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23.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
박 보좌관이 의안까지 준비한 마지막 이슈 몰이 방법.
바로 예비군 훈련이었다.
500억 기부나 결혼만큼 놀라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슈로는 충분했다.
국회의원이 예비군 훈련을 받은 경우가 없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법도 그랬다.
군 전역자라면 누구나 하는 게 예비군 훈련이긴 했지만, 국회의원은 예비군과 민방위에서 면제되었다.
그것도 국회의원 당선자가 되는 순간부터.
병무청이 알아서 기는 것이었다.
상급자나 다름없는 감사기관이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터.
당연히 훈련 대상자는 애초에 몇 명 없었다.
19대 국회의원 평균 연령이 53.9세로 육군참모총장과 비슷한 연배였다.
훈련 받는 게 아니라, 건강 관리가 필요한 나이.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모든 훈련에서 면제였다.
혹시나 나 같은 젊은 의원들 들어 올까 봐 그랬을 확률이 높았다.
이것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었다.
이내 박 보좌관의 말이 들려왔다.
“혹시 원하시는 부대 있으십니까?”
“글쎄요.”
“의원님이 전역하신 부대로 가시는 건……?”
“너무 오래 됐죠. 저 주특기 기억도 안 납니다.”
“……올해 4년차신데요?”
눈을 껌뻑거리는 박 보좌관.
뒤늦게 아차했다.
올해 예비군 4년차였지만, 전생에선 민방위였다.
두 인생을 합치면 전역한 지 십수 년이 더 지난 셈이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업무가 어디 보통 많아요?”
“으음, 그러고 보니 의원님 여기 오셨을 때도 운전 11년 하셨다고 하신 거 같았는데…….”
“1년이라고 했겠죠.”
“1년이라고 말 바꾸기는 하셨는데…… 일하시는 거 보면 인생 두 번 사시는 거 같긴 하네요.”
“사실 2회차 맞아요.”
“……하하하.”
박 보좌관이 부장님 개그에 호응하듯 웃고는 다시 보고서로 시선을 옮겼다.
“따로 편의 봐드릴 거 없죠?”
“예, 그냥 FM대로 하라고 하세요.”
“FM…… 후회하실 텐데요?”
“제가 훈련장 가면 어차피 FM으로 할 텐데요, 뭐. 차라리 빡세게 받는다고 생색내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럼 그냥 뺑뺑이 돌리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개입했다가는 오히려 특혜 논란이 더 불거질 수도 있었다.
어느 예비군이 가고 싶은 부대와 날짜, 훈련 방법을 골라서 병무청에 통보한단 말인가?
당연히 뺑뺑이를 돌려야 했다.
동원이지, 동미참인지.
주소지 근처로 가는지, 소속 부대로 훈련받으러 가는지 등등.
그래야 기사 한 줄이 나도 그럴싸하고, 괜찮게 날 것이었다.
이윽고 박 보좌관이 마무리하듯 말했다.
“그럼 예비군법 일부개정법률안 확인해 보시고 결재해 주십시오.”
“예, 기자들한테는 아직 언급하지 마세요. 후보자들 낙마하고, 특혜 시비에 시끄러울 때 터트릴 거니까 상황 보고 계세요.”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낙마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방법이나 날짜나…….”
“그거 제가 따로 알려 드릴게요.”
“소스를 갖고 계십니까?”
“갖고 있죠. 아, 청문회 자료요구는 어때요?”
“존안기간 지나서 폐기했다고 반의반도 안 왔습니다.”
“제보는요?”
“퇴역한 장교와 부사관 위주로 부조리 관련 제보가 들어오고 있긴 합니다. 지금은 확인 중에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네, 의원님 명성이 좀 먹히는 모양입니다.”
박 보좌관이 웃음기를 머금고, 내심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실제로 청문회는 자료 요구와 제보로 기반을 잡고 질의를 준비하곤 했는데, 그 수준이 열악했다.
자료는 잘 주지도 않고, 제보도 드문 데다가 허위가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내 명패가 붙은 337호 의원실은 썩 괜찮았다.
검찰 고발과 증거 공개 같은 쇼를 몇 번 한 게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긴 모양이었다.
괜찮은 제보가 평소에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그게 과다 업무긴 했지만.
박 보좌관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예, 수고해 주세요. 청문회 끝나면 진짜 거하게 쏠게요.”
“흐흐흐, 그럼 스케줄 정리해놓겠습니다.”
그렇게 박 보좌관이 웃으며 나갔고,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국방부 장관 후보자 낙마 준비를 해야 했다.
마침 적절한 대상이 있었다.
23명 고발 사태가 터졌을 때, 도와주지 못한 제일일보 논설위원.
그에게 선심을 써 줘야 했다.
일간지에서는 힘깨나 쓰는 데다가 종종 준정부기관의 심사관이나 주요 위원으로 선임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잘 받아먹는 인간이었고.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잠시 후.
논설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윤수혁 의원.
“논설위원님, 잘 계셨습니까?”
- 원고 집필 중이었습니다. 그래, 무슨 일입니까?
