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18. 멋지십니다 (2)
제재하는 법안에는 반발이 있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관련 업계 종사자들.
그들의 반발은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일부 표심보다 행동력이 강하곤 했다.
단순히 싫다는 의사표시가 아닌, 명백한 항의기 때문이었다.
방문, 전화, 투서, 메일 등등의 권리행사.
강북구에 있는 국회의원 사무소와 의원회관 337호로 그런 항의가 여러 번 왔었다.
오늘은 의원회관 2층의 안내실에서 예약하지 않은 방문객을 알려 주었다.
- 성함이 이병락 씨라고…….
“죄송하지만, 지금 의원님께서 법률안심사소위에 참석 중이셔요. 그리고 약속된 상태도 아니구요.”
전화를 받은 행정비서 역할의 9급 비서가 능숙하게 통화를 마쳤다.
이미 겪어 본 방문 항의였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방산업계에서는 다방면으로 항의 의사를 내비치고 있었다.
윤수혁이 대표 발의한 방위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부당 이익을 취했을 경우, 방위사업체에서 퇴출시킨다는 내용.
그렇게 되면 원가 부풀리기, 이중장부, 재(再)재도급 등의 계약 위반을 저지르고 시정 명령만을 받았던 업체들은 함부로 부당 이익을 얻을 수 없었다.
발각되면 업계에서 퇴출 될 수도 있으니까.
한마디로 그동안 해먹었던 부당 이익 착복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 여파가 항의를 불러 온 것이었다.
돈줄이 줄어드니까.
지나치다, 혹은 방위산업을 압박한다, 방산 업계의 발전을 저해 한다는 등등의 이유를 들어서.
이윽고 여직원인 9급 비서는 방문객이 찾아왔으나 돌아갔음을 기록으로 남겼다.
당최 이해할 수 없단 얼굴을 하고서.
윤수혁도 마찬가지였다.
“소위원장님, 저번에는 이상 없다고 하셨잖습니까?”
의원들과 만든 단체 카톡방에서의 대화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윤수혁은 법률안 파일을 첨부했었고, 신․구조문대비표를 요약해서 올렸었다.
그때 위원들은 모두 ‘괜찮다‘고 메시지를 남겼었다.
“이상 없어도 업계 반발이 있는데 밀어붙이기가 좀 그렇지. 안 그래?”
법률안심사소위원장, 공지환이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이었다.
“윤 의원도 알잖아, 회사 운영했었다며. 세금 계산 삐끗하거나 장부 관리 실수만 해도 수백만 원 우습게 차이 나는데? 그걸 방산비리로 퇴출시켜?”
“저는 그런 적 없었습니다만, 그래서 고의성 검토하고 쓰리 아웃제까지 포함 시켰잖습니까?”
공지환이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주억거리긴 했으나, 여전히 긍정하는 눈빛은 없었다.
윤수혁이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검찰이 작년까지 3년간 밝혀낸 방산비리만 350억 원입니다. 그 방산업체들 시정 명령하고 계약금 몇 퍼센트 까는 제재 받았는데, 그게 제재가 되겠습니까? 비리 저지르면 350억을 버는데요?”
그 말에 문건에 거의 파묻혀 있다 시피한 공지환이 금테 안경을 벗었다.
콧잔등과 얼굴 옆면에 안경 자국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윤 의원까지 왜 이래.”
조금은 귀찮은 내색까지 포함된 눈빛.
윤수혁은 그 시선이 뜻하는 바를 쉽게 이해했다.
전방위에서 들어오는 압박과 로비에 피로한 모습.
안그래도 대관팀을 시작으로 인맥을 가장하고 접근한 업계 관계자들로 공지환은 피곤한 상태였다.
그사이, 공지환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이거 계류하긴 아까우니까…… 갈아엎던가, 아니면 폐기하고 다음 회기 때 완화해서 제출해. 그 정도는 괜찮잖아?”
그가 인심 쓴다는 듯 말했다.
안 그래도 윤수혁에게 이래저래 받은 후원금이 거의 1,000만원에 달했다.
신경 써 주는 척은 해야 하는 거금.
공지환의 재산은 부동산과 차, 보험 따위를 합쳐 기십억에 불과했다.
윤수혁은 그의 변함없는 말에 천천히 대꾸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얼굴을 쓸어내린 공지환이 앞의 ‘일단‘을 듣지 못한 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같이 대표 발의한 군인연금법은 원안대로 통과될 거야, 그건 걱정 말고.”
