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22. 결국에 (3)
2013년 2월 말.
국방위원회 회의실.
3당의 협의 불발로 상임위 회의가 정회 중인 상황.
나는 쉬면서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결국 터졌다.
[새한국당 장세룡계 탈당하나?]
[새한국당 분당 코앞…… 진성 보수의 재결집 선언]
[신민주, “새한국당 계파 싸움으로 내분하더니 분당?, 보수 재결집 아닌 편 가르기에 불과.”]
[새정치당 대변인, “새한국당 분당 눈여겨 보고 있어, 혁신정부 구성에 차질 없도록 여당으로서 만반의 준비해.”]
주요 일간지의 헤드라인.
이미 아침에 속보까지 떴던 내용이었다.
지금은 논설위원이나 논설주간 같은 이들이 칼럼으로 한 꼭지를 채워 넣고 있었다.
덕분에 대통령 취임식 기사가 하루 만에 지워졌다.
헌정 역사상 최초의 보수 정당 분당 소식 때문이었다.
조금 이르지 않았나 싶었다.
이목을 집중시킨 것까지는 괜찮아보였지만, 시기가 적절해 보이진 못했다.
일단 탈당 핑계를 대기도 그렇고, 창당의 기회를 잡기에도 좀 그랬다.
공천 시기가 아니었다.
지방선거도, 총선도 나중이었고.
있는 거라곤 4.24 재보궐 선거가 전부였다.
아무래도 분당의 이유는 따로 있지 않을까?
신경배 의원과 장세룡 의원의 반목.
그리고 장 의원의 욕망.
그 외에도 많은 것을 고려했겠지마는, 그 두 가지가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실세들의 모임인 월요회에도 적(籍)을 둔 신 의원이 분당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었다.
장 의원만 쳐 내면 당권을 온전히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조성현을 비대위원장에 앉힌 것도 왠지 그런 이유가 반영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던 무렵.
카톡이 왔다.
[간사 합의 불발났습니다, 표결 준비해야 될 것 같습니다.]
새한국당 국방위 간사의 단체 카톡이었다.
합의 실패를 알리는 내용.
그것도 국방부 장관의 인사청문회 적격 의견서 채택이 아니라, 실시 계획 단계의 의견 불일치였다.
으레 그러듯 여당은 찬성하고, 야당은 반대하는 기싸움.
그게 벌어지는 중이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국방위 위원장 임청학 의원이 문가를 쳐다봤다.
나갔던 간사들과 새정치당의 의원이 들어오고 있었다.
“의석을 정돈해 주십시오,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
땅, 땅, 땅.
타봉 소리가 울리고 임 의원이 특유의 작은 눈으로 회의실을 둘러봤다.
그의 눈빛에서 약간의 떨떠름함이 비쳤다.
“……퇴장하셨던 위원님들이 아직 안 들어오셨습니다.”
원래 회의 중에 의원들이 개인 사정 때문에 들어오거나 나가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의견서 채택을 거부하고,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며 회의실을 나간 것이었다.
덕분에 의결을 위한 의결정족수인 9석에 못 미쳤다.
그래도 그건 해결될 것이었다.
불참했던 우리 측 의원이 뛰어 오고 있을 테니까.
이윽고 임 의원이 말을 이었다.
“혹시 인사청문계획서 의결과 관련해서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쓰리스타 출신의 이왕호 위원이 짧게 손을 들었다.
“존경하는 이왕호 위원님, 발언하시기 바랍니다.”
“불참 위원 오고 있으니, 표결 이대로 진행하실 거지요?”
“그건 아직…….”
“어차피 청문회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청문요청서 기간도 있고. 또 의혹이 있고, 의심 가는 게 있으면 청문회에서 풀어야지 시작도 못하게 퇴장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저 말은 신경배파의 입장이었다.
임시 의총에서 신 의원이 비슷한 어감으로 저런 말을 했었다.
내게도 제1야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자며, 청문회에서 활약을 보여 달라는 단체 문자를 보냈었다.
그 말의 숨은 뜻은 일단 청문회를 진행하라는 뜻이었다.
초두(初頭)부터 삐끗하지 말라는 의미.
아무래도 신 의원이 월요회나 청와대, 새정치당과 이런저런 약속을 주고받은 모양이었다.
원래의 야당이라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게 기본이지 않은가?
좋든 나쁘든, 일단 반대하고 보는 게 바로 야당의 뭐 같은 행태였고, 그건 꼰대 같은 원로들이 더욱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신 의원은 내부 단속을 하고 있었다.
임시의총에서 했던 모두발언이나 의원들에게 보낸 단체문자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 편이나 중도에 있는 의원들을 사근사근 챙기는 것이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탈당과 분당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몇 명이나 빠져나가는지 확정된 게 없었으니.
그렇게 잡생각을 하는 사이.
다시금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우웅- 우웅- 우웅-
전화벨인가 싶을 정도로 연속적인 떨림.
화면을 보는 순간.
확 깨달았다.