“저번에 제가 도와드린 게 없어서, 이번에 괜찮은 거 하나 드리려는데…….”
- 허허, 그래요? 어느 면에 실을 얘깁니까?
“정치면입니다. 이번에 장관 후보자 있잖습니까?”
- 시기가 딱 좋네요, 내용이 어떻게 됩니까?
“낙마할 만한 얘기입니다.”
- 어이고, 그걸 청문회에서 안 쓰시고 날 주시겠다고?
말에서 웃음기가 느껴졌다.
“청문회에서 쓰기가 좀 그래서요. 아, 기자 한 분 빌려 주셔야 합니다.”
- 기자를?
“예, 논설위원님께서 아끼는 후배 중에…… 저돌적이고 공격적이고, 집요한 그런 분 없을까요? 이왕이면 여성이면 좋겠습니다.”
- 기자라는 족속이 원래 다들 공격적이고 집요합니다만, 뒤에 달아둔 조건은 뭐예요?
“장관 후보자 하고 관계된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후보자 낙마를 위해서 고른 조건이었다.
굳이 그를 낙마시켜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낙마하는 쪽이 여러모로 득이었다.
일단 야당 입장에서는 정부와 여당에게 물 먹인 것이니, 일종의 성과였다.
언론 종사자에게는 취재거리를 안겨줄 수 있었고.
나는 생색도 내고, 능력 과시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었다.
도랑치고 가재 잡는 일.
무엇보다도 국방부 장관은 같이 일할 사람이니 마음에 드는 인간으로 앉혀 놓고 싶었다.
2017년이던가?
그가 이민수 측근으로서 비례대표로 금뱃지를 달았을 때.
대정부질문 질의 중에 여성 장관에게 헛소리를 했었다.
“어유 장관님, 머리 염색하시니까 아주 예쁩니다. 미용실 아줌마들이 그 적갈색으로 염색해 달라고 난리들 났대요.”
그게 장관 불러다 놓고 뱉은 첫마디였다.
당연히 여당 의원석에서 고함이 날아들었다.
사과 하라고, 희롱하지 말라고.
그가 곧장 대꾸했었다.
“뭘 사과를 해요? 나는 말도 못해요? 나 참, 기가 차네.”
그다음이 가관이었다.
의원들이 넘어가주지 않고 계속 집요하게 사과를 요구하자, 도리어 화를 낸 것이었다.
그것도 대로(大怒).
“질의시간 뺏지들 말고 입들 다무세요! 별 같잖은 걸로 말꼬리 물지 말고! 내 참 별 개 같은 …….”
뒤에 이어진 말에 상황을 주시하던 의장이 급하게 제지했었다.
국회 방송으로 생중계되고 영상이 녹화되고 있음에도, 대놓고 비속어를 욕에 담은 탓이었다.
속된말로 뭐 같은 인간이었다.
이어서 여 장교의 성희롱 의혹 제보도 어느 의원실로 왔었는데, 확인 과정에서 유야무야 넘어갔었다.
군검찰에서는 혐의 없음이라고 결론을 지었던가.
이윽고 논설위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짐작한다는 듯.
- 아…… 허허. 좋습니다. 한 명이면 되겠어요?
“예, 제가 괜찮은 거 하나 들려 보낼 겁니다.”
- 허허, 알겠어요. 아마 한 시간 안에 전화 갈 겁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 그래요, 조만간 식사 한 번 합시다.
피식 웃음이 났다.
꼭 지가 사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이 사람도 1인 식대 10만원 미만으로는 먹지도 않는 인간이었다.
술도 병당 3만 원 이상의 안동소주만 먹었고.
그래도 먹으면 먹은 만큼 잘 싸는 인간이니 쓸모가 없진 않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서 예비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확인했다.
20대 국회부터 적용되도록 만들었고, 2, 30대가 대상이라 이 안에 포함될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몇 없는 2, 30대 남자 의원들만 해당될 것이었다.
그 와중에 예전 동미참 때 생각이 나서 헛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은 똑같았다.
영 가기 귀찮았다.
전투복이 집에 있나…….
딴생각을 하는 사이, 책상 위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건너왔다.
- 제일일보 정치부 백윤지입니다.
목소리에 힘이 바짝 들어간 게 일은 잘 할 것 같았다.
* * *
백윤지가 마지막으로 질문지를 확인했다.
[군복무 시절 병사 보급용 5중날 면도기를 횡령하여 사용했다는…… 식별이 어려운 야간에도 암구호 없이 부대를 출입했고…….]
번거롭거나 짜증 날 만해도 치명적인 질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쭙잖았다.
애초에 증명하기도 어려운 것이었고, 노코멘트나 사과로 무마 가능한 것들이었다.
더구나 이런 질문들로 낙마한 장관 후보자는 여태 없었다.
위장전입, 자녀 이중국적, 스폰서 의혹, 병역문제, 세금 탈루 등등.
이게 보통의 낙마 사유였다.
물론 비슷한 의혹이 있어도 꿋꿋하게 버티며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 질문도 마찬가지로 임명을 막을 수준으로 보이진 않았다.
