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59화 (59/191)

# 59

19. 대선 (3)

12월 초.

속보가 터졌다.

방송사는 화면 아랫줄로, 신문사는 온라인 지면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이민수 ‘새정치당’ 창당 선언]

[이민수, “새정치당 만들어 국민 기대 실현할 것.”]

[신민주당 대변인, “이민수 창당은 구시대적 발상, 철새 의원들 데려가 봤자 국민이 외면.”]

이민수의 창당.

새정치 바람과 대선 열풍이 섞여 만든 결과였다.

철새 취급을 받거나 주류에서 밀려나고, 계파 싸움에 등 터지던 의원들이 모두 움찔했다.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현재로선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이가 이민수이기 때문이었다.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가 그랬다.

한국리서치, MBS, 중앙일간 등등에서 조사한 결과, 이민수는 다자구도에서 평균 7퍼센트p 이상 앞섰다.

엄청난 차이였다.

누구나 동요할 만큼.

그 시각, 의원회관.

빈 소회의실에 경제민주화의원연구모임의 일원들이 모였다.

총원 십수 명 중 여섯 명.

대부분이 선거 운동을 위해 지역구에 있을 때여서 이 숫자가 전부였다.

그중 모임의 회장이자 3선 의원인 고일준이 입을 열었다.

“……다들 속보 보셨을 겁니다. 우리도 대책을 좀 논해 봐야겠지요?”

“어떤 대책이요?”

“설마 탈당을…….”

의원 중 하나가 놀란 얼굴로 말하자, 고일준이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 낮추세요.”

사람들을 둘러 본 고일준이 목소리를 이었다.

“지금 교섭단체 기준 충족시키려고, 무소속 의원들하고 신민주당 비주류들 빼간 걸로 압니다. 새한국당에서도 몇 명은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아…….”

“어허…….”

의원 몇이 탄식을 흘렸고, 다른 몇은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내에 소문이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았다.

제 3당 창당의 시기가 도래했고, 물밑에서 의원들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윤수혁도 그중 하나였다.

‘4년이 앞당겨졌지만, 예상 탈당자들은 다행히 거의 그대로인데…….’

생각하던 윤수혁의 시선이 고일준을 향했다.

‘고 의원은 무슨 생각으로 임시 모임을 열었지? 설마…….’

윤수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새정치당 창당 이후, 헌정 사상 최초로 보수 정당이 분당했었다.

그 과정에서 교섭단체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려 스무 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이 새한국당을 탈당했었다.

고일준은 그중 하나였다.

탈당과 분당에 휩쓸려, 새로운 보수 정당의 일인이 됐었다.

그 덕에 당내 비주류가 아닌 주류가 됐고, 국방위 위원장인 임청학과 함께했었다.

윤수혁의 생각이 그렇게 이어지던 무렵, 금세 고일준이 입을 열었다.

“진지하게 생각들 해봅시다. 거기서 더 잘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의원들이 헛기침을 하고 움찔했다.

“내가, 우리가 비주류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더 나은 대접 받고, 떵떵거리자고 이런 말 하는 게 아닙니다.”

이어지는 말에 남은 다섯 명의 시선이 고일준에게 향했다.

“여당 아래서는 의정 활동이 더 수월합니다. 당연하지요?”

“그 말씀이 탈당을…….”

“탈당을 확정하자는 게 아닙니다. 생각만 해 보자는 겁니다. 여기 다섯 분이 동의해 주신다면, 제가 총대를 매볼 생각입니다. 비례는 출당조치 받아 낼 수 있으니, 윤 의원도 생각해 봐요.”

그 말에 다시금 의원들이 옅은 침음을 흘렸다.

그중 윤수혁만이 유일하게 무감정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시선으로 의원들과 고일준을 살핀 윤수혁이 입을 열었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그러세요, 윤 의원.”

고일준이 환영하듯 말하자, 윤수혁이 의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새정치당 영입 리스트를 아십니까?”

의원들이 시선을 들었다.

모른다는 눈빛들.

애초에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이름은 몇 개 없었다.

무소속인 의원들.

혹은 이민수를 옹호하는 의원 한두 명.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알 수 있는 한계였다.

그러나 윤수혁은 그 모든 걸 꿰고 있기라도 한 듯,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신민주당 4선 의원 염상수, 3선 의원 권상태, 노병선, 무소속 3선 의원 김성엽. 그리고 초재선의 신민주당과 무소속 의원이 열 명은 더 있습니다.”

“……!”

“누, 누구라고?!”

자리했던 의원들이 모두 놀란 눈을 해 보였다.

고일준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윤수혁의 입에서 나온 중진급 의원들은 모두 한 계파의 수장들이었다.

