻔뻔했다.
새 후보자는 앞선 김 후보자를 타산지석으로 삼았던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더 많은 교육을 받았던가.
웬만한 의혹에는 꿈쩍도 안 했다. 물증이 나와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본다면 깨끗한 사람을 억지로 추궁한다고 오해할 정도였다.
저 후보자를 털려면 내가 그랬듯 사비를 써야 했다.
하지만 재산 수 억에서 수십 억이 보통인 국회의원들이 그러기는 어려웠다.
이윽고 내 순서.
“존경하는 윤수혁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방위원장 임청학 의원의 말에 준비한 원고를 확인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후보자.”
운은 뗐는데, 왠지 기자들과 국방위 위원, 각종 관계자들의 시선이 묘하게 느껴졌다.
좀 기대한 것 같았다.
첫 번째 인사청문회에서 특종을 터뜨린 적적이 있으니.
물론 그 전에도 인지도가 적잖은 국회의원이긴 했지만, 나는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켜 줄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는 사비를 쓰지도 않았다.
정무수석이 직접 찾아왔었고, 안 고문이 안 위원장이 됐으니, 좋게 넘어가야 했다.
받으면 받은 만큼 줘야 하는 기브 앤 테이크를 실천해야 할 때였다.
“코너테크 재직시절에 신문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죠? 기억 나십니까?”
시선 몇이 떨어져 나갔다.
나를 향해 터트리던 플래시도 줄어들었다.
신문에 기고한 글은 흔한 것이었다. 예상외의 것이 아니었고, 파급력이 넘치는 얘깃거리가 아니었다.
이미 많은 의원들이 써먹었던 방법이었다.
국무위원 후보자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 발언이나 신문사 글줄 같은 것을 가져와서 추궁하고 캐묻는 것.
나도 똑같이 했을 뿐이었다.
“북한은 기아 현상과 내부 불안정으로 전면적 도발을 하기 힘들다, 라는 구절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쉬운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고.
밤 아홉 시 반.
“……다음 회의는 4월 22일, 10시30분에 전체회의를 열어 오늘 실시한 청문회의 경과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입니다. 경과보고서 채택이 의결사항이기 때문에 꼭 참석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위원님 여러분, 이태근 국방부장관후보자와 관계자 여러분,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산회를 선포합니다.”
땅땅땅.
의사봉의 타봉 소리와 함께 회의가 끝났다.
그렇게 인사청문회가 지나가고.
기다렸다는 듯 송 지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법무법인 설립 진행하셔도 됩니다. 언제 시간 나십니까?
퇴근하는 차에 탈 때였다.
엷게 웃음이 났다.
이제야 늘어 둔 일들이 좀 마무리 되려는 모양이었다.
청문회도, 법무법인 설립 건도.
며칠 뒤.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었다.
다수가 야당인 상황에서 난리가 날 법 했는데, 제법 조용하게 넘어갔다.
나를 찾아왔듯이, 정무수석이 여러 곳에 가서 기름칠을 한 모양이었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위해서.
나는 그사이 변호사를 통해 법무법인 설립 서류를 전달했고, 그 주 토요일에는 아침부터 정장을 차려입었다.
경영전문대학원 나갈 때보다 더 깨끗하게 차려입었다.
결혼 때문이었다.
그것도 박민표 4급 보좌관의 결혼식.
차근차근 결혼 준비를 하고, 내게 드문드문 준비 과정을 알려 주더니 결국 식을 올리게 된 것이었다.
봄에 하는 게 좋다나?
나야 애인이나 몇 번 있었고, 결혼은 해 본 적이 없기에 잘은 몰랐지만.
이윽고 도착한 웨딩홀.
“키 주십시오, 선생님. 발레파킹 하겠습니다.”
주차장 입구에서 나이 든 경비원이 차 키를 받아갔고, 웨딩홀로 향했다.
다른 식장의 하객도 많았다.
30분 내외로 연달아 예약된 수많은 결혼식들이 안내판에 표기되어 있었다.
거기에 신랑 박민표도 있었다.
매번 보던 보좌관이라는 직책이 아니라서 제법 생소했다.
그렇게 식장으로 향했는데.
입구에서 부모와 함께 손님맞이 중인 박 보좌관을 발견했다.
얼굴에 분칠한 걸 보고 있자니 새삼 웃음이 나왔다.
“의원님!”
“우리 박 보좌관님, 축하드립니다.”
“하하핫,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연히 와야죠, 누구 결혼식인데요.”
“정말 고맙습니다. 아, 여기는 저희 부모님이십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이 모시는 국회의원님이시구나. 제가 한 번 찾아 뵀어야 했는데 민폐일까 봐…….”
“하하, 괜찮습니다. 박 보좌관님이 일을 워낙 잘해 주셔서요.”
“아휴, 고맙습니다, 의원님.”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신랑측 테이블로 가서 부조 봉투와 식권을 바꿔 들었다.
그렇게 들어선 식장.
아는 얼굴이 꽤 있었다.
보좌진들과 당직자, 기자, 소관부처 공무원들까지.
신랑측 하객만 보면 여기가 국회였다.
“어, 의원님.”
“직접 오셨습니까?”
“아, 윤 의원님! 진짜 오랜만에 뵙니다.”
단점이라면 그들도 나를 알아 봐서 좀 번거롭게 됐다는 거.
자리에 미리 앉아서 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아갔다.
박 보좌관.
그가 두리번대다가 내 쪽으로 급히 오는 것이었다.
신랑이 왜 혼자 들어오냐고, 다들 농담을 던지던 중.
“의원님!”
