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54화 (54/191)

# 54

17. 그놈이 그놈일까? (3)

지금이 적기였다.

나는 인지도를 높이고, 당은 분위기를 환기할 타이밍.

그래서 당 지도부에서도 단상에 서는 걸 순순히 허락해 줬었다.

원래 자유발언대에 서는 건 의장이 허락 하는 것이지만, 의장이 새한국당 원로 출신이니 지도부나 마찬가지였다.

그사이, 내 좌측면에서 거친 말투가 날아들었다.

“자수하냐?!”

“어디서 함부로 지껄여!”

“인마! 말 같잖은 소리 할 거면 내려와! 초선이 건방지게…….”

신민주당 의원석.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반항하는 모양새였다.

반면에 우측에 위치한 새한국당은 분위기가 달랐다.

내 말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불안한 듯 웅얼거리거나 저들끼리 대화하는 모습이 보이긴 했다.

내가 김정환의 증거를 공개한 전력이 있으니, 약간은 긴장한 모양이었다.

나는 시끄러워진 본회의장의 소음 속에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신민주당의 원상기 의원님!”

비리 제보를 말하고선 대뜸 목소리를 높이자, 사람들이 원 의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약간 앞쪽에 있던 원 의원이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입이 꾹 닫혀 있었다.

찔리는 게 있으니 함부로 입도 못 여는 것이겠지.

“떳떳하십니까? 어떻게 당선되셨습니까? 정직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지금 이 자리에 계신 게 맞습니까?”

몰아 부치듯 연달아 물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좌측 의석에서의 반향이 더욱 거칠어졌다.

고함과 욕설이 들리기 시작했고, 때맞춰 새한국당에선 동조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건 자신들이 타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안도에서 나온 환영일 것이었다.

어쨌든 나로선 시끄러울수록 좋았다.

이슈 되기 좋지 않은가?

이들이 난리를 치면 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고작 몇 년 전과 다르게, 요새 본회의장은 제법 얌전한 편이었다.

특히나 자유 발언이 더 그랬다.

일부 의원들이 떠들다가 들어가고, 호응과 야유만 잠깐 이어지는 것이 바로 5분 자유발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5분 자유발언은 곧 아수라장이 될 것처럼 보였다.

“2011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원상기 의원님은 무려 5개월 동안 유사기관을 설립한 뒤 사전선거 운동을 했고, 이익제공 약속까지 했습니다. 제 손에! 그 증거가 있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USB를 보여 주었다.

미리 알고 있던 내부자를 구슬려 녹취한 테이프였다.

신민주당 의석에선 더욱 격한 반발이, 반대로 새한국당 의석에선 호응이 일었다.

우스웠다.

내 좌측만 해도, 비리가 들켜 항소 끝에 의원직을 상실할 인간들이 여섯 명이나 있었다.

이마에 핏줄이 불거져서 쌍욕을 하는 의원들이 특히 그랬다.

‘옳소!’를 외쳐 대는 새한국당도 마찬가지였다.

비리의 당사자가 자신들 일까 봐 입을 다물었던 인간들이 아닌가?

더욱이 의원직을 상실한 인간은 새한국당이 훨씬 많았다.

무려 열세 명.

이게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과 뭐가 다를까?

아니, 그냥 도긴개긴이었다.

시장 바닥 싸움보다도 무질서하게 고함을 질러 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이 중에 제대로 일하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내가 이어서 말하려는데, 뒤쪽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국회부의장이었다.

“언성을 좀 낮춰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5분 자유발언 중이니까, 끝나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윤수혁 의원, 계속 말씀하세요.”

부의장의 속 보이는 배려에 고개 숙여 답하고, 다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모르긴 몰라도 본회의장 조망이 가능한 기자실에서는 카메라 셔터가 바쁘게 눌리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점점 고조되는 열기 속에 5분의 자유 발언 시간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끝 무렵,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 자리에 서서, 현직 국회의원의 비리를 외칠 수 있게 믿어 주시고, 제보해 주신 익명의 국민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단상을 내려가서 흡족한 얼굴의 국회부의장에게 고개 인사를 했다.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의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했어!”

“아주 고생했어, 잘했네!”

“윤 의원 오늘 파이팅 했구만!”

아들 친구 대하듯, 격려 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반대편의 신민주당 의원석에서는 여전히 상도덕이 없느니, 싸가지가 없다느니 하는 말이 들려왔다.

