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75화 (75/191)

# 75

24. 될놈될 (1)

국방부 장관 후보자.

김인태가 침을 삼켰다.

땀구멍이 습해지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저 녹취는 어디까지 있는 걸까?

군 시절? 아니면 코너테크 재직 기간?

생각을 더듬던 김인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그게…… 친한 후배이다 보니…….”

나오는 말마다 움찔거렸지만, 김인태는 속을 가다듬었다.

저 이상은 없을 거라고.

군 시절이든, 코너테크 재직 시절이든.

만약 공개되면 이순도도 같이 매장당할 것이었다. 부정을 공모했었고, 실행했었으니까.

더구나 그의 변명처럼 이순도는 친한 후배 였으며, 지난 수년간 같이 일했던 부하였다.

지금 즈음 쉰이나 됐으니, 최소한의 도리는 알 것이었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도 충분히 구분할 테고.

이순도라면 그 정도 깜냥은 됐다.

김인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녹취는 이게 전부일 것이라고.

원래 청문회라는 자리도 그랬다.

의혹 제기가 주였다.

사단운영비를 횡령했다느니, 부동산 투기를 했다느니.

그러면 국무위원 후보자들은 실수를 인정하거나, 그러지 않았다고 부인하면서 끝내 임명되곤 했었다.

자신도 다를 게 없을 것이었다.

김인태는 대각선 방향에 앉은 윤수혁을 보면서 더듬거리는 변명을 내뱉었다.

“……그 부분은 저의 실수 같습니다마는…… 증인 불출석을 요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김인태가 힘겹게 말을 마칠 무렵.

윤수혁이 싱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지?’

김인태가 불안함에 물컵을 들었다.

찰칵- 찰칵-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고, 목을 축인 김인태는 윤수혁을 바라봤다.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든 모습이 여유로웠다.

아직 들려줄 게 더 있다는 듯한 모습.

‘설마…… 더 있어?’

김인태의 생각이 불안하게 지나갈 무렵.

- 충성 작전참모입니다.

이순도의 선명한 목소리가 대회의실을 채웠다.

‘이순도 이 쳐 죽일……!’

입 밖으로 말이 나올 뻔했다.

청문회가 아니었다면 쌍소리를 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그사이 녹취록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권한 남용.

시 축제에 군 병력 동원.

시, 도청 고위 공무원 접대 등등.

구간 편집한 녹취록은 필요한 부분만 재생되고 있었다.

삐-

짧은 버저소리가 들린 뒤.

목소리가 끊겼다.

스마트폰을 조작한 윤수혁이 마이크에 입을 댔다.

“남은 1분은 후보자 답변 듣는데 쓰고, 녹취 내용은 추가질의 때 다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김인태가 머리를 굴리는 사이.

윤수혁의 냉랭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후보자, 이 통화도 친한 후배와 대화하는 겁니까?”

“…….”

답이 없었다.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입이 열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대답을 안 할 수만은 없으니 천천히 입을 열려던 찰나.

윤수혁이 엄포를 놨다.

“증인 선서를 유념해 주시고 대답하십시오. 녹취록을 기반으로 사실 확인 작업 중에 있습니다.”

변명이 목에 탁 걸렸다.

김인태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염병…….’

***

첫 경기부터 홈런을 쳤다.

애초에 원래의 청문회 스타일과 좀 달랐다.

의원들마다 제보나 소스를 근거로 삼아서 의심쩍은 부분을 파는 게 기본이었다.

통장 내역과 부동산 계약서, 국세 및 지방세 납부 내역 등등.

이런 것들이 쌓여서 누적 데미지가 되고, 후보자의 자진 사퇴로 이어지는 게 수순이었다.

아니면 정부의 후보자 임명 철회도 있긴 했으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둘 다 아니라면 장관 임명이었고.

다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위법을 지시하고 확인하는 상황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서 생생하게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것도 청문회 첫 질의.

1, 2초의 침묵 뒤에 김인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말씀하신 부분은 기억이…….”

“제가 말한 게 아닙니다. 후보자 본인의 목소립니다.”

“네…… 통화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역시 나온 기억 상실증.

여기서 죄를 인정하고 사퇴 선언을 할 수 없으니, 저런 식으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돌아가서 인사추천위원회와 상의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는 봐줘야 했다.

여기서 사퇴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지랄을 하게 되면 필히 내게 로비가 들어올 것이었다.

그게 회유든 협박이든.

