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22. 결국에 (1)
“옆에 분은 누구…….”
일식집 예약룸으로 들어오던 형이 멈칫했다.
내 옆에 있는 키 큰 장년의 사내, 주 변호사를 보고 그러는 것이었다.
“이분은 주병철 변호사님, 내 일 도와주시는 분. 일단 앉자.”
“아, 안녕하세요.”
형이 주 변호사와 짧게 인사를 나눴고, 맞은편의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윽고 주 변호사를 흘깃 본 형이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약간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나만 있으면 모르겠지만, 주 변호사까지 대동했으니 그런 모양일 것이었다.
아니면 찔리는 게 너무 많거나.
“음식 나왔으니까, 먹고 얘기하자.”
당장 다그칠 필요는 없었다.
이왕이면 가족이니 부드럽게 진행하고 싶었고.
다행히 형은 군말 없이 젓가락을 쥐었다.
그렇게 요리를 먹은 뒤.
참기 힘든 듯 형의 입이 먼저 열렸다.
“야, 이제 말 좀 해라. 뭔데?”
내심 짐작하는 건가?
형의 시선이 약간 불안한 듯 보였다.
하긴 나보다 머리는 잘 돌아갔으니, 지금의 상황을 짐작하긴 할 것이었다.
변호사와 나, 그리고 형.
이 셋이 모여서 나올 얘기는 한정적이었다.
나는 형의 물음에 나직하게 되물었다.
“형이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
“뭐?”
모르는 척하는 건가?
나는 최근의 일부터 얘기를 꺼냈다.
“차장 월급 세후 350. 이번에 유럽여행 다녀온 건 3박4일에 290만 원짜리잖아. 어떻게 감당했어?”
형의 인상이 구겨졌다.
내 말의 저의를 확실히 알아들은 것일 터였다.
내가 자신을 조사했고, 취한 이익이 부정한 방법이라고 의심하는 것까지.
애초에 멍청한 인간은 아니었다.
형의 입이 비틀리듯 열렸다.
“야, 너…….”
형이 말하려다가 변호사를 의식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인상만 팍 쓸 뿐.
“말 못해?”
“네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잘못한 거 털어놔.”
“이게 진짜…….”
“가족 때문에 낙마하는 정치인 많이 봤어, 나는 그렇게 될 생각 없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적당히 긴장을 주고, 원하는 얘기나 듣고 싶었다.
사과를 바라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형의 입에서는 탐탁지 않은 말이 나올 것 같았다.
“너 진짜…….”
뒤에 딸려 나올 말이 쌍소리였나?
형이 주 변호사를 의식한 듯 말을 흐려서 내가 뒷말을 이어 주었다.
“할 말 있으면 다 해, 말 바깥으로 안 새니까.”
주 변호사는 대화투자자문 설립 때부터 최근 주식 운용까지 법률 자문을 도와준 베테랑이었다.
무엇보다 안 고문의 연줄로 소개 받은, 뒤처리에 능숙한 이였고.
나는 아직 닫혀 있는 형의 입을 보며 말을 이었다.
“고위직 친인척 특혜는 고위직 당사자 비리랑 비슷하게 다뤄지는 거 알아? 둘 중에 누가 됐든 크게 다친다는 뜻이야.”
“적당히 해라.”
“형이 타고 다니는 법인 체어맨, 그거 임원 전용이지?”
내 말에 형이 눈을 홉떴다.
“그래서 어쩌라고?”
가당치도 않은 말.
나도 말투를 차갑게 바꿨다.
“곱게 대해 줄 때 대답 똑바로 해.”
“지랄하지 마, 국회의원되면 위아래도 없냐? 너나 똑바로…….”
탁-
형이 주절대기에 젓가락을 내려놨다.
반성의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잘못을 잘못인지 모르는 게 아닐까?
말이 끊어진 형을 똑바로 쳐다봤다.
형이니, 동생이니 놀았던 건 애저녁의 일이었다.
더 이상 봐줄 가치가 없었다.
“그만.”
“뭐? 너 이 개…….”
“입 다물고 끝까지 들어. 내가 동생이니까 스끼다시 깔아 놓고 대화하는 거지, 남이었으면 취조실에서 손가락이나 빨았어. 핏줄인 걸 다행으로 여겨.”
“……!”
형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뭔가를 쏟아 내려는 듯한 차례 울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나보다 머리는 좋았던 형이었다.
최소한 지금 당장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 정도는 했으리라.
