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17. 그놈이 그놈일까? (1)
서울 공평동, 이민수 대선 캠프.
“한 말씀만 해 주세요!”
“새한국당에 입당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민수 후보님, 새한국당과 접촉한 사실이 있으십니까!”
이민수의 등장에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아우성쳤다.
카메라에선 플래시가 터졌고, 녹음기와 마이크가 이민수를 향했다.
나와 있던 수십 명의 캠프 인원이 인간 바리케이드를 쳤다.
그중 선대위원장 박우식이 이민수를 향해 소리쳤다.
“후보님, 이쪽으로!”
사람에 치이던 이민수가 급하게 박우식의 목소리를 쫓아 사무실로 들어갔다.
곧 캠프 인원들도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고, 마지막 자원 봉사자가 문을 걸어 잠근 뒤에야 소란이 잠잠해졌다.
어느새 캠프 구성원들이 모두 이민수를 바라봤다.
새한국당의 러브콜이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박우식이 그들의 묘한 시선을 끊으며 목소리를 냈다.
“후보님, 저하고 말씀 좀 나누시죠.”
시선을 교환한 이민수가 위원장실로 따라 들어가자, 곧장 문이 닫히고 블라인드가 내려갔다.
박우식이 굳은 얼굴로 이민수를 쳐다봤다.
“후보님, 새한국당에선 따로 연락 온 거 있습니까?”
제일일보의 단독보도를 언급하자, 이민수가 고개를 저었다.
처진 눈초리에 불편한 기색이 스며 있었다.
“그런 일 없습니다.”
“그럼 아시는 건…….”
“모릅니다, 저도 이게 무슨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 위원장님은 아시는 거 없습니까? 새한국당 출신이시잖습니까?”
박우식이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전 새한국당 18대 국회의원이었으나, 뜻이 안 맞아서 나온 지 오래였다.
정확히는 계파 싸움에 밀려서 거의 강제 탈당 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무소속이었고, 19대 총선에서 낙마해서 민간인 신분이었다.
고개를 저었던 박우식이 입을 열었다.
“만약 그 기사가 진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짜라면…….”
이민수가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다가 박우식을 응시했다.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연구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위원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박우식이 미간을 좁혔다.
짧은 고민이 이어졌고, 그의 입이 느지막하게 열렸다.
“입당해도…… 나쁠 건 없습니다.”
“입당이라니요?”
“새한국당은 전국 곳곳에 영향력을 끼치는 거대 정당입니다. 인적, 물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거길 들어갑니까, 우리 슬로건이 새정치지 않습니까?”
“그럼 신민주당이 새정칩니까?”
야권 연대를 논했던 신민주당 소리에 이민수가 입을 다물었다.
신민주당도 새한국당과 마찬가지로 계파 싸움과 공천권 갈라 먹기, 지역구 지키기 등을 반복하는 정당이었다.
명백하게 구태(舊態)와 구정치 답습이 이어진 곳.
박우식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이 땅에 새정치는 후보님 혼자입니다. 그렇다고 선거까지 혼자할 순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고, 필요하면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민주당과 연대를 논의한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이민수가 근심어린 안색으로 길게 숨을 뱉었다.
이어서 머뭇거리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럼 홍보팀이 야권 연대 발표한 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조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새한국당도 그 조건만 지키면 됩니다.”
정치 쇄신과 구태 혁신.
그게 이민수 대선 캠프에서 내민 야권 연대의 조건이었다.
대외비로 의석 할당과 고위 당직 분배 등의 안건이 논의 되어야 했지만, 그건 후보 간의 문제가 아닌 단체 간의 문제였다.
이민수가 고심하는 사이, 박우식이 말을 이었다.
“새한국당도 그 조건만 지킨다면 안 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정 안 되면 당선 후에 탈당을 선언하셔도 됩니다.”
눈치를 살핀 박우식이 말을 덧붙였다.
“정 불편하시면 차선으로 생각해 두셔도 됩니다. 새한국당은 그냥 선택지로 남겨 두십시오.”
그제야 이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 선언을 했을 때, 그도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전국의 네트워크와 인력, 각종 인맥과 당의 서포트가 절실하게 필요했었다.
홀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이란격석(以卵擊石)이었다.
이윽고 결정을 내린 듯 이민수가 입을 열었다.
“……새한국당은 차선입니다.”
* * *
충남 계룡시, 공군본부.
국감이 거의 끝나갔다.