놀란 박 보좌관의 목소리.
나도 움찔했다.
아, 또 무슨 일이 터졌나?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는데, 다가온 박 보좌관이 나를 외진 곳으로 데려갔다.
“무슨 일이에요?”
궁금해서 묻는데 박 보좌관이 주춤대다가 입을 열었다.
“축의금…… 저거 액수 맞는 겁니까?”
“예, 얼마로 확인했대요?”
“……1억이요.”
“맞네요.”
엊그제 찾아온 수표 열 장.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저한테 많은 건 아니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보좌관님 챙겨드리겠어요?”
“…….”
잠시 말이 없던 박 보좌관이 짧게 웃었다.
“저는 의원님께서 주신 만큼 못 드립니다.”
“흐흐, 몸으로 갚으세요.”
“그럼 열심히 보좌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이윽고 숙어진 박 보좌관의 고개.
돈 1억이 큰 감동이 된 건가?
사실 요 근래 바빠서 아무것도 도와주질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급하게 돈을 좀 찾아서 가져다 준 것이었다.
화환도 의원실 이름으로 줬고, 결혼 준비도 박 보좌관이 알아서 다 하지 않았던가?
나는 박 보좌관을 보내고, 식장 어딘가에 있을 영석이를 찾기 위해 전화를 들었다.
궁금한 얼굴을 한 기자들이 내쪽으로 오고 있던 탓이었다.
* * *
2013년 4월 말.
재보궐 선거가 치러졌다.
서울시 노원구 병, 부산광역시 영도구, 충남 부여군․청양군 국회의원 3석과 경기 가평군수와 경남 함양군수, 그리고 각 지역 기초의원과 광역의회 의원자리 7석까지.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당선무효가 되거나 각종 논란으로 사퇴한 빈자리들이었다.
득표수 최대 4만여 표, 최저 2천여 표로 보궐석에 새로운 이름들이 채워졌다.
거기서 돋보인 건 보수신당이었다.
부산 영도구의 의석 하나, 경남 함양군수 자리, 경북 경산시 시의원 등에서 당선자를 냈다.
제1야당인 새한국당보다 효율적인 성과였다.
“……국민 여러분의 염원과 기대에 부응하여 진정한 보수 정당의 기치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정론관에서의 회견까지.
신문사 몇 곳은 우호적인 기사로 정치면 꼭지를 채웠다.
[보수신당 성공적인 새 출발…… 재보궐선거에서 승리]
[영도구 당선자 초선의원 오태식, “보수신당만이 대한민국이 살 길, 영도구 주민께 감사해.”]
윤수혁이 신문을 확인하던 중.
운전석에 있던 최영석이 슬그머니 목소리를 냈다.
“의원님.”
“어?”
“저도 들었습니다, 후원금…… 아니, 축의금 내신 거.”
“아, 그거.”
“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윤수혁이 신문에서 시선을 떼고 앞좌석을 바라봤다.
꼿꼿하게 앉은 최영석은 전면과 좌우 사이드미러를 보면서도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의원님 소득 수준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미혼인 의원실 식구들이 더 많은데 앞으로…….”
“다 1억씩 줘야 되니까 걱정돼?”
“말은 안 했지만, 눈치가 조금 그렇습니다. 박민표 보좌관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적게 받거나 못 받으면, 내부에서 안 좋은 말이 나갈 수도…….”
그러자 윤수혁이 피식 웃었다. 별거 아니라는 투의 대답도 같이 나왔다.
“다 주면 되지, 뭐.”
“……다 말씀이십니까?”
“지역구 식구까지 해서 11명인데, 그걸 못 챙기겠어? 박 보좌관한테 쓸데없는 걱정 말고 일이나 하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근데.”
말을 마치려던 윤수혁의 목소리에 최영석이 백미러를 확인했다.
윤수혁이 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결혼하면 어떡할까?”
최영석이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학교 선배에서 시작한 인연이었고, 지금은 국회에서 비서로 모시고 있었지만.
윤수혁에게 여자란 단어는 없었다.
애초에 수도승처럼 별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국회의 다른 7급 비서들이 룸살롱 소문 같은 것을 뿌려댈 때도, 윤수혁의 이름은 섞여 들어간 적조차 없었다.
건전하다 못해 너무 깨끗했다.
마치 정치를 위해 태어난 사람 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사이, 윤수혁이 말을 이었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해? 축의금 아예 안 받는 게 낫겠지? 현역 국회의원이니까.”
“아아, 네. 그렇습니다. 저 혹시 결혼하실 계획…….”
“계획이야, 있지. 아직 여자가 없어서 그렇지.”
윤수혁이 중얼거리듯 대답하고는 다시금 가볍게 물음을 던졌다.
“결혼은 봄에 해야 된다며?”
“아, 저는 잘…….”
“흐흐, 출발이나 해. 녹색불 떨어졌다.”
“아, 네.”
차가 출발하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윤수혁이 연락처에서 이름 하나를 찾았다.
[강희준 사장]
이름과 번호를 확인하고, 윤수혁이 문자 버튼을 눌렀다.
[설명 좀 듣고 싶습니다.]
보내고 몇 초 지난 뒤.
우웅-
[장소, 날짜, 시간 알려 주십시오.]
곧장 답장이 왔다.
픽 웃은 윤수혁이 답장을 적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저녁 8시 이후에 제 집에서 뵙는 게 어떻습니까?]
[금일 8시 여의도 오피스텔로 찾아뵙겠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순식간에 온 답장에 윤수혁이 코끝을 쓱 만졌다.
‘올해 봄이 두 달 남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