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55화 (55/191)

# 55

18. 멋지십니다 (1)

“참, 그거 하나론 부족하겠죠.”

“…….”

어느새 방산업체 삼원케이윈의 최용숙 상무는 쥐죽은 듯 조용해져서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 오티에선 잘 부탁드린다고 다가오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쑥스러움이라도 타는 건가?

법안 얘기 좀 꺼냈다고 사람이 이렇게 변하다니.

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며 말을 이었다.

“군인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도 하나 대표 발의 했고, 공동 발의 명단에는 이름 많이 올렸어요. 제 블로그에 가면 의정활동 내용 있으니까 보시면 될 겁니다.”

“……아, 네.”

거의 얼어 있었다.

그녀가 입 한 번 댔던 커피가 식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분위기를 좀 풀어 주고자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이제 당근을 보여 줘야 했다.

“제가 홍보지를 만들던가, 플래카드 제작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네.”

“방산업계에 좋은 말씀 해 주시고, 공식 성명서를 국회로 보내거나 인터뷰 같은 것만 해 주시면 됩니다.”

법률안의 당사자가 내보낼 성명서나 인터뷰.

그건 기자에게 좋은 기사거리였고, 내게는 우수한 홍보수단이었다.

그것도 규제하는 법안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더욱이 삼원케이윈이면 중견기업으로 업계에서 손꼽는 곳이었다.

“저, 의원님…… 인터뷰라면 그 신문기자가 취재하는 거 말씀하시는 거죠?”

“예, 대신에 그거 해 드릴게요.”

“그거요?”

생기를 잃어가던 최 상무의 눈에 빛이 돌았다.

“저번에 부군하고 볼 같이 치자고 하셨었나?”

“정말요?!”

최 상무의 엉덩이가 소파에서 살짝 뜰 정도로 움찔했다.

입꼬리도 올라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렵죠, 접대처럼 보일 테니까요.”

펄쩍 뛰었던 최 상무가 추락하듯 기가 죽었다.

방산업체 대표이사가 국방위 위원과 골프를 쳤다면, 그거 자체로 접대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알려지지 않더라도, 알려질 게 신경 쓰일 것이었다.

그게 비리의 시작이었다.

원래 그런 가벼운 일에서 부정이 만들어지는 법이었다.

손쉬운 골프 라운딩.

아니면 서울 중심가의 스크린 골프장에서 하는 한 판의 게임 등등.

아무래도 최 상무도 원한 게 접대일 확률이 컸다. 거기에 부탁이 곁가지로 달려 있을 테고.

그게 아니어도 단순 과시, 혹은 친분 맺기 등등의 목적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유야 많았다.

“그거 말고 다른 것도 많잖아요. 부품 납품하는 부대 시찰 한다던가…… 가급적 공적인 자리로요. 그거라면 제가 흔쾌히 할게요. 어떻습니까?”

“……으음.”

최 상무가 입을 다문 채 고민하더니, 커피로 입을 축였다.

“남편 분 체면도 살리고, 좋은 일도 하고. 일석이조 아닙니까?”

최 상무가 난처하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남편한테 물어봐야 될 거 같아요.”

최 상무의 남편, 성규석은 별을 달지 못해 퇴역한 육군 대령이었다.

이후에는 군수 쪽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을 기반으로 방산 업체에 들어가 공동 대표이사를 맡았고.

당연히 미래는 알지 못했다.

대기업도 아닌 중견기업 대표까지 내가 챙겨볼 급은 아니었으니까.

그것도 방산 쪽이면 장 의원과는 먼 것이었다.

퇴역 대령이 방산업체에 갔으니 해 먹을 게 많으니까 갔겠거니, 짐작하는 게 다였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최 상무 행동으로 봐서는 내 추측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럼 명함 받으세요.”

“명함 있는데요……?”

최 상무가 있다는 듯 대꾸하는데, 무시하고 지갑을 꺼냈다.

내 명함은 두 가지였다.

지역 사무소와 의원실의 주소, 연락처, 내 이력 따위와 후원계좌가 적힌 유권자용 명함.

그리고 핸드폰 번호가 있는 업계용 명함.

내가 주로 뿌린 건 당연히 유권자용 명함이었다.

원우회나 동아리, 각종 사모임 등은 회비나 기타 잡비를 내주는 걸로 간섭을 원천 차단했고, 원우회장이나 대학원장 등등의 소수 인원에게만 업계용을 줬었다.

그리고 같은 클래스의 수강생 중에는 최 상무에게 처음 주는 것이었다.