“세무서에서 조사관 한 명만 나와도 형이 받은 특혜 까발려지는 거 시간문제야. 받은 거, 받을 거, 준 것도 다 털어 내고 앞으로도 그런 일 없게 해.”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은 듯 떨리는 형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수도승처럼 살라는 뜻은 아니야, 형이 살 길은 열어 둘거야. 부족하지 않게, 충분하게. 근데 선 넘으면…… 끝이야. 알지?”
내가 말을 마치고 물컵을 쥐는 순간.
형이 벌떡 일어났다.
화가 담겼으나 아무 말도 못하는 얼굴.
나는 몸을 돌리는 형의 뒤통수에 남은 말을 던져 줬다.
“오늘 말 잘 기억해.”
탕-
장지문이 거칠게 열리고, 형이 룸을 나갔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 무렵, 직원이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나는 한마디도 못한 변호사를 쳐다봤다.
“남은 일은 맡아서 처리해 주세요. 가능하시죠?”
“물론입니다.”
주 변호사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이미 이런 일은 수두룩하게 겪은 시원한 말투였다.
이미 의심쩍은 상황도 파악한 상태였고, 방금 나눈 대화로 형이 한 짓과 할 짓도 대강이나마 추측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냉수로 입가심을 하고 말을 이었다.
“결과 보고만 잘 해 주세요.”
* * *
2013년 2월 4일, 국회 본회의장.
한 차례의 본회의만 열린 312회 국회가 끝났고, 제313회 국회 임시회 개회식이 거행되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야 동료 의원 여러분! 새해가 밝은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의장석에 선 국회의장이 개회사를 낭독했고, 새정부 출범에 대한 조언과 국회의 협치를 언급하며 3분 만에 개회사를 마무리 지었다.
“……국회가 효율적이고 원만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여야 모두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국회의장이 고개를 숙인 뒤.
옆에 마련된 작은 단상에서 의사국장이 마이크에 입을 댔다.
“이상으로 제313회 국회 임시회 개회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12분밖에 걸리지 않은 형식적인 개회식이 끝나고.
자리했던 258명의 국회의원이 몸을 일으켰다.
본회의장 입구.
최고위원이었던 3선의 우성효가 피켓을 들었다.
[파벌 정치 물러가라!]
B4용지 크기의 빨간색 바탕, 흰색 글자.
급조된 디자인.
우성효에 이어서 십여 명의 의원들이 피켓을 들었다.
마치 투쟁가라도 된 듯.
결연한 표정까지 지은 그들이 나오는 의원들을 쳐다봤다.
동시에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피켓을 바라보는 의원들의 표정을 담기 위해서였다.
그 와중에 조성현의 등장.
“조성현 의원님!”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의원님! 고발사태가 파벌 싸움의 희생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 대선 후보인 김정환 의원의 흔적 지우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 정부의 엑스맨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기자들이 몰아치듯 질문했고, 플래시가 터졌다.
몇 걸음 걷던 조성현이 결국 우뚝 서서 입을 열었다.
“저는 증거를 입수했기에 고발했을 뿐이고, 고발당한 사람들은 혐의가 있다면 벌을 받으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오로지 초계파와 당 쇄신을 위해 힘이 닿는 데까지 일할 겁니다.”
조성현의 말투가 단단했다.
당 내에 신경배파와 중도세력이라는 은근한 지지세력이 생기고, 여론의 옹호가 생기자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계파가 아니라 당을 부수는 거겠지!”
“우릴 전부 탈당이라도 시키겠다는 거야, 뭐야?!”
피켓을 들던 의원들이 소리쳤고, 조성현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리를 떴다.
며칠 뒤.
4대 일간지 중 정치면 한 꼭지에 새한국당의 얘기가 실렸다.
[새한국당 계파 싸움, 탈당설까지 나오나?]
국방위 현안 보고를 위해 모였던 의원 중 하나가 친김계를 흘깃 바라봤다.
“진짜로 나가?”
“야, 박 의원…….”
친김계 의원이 콧바람을 뿜더니 불편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너 같은 인간들이 구경하니까 탈당 소리 나오는 거 아냐, 힘 실어 주지도 못할 망정.”
“내가 실어 줄 힘이 어디 있어?”
동갑내기인 두 의원의 대화에 윤수혁이 피식 웃었다.
‘힘이 있어도 못하겠지.’
수사대상에 포함되는 것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었다.
괜히 비리를 언급해서 연루되고, 오점을 남겼다가는 공천 심사 과정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게 아니면 먼지를 털다가 닦아내지 못한 오물까지 드러날 수도 있었다.
평범한 시민도 주소지 불법 이전, 다운 계약서 작성, 사문서 위조 등등의 자잘한 범죄를 저지르는데 하물며 국회의원은?
