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21. 폭풍 (2)
2012년 12월 25일 늦은 밤.
마침내 어머니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제주의 진풍경 때문이었다.
밤이긴 했으나, 눈앞에 펼쳐진 건 공항 인근에서 본 야자수와 키 작은 건물과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마치 미용잡지에 나올 법한 풍광.
바다와 빽빽한 나무, 세련되고 깔끔한 독채 리조트까지.
1박에 1,000만 원짜리였다.
그것도 400평이 넘는 정원과 100여 평의 연면적을 자랑하는, 네덜란드에서 온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었다.
제주도에 땅을 사고, 상가까지 지어 올린 나도 몰랐던 곳이었고.
“……어머, 어머, 어쩜 이래? 어떻게 이러니? 너무 아름답다.”
놀란 어머니가 옆자리의 아버지 대신 내 좌석의 등받이를 쳐가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뒤를 돌아보자, 입이 벌어진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남 사모님 소리 좀 들었다던 어머니의 넋 나간 모습에 웃음이 일었다.
담담한 척하던 아버지도 어느새 힘이 들어간 눈으로 리조트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효도 여행 한 번 보낸 적이 없었다.
내가 효자가 아니라 신경을 덜 쓰기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들 노릇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았다.
그저 돈만 줬었다.
알아서들 쓰시라고, 연회비 200만원의 VVVIP용 국내 신용카드를 하나씩 줬었다.
그래선지, 어머니는 이 리조트로 오는 내내 크게 놀랐던 것 같지 않았다.
김포공항 주차장에서 귀빈실로 곧장 이어지는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도, 귀빈실에서 의전팀의 의전을 받고, 칸막이가 쳐진 비즈니스 석에서 기장의 인사를 받았을 때도.
어머니는 ‘어머’하는 감탄만 몇 번 내고 말았었다.
놀란 건 지금이었다.
자연, 야경 등등.
내가 봐도 근사하긴 했다.
주변에 거슬릴 만한 민가도 하나 없었고, 빽빽한 나무와 바다만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리조트 전경도 멋졌다.
기사 숙소까지 딸린 독채 건물은 한라산의 곡선과 맞물려 있었고, 정원 내에 깔린 잔디와 평평한 현무암, 각종 나무와 분수대가 그림처럼 꾸며져 있었다.
박 보좌관이 추천해 준 몇 군데 중에 한 곳을 골랐는데, 생각 외로 좋았다.
국내 탑 연예인들이 온다더니.
이윽고 차가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세 명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세 사람의 고개가 숙어졌다.
“안녕하십니까, 블루아워제이 총 책임자 고주완 전무입니다. 저희 제주 블루아워제이를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곧 체크인과 체크아웃, 그 외의 예약 사항에 관한 설명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뒤에 시립해 있던 직원 둘은 어느새 기사와 함께 짐을 내리며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책임자는 곧바로 우리 가족을 리조트 안으로 안내했다.
아주 깔끔했다.
회백색의 대리석이 주였고, 까만 조명이 눈에 띄게 설치되어 있었다.
이내 책임자가 설명을 시작했다.
몇 개의 방, 바비큐장, 수영장, 자쿠지, 사우나, 스크린 골프장 등등.
능숙한 설명 끝에 책임자가 내게 고개 숙였다.
“리조트 이용 중, 혹은 개인적으로 필요하실 때 연락 주십시오.”
어느새 그가 내민 손에 명함이 들려 있었다.
개인 사무실 번호와 이메일, 개인 휴대전화 번호까지 기재된 영업용 명함.
예약할 때 국회의원 신분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나온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유권자용 명함을 건네고, 악수를 나눴다.
“고맙습니다, 전무님.”
그가 명함을 확인한 뒤, 다 안다는 듯 빙긋 웃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사이, 제주에서 회장님들 운전대를 잡았다던 운전기사는 부모님에게 방에서 대기하겠다고 말한 뒤 조용히 사라졌다.
“……근사하네, 숙박 비용이 얼마냐?”
아버지가 스크린 골프장에서 나오며 말했다.
공기청정기에 매립식 에어컨, 소파와 냉장고 따위가 구비된 것을 낱낱이 확인한 모양이었다.
“천만 원 정도요.”
“천만 원?”
“예.”
“꽤 비싸네, 여기 정액제는 없대? 가끔 와서 쉬면 좋겠는데.”
“책임자한테 말해서 비용 납부해 놓을게요, 어머니하고 종종 쓰세요.”
“얼마나?”
“일단 1년 정도 해 놓을게요.”
단순 계산만 36억, 아버지가 잠깐 놀랐다가 금세 표정을 고쳤다.