윤수혁이 고일준을 바라보면서 조금 더 목소리를 높였다.

“계파 정리가 어떨 것 같습니까? 새정치당은 여당이 돼도 존립 자체가 힘든 집단입니다. 여기 들어가서 정치를 한다고요?”

무덤덤하던 윤수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차라리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활동하는 게 나을 겁니다.”

“자, 잠깐. 그거 확실한가? 자네 입에서 나온 말.”

“그럼 제가 같은 모임 선배 동료 의원 앞에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 정도 뒷감당은 어렵습니다.”

못한다가 아닌 어렵다는 말.

그러나 고일준은 앞서 나온 내용에 정신이 팔려 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 그건 그렇지. 그래도 정보가 틀렸을 수도 있지 않겠어?”

고일준이 묻자, 윤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의원님.”

“어어, 윤 의원.”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실한 정보입니다.”

그 말에 고일준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윤수혁은 다른 네 명의 의원들을 쳐다봤다.

숨죽인 채 대화를 듣던 의원들이 살짝 긴장했다.

상대는 초선이지만, 이미 웬만한 재선급보다 원내 영향력이 높은 윤수혁이었다.

원내에 퍼진 인맥과 금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곧 윤수혁이 입을 열었다.

“새정치당은 망할 겁니다. 그리고 감히 말씀드리자면, 오늘 말은 다른 데 새어 나가면 안 될 겁니다. 언급한 사실 자체로 여기 여섯 명 모두 철새로 낙인찍히게 될 테니까요.”

의원들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뒤, 모임의 대화는 중요하거나 특이할 게 없었다.

말조심, 행동조심.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돌풍 같던 임시 회의가 끝났다.

자리가 파하고, 돌아가던 중.

윤수혁은 고일준에게 다가갔다.

“의원님.”

“어, 윤 의원. 강북구로 가나?”

“예, 그래야죠.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윤수혁의 표정이 무거웠기에, 고일준이 긴장한 듯 귀를 기울였다.

“새정치당은 쳐다도 보시면 안 됩니다.”

그 말에 고일준이 약간은 풀어진 듯 엷게 웃었다.

“……자네 정보 들었는데 가겠어? 내가 꼭 가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었어. 생각 좀 해 본거지.”

고일준이 멋쩍게 웃자, 윤수혁이 여전히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경기도당위원장 자리 받게 되실 겁니다.”

움찔했던 고일준의 동공이 커졌다.

“……도당위원장을? 나한테?”

“예.”

“어떻게? 아직 선거도 안 끝났잖아?”

“조만간 특별 당비 납부가 있을 겁니다, 그 대가로 받은 겁니다.”

그 말에 고일준이 멈칫했다.

녹록하지 않은 그의 머리도 바쁘게 움직였다.

“자네는?”

남을 위한 게 있다면, 자신을 위한 것도 있어야 했다.

자선가가 아니니까.

윤수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명직 최고위원입니다.”

* * *

거의 두 달 만에 집에 왔다.

형은 독립해서 집에 없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만 TV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밥을 차렸고, 거하게 한상 얻어먹을 무렵.

새정치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뉴스로 한창 나오고 있었다.

- 새정치당의 공식적인 창당대회는 12월 11일로 예정되었으며, 이날 초대 당대표도 추대된 이민수 대선 후보는……

아나운서가 열심히 보도했다.

혁신과 변화 등을 슬로건으로 삼고, 대한민국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말까지 나왔다.

국회 의석수는 25석.

무소속 의원이 넷, 신민주당 출신이 19명, 새한국당이 두 명으로 원내 교섭단체 기준을 충족한 수준이었다.

과거 기억에선 의석이 20명 미만이라서 비교섭단체였는데, 당선 가능성이 높아서 그런지 의원들이 추가로 더 늘어난 모양이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웃기는 짬뽕이었다.

아니, 섞어찌개인가?

당에서 추잡한 정치질하던 의원들과 권력에 기생하는 의원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국민들이야 모르겠지만, 웬만한 의원이면 다 알만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신민주당 대변인도 열과 성을 다해서 반발했었다.

그사이 어머니가 크리스탈 컵에 담긴 녹즙을 가져왔다.

“이거 좀 먹어 봐, 엄마가 며칠 전에 녹즙기 새로 샀어. 이거 러시아에서만 파는 신상이래.”

방금 수저를 내려놨을 때였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믹서기같이 생긴 게 170만 원인가 나가더라. 네 엄마 용돈 줄여야 되겠어.”

“당신은 양주 산다고 백만 원씩 쓰면서?”

“그게 무슨 양주인 줄 알ㄱ…….”

“아버지.”

내가 나직하게 말하자, 소파 한 쪽에 걸터앉아 있던 아버지가 움찔했다.

