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17. 그놈이 그놈일까? (2)
“이민수 영입 사실인가요?”
꽤 많이 물었다.
같은 조간모임 소속의 동료 선배 의원들에게.
모른 척하며 궁금하단 얼굴을 하면서 이리저리 말을 건 것이었다.
그러다 당 지도부와 가까운 의원 하나가 턱을 쓸었다.
“안 그래도 그거 찬성한다는 말이 나오더라고.”
“누가 그럽니까?”
“나경호 의원도 그렇고, 우 최고도 그렇고.”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재선의 나 의원이나 우 최고위원 모두 장세룡계였다.
우 최고는 장세룡이 주도하는 국정선진화연구모임의 일원이었고, 나 의원은 장세룡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인간이었다.
왠지 그림이 그려졌다.
이 모든 게 장 의원이 주도한 게 아닐까?
혹시나 싶어서 늦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 대선 후보 선출이 늦어지는 게 그거 때문에 그런 겁니까?”
“그것도 있는데, 늙은이들 막판에 BH가려고 박 터지게 싸우는 거지. 혹시 자네도 이민수 영입 찬성하는 거야?”
“서울시장 때 진보연대 했던 사람을 어떻게 저희 당에 넣겠습니까?”
“데려다 놓으면 당선되긴 할 것 아닌가? 인기 하난 좋잖아.”
“그렇긴 하지만…….”
선배 의원이 내게 한 수 가르쳐 준다는 듯 입을 열었다.
“윤 의원, 자네가 처음이라 모르는 모양인데 여당이 괜히 여당이 아니야. 야당도 괜히 야당이겠어?”
그건 맞는 말이긴 했다.
같은 당의 소속 대통령이 집권하니, 각 행정 부처가 필연적으로 야당보다 여당에 더 신경을 써 줬었다.
그것도 인사권자와 비인사권자를 차별하듯이.
그러니 의원들을 향한 뒷돈이나 접대도 수준이 다른 건 당연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공무원들이 수두룩하게 많은 탓이었다.
하지만 안 될 말이었다.
정치를 코앞만 내다보고 할 순 없었다.
그게 나만 볼 수 있는, 나만 봤던 미래라고 해도.
“그럼 선배님께서도 이민수 후보가 괜찮다고 보십니까?”
“그거야 고민 해 봐야 되는데, 어차피 안 돼. 신 의원이 차순위인데 가만있겠어?”
그 말대로 안 된다면 다행이지만, 이대로 보고 있을 순 없으니 나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이 후보는 내게 득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일단 이 후보는 사업체 주식으로 공개 재산만 천억 원이 넘는 부자였다.
그게 내 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중요한 건 내 돈으로 할 일이 줄어들고, 이 후보의 돈을 보고 줄 서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말이었다.
한 마디로 내가 당권 잡는 것부터 어려워질 것이었다.
그 뒤, 선배 의원을 보내고 의원실로 돌아갈 무렵.
조 대표에게 카톡이 왔다.
[공평동 캠프에 있는 후배한테 대답 왔습니다.]
공평동 캠프!
이 후보의 선거 본부를 말하는 것이었다.
다른 의원들에게 묻기 전에 박 보좌관과 조 대표에게도 물었는데, 그가 뭔가를 알아낸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다음 문장을 채근했다.
[며칠 전에 이 후보 행선지나 활동 내역 같은 거 전부 비공개처리 됐는데, 활동비 계산하다가 그 날 영수증이 나왔답니다.]
[현대 백학주유소에서 5만 원 결제한 건데, 거기 위치가…… 경기도 연천이랍니다.]
연이어진 카톡에 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연천군 백학면이던가?
거기 있는 백학저수지로 낚싯대며 보조의자를 싣고 서너 번 정도 운행했었다.
당연히 장 의원의 낚시 때문이었다.
다른 의원들이 골프 라운딩을 나가서 OB났다며 혀를 찰 때, 장 의원은 낚싯바늘 멀리 나갔다고 고개를 모로 비틀던 인간이었다.
그럼 이게 다 장 의원의 수작이라는 뜻이었다.
그때, 뭔가가 번뜩 떠올랐다.
이 후보로 친김계를 쓸어버리는 힘든 일보다 장 의원 하나에게 태클 거는 게 손쉬웠다.
얼른 답장을 적었다.
[장 의원이 엮었다고 흘리세요.]
[이민수 후보 영입 건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거기 장 의원 낚시텁니다. 부정적으로 흘리셔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영입 불가하게.]
[알겠습니다.]
그의 대답이 믿음직스러웠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이 후보의 공평동 캠프에서 나온 한 장의 영수증처럼 발목이 잡힐 수도 있으니까.
[조심히 하셔야 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네거티브만 20년 견뎠습니다.]
다시 한 번 대답을 듣고, 스마트폰을 넣었다.
조금만 있으면 기자들이 행동할 것이었다.
그러면 기사 노릇하는 7급 의원이나 보좌관, 스케줄 관리하는 행정비서한테는 유도 취재를 당할 터였고.
