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43화 (43/191)

# 43

13. 피아식별 (2)

그 말을 듣자마자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장 의원이 어디서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뭘 어떻게 알았고, 내게 바라는 대답은 뭘까?

카메라 셔터가 연속으로 눌리듯 온갖 추측이 이어졌고, 그 끝에 하나의 결과물이 남았다.

떠보고 있는 것이리라.

오늘 개인사무실에서 장 의원이 보여 준 행동과 말은 적을 향한 게 아니었다.

적이라면 가차 없이 응징하는 게 바로 장 의원이었다.

김추완을 쳐 낸 것처럼.

또한 내 머리통을 깼듯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속이 꿈틀했으나, 여태 그래 왔듯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리고 나직하게 대답했다.

“김추완 의원이라서 그랬습니다.”

“그래, 김추완.”

장 의원이 안다는 듯 대꾸했다.

당권을 노리는 차기 대권 후보.

나서서 앞잡이 노릇을 할 만한 가치가 있고, 수족을 자처할 만한 권위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장 의원 밑에서 개처럼 일했듯이.

그러나 여전히 차가운 시선이 날아들었다. 그의 말도 마찬가지였다.

“더 있잖은가?”

“…….”

“나를 어떻게 알고서?”

김 의원에게 직접 들은 것인지, 아니면 아랫사람을 통해 보고 받은 것인지, 그저 짐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확신은 아니었다.

확신이면 떠보는 행동이나 말은 필요 없었다.

오늘 의원실에서 내가 본 모든 건 떠보는 것들이었다.

갑작스런 전당대회 당비 지원도 그저 떡밥에 불과하고, 실은 내 입질을 확인하려 한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는 조금 늦게 입을 열었다.

기억을 헤집으며 그나마 나은 답을 찾고 있었다.

그에게는 망설임 정도로 비칠 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만 26세의 어린놈이었으니까.

“그게…….”

“말 해.”

“국회 비서로 일할 때 들었습니다.”

기대어 있던 장 의원이 상체를 꼿꼿하게 세웠다.

“뭘 어디서 들어?!”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의원님하고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네가?”

“예, 강남에 한주각이라는 곳에서…….”

구체적인 가게 상호까지 언급하자, 장 의원이 눈빛이 묘하게 바뀌었다.

“거기서 김추완 의원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2년 전.

내가 10년의 기억을 얻고, 최초로 장 의원을 만났던 때.

상납 대용으로 놔둔 현금 5천 만 원을 몰래 들고 나왔었고, 그 와중에 장 의원을 목도했었다.

얼마나 속이 끓어 올랐는지.

참은 게 용했었는데, 그 무렵의 장 의원은 내부자 정리를 위해 증거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장부도 꾸준히 쓰고 있을 것이었고.

어느새 장 의원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일러 바쳤다는 게지?”

“죄송합니다.”

그렇게만 대답하고 말았다.

말이 길어서 좋을 게 없었고, 장 의원도 더 이상 묻질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다가 찔러 보듯 묻는 게 다였다.

“그래서 이제 어떡하려고?”

그 말에 대한 답이 있었다.

나로서는 썩 하고 싶지 않은 말.

“의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한 번 보필해 보겠습니다.”

이미 당협위원장이니, 전략공천이니 떠든 상태였다.

아예 붙어먹는 그림이 나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라는 만화 대사도 있었고.

뭐, 나야 그냥 장단에 맞춰 준 것이긴 했지만.

가볍게 묵례를 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서슬 퍼런 시선이 조금 풀어져 있었다.

속내야 구렁이들이 얽히고설킨 뱀굴이겠지만, 표정만큼은 전보다 나아졌다.

이내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장 의원이 입을 열었다.

“윤 의원.”

“예, 의원님.”

“어린 나이에 눈치가 빠르네.”

허락처럼 들렸다.

나는 한숨을 뱉으려다가 꾹 참고, 눈치 빠른 애처럼 대답했다.

“돈 벌고 사회생활 하면서 조금 배웠습니다. 별별 사람들이 다 꼬이더라고요. 국회는 바깥보다 좁지만 더 복잡하기도 했고…… 그래서 공부 많이 했습니다.”

