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57화 (57/191)

# 57

19. 대선 (1)

11월 말.

대선 공식선거운동이 이틀 남고, 선거 벽보 부착이 며칠 안 남았을 무렵.

국회와 지근거리에 있는 새한국당 중앙당사로 호출을 받았다.

호출자는 대선 후보인 신경배 의원.

정확히는 신 후보가 날 직접 부른 것은 아니고, 중앙당사의 선대위에서 부른 것이었다.

호출 이유를 짐작하며 당사로 들어가다가, 입구에서 공지환 의원을 만났다.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닐 텐데?

“공지환 의원님, 어쩐 일이십니까?”

그에게 물음을 던지자, 슬쩍 웃는 모습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일찍 왔네, 윤 의원.”

“아, 예.”

“자네 신경배 후보님 뵈러 가는 길이지?”

설마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자네 데리러 나왔어, 같이 들어가지.”

나를 마중 나오다니.

신경배 뒤에 줄을 섰다는 걸로 밖에 안 보였다.

아니면 선대위 간부도 아닌 그가 어떻게 나를 마중나온단 말인가?

그렇게 추측하며 걷는 와중에, 공 의원이 입을 열었다.

“윤 의원이 굉장히 운이 좋아, 신 후보님이 이렇게 불러 주시잖아.”

대선 후보가 부르면 당연히 좋긴 할 것이었다.

보통 의원들이라면.

하지만 신 후보의 낙마가 예상 가능하고, 그에게 뜯길 게 많은 내 입장에서는 썩 반갑진 못했다.

그사이에도 공 의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신 후보님이 굉장히 능력이 좋아. 특히 사람 보는 눈이 말이야…….”

그 말을 시작으로 신 후보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뜬금없는 걸 보니, 확실히 줄을 서긴 선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좀 안쓰럽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공 의원은 원래 친김계에 적(籍)을 두었던 사람이었다.

2016년 총선에서는 김정환의 사진을 들고 선거에 나가기도 했었고.

그런데 이런 태세변환이라니.

둥글게 산다는 지론을 몸소 실천하는 걸 보니, 그의 성격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공 의원이 신 후보의 뒷구멍을 얼마나 닦아줬는지, 닦아줄 예정인지에 관해서 들으며 중앙당사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이윽고 숙직실 앞에 도착하자, 공 의원이 문에 노크를 했다.

똑똑.

왜 숙직실인가 싶었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알았다.

신 후보가 자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가 1인용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장바지에 와이셔츠, 반쯤 푼 넥타이 차림으로.

피곤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충분히 피로할 것이었다.

애초에 나이 칠십의 노인이 대선을 진행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몸을 다 일으키고, 마른 얼굴을 쓸어내린 신 후보가 입을 열었다.

“아이고, 벌써 왔나?”

“안녕하십니까, 윤수혁입니다.”

일단 공 의원의 눈짓에 인사했는데, 신 의원이 멋쩍다는 듯 말을 이었다.

“밤에 행사가 있대서 좀 자고 있었어, 들어 들 와.”

“피곤하시면 다음에 오겠습니다, 후보님.”

공 의원이 재빨리 아부하자, 신 후보가 됐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다음은 늦지. 아, 공 의원은 이만 가보게.”

“네, 후보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공 의원이 대답과 함께 물러갔고, 나는 신 후보의 고갯짓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그래…… 윤수혁 의원.”

나를 스윽 훑으며 나온 말이었다.

“자네 말 많이 들었어, 공지환 의원이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 원내에 소문도 자자하고 말이야.”

“감사합니다.”

대답하면서 신 후보를 쳐다봤다.

이 사람이 바라는 게 뭘까?

어차피 선거 운동이라면 의무적으로 해야만 했다.

각 지역구별 의원은 지역구를 돌고, 비례대표는 연고지나 원하는 곳, 필요한 곳에 뿌려졌다.

그럼 바라는 게 돈일까?

예상하는 와중에 그의 입이 열렸다.

“자네는 경선 때 누구 뽑았어?”

김정환이 대선 후보로, 신경배가 차순위로 뽑힌 대선 경선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기권표를 던졌었다.

뭐라고 대답할까, 찰나를 고민하고 입을 열었다.

“김정환 고문입니다.”

당시에 김정환이 대세였다.