당장 주먹질을 할 것 같았는데, 그것도 괜찮았다.

나는 그 모든 말에 감사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기분이 썩 좋았다.

앞으로 해먹을 게 스무 건은 더 있지 않은가?

비공식적으로 해먹은 인간도 그만큼은 더 알았지만, 그건 고발용이 아닌 내부용으로 써먹어야 했다.

그래도 어쨌든 좋았다.

* * *

윤수혁의 고발 제보가 한바탕의 이슈를 만든 직후.

새한국당 전 당대표이자, 6선 의원인 신경배가 경선 차순위 자격으로 대선 후보가 되었다.

새롭게 선대위가 꾸려졌고, 관계자가 물갈이 되었다.

그리고 이민수는 여전히 무소속이었다.

야권 연대는 없었다.

새정치의 열망 실현과 신민주당의 개혁 실패를 이유로 들며, 단독으로 출마했다.

내부적으로는 김정환의 낙마와 윤수혁의 비리 폭로로 당선 가능성이 더 올라가 움직인 것이지만.

대외적인 이미지가 아주 좋았다.

공평동 캠프의 선대위 위원장인 박우식이 손에 들린 문서를 보며 미소 지었다.

[다자대결 지지율 40.8퍼센트, 양자구도 지지율 51.1퍼센트, 이민수 후보자가 압도적으로 앞서…… ]

한국갤럽의 지지율 조사 결과.

박우식이 문서를 내려놓고, 마주 앉은 이민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되고 있네요.”

“지지율이야 원래 좋지 않았습니까?”

“하하,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말 창당(創黨)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이젠 어쩔 수 없습니다. 새정치를 하려면 새 당을 만들어야지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습니다.”

새한국당 접촉과 신민주당과의 연대가 모두 어긋난 상황.

선택한 것이 결국 창당이었다.

물론 창당은 전부터 언급되었던 것이지만, 비교적 실현 가능성이 높진 않아서 차선으로 남겨 두고 있던 것이었다.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보통이 아닌 탓이었다.

원내교섭 단체로 인정받는 20명의 국회의원을 영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전국 각지에 시도당 위원회와 지역구별 당협위원회를 만들어야 했고, 자리에 걸맞은 당직자까지 뽑아야 했다.

정부로부터 보조금이 나오지만 그걸로는 많이 모자라서 비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후원금도 상당히 필요했다.

동의한다는 듯 박우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선수들 섭외 진행하겠습니다. 아, 당명은 생각해 두신 게 있으십니까?”

이민수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정치당, 어떻습니까?”

“진보 당명 같긴 하지만…… 직관적이고 좋습니다. 국민들 바람도 담겨 있는 것 같네요.”

기득권에 대한 국민의 반감에서 시작된 새정치 바람.

벌써 1년 넘게 부는 중이었고, 그 중심에는 이민수가 있었다.

물론 최근에 새한국당과의 접촉설로 휘청하긴 했지만, 단독 출마를 선언한 이민수의 기자회견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겨 냈었다.

남은 것은 단독 출마와 창당.

둘 다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박우식이 엷게 웃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험난했지만, 철새라는 정치 오명을 벗고 새정치의 주연이 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대통령의 측근으로.

* * *

며칠 뒤.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기사를 확인했다.

대상은 신민주당 원상기 의원.

그는 원래라면 내부인의 고발로 비리가 까발려질 사람이었다.

내년 봄이던가?

정확한 날짜까지 기억나진 않았지만, 이후 처분은 확실하게 알았다.

최초에 검찰이 구형한 건 벌금 200만 원.

누군가는 적은 처벌이라고 논할 수도 있지만, 벌금 200만원은 국회의원에게는 큰 처벌이었다.

의원직 상실이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은 공직선거법에서 의원직을 박탈하게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금뱃지를 떼라는 뜻.

그러나 무슨 거래가 있었는지, 항소를 거쳐 내려진 최종 결과는 벌금 90만 원이었다.

의원직 유지.

그도 결국 돌아온다는 것이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심판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게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당을 만들고, 정계의 꼭대기로 향하고자 하니 정의가 곁다리에 있을 뿐.

그렇게 딴생각을 하던 중, Y경영전문대학원의 강의가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30대의 젊은 시간 강사가 정중하게 고개 숙였고, 자리한 중장년의 학생들은 주섬주섬 교재를 챙겼다.