시간은 오후 다섯 시 반이 넘었고, 2차 질의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2분씩 주어진 질의가 늘어지자, 국방위원장 임청학 의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시죠?”
회장이 조용하자 임 의원이 지친 안색으로 국감 마무리에 나섰다.
주로 공군 사업의 예산과 관련된 국방위 소관 업무를 언급했고, 서면질의 제출과 답변서 작성에 관한 사항을 고지했다.
이윽고 임 의원이 의사봉을 들었다.
“……이상으로 감사 종료를 선포합니다.”
땅, 땅, 땅.
타봉 소리 뒤로 수고 했다는 인사와 함께 어수선한 잡음이 퍼졌다.
나도 옆자리 위원들과 인사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속내가 편하지 못했다.
제일일보의 단독 기사가 기억에 남은 탓이었다.
어떻게 김정환 후보가 낙마한 지 하루 만에 이런 게 기사에 났을까?
그것도 선대위 핵심 관계자라니.
원래라면 당 대표를 지냈던 신 의원이나 최고위원에 있던 3선 이상의 유명 의원, 혹은 5선이 넘는 원로급의 의원들이 대선 후보로 거론되어야 마땅했다.
그 안에 이민수 후보는 없었다.
이 후보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무소속의 박창일 시장과 연대했던, 중도와 새정치를 표방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17년도에는 새 정당에서 대선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새한국당이 먼저 엮다니…….
영 찜찜한 일이었다.
대강의 뒷정리를 하고 회의실을 나가려는데 임 의원이 다가왔다.
“윤 의원, 오늘 어디 안 좋아 보이네. 김정환 후보 불출마 선언 때문에 그래요?”
“그것도 있긴 합니다만…….”
“……?”
임 의원의 궁금하단 시선에 말을 이었다.
“제일일보 단독 기사가 신경이 쓰여서요. 저 때문에 당 내 분열이 생긴 건 아닌지…….”
염두조차 두지 않은 거짓말을 이유로 덧붙였는데, 임 의원도 잘 안다는 듯 작은 눈을 깜빡거렸다.
“아, 이민수 영입설?”
“예, 보셨습니까?”
“선수들이 당선 가능성보고 흘린 말이겠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선거를 할 줄 안다는, 자칭타칭 전문가라는 선수들이 있긴 했었다.
그래도 그걸 로는 납득이 어려웠다.
느낌이 꺼림칙한 탓이었다.
그렇게 회의실을 빠져나가는데, 임 의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서 윤 의원 생각은 어때요?”
“……이민수 후보를 입당시켜도 괜찮겠냐고 여쭤보시는 겁니까?”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임 의원이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사람은 이민수를 환영하는 걸까?
한 때 대통령직을 두고 반목했던 사이였는데.
나는 가벼운 잡념을 한 쪽으로 미뤄 두고 대답했다.
“좋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유가?”
“중도라고 해도, 보수보단 진보에 가까운 인사고…… 무엇보다 경력이 전무합니다.”
“그럼 누가 괜찮겠어요?”
“…….”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남들이 추대할 만한 후보들을 꿰고 있긴 했으나, 내가 낙점해 둔 후보는 없었다.
웬만한 후보들은 보수 욕 먹이고 지지율 깎아내릴 인사들이었다.
그래도 김정환 대통령보다는 낫겠지만, 어찌 됐든 내 계획표에 그들의 이름은 없었다.
내 손으로 목줄을 채울 수 없는, 기득권층이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되고 견고한 사회의 일부.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쳐 내는 것과 놔두는 것, 현재로선 그 둘이 전부였다.
중요한 건 지금의 상황이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점이었다.
두 달 밖에 남지 않은 대선 기간, 김정환 위주로 꾸려진 선대위, 후보 선발 문제 등등.
모든 게 적절치 못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어려웠고, 당선된다고 해도 임기 초부터 삐걱거릴 확률이 높았다.
그랬기에 나는 다음을 노리고 있었다.
집권여당이라는 막강한 이점보다는, 준비된 수권정당(受權政堂)의 모습을 갖추는 게 중요했다.
외모, 언변, 행실 등의 개인적인 요소부터 대외적인 지지율까지.
그걸 가져야만 했다.
어차피 황택근이나 이민수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여소야대의 형국이었다.
의석 수도 우리 당이 과반을 차지한 상태였다.
그건 새한국당의 위세가 한풀 꺾인다고 해도, 넘어질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사이에 임 의원이 묘한 얼굴을 해 보였다.
“왜요, 고를만한 후보자가 없습니까?”