“거 사치라고 하진 않겠어?”
“제 영수증 다 까 봐야 나오는 건데요, 그 정도는 괜찮아요.”
“그래,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나는 씻고 자마, 너도 피곤할 텐데 눈 붙여.”
“근데 어머니 모셔 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내 말에 아버지의 시선이 거실 통유리 너머로 향했다.
밤이 내린 정원.
어머니가 그 한가운데서 스마트폰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
잔디 바닥 중간중간에 박힌 금빛의 조명과 분수대에서 나오는 불빛을 맞으면서, 어머니는 세 살배기 어린애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놔둬라, 여사님 흉내 낸다고 네 엄마 고생 많이 했다.”
“저 때문에?”
“그래, 무슨 놈의 대통령도 아니고 초선 의원이 주변 신경을 써도 너무 쓰니…… 뭐, 네가 유명하긴 하다만.”
아버지가 그러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나 먼저 잔다, 네가 엄마 챙겨.”
“예, 주무세요.”
널찍한 소파에 털썩 앉아서, 크리스마스의 밤을 맞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래서 여행도 파투 났나?
뱃지 단 아들이 매번 강조하는 말조심, 행동조심 때문에?
모를 일이었다.
다만 정치판 밑바닥 훑으면서 10년 동안 삭을 대로 삭은 줄 알았던 감정이, 이제 좀 살아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내 사회적인 위치와 돈이 충분해서 그런 것이겠지.
쓴웃음을 지으며 어머니를 바라봤다.
다음 날.
나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부모님이 기사와 함께 집을 나갈 때까지 늦잠을 잤고, 한참 뒤에 일어나서 뜨뜻한 자쿠지에 몸을 담갔었다.
이후에는 미온수가 담긴 25m 짜리 수영장에서 헤엄을 치다가 스크린 골프, 영화 감상과 낮잠 등으로 시간을 때웠고.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
밤이 새까맣게 내리고, 조명이 길을 밝힐쯤에야 부모님이 돌아왔다.
“제주도에는 백화점이 없더라, 외국인용 면세점만 많구. 아들이 놀라고 돈도 줘, 시간도 주는데 놀질 못했어.”
마치 칭얼거리는 듯했으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오래간만의 여행으로 들뜬 모습이었다.
출발 할 때보다 훨씬 밝아 보였고.
“제가 책임자하고 얘기 해놨으니까 자주 쓰세요. 비행기 예약도 전화하면 다 알아서 해 준대요.”
“그래? 그러면 또 와야 되겠네, 미용실 싸모들 다 데리고 와도 되겠지?”
“싸모요?”
“응, 같이 얘기하는 아줌마들. 그 싸모들도 돈 많더라. 근데 맨날 재미도 없는 무슨 미술작품이나 산다고 그래서…… 으휴.”
“그럼 어머니도 사셨어요?”
“내가 그런 걸 왜 사니, 그거 다 합해도 네가 준 카드만 하겠니?”
“흐흐흐, 맞아요.”
“참, 네 형도 여행 보내 줬어?”
“아뇨.”
내가 고개를 젓자,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유럽갔다가 집에 도착했대서.”
“어머니께서 챙겨 주셨어요?”
“아니, 그러니까 물어보는 거지. 네가 돈 줬나 싶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형한테는 직접 돈을 준 적이 없었다.
애초에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내 위에 군림하다시피 한 게 형이었고, 학창시절에는 주먹질도 나누고, 맞는 경우가 많아서 데면데면했었다.
그래도 형은 형이니,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알아서 챙겨 주시라고, 넌지시 말했을 뿐.
“형은 아버지 퇴직한 회사 재직 중인 거 아니에요?”
“응, 거기서 차장님 소리 들어.”
나보다 두 살 많은 형이었다.
고작 서른.
그런데 차장 소리라니?
아버지도 나이 50즈음에 부장으로 퇴직했었다.
“너 형 진급한 것도 몰랐니?”
“……아뇨, 뭐. 근데 언제 진급했대요?”
“한두 달 됐어, 너는 동생이나 되면서 아무리 나랏일이 바빠도 그렇지…… 그렇게 형제끼리 모르면 되니?”
잘은 몰라도 과거에는 이직했었다.
중견기업에서 한 단계 낮은 소기업으로.
거기서 차장을 달았나?
“근데 벌써 진급해요?”
“새로 부서 만들어서 다들 진급하고 그랬대.”
“원래 중소기업은 진급이 오락가락들 해, 소기업은 때만 맞으면 네 나이에도 차장 직함 달어.”