다만 백윤지가 짐작하는 게 있긴 했다.
윤수혁이 당부한 말 때문이었다.
‘반드시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밀려나지 말고 압박 하세요.’
원하는 건 실수이리라.
말이든 행동이든.
정치질 수 년 했다던 사람들도 공석에서 실수를 했다.
물론 그 실수가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후보자들은 교육을 받고 나오는 일종의 면접자였다.
나올만한 주요 질의와 대답은 거의 암기해야 했으며, 수백 개의 질문지로 모의 청문회까지 할 것이었다.
‘실수가 나오려나? 이걸로 짜증은 좀 나겠지만…… 될지 모르겠는데?’
후문 입구와 주차장의 거리를 확인한 백윤지는 고개까지 저었다.
‘이동거리도 너무 짧은데, 뭐 그래도…….’
백윤지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어차피 오늘은 윤수혁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으니, 그녀로선 그저 임무에 집중할 뿐이었다.
이윽고 재향군인회 건물 입구에서 국방부 장관 후보자, 김인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윤지가 거칠게 튀어 갔다.
“후보자님!”
“……?”
“제일일보 백윤지입니다! 군복무 시절에 5중날 면도기를 횡령하여 사용하셨다는…….”
김인태의 눈이 커다래졌다.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묻는 눈.
벌컥 짜증이 났지만, 김인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인사추천위원회에서 이틀을 꼬박 교육 받으며 암기한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묵과 회피.
갑작스런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질문은 무조건 피하라고 했었다.
말실수를 막기 위함이었다.
“비키세요.”
김인태는 짜증을 참으며 걸음을 옮겼다.
백윤지는 녹음기를 들이밀면서 김인태를 압박했다. 마치 2002년도의 압박수비라도 재현하듯.
김인태가 백윤지를 쳐다봤다가 일갈했다.
“병사들 보급용인 5중날 면도기를…….”
“밀지마! 어디 감히…….”
같잖은 질문에 밀려온 짜증을 딴소리로 푼 것이었다.
끽해야 서른 즈음 된 나이대.
그것도 여자.
뺨이라도 갈기고 싶었지만, 잠깐만 참으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5미터만 돌아가면 주차장이 나올 것이었다.
그러나 웬걸.
차가 없었다.
김인태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주변을 돌아봤다.
‘이런 니미!’
짜증이 치달을 무렵.
백윤지는 몇 번을 보면서 외워둔 질문을 이어 갔다.
“사단장으로 지내셨을 때는 훈련 중이던 부사관이 사타구니 살 쓸림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아 쫌! 조용하세요!”
“후보자님, 당시 부사관은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해서 허벅지 안쪽에 화상자국 같은 상처가…….”
주차장을 허둥지둥 뒤지던 김인태가 마침내 주차 관리소 쪽으로 향했다.
백윤지가 붙잡듯이 집요하게 마이크를 디밀었다.
“후보자님! 이런 일련의 의혹에 대해서…….”
“나 참 진짜!”
“야간에는 암구호도 없이 아내 분 승용차로 부대 출입을…….”
“증거 있어?!”
“의혹 제보입니다, 후보자님. 야간에 암구호 없이…….”
반복된 질문에 눈을 부라렸던 김인태가 드디어 주차 관리소 앞에 섰다.
탕탕탕-
거칠게 문을 치자, 제복 차림의 나이 든 노인이 눈을 껌벅거렸다.
“무슨 일이세요?”
“0915그랜저 어디 갔어?!”
“무슨…… 아! 그거 빼놓으래서 빼놨잖습니까?”
“내가 언제…… 니미!”
김인태가 욕설을 뱉었고, 백윤지는 눈을 반짝였다.
욕설 한 마디를 녹음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윤수혁이 수를 써서 차를 치워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 잔머리.’
작게 감탄했던 백윤지가 얼른 움직였다.
김인태를 가로 막듯 서서 다시금 질문을 퍼붓는 것이었다.
“후보자님! 야간에 암구호…….”
김인태의 이마에 핏줄이 불뚝 튀어나왔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이었다.
위장 전입과 자녀 취업 특혜에 관해 숱하게 연습했던 토의가 우스워질 수준이 아닌가?
마침내 김인태가 벌컥 입을 열었다.
“몰라, 이 년아! 좆도 모르는 년이 무슨 암구호야?! 저리 안 가!”
“야간에 암구호 없이 출입한 거 인정하시는 겁니까?”
“맞으면 뭐 어쩔 거야?!”
마침 주차장에 사람은 없었다.
어물쩍 나와 있던 관리인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었다.
김인태가 과격하게 백윤지를 밀치고 정문에 서 있는 차로 다가갔다.
그 순간에도 백윤지는 끝까지 암구호를 입에 담았다.
그리고 마침내.
김인태의 화가 폭발했다.
차 문이 잠겨 있었다.
차 키는 보란 듯이 운전석에 있었고.
청문회를 준비하고, 기자들에게 시달리며, 온갖 술자리와 모임 따위에 다니며 쌓였던 스트레스가 그의 목구멍에서 토해졌다.
“이런 여엄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