묻는 얼굴을 보니 임 의원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그의 눈 안에 뭔가 있었다.
무슨 감정인진 모르겠지만, 조심스레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임 의원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려 하는데, 그의 입이 먼저 열렸다.
“우리 윤 의원이 야당을 자처하려는 것 같은데, 아니겠죠?”
순간 아차 싶어서 입을 열었다.
“……오해십니다.”
“그러다 스파이 소리 듣습니다.”
“스파이라니요?”
부정하기 위해 되묻자, 임 의원이 작은 눈을 더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깔깔이 비리 터뜨리고, 김정환 후보 증거까지 뿌린 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지금은 박 시장 만났다는 소문까지 돌아요. 오늘 아침에 들으니, 누가 해당(害黨) 행위라고 떠듭디다.”
“그게 무슨…… 정말 오해십니다.”
“당연히 다들 오해라고 생각할 겁니다. 윤 의원이 열심히 일하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 말에 내가 그간 뿌린 돈이 생각났다.
직접 건넨 돈이나 후원금, 지역구 단체 기부금 등등.
“근데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알지요?”
임 의원이 나직하게 말을 잇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위원장님께서 신경 좀 써 주십시오.”
“윤 의원이 처신 잘 하면 돼요.”
대답하며 임 의원을 보내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당을 위해서 뭐빠지게 뛰었는데 해당 행위라니.
사실 선당후사(先黨後私)가 아닌 선사후당이긴 했지만, 어쨌든 내 행동은 당익(黨益)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내 속을 까발릴 수 없으니, 아무도 알 진 못하겠지만.
역사가 뒤틀려도 나는 내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시켜야만 했다.
누군가 스파이라고 떠들지라도.
그 생각을 하는데, 문득 그런 인물들이 국방위에도 두엇 정도 있다는 게 떠올랐다.
친김계 인사들.
물론 김정환이 낙마했으니, 그들도 다른 주인을 찾아 움직일 것이었다.
원래부터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는 곳이 정치판이었다.
과거에 킹메이커로 불렸던 김윤환도 군부 독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자리를 옮기지 않았던가?
이후에 2.18 공천 파문으로 자신이 추대했던 당 총재에게 쫓겨났었고.
그게 이 바닥이었다.
앞서 간 의원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해당이니, 스파이니 하는 말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그런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했다.
가장 좋은 건 친김계를 싹 쳐 내는 것인데, 왠지 방도가 떠오를 것 같기도 했다.
그것도 이민수 영입 건으로.
* * *
경기도 연천, 고급 한식당.
방 안에 놓인 적갈색의 좌식 테이블과 금빛의 방석이 호사스러웠다.
곧 무소속 대선 후보 이민수가 적송으로 짜인 마루를 밟았다.
이미 자리해 있던 새한국당의 국회의원 장세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장세룡입니다.”
“네, 이민숩니다.”
이민수가 조금 굳은 얼굴을 한 채, 악수를 나눴다.
자리에 앉던 장세룡이 먼저 운을 뗐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사람들 눈도 피할 겸해서 일부러 먼 곳에 예약 했습니다.”
서울보다도 개성이 더 가까운 임진강 근처.
차에서 약한 멀미까지 한 이민수가 헛기침을 했고, 장세룡이 말을 이었다.
“음식은 지금 나올 겁니다. 봉황탕이라고, 잉어 맛이 아주 좋지요.”
“…….”
“못 드십니까?”
“아닙니다, 먼저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 말에 장세룡이 해 보라는 듯 눈짓을 했다.
“그 기사, 사실 맞습니까?”
자신을 원한다는 새한국당 핵심 관계자의 인터뷰, 바로 제일일보의 단독 보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세룡은 대답하지 않고 옆을 돌아봤다.
기다렸다는 듯 음식이 나오고 있었다.
각종 한약재가 들어간 오묘한 냄새가 풍겼고, 팔팔 끓는 소리가 방 안을 적셨다.
“봉황탕 나왔습니다, 식사 맛있게들 드세요.”
주인이 음식을 내려놓고, 공손하게 물러갔다.
장세룡은 자연스럽게 국자를 집었고, 이민수를 바라보며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게 중요한 겁니까?”
“…….”
이민수가 이해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봉황탕에 국자를 넣은 장세룡이 웃음기가 스민 말을 뱉었다.
“이렇게 만났으니 된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후보님이 마음을 좀 열었다는 게 중요하지요.”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봉황탕을 한 그릇 떠내고, 장세룡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드시면서 말씀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