타일 시공은 오래전에 그만두고 현장소장을 해 보겠다며 공부 중이었는데, 최근에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져서 조금 위축된 모습이었다.

“어머니도.”

자기편을 들어서 으쓱해 하던 어머니도 내 말에 멋쩍은 듯 미소 지었다.

아들이 국회의원이라서 그랬다.

동네방네 자랑하기도 했고, 선망의 시선을 잔뜩 받았겠지만.

나는 국회의원이었다.

개인을 비롯해서 내 가족과 주변인의 행실까지 검열 받고, 도덕적 지탄을 받는 고위공직자.

그래서 나는 매달 부모님에게 안부차, 주의차 찾아갔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 주는 밥 먹고 쉴 겸, 그리고 내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킬 겸해서 온 것이었다.

“밖에서는 그런 언쟁하시면 안 됩니다. 씀씀이도 사람들 시선 의식하셔야 되고요, 아시죠?”

“그럼, 잘 알지.”

어머니가 먼저 말하더니 내 입을 막겠다는 것처럼 크리스탈 컵을 밀었다.

“이거 가라앉기 전에 먹어, 상온에 조금만 둬도 맛이 변하더라. 얼른 먹어.”

“……예.”

대답하고 마시는 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근데 너 장가 갈 생각은 없니? 내일모레 서른이잖아.”

이 말이 나올 것 같았는데, 내겐 좋게 돌려 말할 수 있는 변명거리가 있었다.

“형이 먼저 가야죠.”

“재혁이 내년에 식 올리기로 했잖아.”

다시 녹즙을 들이켜려다가 고갤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형이요?”

“형제끼리 연락도 안 하니? 너 그럼 재혁이 애인 있는 것도 모르니?”

“……있겠죠.”

대충 대답하는데 죽기 전에 형의 결혼 연도가 흐릿했다.

2018년도인가, 17년도인가.

그 무렵이었던 거 같은데, 서로 연락을 잘 안하다 보니 기억나는 게 별로 없었다.

내가 국회의원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각종 청탁과 부탁에 대해서 딱 잘라 말한 덕분에, 올만한 연락조차 더 안 왔다.

물론 주변인들이야 할 말 많으니 매일 같이 연락을 해 댔고.

“근데 내년에 식을 올린다고요?”

“그래, 날짜는 안 정했는데 사돈 집안이랑 대충 정했어.”

“형수 이름은요?”

“강지희, 지혜 지에 아름다울 희 자라고…….”

내가 알던 형수 이름이 아니었다.

내 가족의 삶까지 바뀌는구나.

단순히 집안 사정이 아니라, 인생의 반려자까지.

조금 묘한 상황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 형 내년 봄에 결혼하면, 너도 장가가야지. 내일모레 서른이잖아.”

“……지금은 바빠서요.”

장세룡이 목을 쳐놔야 마음 놓고 결혼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사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엄마 나가는 교회 목사님 따님이…….”

“지금은 안 돼요.”

“들어 보지도 않고 그러니? 얼마나 예쁜데, 거기다 외국에서 대학 다녀서 똑똑하고…….”

목사 딸내미 칭찬이 이어졌다.

아버지도 내심 바라는 건지 군말 없이 뉴스를 보고 있었다.

“제가 때 되면 말씀드릴게요.”

“참, 이것 좀 봐.”

어머니가 그러면서 스마트폰에 뜬 사진을 내밀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반려자조차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나라고 여자 품기를 꺼리겠냐마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스마트폰 화면 속 여자는 내 취향과도 달랐다.

내 이상형은 성숙한 미모의 여배우들이었다.

역대급 미인 정도?

그래선지 죽기 전에 만났던 애인도 외모로는 알아주는 여자였다. 외출할 때마다 연예인 기획사 명함을 받았으니까.

요즈음 가끔 옆구리가 시릴 때마다 애인 생각이 났었다.

룸살롱도, 유흥 시설도 걸음하질 않으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더 훌륭하고 좋은 신붓감 데리고 올 겁니다.”

내가 단언하자, 어머니가 스마트폰을 거두면서 물었다.

“그럼 여자 있니?”

“……아직이요.”

대답하는데 오늘도 괜히 옆구리가 시렸다.

한숨이 나왔다.

내가 여자 생각을 하고, 그걸 견디고 참고 있을 줄이야.

자칭타칭 어르신들 데리고 갈 때마다 ‘우리 가게 에이스들!’하면서 여자들을 내오던 마담까지 생각났다.

지금은 내가 그 어르신이 됐으니 더 나은 대우를 받겠지만.

지금으로선 갈 생각은 없었다.

굳이 털어서 나올 먼지를 만들어서 좋을 게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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