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61화 (61/191)

# 61

19. 대선 (5)

연석회의가 끝난 뒤.

임시로 꾸려진 비대위원장실을 찾아가자, 조성현 의원이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이렇게 찾아올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요?”

말까지 냉담했다.

나는 개의치 않는 다는 듯 고개 인사를 했다.

“축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이제 가면 되겠네요.”

“의원님.”

서류로 시선을 돌리는 그를 다시 불렀다.

조 의원이 왜 이러는지 알았다.

제대로 대면한 적도, 대화한 적도 없는 사람이 이 정도로 반발심을 가지는 이유는 딱 하나.

이미 언질을 들은 것이었다.

아마도 장 의원한테.

그 인간 밖에 더 있겠는가?

장 의원은 김추완 의원 일로 나를 눈여겨봤을 확률이 컸다.

그 외에도 추대하던 김정환이 낙마하는데 관여하기도 했었고.

아무래도 내게 칼을 들이민 것일 터였다.

장 의원은 이런 상황을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웃으면서 지껄이곤 했었는데.

내가 예상한 이상, 이대로 둘 생각은 없었다.

믿는 칼잡이에게 발등을 찍히게 만들 생각이었다.

아니, 발목이 잘리게 만들어야지.

“안 나가요?”

“장세룡 의원님이 무슨 말씀이라도 하신 겁니까?”

“……!”

그의 표정이 변했다.

차갑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인상까지 찡그려진 것이었다.

“사람 뒤라도 캡니까?”

“저도 듣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 말에 조 의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긴 돈을 그렇게 뿌렸는데, 모를 수가 없겠지요.”

아, 후원금 때문에 그랬나?

그건 가까운 의원들을 구슬리면 일부분 정도는 알아낼 만한 것들이었다.

나는 짐작하면서도 확실히 알기 위해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타인 명의로 후원금 쪼개기 한 거 확인했습니다. 정황상 7,200만원이나 뿌렸던데, 수천 억이나 있으니 더 냈겠죠. 아닙니까?”

후원금 7,200만 원.

그건 일부분이었고, 조 의원이 짐작한 대로 나는 더 많은 후원금을 냈다.

다해서 3억이던가?

오 대표와 안 고문까지 동원했었다.

사적 융통한 것까지 포함하면 그 두 배가 넘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할 생각은 없었다.

“아닙니다.”

“내가 본 게 있어요, 가족 명의로 낸 것도 의원들한테 확인했습니다.”

본 게 있다는 말.

최소한 문건이나 영상을 두 눈으로 봤다는 뜻이었다.

장 의원이 수작을 부린 게 확실해졌다.

의원들 후원금 내역까지 샅샅이 뒤져 가며 자료로 보여 줄 만한 사람은 장 의원 밖에 없었다.

나를 배신자로 찍은 친김계 의원 몇 명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비대위원장 지명과 동시에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그 뿐이었다.

나는 조금 더 굳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럼 가족과 3자 대면이라도 시켜드릴까요? 아니, 아예 선관위에 고발하십시오. 검경 동원해서 수사까지 의뢰하십시오.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되셨으니까 명분까지 있으시네요.”

“이 사람이!”

따박따박 대들자, 조 의원이 벌떡 일어났다.

“물증 없다고 이러는 겁니까? 아니면 내가 넘어갈 것 같아서 그럽니까? 이딴 태도로 나오면 당이 분열하더라도 내가 고발할 겁니다!”

“하십시오. 그리고 장세룡 의원도 고발하십시오.”

단칼에 대답하자, 그가 멈칫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에 장 의원이라는 말.

거기에 반응한 것이었다.

“의원님도 아실 겁니다. 장세룡 의원은 위원장님께서 반대하시는 계파 정치의 핵심 인물입니다. 어디 보통 더럽겠습니까?”

“애매한 말로 넘어갈 생각하지 마세요.”

내 말을 부정하는 듯했지만, 조 의원의 태도가 조금은 바뀌었다.

그도 대충은 예상하고 있을 것이었다.

장 의원이 더러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윽고 조 의원의 입이 다시 열었다.

“하려는 말이 뭡니까?”

마치 털어놓을 게 있으면 말해 보라는 듯, 조 의원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당연히 이번에는 그의 기대에 부응해 줘야 했다.

“논현동 D관광호텔 지하의 유흥주점, 역삼동 H단란주점. 전부 장 의원 단골입니다.”

조 의원이 더 듣겠다는 듯 기다렸다.

벼려졌던 날이 조금씩 칼집에 들어가는 것일까?

“1차로 술을 마시고, 2차로 여자까지 품는 장소입니다.”

“…….”

“일명 풀살롱이라고 하죠.”

그제야 조 의원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증거는 있습니까?”

“있어도 없을 겁니다, 장 의원이 한 일입니다.”