드러나지만 않았지, 제대로 파면 걷잡기 힘들 것이었다.
윤수혁의 생각이 길어지려던 찰나.
우우우웅-
스마트폰 진동이 급하게 울렸다.
윤수혁이 연달아 오는 카톡을 확인하기 위해 화면을 터치했다.
그사이, 카메라를 점검하던 기자들과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보좌진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성효 의원 유흥업소 이용해…… ]
[우성효 의원 건배사에서 성적 비속어 사용해, 단어는…… ]
채 끝까지 읽지도 않고, 윤수혁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친김계 의원을 쳐다봤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23명을 이끄는 수장이 우성효였다.
친김계 의원이 벌떡 일어나서 회의실을 나갔고, 기자 몇이 급하게 그를 따라갔다.
그 와중에 윤수혁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어려 있었다.
우성효의 유흥업소 이용은 자신이 내준 리스트에 있던 것이었다.
정확하게는 성매매 의혹.
그러나 업소 마담이나 출장 여성의 증언이 아니고서는 성매매 여부를 알 수 없어서 기소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많은 고위직의 손을 탄 그녀들이 입을 열리 없었다.
이미 우수한 변호사도 선임했을 것이고.
윤수혁은 곧 미소를 지웠다.
‘이러면 이득 보는 건…… 대통령 당선자인가?’
이튿날 아침.
비대위원회 임시회의.
“그래서 대국민사과라도 하라는 겁니까?!”
우성효가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 있던 비대위원들이 움찔했고, 가장자리의 참관석에 앉아 있던 국회의원들도 주춤했다.
“이봐요, 술집에서 술 좀 먹은 게 잘못입니까?”
“술자리에서의 발언은 도덕적으로 충분히 지적받을…….”
비대위원 하나가 대꾸하자, 우성효가 칼같이 받아쳤다.
“거기가 무슨 자린 줄 알고?! 김정환 의원님도 계셨던 자리예요! 입조심 하세요!”
그 말에 참관 중인 의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잠깐 조용해진 틈.
우성효가 말을 이었다.
“국회도 아니고 밖에서 술 먹다 나온 말 가지고 드럽게 질질 끄네. 건배사에 빠구리 잘치자고…….”
“우성효 의원님!”
지켜보고 있던 조성현이 맥을 잘랐다.
“말조심 하세요, 비대위 임시회의 자립니다.”
“당신은 말꼬리나 잡지마, 내가 지금 여기서 건배사 외쳤어?”
그 말에 나이 지긋한 외부인사 하나가 목청을 돋웠다.
“어허, 말씀 중에 당신이 뭡니까?”
“같은 3선끼리 당신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걸로 트집을 잡아요?”
이번에는 장세룡계 비대위원이 받아쳤다.
조성현을 기점으로 좌우로 나눠 앉은 이들이 서로 혀를 차고, 따가운 말을 뱉어댔다.
듣고 있던 우성효가 눈살을 찌푸렸다.
“초계파라더니 아주 편을 갈라 놓으셨어. 아니지, 신경배한테 붙어먹었지?”
노골적인 비아냥.
조성현이 인상을 구겼고, 다른 비대위원들이 삿대질을 했다.
언성이 높아질 무렵, 조성현이 굳은 어조로 말했다.
“임시회의 방해는 윤리위 제소 대상입니다.”
“제소하면 우리가 가만있을 거 같아?”
‘우리‘라는 말에 참관석의 의원들도 눈에 힘을 줬다.
23명 의원 중 일부였다.
“진짜 보수 파탄나는 꼴 보기 싫으면, 당신 사퇴하고, 비대위 싹 갈아엎어야 될 거요. 사달 나는 꼴 보기 싫으면.”
말을 마친 우성효가 훌쩍 일어났다.
그러고선 뒤도 안 돌아보고 회의실을 나갔고, 장세룡계 비대위원들과 참관석의 의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저……!”
비대위원들이 손가락질을 했다.
그중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조성현은 이를 꽉 물었다.
‘믿는 구석이 뭐야…… 정말 분당(分黨)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마침 수사대상인 의원도 23명.
원내 교섭단체를 충족하는 20인을 넘기는 숫자였다.
더구나 수사대상에는 초재선을 비롯해 3선과 4선의 연륜 있는 의원들도 있었다.
분당이나 새로운 교섭단체 구성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쉽게 내뱉을 수 없는 단어였다.
헌정 사상 유례 없던 일.
그게 보수 정당의 분당이었다.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을 떠올리면서, 조성현도 회의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