불참했던 두 명의 의원은 국방위 회의실로 오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 올 수 없었다.
지금 나오는 영상에 그들의 얼굴이 있었으니까.
***
국회 의원회관.
- ……우리 쪽으로 줄을 세워야 돼요, 장세룡 라인을 박살을 내야…….
딸칵.
마우스의 클릭 소리에 녹음 파일 안의 목소리가 멈췄다.
기자들이 질문을 꾹 참고 바라보는 사이, 단상에 서 있던 장세룡이 입을 열었다.
“이렇듯 신경배 의원은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저를 포함한 일부 의원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 했습니다. 23명의 고발 사태와 기소, 최근 상임위 사보임 조치까지.”
잠깐 말을 멈췄던 장세룡이 기자들을 둘러봤다.
“전부 신경배 의원이 관여하였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한국당은 신경배 의원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찰칵- 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다시금 터져 나왔고, 장세룡은 연설대에 놓인 원고를 진득하게 바라본 뒤 입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함께 해 주셨던 당원동지 여러분! 저희는 신경배와 그의 잔당들이 벌인 부당한 행위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정작용을 위해 애쓰던 23명의 의원들이 그의 수족과 같은 조성현에게 고발을 당했고, 오히려 행동에 제약을 받았습니다. 이게 과연 올바른 정당 정치입니까? 이는 명백한 신경배 계파의 독재입니다. 중상모략과 음험한 작당까지…….”
장세룡이 완급 조절을 해 가며 힘 있는 목소리로 원고를 낭독했다.
신경배와 조성현, 그리고 내부에서 벌어졌던 논쟁과 싸움.
그런 것들이 줄줄이 장세룡의 입에서 나왔다.
약 2분.
원고 낭독 끝에 장세룡이 좌우의 의원들을 한 차례 바라봤다.
“국회 창립 이래 이어져온 보수의 전통을 이어 가고, 진정한 보수와 새로운 보수의 결집을 위해서…… 장세룡 외 28명의 의원들은 탈당과 창당을 선언합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장세룡은 단단한 얼굴로 기자들의 렌즈를 바라봤다.
이만하면 성공적인 결과였다.
조금은 과격하고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효율적이었다.
순식간에 당권을 움켜쥐게 되지 않았던가?
비록 29명의 적은 숫자지만, 숫자만큼 정치력이나 세력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새정치당이 생기고, 새한국당은 여당 자리를 뺏긴 상태여서 적절하게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원내 협상이 중요한 능력이 되겠지만, 그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자금줄로 불리는 사학재단과 기업이 그의 등 뒤에 있었다.
신경배처럼 정치욕에 눈에 먼 게 아니라면, 대부분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경청이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군의원을 시작으로 연줄이 닿는 기초의원들과 지방단체장, 고위 당직자들도 곧 합류할 예정이었다.
이미 적잖게 넘어오기도 했고.
이윽고 탈당 선언문과 창당 개요를 받은 기자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
337호 의원실 개인 사무실.
“나는 자네만 믿네.”
중년의 예결특위 위원이 내 양손을 꼭 붙잡았다.
그에게 나직하게 대꾸해 주었다.
“염려 놓으십시오, 의원님. 사학재단 등에 업었다고 감히 국회를 좌지우지 하겠습니까?”
“장 의원, 우리 당 자금 대던 사람이야. 자네도 알지 않는가?”
“저도 이미 당비 납부 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도, 총선도 모자람 없을 겁니다.”
“그래, 그 말이 듣고 싶었어. 고맙네, 윤 의원.”
“아닙니다, 들어가십시오.”
“그래, 가보겠네.”
예결특위 위원이 돌아갔다.
오늘만 해도 이렇게 찾아온 이가 두어 명은 더 있었다.
전화와 문자로 안부를 묻는 듯 의견을 구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열손가락을 다 써야 했다.
내가 설득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조금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당장 나간 의원만 29명.
도지사와 시장들까지 움직이고 있었으니,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장 의원이 보통 인물이 아니니까.
그러나저러나, 나로서는 웃음만 나왔다.
알아서들 나갔다.
장 의원을 비롯한 친김계 잔존 세력과 장세룡계들 다수.
아직 남아 있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었다.
묘하게도 내 기억과 비슷하니 실소가 쉬이 멈추질 않았다.
비록 시기가 4년 정도 앞당겨 졌고,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 버렸지만.
탈당과 창당.
2, 30여명의 숫자.
보수신당이라는 비슷한 가칭까지 닮았다.
결국 사람 생각이란 게 다 비슷한 건지, 아니면 세상사가 이렇게 굴러가는 건지.
웃겼다.
그렇게 속으로 웃음을 흘리는 사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박민표 보좌관입니다.”
“들어오세요.”
“네, 의원님.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말씀하셨던 이슈 있잖습니까?”
그러면서 내민 보고서.
“미흡하지만 화제성과 가능성을 고려해서 몇 개 준비했습니다.”
그 말에 보고서를 쳐다봤고, 최근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발 사태를 덮을 만한 것.