나도 그들처럼 일어나려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윤 의원님, 오늘도 고생 하셨어요.”

“예, 최 상무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며칠 전에 신민주당에 한 발 날리신 거 잘 봤어요. 화면발 정말 잘 받으시던데요?”

“아, 예…….”

방위산업체인 삼원케이윈의 상무이사 최용순이었다.

내가 국방위 위원이라는 이유로, 그녀는 오리엔테이션 이후 끊임없이 말을 걸고 안부 인사를 했었다.

사적인 자리를 바라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내가 차갑게 쳐다보면 금방 조용해지곤 했기에 그냥 놔두고 있었다.

오늘도 형식적으로만 대꾸하려고 했었고.

그러다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상무님.”

“네, 의원님!”

내가 부른 건 처음이어서 그런지, 최 상무가 호들갑스럽게 대꾸했다.

“부군께서 대령으로 전역하신 걸로 아는데, 육사 출신이셨나요?”

“……음, 육사 맞을 거예요.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내가 뜬금없이 묻자 미소 짓던 최 상무가 움찔했다.

안 그래도 국회의원을 고발한 상태였으니, 다음 타깃이 될까 긴장한 것이겠지.

나는 엷게 웃어서 그녀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혹시나 해서 여쭤봤어요, 뭐 부탁 할 수 있을까 해서.”

“어머, 의원님께서요? 말씀만 하시면…… 아. 로비로 가서 얘기 나누실까요? 제가 커피 살게요.”

최 상무가 호호거리며 웃었다.

내가 무슨 부탁을 할 줄 알고 저렇게 살가워 할까?

속에서 가벼운 웃음이 일었다.

부탁에 대한 대가로, 무언가를 바랄 게 뻔히 보였다.

그게 뭔 진 모르겠지만, 어차피 최 상무가 내 부탁을 단칼에 뿌리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내 전화 한 통이면 방위산업체로 감사관이 파견될 수도 있었다.

아니면 내가 직접 가거나, 보좌관을 보내서 납품 기록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최 상무에게 할 부탁을 정리하면서 Y경전원의 로비로 내려갔다.

호사스러웠다.

커피나 차, 다과를 즐길 수 있게 조리시설과 관리인이 있었고, 큼직한 대리석 위에는 가죽소파가 놓여 있었다.

통유리 너머로는 Y경전원의 분수와 잔디, 각종 조경 경관이 보였다.

이건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그냥 무슨 고급 시설이었다.

수강생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침대와 샤워실이 딸린 1인실까지 주어지는 마당이니, 뭐.

이윽고 나는 아메리카노를 하나 들고, 가죽 소파에 몸을 묻었다.

종종걸음으로 온 최 상무가 맞은편에 앉자마자,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제가 이번에 법안 발의 한 거 아세요?

“……음, 제가 듣긴 했는데 잘 몰라서. 죄송해요, 호호.”

그녀가 겸연쩍은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모르는 듯 보였다.

사실 법안을 완성한 건 국정감사 직전으로, 아직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이었다.

“아, 그냥 문장 몇 줄 바꾸는 거예요. 방위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라고 설명 드리자면…… 거기 제6조 2항의 1호를 수정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음, 네.”

명백히 모르는, 일단 뱉고 본 대답.

그 조항을 안다면 그녀 성격에 저런 평범한 대답이 나오긴 어려웠다.

나는 미소와 함께 설명을 이어 갔다.

“금품, 향응 요구와 수수 금지에 관한 사항인데, 그걸 좀 더 확대시키려고요.”

“…….”

웃음을 머금고 있던 최 상무의 얼굴이 움찔하더니 굳었다.

“굳이 대가성이 아니더라도 계약과 다르게 차익을 남기는 경우도 포함시키던가…… 아, 상무님은 무슨 말씀인지 잘 아시잖아요?”

“네…… 아?! 아뇨. 저는 그런 거 잘…….”

어느새 최 상무는 딱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금품이나 향응, 대가성, 차익 같은 단어가 나올 때마다 움츠러든 것이었다.

나는 최 상무를 향해 여전한 미소로 말했다.

“그거 홍보 좀 해 주셨으면 하는데, 물론 자발적으로요.”

이름이 떴으니, 이제 의정 활동을 홍보할 때였다.

대선 직전, 잠깐의 틈을 타서.

올해의 의정 홍보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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