장 의원은 가게를 종종 옮기기도 하고, 가끔은 보도방의 여자를 호텔로 부르기도 했었다.

물증은 없었다.

있어도 논란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없을 확률이 더 컸다.

나는 늦지 않게 말을 이었다.

“대신에 가게 주소, 마담, 바지사장 이름…… 제가 아는 모든 걸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장 의원 말고도 더 있습니다.”

“그…… 풀살롱 출입하는 의원들 말입니까?”

어느새 조 의원의 눈빛이 다음 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풀살롱도 있고, 보도방도 있고, 단순 접대와 떡값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뇌물수수, 흔한 갑질도 다 있습니다.”

내가 아는 장세룡계와 친김계가 저지른 폐단이었다.

의원직 상실형을 받기에는 조금 모자라고 아쉬운 것들로, 형을 선고 받는다고 해도 항소심까지 시간을 끌며 버틸 만한 수준이었다.

더욱이 정확한 물증이 없는 것도 꽤 많았다.

증거가 있고 증언을 구한다고 해도, 그걸 흐지부지하게 만들 만한 인맥까지 있었다.

그래서 여태 모아두기만 했었고, 오늘에서야 입 밖으로 낸 것이었다.

칼잡이가 조성현이라면 말이 달라지니까.

“그걸 다 안단 말입니까?”

“예, 다 압니다.”

아직 칼집에 날이 다 들어가지 않은 듯, 조 의원이 눈매를 좁히며 나를 쳐다봤다.

“그걸로 정보전이라도 해 보려는 겁니까? 후원금 쪼개기를 피하고 협상하려고?

“아닙니다.”

내가 표정을 굳히며 대꾸하자 그의 눈썹이 휘었다.

역시 불의에는 타협하지 않는, 초계파(超系派)를 주창하는 고고한 비주류다웠다.

나는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고발하면 저는 배신자 낙인이 찍히겠죠. 그리고 고발당한 의원들이 의원직을 유지하고, 항소심이 늘어지면, 저는 남은 임기 동안 온갖 제재를 받게 될 겁니다. 한마디로 허수아비가 되겠죠. 지금 그걸 바라시는 겁니까?”

“그래서 정보를 가진 채 보고만 있었다?”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 말씀드린 전부를 위원장님께 드리겠습니다.”

조 의원이 입을 다문 사이, 말을 덧달았다.

“그리고 후원금 쪼개기는 한 적 없습니다. 누구한테 냈으면 좋겠냐고 묻기에 의원들 몇 명 추천해 준 겁니다.”

고심하는 듯, 그가 대답을 툭 뱉었다.

“……됐습니다.”

드디어 칼을 칼집에 다 넣은 걸까?

나는 조심히 말을 덧붙였다.

칼을 넣었으면 이제 조 의원의 손에 도끼를 쥐여 줄 차례였다.

“위원장님.”

장 의원의 발목을 자를 도끼.

“리스트 가져오겠습니다.”

* * *

조성현의 눈매가 좁아졌다.

위원장실을 나갔던 윤수혁이 5분 만에 리스트를 가져온 것이었다.

따로 준비할 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의원실로 돌아가서 자료를 가져온 것이었다.

미리 준비한 게 아니고선 불가능했다.

‘정말 오늘 같은 날을 기다린 건가?’

조성현은 잠깐을 생각하다가 서류 봉투를 받았다.

두꺼웠고, 묵직했다.

상임위 업무를 볼 때마다 보좌관들이 챙겨 주는 서류뭉치 같았다.

봉투를 연 뒤.

“……!”

조성현의 동공이 커졌다.

국회의원이 저지를만한, 그리고 지금까지 자행했던 숱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윤수혁이 한 말이 다 들어 있었다.

폐단, 적폐, 구태 등등.

당장 사실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겠지만, 장소와 인물, 추정 날짜 등등의 구체적인 기록이 증거를 대신하고도 남았다.

조성현은 눈앞에 서 있는 윤수혁을 쳐다봤다.

‘도대체 이게 다 어디서……?’

흥신소라고 이렇게 알아낼 수 있을까?

경찰, 검찰은?

아니, 국정원이라면?

애초에 이게 당사자가 아니고서, 내부자가 아니고서야 알아낼 수 있는 것일까?

조성현은 숱하게 이어진 생각 끝에 결국 물었다.

“이걸 어디서 났습니까?”

장세룡이 서너 명의 위법 증거를 들고 왔을 때도 입을 다물었지만, 이번에는 참지 못한 것이었다.

인간 근원의 호기심.

당연히 말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저절로 묻게 된 것이었다.

윤수혁의 대답도 예상대로였다.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이건……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압니다, 위원장님.”

“그리고 후원금 쪼개기 내역은…… 없던 일로 만들진 않을 겁니다. 의혹이 사라지진 않았으니까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당 내 활동 제약은 물론이고 비대위 차원에서 검찰 고발까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조성현이 입을 다물자, 윤수혁이 가볍게 고개 인사를 했다.