지금은 후보 사퇴 이후에 뒷방 늙은이나 다름없는 고문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어느새 신 후보가 끌끌거리며 웃었다.

“그래 놓고 그런 기자회견을 열었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니면 신민주당에서 증거를 터뜨리거나, 진보 성향 기자가 펜대를 휘둘렀을 겁니다.”

“그나마 자네니까 조용히 공개만 했다, 이 말이지?”

“예.”

“배신자 소리깨나 들었을 텐데.”

“조금 듣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증거가 정확하고, 여론도 반응이 좋아서 잘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신 후보가 늘어져 있던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나를 쳐다봤다.

졸려 보이던 눈에 빛이 돌았다.

“듣던 것보다 아주 똘똘하네, 낭중지추라는 말이 딱 맞는구만.”

“감사합니다.”

내 감사 대답에 신 후보가 금세 말을 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혼자야?”

“예?”

“자네 조간 모임 빼고는 어울리는 사람도 없지 않나?”

하고 싶은 말이 줄 서라는 건가?

내 예상이 맞다는 듯, 그가 상체까지 기울여 오며 말했다.

손 뻗으면 닿는 가까운 거리.

“나하고 같이 하지, 어떤가?”

그의 입에서 은단 냄새가 풍겼다.

몸 관리 열심히 하는 모양이었다. 딴생각에 뒤이어, 신 후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니면 이미 줄이라도 섰어?”

그 말에 의원들 이름이 떠올랐다.

초재선이 가장 많긴 했지만, 그나마 쓸 만한 건 3선의 지역구 터줏대감들이었다.

돈을 먹인 고일준.

칼잡이로 쓰려고 했던 임청학.

그 외의 3선은 내 영향을 적게 받는 의원들이었다.

고 의원은 4천만 원이 넘게 받아서 내게 목을 매는 상황이었고, 임 의원도 후원금을 꽤 챙겨 준 데다가 일적으로 많이 봐서 가까웠다.

그 둘 말고도 내 인재풀 중에 괜찮은 사람이 있을까?

없진 않겠지만, 내 영향권 안의 인물들 중에는 확 떠오를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사람 중에 한 명을 고르자면…….

조성현 의원.

그 밖에 없었다.

재작년 전당대회에서 초계파(超系派)를 외치고, 이번에 김정환 논란 공개에 앞장선 사람.

그는 인성도, 정치적 열망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3선으로 경력도 나쁘지 않았다.

만약 대통령을 만든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했다.

문제라면 그가 가진 기반이 나보다도 모자라다는 사실.

인맥이든 돈이든 그는 많이 모자랐다. 비주류의 선도자였고 칼잡이였으니까.

사실 그게 제일 큰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 당의 대선 후보감을 고르는 일이나, 올해 대선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미래를 안다는 게 만능은 아니었으니까.

아직 대답을 기다리는 신 후보를 향해 나직하게 대답했다.

“줄 서진 않았습니다만, 어차피 선거 운동은 해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런데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야. 자네 같은 인재를 원하는 거지. 내 편이 되고, 힘이 돼줄 사람 말이야.”

손자뻘의 초선 의원에게 칭찬과 스카우트라니.

원래 신 후보가 이런 사람이었나?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친김계에 밀려서 제대로 힘을 못 쓰다가 밀려난 사람이었다.

원래라면 19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정치를 그만뒀었고.

그러나 지금 하는 걸보니, 20대 국회까지 충분히 버틸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에서 욕심이 보였다.

“어떤가?”

“……제가 뭘 해야 하고, 뭘 받을 수 있겠습니까?”

조심히 묻자, 신 후보의 눈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똘똘한 모습을 원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안 그래도 성실한 청년 역할을 하느라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흐흐, 내가 사람을 제대로 본 모양이야.”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랑 독대하면 초선들 대가리 숙이고 들어오거든. 자네는 들 줄도 알아, 다르단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고받는 걸 알고 싶다는 말이지?”

“예.”

내 말에 그가 씨익 웃었다.

은단 냄새가 풍겼다.

“자네가 열과 성을 다하면 내가 자네 그늘이 되어 주겠다, 그런 말이지.”

“그 말씀은 대선에서 당선된다는 걸 기정사실화 하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내 말에 신 후보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언제 대통령 하겠다던가?”