김 후보자도 정치권 인맥의 일부분이었다.

차라리 풀어 줄 때는 풀어 주는 게 나았다.

괜한 로비와 입씨름할 생각은 없었다.

인사청문회에서 다시금 인지도를 높이고, 유능함을 과시하며, 국방부 장관도 그나마 괜찮은 사람으로 앉히는 게 내 목적이었다.

물론 이미 누적 데미지가 오버한 것처럼 보이긴 했다.

쳐 맞을 만큼 맞은 것 같기도 했고.

그런 만큼 유연하게 넘어가주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좋았다.

내 질의 시간도 몇 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시간이 다 됐으니, 추가 질문 하겠습니다.”

이후 신민주당의 질의가 이어졌고, 새정치당과 새한국당의 동료 선후배의 질의가 이어졌다.

그저 그랬다.

나를 돋보이게 할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증거가 나오긴 했다.

주택 매매 다운계약서, 코너테크 특혜 의혹 근로계약서 등등.

그러나 내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더욱이 녹취록이라는 것은 계약서나 의혹 같은 것보다 더 자극적인 단어였다.

지금부터 온라인으로 속보가 터져 나오고 있을 것이었다.

그만큼 내 증거는 보통이 아니었다.

당연했다.

애초에 증인 호출과 증거 수집의 방법이 달랐다.

증인이든 증거든, 애국심과 공명심을 거론 한 뒤, 국회 모독과 법적 조치 따위를 덧붙이는 게 인사청문회의 기초였다.

제대로 된 물증이 나오랴?

무슨 19세 미만의 청소년도 아니고, 다 큰 중장년의 사내들이 그런 제안을 덥석 수락하겠는가.

물론 국회의 권위에 움찔하긴 하겠지만.

최소한 대가는 줘야 했다.

손해를 감수할 만큼.

그리고 내가 이 중령에게 준 것은 최소 수 억에 달하는 혜택이었다.

이윽고 점심 무렵.

“오전 회의를 마치고 정회했다가, 오후 2시 정각에 속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회를 선포합니다.”

임 의원이 의사봉을 쳤고, 사람들이 우수수 일어났다.

동시에 대회의실을 채우고 있던 기자들이 내 쪽으로 몰려들었다.

쓰나미 같았다.

“의원님, 녹취록은……!”

“녹취록을 어떻게 제공 받으셨습니까!”

“음성 파일 제공해 주십시오!”

질문이 겹쳐서 쏟아질 때, 적절하게 박 보좌관과 송 비서관이 끼어들었다.

역시 실력이든 눈치든 빠지지 않는 내 사람들이었다.

나는 기자들의 질문에 응해 주다가 금방 자리를 떴다.

기자들은 박 보좌관이나 송 비서관이 알아서 잘 접대해 줄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정회와 속개가 몇 번씩 반복되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인사청문회가 흘러갔다.

워낙 흠결이 많아서일까?

시간을 꽤 잡아먹었다.

내 기억 속 13년도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는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끝났는데, 이 인간은 언제 끝날까?

하긴, 다른 곳도 아닌 군대였다.

완전한 상명하복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폐쇄적인 집단, 육사 출신과 일부 장성들이 군권을 틀어쥔 곳.

그 안에서 사단장을 역임하고 별을 세 개나 달았다면?

깨끗하기가 힘들었다.

찌들대로 찌들어야 별을 달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오후 10시 50분.

“……오늘은 이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위원님 여러분, 김인태 국방부 장관 후보자와 관계자 여러분,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산회를 선포합니다.”

타봉 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중간에 졸기도 하고, 대놓고 피곤한 티를 내던 의원들에게 인사할 무렵.

품에서 짧게 진동이 일었다.

[활약 잘 봤습니다, 의원님. 한 번 뵐 수 있겠습니까?]

손기택 검사였다.

그러나 문자 내용이 묘했다.

청문회를 지켜봤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기사라도 챙겨 봤다는 의미였다.

그도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바쁜 사람이었다.

보직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가 아니었다.

서울중앙지검장.

혁신정부 출범이후 요직이 바뀌었고, 그 와중에 손 검사가 지검장이 된 것이었다.

어쨌든 손 검사의 문자는 제법 반가운 것이었다.

법무법인 설립 준비도 끝났으니 한 번 보기는 봐야 할 때였다.

나는 잠깐을 서 있다가 짤막하게 답장을 적어 넣었다.

[예, 한 번 뵙겠습니다.]