반응에 따라서 친김계가 들고 일어나거나 떠들 수도 있었다.
물론 이런 걸로 장 의원이 크게 상처 입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추대하던 김정환이 대통령을 사임한 2017년에도, 장 의원은 잘 버텼었다.
오히려 당 대표에, 차기 대권후보로 이름을 알렸었다.
그래도 어찌 됐던 이 후보 영입은 장 의원에게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었다.
* * *
장세룡의 눈썹이 꿈틀했다.
보좌관이 프린트 해 온 온라인 기사가 그의 손에 몇 장이나 들려 있었다.
[이민수 후보, 새한국당 접촉설]
[연천에 간 이민수 후보, 새한국당 장세룡 의원과 밀애 중?]
[새한국당 대변인, “장세룡 의원과 아직 얘기 나누지 못해, 이민수 후보 입당 사실관계도 들은 바 없어.”]
장 의원의 늙은 손등에 힘줄이 돋았다.
쥐고 있던 프린트지가 구겨졌고, 그의 시선이 들렸다.
“출처가 어디야?”
“확인 중입니다.”
“공평동에서 흘렸어?”
“그것도 확인 중에 있습니다.”
장세룡이 그 말에 인상을 쓸 때, 인터폰이 울렸다.
- 의원님, 신경배 의원님께서 부르십니다. 고현기 의원님도 전화 바란다고 메모 남기셨습니다.
전 당대표이자 현 상임 고문의 6선 의원 신경배 의원, 그리고 전 최고위원이자 선대위 전략본부장인 고현기.
모두 친김계의 인사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연락이 왔다는 건 한 가지 이유 밖에 없었다.
이민수 영입설을 확인하고 질책하기 위한 것.
장세룡이 표정을 구겼다.
“알아서 할 테니까 놔둬.”
- 네, 의원님.
9급 비서의 대답이 끝나자, 장세룡이 눈앞의 보좌관을 쳐다봤다.
“언론보도 최소화해.”
“알겠습니다.”
“인턴은 잘라 버려, 사무실 입단속 시키고.”
인턴 비서가 외부 스케줄이 있었다는 말을 했고, 7급 비서가 없다고 한 바람에 논란이 심해진 상태였다.
보좌관이 얼른 허릴 숙였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그렇게 개인사무실 문이 닫힌 뒤.
장세룡의 표정이 더없이 무거워졌다.
기사 안에는 연천의 한 저수지가 자신의 낚시터였다는 사실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바로 백학 저수지.
그곳은 과거에 이용했던 낚시터가 맞긴 했으나, 휴학 중인 막내아들과 서너 번 가 봤던 장소일 뿐이었다.
한가할 때 다시 갈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최근에는 가지도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이민수를 만나러 그곳까지 간 것이었다.
그런 연천을 낚시터로 특정 짓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들이 아니고서야, 그걸 누가 안단 말인가?
장세룡의 미간이 더욱 구겨졌다.
의혹이 사실처럼 둔갑하는 일은 이미 종종 있었지만, 당사자만 아는 것이 기사화 되는 건 그도 처음이었다.
분명 명백한 공격이었고 방해였으나, 어떻게 보복해야 하는지 장세룡은 방도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저번 돈봉투 해프닝과 달랐다.
그때는 당원 하나의 말실수라는 자백을 받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권력이 움직인 결과였다.
지금은 공권력을 동원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기재된 사실도 자신만 아는 것이지 않은가?
그러던 중, 장세룡의 시야에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윤수혁.
보수 정치계의 루키이자, 속내를 알기 힘든 갑부.
그러나 그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전생에 인연이라도 되는지…….
“염병할.”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장세룡이 욕을 뱉는 무렵, 등록되지 않은 번호로 문자 한 통이 왔다.
[제안해 주신 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봉황탕 값은 다음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이민수의 말투가 장세룡의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허…….”
원래대로라면, 이민수는 보수와 새한국당에 대해 호의적인 말을 꺼내야 했다.
공개석상이든 비공개 자리든.
이후에 장 의원이 그 자료를 가지고 여론 조성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자신의 계파를 거수기로 삼아서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려는 작업.
11월 26일인 후보 등록일까지 아직 한 달 넘게 남아 있으니 작정하고 시도하려던 차였다.
킹메이커가 될 수도 있었다.
이후 국무총리나 겸해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하던 장 의원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 모든 게 어긋났다.
인상을 구긴 장세룡의 앞에 뜬금없는 윤수혁의 얼굴만이 아른거렸다.
‘이 무슨 개 같은…….’
장세룡은 그저 욕을 흘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 *
2012년 11월 1일 목요일.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의장석을 가운데 놓고, 반원 형태로 나열된 수백 개의 의석이 눈에 들어왔다.
내 자리는 앞쪽으로 한참을 내다 봐야 있었다.
의장석과 가깝고, 복도에선 먼 전형적인 초선의원 자리.