“핸드폰은 카톡과 메시지도 전부 확인하니까 편하게 연락 주세요. 남편 분께서도 좋게 생각하실 겁니다.”

* * *

며칠 뒤, 용산구 국방부.

나이 50이 넘은 국장급의 사내가 데스크 앞에서 초조한 듯 서 있었다. 그의 좌우에 선 과장급의 사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중 하나가 한숨을 삼켰다.

‘그 영감은 의전할 스타일이 아닌데…….’

과장이 윤수혁을 떠올렸다.

3만 원짜리 시계에 저렴한 정장, 탈권위적인 모습.

그런 것들이 과장의 기억에 있는 윤수혁이었다.

그러나 국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눈으로 쳐다보진 않았다.

국장은 3급 말호봉으로 연공서열에서 누락되어 2급 이사관 승진에서 미끄러진 상태였다.

국회 국방위 위원에게 잘 보이는 건 국장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곧 국장의 시선이 유리로 된 정문으로 향했다.

“오셨다.”

국장이 나직하게 말하자, 과장들이 아랫배 앞으로 양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이윽고 국장이 허리를 숙였다.

과장들도 따라서 얼른 허리를 접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윤수혁이 고개 인사로 답하며 국장과 악수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제가 급하게 연락드렸는데 나와 계셨네요. 바쁘실 텐데…….”

“아닙니다, 의정 활동이 더 바쁘실 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 지나가는 길에 들른 건데요, 뭐.”

그 말 대로였다.

윤수혁이 국방부에 연락한 건 고작 30분 전.

지나가는 길에 들러도 되겠냐고 물은 것이었다.

그때 시간은 오후 두 시 반.

천장 히터 바람과 식곤증에 졸고 있던 국장은 어서 오시라고 대답했었다.

감히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윗사람이 오겠다는데 그걸 막을 수나 있을까?

청문회에서 국장급 이름이 언급되는 걸로도 인사고과에의 내용이 상이하게 달라질 것이었다.

그것도 주로 나쁜 쪽으로.

“아닙니다, 어디 돌아보실 데 있으십니까?”

“그냥 일하시는 모습 좀 보고 갈게요. 상임위 소관부처의 실제 업무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국장은 앞장서더니, 곁에 선 과장에게 윤수혁의 행차를 미리 알리라고 지시했다.

한마디로 방문할 부서 정리를 지시한 것이었다.

윤수혁은 그런 식으로 잘 정리된 사무실과 열심히 근무 중인 공무원들을 확인했다.

이후 복도로 나온 윤수혁이 게시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중 하나의 게시물을 쳐다보던 윤수혁의 시선이 국장을 향했다.

“이런 것도 참관 가능한가요? 어떻게 하시는지 좀 보고 싶은데. 불가능하면…….”

국장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뭐가 됐더라도 불가능할 건 없어야 했다.

“아, 아닙니다. 안 될 게 뭐 있겠습니까?”

국장이 그러면서 다시 게시판을 확인했다.

[방위사업체 기술향상 프로세스 심사 일정 안내]

마침 심사 일정 사흘 중에 하루가 오늘이었다.

국장이 얼른 손 안내를 했다.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금세 도착한 회의실 앞.

젊은 여직원이 미리 보고 받은 듯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양문을 열었다.

안은 조촐했다.

면접 형식으로 책상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고, 면접자는 따로 대기자도 없이 한 줄에 앉아 있었다.

몸을 일으키고 있던 면접관들이 윤수혁을 향해 인사를 했고, 윤수혁도 마주 고개 숙였다.

그중 가장 가까이 있는 노년의 사내에게 윤수혁의 눈이 닿았다.

“김상현 교수님이시죠?”

“아아, 네.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국방대학교 전임교수님이시잖습니까? 제가 전공까진 모르지만, 상임위 소관부처라서 조금 알고 있습니다.”

“아,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노년의 교수가 놀란 눈을 한 채 고개숙였다.

아무리 소관부처라고 해도 국방대학교의 일개 교수까지 국방위 위원이 알기 힘든 탓이었다.

국방대학교 총장이나 다른 고위직 인사면 몰라도.

그렇게 윤수혁은 면접관 중 국방기술품질원의 간부도 알은 체를 했다.

이윽고 윤수혁의 시선이 자연스레 면접자를 향했다.

다해서 십수 명.

그들은 온갖 자료를 챙겨든 채 긴장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쳐다보는 사람이 다름 아닌 국방위 위원인 윤수혁이었다.

방위사업체의 상급자.

심지어 돈도 많고, 인성도 바르며, 실력도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 청년.

그러던 중.