그 말에 멈칫했다.

그러면 대체…….

“대선 끝나면 당명 바꾸고 비대위 체제로 들어갈 거야, 이미 지도부랑 합심했네.”

입이 벌어질 뻔했다.

대선을 당권 잡는데 발판으로 쓸 줄이야.

생각보다 머리 굴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냥 오래 해먹은 전직 당대표라고만 여겼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래서 당대표까지 했었구나, 감탄이 혀끝에 맴돌았다.

그럼 정치 은퇴는 강제로 이뤄진 걸까?

대통령이 된 김정환이 축출시켰거나, 압박으로 물러났을 확률이 컸다.

이렇게 머리를 굴리고, 욕심까지 있는 사람이 쉽게 정치를 그만둘 리가 없었다.

이윽고 그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하겠는가?”

당 대표의 최측근…….

해 볼 만했다.

신 후보가 아니더라도 차기 당대표나 대선 후보를 내 손에 넣기 쉬워질 것이었다.

내 힘과 영향력이 늘어나는 것도 예정된 수순.

김정환이 지명한 지원금도 없는 청년정책위 위원장보다 훨씬 나은 실권을 갖게 될 것이었다.

이건 나와 신 후보, 둘 다에게 이득이었다.

특히 신 후보는 친김파가 잔존하고, 당에 영향력을 끼쳐야 하니 나 같은 인재가 필요할 것이었다.

돈도 많고, 능력도 좋으니까.

그리고 나이가 어리니 부리기 쉽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고.

나는 신 후보를 보면서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무협지의 기연 같은 건가 싶었는데, 오히려 예정된 연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디 보통인가?

일반적인 초선 의원들하고는 급이 다른 게 나였다.

어느새 신 의원이 내 손을 붙잡았다.

“앞으로 잘 해 보자고, 윤 의원.”

* * *

“신 후보가 누굴 만났다고?”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던 장세룡이 차려 자세의 보좌관을 쳐다봤다.

“윤수혁 의원이었습니다.”

보좌관이 얼른 대답했고, 장세룡이 스마트폰에서 손을 뗐다.

그의 눈가에 새겨진 주름이 더 길어졌다.

“독대야?”

“정확하진 않으나, 그런 것 같습니다.”

장세룡의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보좌관이 긴장했다.

꾸지람이 날아들까 움츠러들었는데, 장세룡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왔다.

“윤수혁이도 동향 파악 해 봐.”

“알겠습니다, 의원님.”

얼른 대답한 보좌관이 고개 숙였고, 장세룡이 문가로 턱짓을 했다.

이윽고 개인사무실에 혼자 남자, 장세룡은 놔둔 스마트폰을 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 사람을 골라도 그놈을…….’

속으로 욕을 곱씹은 그가 윤수혁을 떠올렸다.

속내를 당최 알 수 없는 데다가, 막 배지를 달았을 때와 달리 원내 영향력이 급증한 초선 의원.

다른 의원들과 다르게 협박도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은근하게 퍼진 평판과 능력, 금력이 당내에 스며들고 있었다.

정도가 대단하거나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지만, 재선의원이 됐을 때면 당 지도부에도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컸다.

대선 후보인 신경배가 그 윤수혁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장세룡의 얼굴에 떨떠름한 기색이 만연했다.

‘그냥 곱게 내 말이나 들을 것이지…….’

그가 신경배와 협상한 게 고작 며칠 전이었다.

당 지도부를 설득할 테니, 당권의 일부를 달라고.

이는 장세룡에게 마지막 남은 차선책으로,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었다.

김정환의 불출마 선언, 무소속 대선 후보인 이민수와의 협상 불발로 연이어 차질이 생긴 탓이었다.

당내에서 줏대 없다는 말이 나올지 몰라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정치적으로 죽은 김정환과 달리 자신은 살아 있으니까.

그러다 문득 장세룡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러고 보니 또 윤수혁이야? 이 새끼는 전생에 웬수라도 졌나, 왜 자꾸 튀어나와선…….’

김추완과의 일부터 김정환의 친일 논란, 그리고 신경배와의 접촉까지.

모두 윤수혁의 이름이 있었다.

짜증 난 듯 장세룡의 입가가 비틀리며 열렸다.

“그래도 대안은 짜놔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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