그걸 가져온 것이었다.
이윽고 보고서 표지를 넘긴 순간
“……!”
첫 장부터 눈에 확 들어왔다.
확실히 언론과 여론의 시선을 끌어모을 만했다.
[기부 혹은 공공사업 추진]
[액수 : 500억 원]
두 줄만 보고도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 숫자는 의원님 의견에 맞춰 조절할 생각입니다.”
“꼭 조절 해야죠.”
어떻게 번 돈인가?
대화투자자문회사 직원들에게 예측 보고서까지 받아서, 모자란 기억을 헤집으며 번 돈이었다.
혜택주를 찾고, 옵션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면서.
이제는 그 짓도 힘들었다.
대통령이 바뀌었고, 여야가 바뀌었다. 새 정부 이전에 추진한 것도 없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세계라는 무대가 있긴 하지만.
나는 뒤처리나 술상무, 심부름 등을 하던 음지의 간부에 불과했다. 아는 거라곤 대강의 국제 정세 뿐.
간혹 수입이 되기도 하고, 대화투자자문에서 쏠쏠하게 이익을 뽑긴 하지만 그게 다 였다.
더욱이 내 목적은 돈이 아닌 정치판인 만큼, 집중할 여력도 없었다.
모든 게 바뀌었다.
더구나 내 자산의 30퍼센트 이상은 부동산에 근거한 것들이었다.
제주 신공항 후보지와 군소 관광지 인근 부지.
마포 망원동 상가거리.
경주시 황남동.
그 외에도 지역구 토목사업이 반영될 공공시설 인근 땅들을 알맹이 부분만 파먹듯 매입했었다.
평균 10배 이상 땅값이 뛸 곳들이고, 그 중에는 3, 40배가 우스울 정도로 뻥튀기되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더 이상 아는 게 없었다.
그렇게 모은 재산이 3,300억을 조금 웃도는 수준.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비트코인이 있다는 점이었다.
인사청문회를 할 것도 아니어서 시세를 감추고, 최초 투자금인 6,000여만 원만 드러낸 상태로 내 돈은 잠자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묻어 둘 예정이었다.
최초에 매입할 때 최대 물량을 매입한 것 때문인지, 비트코인 값이 생각보다 안 올라서 꺼내 쓰기가 아까웠다.
지금 즈음이면 몇만 원은 되어야 할 텐데, 1BTC가 9천 원에 불과했다.
그사이, 박 보좌관이 태연하게 말을 뱉었다.
“사실 보고서 예시라서 1,000억이라고 적으려다가 현실성을 고려해서 좀 낮췄습니다.”
“남의 돈이라고 쉽게 쓰시는군요.”
박 보좌관이 머쓱하다는 미소만 지었다.
왠지 미안함이나 겸연쩍은 웃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모습.
뭐가 더 있나 싶었는데.
다음 방안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결혼이요?”
“네, 원내에서 미혼이며 결혼적령기이신 몇 안 되는 국회의원이신 데다가, 최연소 의원이십니다. 결혼만큼 좋은 화젯거리가 있을까요?”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 부연 설명.
“……확실히 효과는 좋겠네요.”
화제성은 좋으리라.
현직 국회의원의 결혼은 보기 희귀한 것이었다.
19대 국회의원 평균연령이 53.9세인 것을 감안하면, 결혼적령기의 나 보다는 차라리 황혼 이혼과 재혼이 더 보기 쉬울지도 몰랐다.
그래도 여유가 없진 않았다.
마침 장 의원이나 친김계도 전부 탈당하고 창당까지 선언했으니.
이성에 관심을 가질 틈이 조금은 생겼다.
다만 여자가 없었다.
연락해 오는 결혼정보업체가 있긴 했지만, 거기엔 내가 원하는 여자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이상형은 따로 있었다.
그때, 내 눈치를 보고 있던 것인지 박 보좌관이 슬그머니 물어 왔다.
“실례지만, 혹시 의원님의 연인이 따로…….”
“아뇨.”
“죄송합니다, 아니면 썸은…….”
“아뇨.”
칼같이 자르자 그제야 박 보좌관이 겸연쩍은 웃음을 흘렸다.
“흐흐흠, 아, 이것도 일단 결혼 발표나 약혼 발표 정도로…….”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박 보좌관의 말을 일축하면서 넘겨다 본 마지막 방안.
“……이게 제일 쉽군요.”
“그래서 마지막에 넣었습니다. 의안 준비도 다 했습니다. 발표 시기는 장관 인선 마무리 즈음으로 보는데, 어떠십니까?”
“마무리 말고, 중간에 후보자 낙마 했을 때로 갑시다.”
“낙마라면, 누구를 예상하시는지……?”
능청스럽던 박 보좌관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어 왔다.
방금 전까지는 1,000억과 결혼 같은 걸 입에 담더니, 장관 낙마는 말하기가 꺼려진 모양이었다.
나는 옅은 웃음을 지우고 대답했다.
“당연히 국방부 장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