공지환이 언급한 군인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제19조 급여의 조정 건을 수정해서, 동일인이 퇴역연금과 상이연금 둘 다 수령가능하게 고친 법률안이었다.
물론 상이 사유와 등급, 연금 액수에 제한이 있긴 했으나, 군인이라면 좋아라 할 내용이어서 통과가 쉬울 것이었다.
당연히 원안 그대로 통과해도 무리가 없는 내용이었고.
윤수혁은 공지환의 실익 없는 위로에 짧게 고개 숙였다.
“예, 그럼 가보겠습니다.”
“미안해, 윤 의원. 그럼 가 봐.”
금방 돌아선 윤수혁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어서 엄지손가락이 연락처를 확인하고 곧 통화 버튼까지 눌렀다.
짧은 통화 연결음이 지나고.
윤수혁의 입이 열렸다.
“정기윤 상무님?”
* * *
치바그룹의 대관담당 정기윤 상무.
그와는 전에 청년정책위 업적을 위해 협박 겸 부탁을 한 뒤로 따로 연락한 적이 없었다.
그래선지 정 상무의 음색에서 당황스러운 감정이 느껴졌다.
- 의원님께서 갑자기 어쩐 일로…….
“별 건 아니고, 정 상무님한테 물어볼게 있습니다.”
“어떤…….”
“웬만한 대관팀은 다 아시잖습니까?”
국회 대관팀.
대기업에서 국회로 파견한 이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주로 국회에서 근무한 베테랑들로 구성되는데, 하는 일은 국회의원을 상대로 압박과 로비를 벌이는 것이었다.
국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일이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탓이었다.
각종 법안을 시작으로 대규모 사업을 위한 특별위, 예산 결산, 국정감사, 청문회 등등.
대한민국에 거미줄을 친 대기업으로서는 이익 증가를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그런 만큼 대관팀은 주로 돈 되는 곳에 몰려 있었다.
사업에 직접 손대는 국토위, 돈을 만지는 기재위와 예결특위, 법안을 총괄하다시피 하는 법사위 등등.
그 중에서 국방위는 한직이라 나도 대관팀을 기억하지 못했다.
정기윤은 일하면서 몇 번 봤기에, 상납하거나 뒷돈 챙긴 것을 알고 써먹었던 것이었다.
어느새 정 상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때 일은 그걸로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경계심이 짙은 말투.
아무래도 약점을 쥐고 있다 보니 그런 모양이었다.
약자였으면 무슨 수를 내겠지만, 나는 약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의전해야 하는 국회의원이었고, 심지어 돈도 많고 인기 좋은 청년이었다.
“끝났습니다만, 그냥 물어보는 겁니다. 긴장하지 마세요.”
- ……말씀하십시오.
“국방위 대관팀 리스트 좀 부탁합니다. 정 상무님 이름나올 일은 없을 겁니다.”
- 저도 대관팀을 다 알진 못합니다.
“그럼 아시는 만큼만 주세요.”
- 알겠습니다, 5분 뒤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국방위 대관팀.
누가 있는지 한 번도 보질 못했었다.
대관팀도 상임위를 전부 관리하는 게 아니라, 주요 위원들을 마크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숫자가 많은 인기 상임위라면 말이 다르지만, 여긴 인기와는 거리가 먼 국방위였다.
상임위원장이나 소위원장, 3선하고 재선한 의원들만 마크할 게 뻔했다.
나 같은 초선까지 신경 쓸 여력도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몇 분 뒤.
약속대로 정 상무로부터 대관팀 리스트가 왔다.
다 해서 5명.
여기서 늘어 봤자 몇 명 정도 더 붙긴 하겠지만, 곱으로 늘어나진 않을 것이었다.
그럼 국방위 전체 인원 17명보다는 무조건 모자라단 뜻.
인기 상임위에 매달리는 건 의원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리스트를 확인했으니,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럴 때 연락해야 할 곳이 있었다.
그동안 쌓은 이미지와 뿌려댄 돈을 활용할 때였다.
그게 입법 과정에 쓰일 줄은 몰랐는데.
피식 웃는 사이.
스마트폰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반부패부정척결연대 소영태입니다.
“소 회장님, 저 윤수혁입니다.”
행동력 최강의 시민단체.
반부패부정척결연대라는 직관적이고 강력한 이름처럼 이 시민단체는 실천력이 좋은 단체였다.
이 척결연대를 비롯해서, 내게는 로비스트보다 행동력 좋은 시민단체가 십여 개는 있었다.
돈 좋아하거나, 사명감이 있는 기자들도 많이 알았고.