윤수혁의 시선이 50대 남성에게 멈췄다.

“성규석 대표님?”

“아, 의원님, 의정 활동 하시는 모습 잘 보고 있습니다.”

“하하, 여기서 뵐 줄 몰랐네요. 인터뷰 해 주신 건 잘 봤습니다. 여기서 심사 보시나 봐요?”

“네, 그렇습니다.”

“파이팅 하십시오, 잘 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윤수혁과 성규석은 시선을 뗐고, Y경영전문대학원에서 했던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회의실은 아니었다.

분명 윤수혁이 심사 과정을 잠깐 동안 구경했고, 나가면서 방위사업체 임직원들에게 덕담을 했지만.

면접관이나 면접자는 삼원케이윈의 대표이사 성규석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윤수혁이 그를 안다는 사실 자체가 신경 쓰인 것이었다.

그중 대기업의 계열사로 전차와 전투기의 엔진을 생산하는 오성테크윈의 임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관팀도 없을 텐데, 둘이 어떻게 아는 거야?’

* * *

부서 몇 곳을 더 돌고 국방부를 나왔다.

대기하던 영석이를 불러서 차에 탔는데, 그제야 픽하고 웃음이 났다.

성규석 대표 때문이었다.

내가 그의 아내에게 공적인 자리를 언급했더니, 그가 고른 장소가 국방부였다.

그것도 성 대표를 심사하는 자리.

거기서 인사만 해 달라고 했었다.

그게 그가 한 부탁의 전부였다.

정말 영리하지 않은가?

대놓고 좋은 평가를 부탁하거나 압력을 넣어 달라는 청탁이 지역구와 의원회관, 내 개인 번호로 밀려드는 판국이었다.

그런 와중에 가벼운 인사만 해 달라고 했었다.

어려울 게 뭐 있겠는가?

나는 심사에 압력을 넣지도 않았고, 그 어떤 지시나 부탁도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성 대표는 내가 만족하게끔, 인터뷰도 해 주고 성명서까지 보냈었다.

그것도 몇 개의 방위사업체를 꼬드겨서.

마음에 들었다.

성 대표는 왠지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았다.

머리 돌아가는 게 내 스타일이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쿨하게 눈인사로 끝났음을 알린 것도, 그럴싸하게 연기를 하는 것도 좋았다.

군말도 없었고.

왠지 내가 방위사업체에 있으면 성 대표처럼 일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외까풀이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우스운 생각을 하다가 영석이를 쳐다봤다.

“강북구 행사 있댔나?”

“네, 저소득층 아이들이 참가하는 희망축구경기입니다.”

“그럼…… 축구공, 축구화, 유니폼 세트면 되겠다. 도착하면 스포츠 용품점 알아 봐.”

“알겠습니다, 의원님.”

행사 갈 때마다 이미지 작업을 위해 사비를 좀 쓰고 있었다.

장애인센터에 가면 장애인용특수차량을 한 대 사주기도 했고, 시민도서관에 가면 19대 의원들이 쓴 책을 백여 권 정도 구입해서 기증하기도 했었다.

어차피 과시 목적이든, 체면 세우기든, 많은 돈을 쓰기도 어려웠다.

이미지 관리 때문에 매일 기십만 원의 정장에 3만원짜리 카시오 시계, 선물 받은 넥타이를 매던 차였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Y경전원에 갈 때만 1,000만 원이 넘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정장을 입긴 했지만, 내 대부분의 생활은 그야말로 바른 청년이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다.

백미러로 영석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녀석의 눈이 묘하게 웃고 있었다.

“왜 웃냐?”

“좋아서 그렇습니다.”

“……내가?”

“네, 멋지십니다. 수십억이 있어도 몇백, 몇천만 원을 받는 사람들이 즐비한데, 의원님은 행사 갈 때마다 그만한 돈을 쓰시지 않습니까?”

“……쓸 만하니까 쓰지, 파란불이다. 출발이나 해.”

“연예인보다 더 멋지십니다.”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분명 나는 속이 썩을 대로 썩은, 정치 10년차의 중앙당 윤 실장인데 왠지 저 말이 맞는 것처럼 들린 탓이었다.

치켜세워 주니 목덜미가 간질간질 한 것 말고는 일말의 위화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내가 뭐라도 된 줄 아는 건가?

기부 좀 하고 다니고, 겸손하고 성실한 척하다 보니까?

국방부에서 방위사업체 대표를 알은 체하고, 인터뷰와 성명서를 받아 낸 게 방금 전인데.

이게 무슨 우스운 경우인지.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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