“예, 그럼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 하겠습니다.”

조성현이 대답 후에 시선을 내려서 서류를 확인했다.

문건 두께로 봤을 때, 최소 스무 명 이상의 행태가 기록된 것처럼 보였다.

문서를 살피던 조성현이 움찔했다.

그도 대충은 알았다.

각종 향응과 뇌물, 비리에 연루된 고위공직자의 악습에 대해서.

다만 그걸 조사하는 과정이 쉬운 게 아니었다.

애초에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조사는 사정기관과 다르게 한계가 명확했고, 그런 이유에서 조성현도 장세룡이나 기타 계파 정치의 인물들을 손대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손에 들린 문건이 그가 아는 것 이상으로 너무나 구체적이기 때문이었다.

‘룸살롱 마담 이름하고 몽타주, 말버릇…… 이런 것까지 안단 말이야?’

구체적이었다.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 * *

조 의원에게 그간 잘 정리해 두었던 문건을 넘겨주고,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칼 휘두르는 일은 비대위원장인 그에게 더 적합하니까.

대신에 나는 강북구를 돌았다.

예정된 스케줄이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꽉 찬 탓이었다.

당연히 바쁘지 않은 때가 언제 있겠냐마는.

다름 아닌 연말이었다.

송년 모임, 망년회, 각종 연말 행사 등등이 쌔고 쌘 바로 그 12월.

오늘도 오전에만 지역세무사회와 상공인협회, 무슨 복지단체 등의 송년회에 참석했었다.

축사와 기념사 몇 문장, 찬조금 조금 준비해서.

점심을 먹고 나오자, 구의원 한 명이 얼른 문을 열어 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윤수혁 의원님.”

“제가 고생한 게 있나요.”

“참석해 주셔서 자리 빛내주시는 게 업무 아니시겠습니까?”

거의 60살 즈음된 구의원이 웃으며 말을 붙였다.

그는 요 며칠 내내 나하고 스케줄을 맞추며 움직인 유일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 말고도 새한국당 소속의 구의원들을 몇 명 만났었다.

그들은 다른 행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내게 인사하고, 아부를 하고, 수발들기를 자처했었다.

7인의 구의원들 전부 그렇게 한 번씩은 봤었다.

이 사람처럼 따라붙는 경우는 없었지만.

“담배…… 아, 안 피셨지요? 커피 타올까요?”

자연스레 담배를 꺼내던 구의원이 주춤하며 묻기에 가볍게 웃었다.

“커피 좋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머리가 벗겨지고, 팔다리가 마른 구의원이 잰걸음으로 움직였다.

다시금 픽 웃음이 나왔다.

내가 기초의원 공천권을 가진 강북구을 당협위원장이라서 싹싹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국회의원이니 알아서 행동하겠지만.

금세 내 손에 커피가 쥐어졌다.

‘의원님 드실 커피‘라고 닦달했겠지.

“잘 먹겠습니다.”

“아닙니다, 의원님. 죄송하지만, 저는 담배 한 대 태워도…….”

“그럼요, 여기 흡연구역 아닙니까?”

“으하하, 감사합니다. 젊으신데 아량까지 넓으셔, 정말 감사합니다.”

돼도 않는 아부에 싱긋 웃어 주고, 커피를 홀짝였다.

앞으로 네 군데에 더 가야 했다.

심지어 밤에도 갈 곳이 있었다.

곧 담배를 다 태운 구의원이 몸을 일으켰다.

“의원님, 저는 행사장에 먼저 가서 교통정리 해 놓겠습니다. 천천히 오십시오.”

“너무 과하게 하지 마세요. 누구 닦달하지도 마시고요, 피곤해서 좋을 거 없잖습니까?”

“아아, 네. 현명하십니다. 그러면 조용하게 교통정리 하겠습니다.”

도대체 먼저 가서 뭘 하길래?

궁금하긴 했지만, 웃는 얼굴로 그를 보낸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가야 했다.

어느새 영석이가 지하주창에서 차를 빼서 입구에 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마지막 스케줄이 동창회였다.

드라마나 소설처럼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럴 것 같진 않았다.

몸뚱이는 고등학교 졸업한 지 8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 기억은 거의 20년 전의 것이었다.

친했던 놈들 빼고는 이름과 얼굴조차 가물가물했다.

어차피 오늘 가는 동창회는 아버지뻘 되는 동문들만 득시글대는, 평균연령 50대 이상의 총동창회였다.

장소도 서울 라마다 호텔.

나도 작년부터 동창회비 내기 시작했는데, 무슨 상을 준다고 해서 가는 길이었다.

2012년 올해의 중앙인이던가?

그거 받고 오면 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해가 다 진 뒤에 라마다 호텔에 가서야 알았다.

총동창회에서 헛짓을 했다는 걸.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거 없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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