***

며칠 뒤, 고급한식당.

“반갑습니다, 의원님. 청문회 스타 의원 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지검장님. 저도 영전 축하드립니다. 따로 뵀어야 했는데, 인사청문회 때문에 워낙 바빠서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승진한 지 얼마 안 돼서 따로 모시려고 했는데, 여건이 빠듯했습니다. 아, 오늘 한 분 더 오십니다.”

“누굽니까?”

“정무수석입니다.”

막 걸음을 옮기려던 윤수혁이 주춤했다.

정무수석이 누군가?

국정 전반에 관여하고 대통령 보좌 역할을 수행하며, 형식상 차관급이지만 장관급 권한을 가진 자리였다.

무엇보다도 국회와 정부의 교가(橋架)였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비서실장, 민정수석 다음으로 끗발 날리는 직책이라는 뜻이었다.

무엇보다도 정무수석 자리에 앉아 있는 이가 박우식이었다.

전 선대위원장이자, 대통령의 측근.

쉽게 말해 실세.

와중에 지검장 손기택의 얼굴에는 엷은 웃음이 맺혀 있었다.

뿌듯하기도 하고, 내심 기뻐 보이는 모습.

반면에 윤수혁은 눈을 깜빡였다.

지검장이랑 정무수석이 왜?

윤수혁의 표정을 본 손기택이 직접 방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들어가시면 아실 겁니다. 복도에서 나눌 얘기는 아니니…….”

손기택이 말끝을 흐리는 사이.

“혹시 월요회 회원인가요?”

“어, 알고 계셨습니까?”

“가능성 있는 게 몇 개 없어서 여쭤봤습니다.”

“하하, 역시…… 보면 볼수록 탐나는 분입니다.”

“탐이라면……?”

윤수혁이 되묻다가 멈칫했다.

어느새 손기택이 은근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수혁이 얼른 말을 이었다.

“전에 말씀하신 법무법인 말입니다.”

“아, 네.”

“준비는 다 마쳤습니다. 언제 진행하시겠습니까?”

“검찰 인사 작업이 조만간 마무리 됩니다. 옷 벗는 친구도 있고, 줄 서는 놈들도 있으니…… 인사 작업 끝나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이 룸인가요?”

어느새 멈춘 걸음.

손기택이 직접 문고리를 잡았다.

“네, 들어가시죠.”

스윽-

조용하게 문이 열린 뒤.

정무수석이자 캠프 비대위원장이었던 박우식이 몸을 일으켰다.

“오셨군요, 윤수혁 의원님. 반갑습니다. 정무수석입니다.”

“윤수혁입니다.”

박우식이 악수를 나누고서 자연스레 자리를 권했다.

그렇게 윤수혁이 앉았고.

“청문회 잘 봤습니다, 의원님.”

“감사합니다.”

“원투 펀치가 아주 살벌하더군요. 혹시 김인태 후보자한테 감정 있으신가요?”

조금은 능글맞은 어투.

윤수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박우식이 말을 이었다.

“사비까지 들여서 증인을 구워삶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미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이순도 중령이 후원 받은 단체, 단체와 윤수혁의 관계.

몇 다리 걸쳐져 있었으나, 청와대에서 알아내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놀라운 건 윤수혁이 사비를 들였다는 점이었다.

인사청문회가 뭐라고 국회의원이 사비까지 들여가며 증인을 설득할까?

후보자와 악연이라도 있는가?

아니면 밉보인 것이라도 있나?

청와대는 윤수혁과 국방부 장관 후보자 김인태의 관계를 들추며 확인 작업에 나섰었다.

그 결과, 정무수석인 박우식이 대면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연관점이 없었다.

윤수혁은 그 와중에도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사람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야 인사청문회 위원으로서 임무를 다 했을 뿐입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만…… 차기 내정자도 그렇게 심사하실 건가요?”

“차기 내정자요? 그럼 김인태 후보자는 사퇴합니까?”

“네. 의원님 덕분입니다.”

“그럼 마찬가지로 제 도리를 다 해야겠죠. 인사청문회가 중요한 자리다 보니…….”

윤수혁이 가볍게 말꼬리를 흐렸다.

장관 내정자를 심사하는 자리이자 동시에 국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

그게 인사청문회였다.

알아들었다는 듯 씨익 웃은 박우식이 말을 덧붙였다.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갑작스런 말.

그러나 윤수혁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렸다.

‘될놈될이라더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