거기가 바로 내 자리였다.
내 좌우에도 마찬가지로 초선 국방위 위원들의 이름표가 있었다.
내 윗선은 뒷자리였다.
뒤로 갈수록 선수(選數)가 높아지는 게 관례 때문이었다.
재선 의원들, 상임위별 소위원장, 그리고 상임위원장과 3, 4선 의원 등등.
당연히 최고 선수의 원로나 당 지도부의 자리는 문 근처로, 본회의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소위 로얄석이었다.
지금은 비어 있었다.
초선 의원이나 입장하는 이른 시간인 탓이었다.
앉아 있는 사람 이래봐야 대부분이 초선이었고, 그나마 재선과 3선 의원 몇이 중간중간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옆 자리의 국방위 동료 의원과 인사를 나눌 무렵.
어수선해지더니 어느새 국회의장이 등장했다.
앞자리라서 역시나 의장의 헛기침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크흠,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제 11차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땅, 땅, 땅.
세 차례의 타봉 소리가 본회의장을 울렸다.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어수선했다.
수백 명을 등지고 있으니 뒤돌아 볼 순 없었지만, 계속해서 대화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와 모를 수가 없었다.
이윽고 대법관 임명동의안의 상정과 무기명 투표, ‘한글날’ 공휴일 지정촉구 결의안 의결과 휴회결의 등이 진행되었다.
다해서 20여분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는 짧은 일.
곧 5분의 자유 발언이 이어졌다.
“다음은 5분 자유발언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새한국당 고현기 의원, 앞으로 나와서 발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어선 국회부의장의 목소리에 고 의원이 단상에 올라섰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회 부의장님을 비롯한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경상북도 김천 출신 새한국당 고현기 의원입니다.”
목소리에 힘을 준 게 눈에 뻔히 보였다.
그가 나온 이유도 마찬가지로 눈에 선하게 보였다.
“저는 오늘 국정을 운영하고, 입법부를 대표하는 일원으로서,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비통하다는 말은 이해하기 쉬웠다.
새한국당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김정환은 불출마 선언을 했고, 대선 후보 추대 작업은 늦어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경선의 차순위를 대선 후보로 임명하자는 당규를 거부하고, 약식 경선을 치르자는 말과 지도부 합의를 거치자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유력 후보의 사퇴가 불러 온 춘추전국시대였다.
쉽게 말해 개판.
저마다 세력을 가진 지도부와 원로들이 여러 갈래로 갈렸기 때문이었다.
“여야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 비난을 삼가고, 순조로운 대선 진행을 위해 합심해야 합니다! 새한국당의 경선 차순위를 기록한 신경배 전 당대표님에 대한 모략을 삼가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할 수 있게 모두가 노력해 주십시오!”
웅변하는 듯한 말에 여기저기서 거친 언성의 말이 쏟아졌다.
야당의 질책, 그리고 같은 당의 역정.
그러나저러나, 지금으로서는 경선 차순위가 당규에 적합한 대선 후보긴 했다.
내가 봤을 때는 그놈이 그놈이여서 상관없긴 했지만.
5분의 자유발언 시간이 넘어갈 때까지 고 의원의 연설이 이어졌고, 오래지 않아 성토하듯 말이 멎었다.
이윽고 고 의원이 고개 숙였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청하진 않았지만, 초선의원으로서 열심히 박수를 쳤다.
이어서 신민주당과 새한국당, 무소속 의원의 5분 자유발언이 지나고 내 차례가 왔다.
“다음은 새한국당 윤수혁 의원, 앞으로 나오셔서 발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의장의 말에 단상으로 향했다.
많은 의원들이 거쳐 가고, 역대 대통령들이 서서 시정연설을 했던 그 자리에 처음으로 서게 됐다.
썩 기분이 좋았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부의장님, 그리고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새한국당 윤수혁입니다.”
짧게 묵례를 하고 시선을 들었다.
이제부터 내 쇼타임이었다.
사실은 당 지도부에게 원고를 통째로 검사 받고 올라온 것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 자리에 서 있었다.
그것도 원고 내용이 그들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올해 막판에 내 이름을 다시 한 번 알리고, 새한국당은 그 여파로 여론을 흔들려는 상충하지 않는 목적.
그게 잘 맞았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건 야당 의원의 비리를 까발리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저급한 비리.
지도부가 아주 좋아라 했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다시금 묘한 긴장감이 일었다.
기자회견하고는 또 달랐다.
여전히 부산스런 분위기가 풍겼지만, 어쨌든 수백 명의 국회의원들 앞에 서 있었다.
곧 나직하게 목소리를 냈다.
“말씀드리기에 앞서, 저는 올바르고 깨끗한 정치를 위해서 이 자리에 섰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 어떤 정치적인 관계와 불순한 의혹도 한 줌 없음을 밝히며…….”
아주 잠깐 말을 멈추고, 웅성거림을 느낀 뒤에 목소리를 냈다.
“현직 국회의원의 비리를 제보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