그들을 움직일 것이었다.
몇 개월 뒤에 나올 내 의정보고서의 수준을 낮출 생각은 없었다.
* * *
이틀 뒤.
법률안심사소위 직전, 소위원장 공지환이 윤수혁을 따로 불렀다.
그의 얼굴에는 묘한 감정이 스며 있었다.
“윤 의원.”
“예.”
“자네 능력도 좋네, 하루 만에 아주 난리들 났어.”
하루 만에 윤수혁이 대표 발의한 방위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기사와 성명 발표 등이 났었다.
논란이 되거나 이슈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의원 개인에게는 부담이 될 만한 내용들이었다.
매일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고 관련기사를 탐독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던가?
더구나 의원실로 법안 통과의 요청을 직접 해 오기도 했었다.
이내 윤수혁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방산 업체 압박 받으신 거 같아서, 저도 할 수 있는 만큼 해 봤습니다.”
공지환이 웃음을 흘렸다.
“방산 업체가 그런 걸로 꼬리를 말겠어? 계열사라도 대기업 브랜드 달고 있는데.”
“압니다, 근데 그건 대기업 입장이고, 국회의원은 다르잖습니까? 최소한 변명 거리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도 보는 눈이 있을 텐데요.”
그 말 대로였다.
방산 업체가 항의에 꿈쩍하지 않더라도, 국회의원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피켓을 든 유권자가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만 해도 국회의원 대부분이 적잖게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걸려오는 전화나 쌓이는 메일, 비판적인 언론보도는 더욱 심했다.
그렇기에 현명한 철인(哲人)도, 굳건한 철인(鐵人)도 되기 힘든 것이었다.
사람이었으니까.
이윽고 공지환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원안 그대로 통과하긴 어려워. 윤 의원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방산 업계 보통 아니다.”
“그래도 압박이 줄진 않았습니까?”
윤수혁이 물으며 바라보자, 공지환이 턱을 긁었다.
“조금? 윤 의원, 어디 손 빌렸어?”
정기윤 상무에게 받은 대관팀 리스트.
그걸 시민단체에 흘렸었다.
윤수혁이 그 생각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손 좀 빌리긴 했습니다.”
“그래, 조용해진 것 같긴 하더라. 근데…… 윤 의원.”
공지환이 윤수혁을 부르며 지그시 바라봤다.
“둥글둥글하게 해, 뻣뻣하면 부러진다. 내가 괜히 좋게, 좋게 하겠어?”
공지환은 그러면서 윤수혁의 어깨를 짚었다.
“이제 그만들 하시라고 해, 내가 윤 의원 사정 최대한 봐줄게.”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들어가고, 규제 완화 부분은 카톡으로 알려 줄게. 가봐.”
“소위원장님 고생하십시오.”
“고생은 무슨.”
공지환은 윤수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복도에서 배웅했다.
그리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뱉었다.
‘은근히 무서운 놈이네.’
이미 받아먹은 후원금 1,000만 원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윤수혁이 동원한 시민단체와 기자 때문이었다.
물론 국회의원들은 저마다 긴밀하게 알고 지내는 단체나 팬클럽이 있긴 했으나, 윤수혁 정도는 아니었다.
움직인 단체만 열 개가 넘었고, 동시에 기자들은 온라인 기사를 몇 개나 써냈다.
그것도 고작 하루 만에.
공지환은 윤수혁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며 소위원회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사이, 복도를 걷던 윤수혁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엄지를 움직여 카톡 리스트 중 하나에 접속한 윤수혁이 입력란을 오래 눌렀다.
[붙여넣기/클립보드]
두 선택지 중에 붙여넣기를 누르고, 남은 카톡방에서도 윤수혁은 입력란 안에 문장을 붙여넣기 했다.
[ 덕분에 잘 협의 되었습니다. 법률안 수정은 불가피하지만, 최소화해서 진행해 주신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법 긴 문장.
이윽고 열 개가 넘는 카톡방을 드나든 윤수혁이 밀려드는 답장에 피식 웃었다.
[그게 저희 본분입니다. 오히려…… ]
[의원님께서 방산비리 척결에 앞장서시는데…… ]
[대한민국의 발전과 안녕을 위한 의정 활동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보기 민망할 정도의 미사여구들.
‘그냥 멋지다는 말이 낫겠네.’
윤수혁은 그 생각에 멋쩍은 웃음을 흘리고는 품에 스마트폰을 넣었다.
그렇게 움직여서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거울을 보던 윤수혁은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걸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