어머니의 말에 이어서 아버지가 끼어들며 대답했다.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데.
어머니가 밍크 목도리를 풀며 말했다.
“여보, 우리 탕에 같이 들어갈까?”
“애 듣는데.”
“쟤가 무슨 애야, 나랏일 돌보는 국회의원인데.”
“……자쿠지 위층에 있어요. 올라가서 말씀들 나누세요.”
내가 끼어들자, 그제야 어머니가 호호, 하는 웃음을 흘리며 올라갔다.
나는 엷은 웃음을 날리고, 소파에 앉아서 까만 하늘과 경계가 맞닿은 제주의 밤바다를 바라봤다.
기분이 오묘했다.
푹 쉬어서 그런가, 부모님의 행복한 모습을 봐서 그런가.
뭔지 모르겠지만, 왠지 저 까만색이 곧 몰려올 폭풍의 전조처럼 보였다.
* * *
2012년 12월 28일.
예산안 합의가 타결 됐다.
3당이 맞물렸음에도 마지막 예정일을 극적으로 지킨 것이었다.
그렇게 본회의장에서 예산안 가결 선포와 함께 3번의 타봉이 이뤄졌을 때.
중앙일간의 케이블 채널 하단에는 빨간 띠가 자막처럼 나타났다.
[속보 - 새한국당 의원 23명 비리 의혹 고발]
녹화 방송 중이던 화면에 나타난 문장.
TV를 보던 시청자들은 ‘속보’라고 나온 문장에 고개를 갸웃했다.
의원들 23명이 고발한 게 뭐 대수라고?
단체로 국회 내에서 피켓 시위하고, 검찰에 고발장 접수하는 건 종종 있던 일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의원 23명이라는 숫자가 많긴 했지만, 그게 속보로 나올 정도인가?
시청자들이 눈을 껌뻑일 무렵.
보도전문채널에서도 데스크의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멘트를 끊었다.
-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새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조성현 의원이 동료 의원 스물세 명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스물세 명의 의원 중에는 전 최고위원인 3선의 우성효 의원과…….
아나운서가 새한국당의 중진을 시작으로 지명도가 있는 의원들의 이름을 줄줄이 불렀다.
“쯧쯧,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 봐라.”
“애초에 뺏찌 단 놈들은 다 감옥 갈 것들이지, 개 같은 것들.”
TV를 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23명이 고발한 게 아니라, 당한 것이었다.
교양프로와 드라마 재방송을 하던 지상파 채널에서도 화면 하단에 속보를 띄웠다.
종합편성채널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의원이 같은 당의 동료, 그것도 23명의 의원을 고발한 건 헌정사상에 없는 초유의 사태였다.
같은 시간.
국회를 나오던 윤수혁도 아는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비대위원장 조성현의 고발 소식을 아느냐고.
“지금 속보가 났습니까?”
윤수혁의 눈이 급하게 조성현을 찾았다.
본회의장 복도에 없었다.
예산안 찬반 투표를 마치고 바로 국회를 나간 것이었다.
그사이, 스마트폰 너머에서는 늙은 목소리 하나가 급하게 넘어왔다.
- 뭐 들은 거 없어요?
“논설위원님, 죄송합니다.”
- 윤 의원도 뭐 없어요?
“예, 의원실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알겠어요, 고생해요.
일간지 논설위원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4급 보좌관 박민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의원님!
“예, 기사 터졌죠? 방으로 가는 중이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난 건지 정리 좀 해 주세요.”
- 말씀 하셨던 게 이게 맞습니까?
“예, 맞아요.”
- 바로 준비해놓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덮을 만한 것도 생각해 보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걸로.”
- 덮는다는 말씀은…….
“예, 이슈도 좋고 가급적 긍정적인 걸로. 이거 질질 끌어 봤자 좋을 거 없잖습니까?”
지금의 속보는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당 내의 썩은 부분을 잘라 내는 올바른 과정이긴 했지만, 여론도 바르다고 치켜세워 주진 않을 것이었다.
부정과 배신.
이런 것들이 부각될 것이었다.
언론사도 광고주나 실세의 입맛대로 멘트를 구성할 것이고.
곧 전화를 끊은 윤수혁이 굳은 얼굴로 걸었다.
‘며칠 정도 빨리 터졌어. 예산안 합의가 해를 넘길 줄 알았는데…….’
새정치당이 움직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뭘 어떻게 했을까?
윤수혁이 걷는 사이.
우우웅-
아직 손에 들려 있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본 윤수혁이 쓰게 웃었다.
[서울동부지검 손기택 차장]
‘…… 당신이 있었지.’
윤수혁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