대화투자자문은 수백 억 자본금의 회사였다.

많은 사기꾼들이 선의를 가장하고, 성공한 사업가를 가장하며 다가왔었다.

물론 나는 그들을 굳이 구분하진 않았다.

오 대표 선에서 다 해결 되니까.

내가 하는 건, 오 대표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아이템을 확인하고, 주요 사업 몇 개를 컨펌하는 일이 전부였다.

대표직을 내려놓은 지금도 대주주로서 오 대표와 종종 사업 얘기를 하곤 했었다.

그사이, 장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긴 얘기를 나눌 자리도 아니고…….”

“예.”

“그래도 감춘 얘기 조만간 다 풀어놔. 묵혀봤자 썩는다. 알지, 윤 의원?”

그가 다 안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여태껏 내가 말을 아끼도록 일부러 두고 본 모양이었다.

말실수하길 바랐을까?

아니면 내 반응을 살핀 것일까?

추측 몇 개가 떠올랐지만, 그저 조용히 대답했다.

“예.”

“조만간 다시 보자고. 이왕 같이 가는 거 확실하게 가야지.”

저 놈의 확실이라는 말.

눈가가 절로 찡그려졌다가 금세 펴졌다.

내가 저 소리에 꾹 참고 자술서를 썼다가 죽었다.

죽빵을 갈기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찬가지로 지금 하고 싶은 말도 참아야 했다.

나중을 위해서, 장의원을 완전히 아작내기 위해서.

나는 인내하며 대답해 줬다.

“알겠습니다.”

장 의원이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다시금 턱짓했다.

“나가봐.”

* * *

장세룡은 윤수혁이 나간 문을 바라봤다.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웃긴 놈일세.’

윤수혁은 떡밥처럼 던진 전당대회 당비 지원을 정면으로 받았고, 김추완의 얘기는 꽁꽁 감추고 말을 아꼈다.

장세룡은 그런 윤수혁을 가만히 놔뒀다.

변명인지, 구실인지 들어 보기 위해서였고, 나중을 기약하며 회유하기 위해서였다.

첫 만남부터 목줄을 채워 버리면 빠져나갈 궁리만 하게 될 것이었다.

수십 마리의 개를 잡아본 장세룡은 잘 알았다.

갑작스럽게 목줄을 채우면, 개들은 앞발로 목을 긁어 대면서 낑낑대면서 거부했었다. 결국에 시간이 지나면 순응하는 듯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주인이 목줄을 잠깐이라도 풀면 달아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목줄은 강압적으로 채우고 묶든가, 교육을 병행하며 채워야 하는 것이었다.

그중 윤수혁은 후자였다.

생각보다도 쓸 만한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눈치도 있었고, 돈도 있었다.

더구나 오늘은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하기 위해 부른 날이었다.

더 이상 다그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윤수혁이 들어오기 전부터 목줄을 틀어쥐기 위한 방책을 생각해 두었으나, 다행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윤수혁은 적이 아니었다.

그럴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뭔가를 감추는 것 같았고 꿍꿍이가 따로 있는 듯했으나, 피붙이도 속내를 숨기고 사는 게 세상이었다.

어차피 속내에 관해서는 조만간 다시 만나서 얘기를 나누기도 할 예정이기도 했다.

신경은 쓰되, 끈덕지게 품고 있어야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장세룡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삑.

- 네, 의원님.

“이번 주 안에 식사 자리 잡아놔. 치바 호텔.”

- 몇 분으로 할까요?

“둘.”

- 알겠습니다. 그리고 30분 뒤에 기재부 장관하고 미팅 있으십니다.

“지금 나간다, 차 대기시켜.”

- 네, 의원님.

곧 있으면 9급 비서가 보좌관에게 보고하고, 빈 일정에 맞춰서 고급 식당을 예약할 것이었다.

그 사이 7급 수행비서는 지하 5층으로 구성된 신관 주차장에서 차를 빼와서 신관 앞에서 대기할 것이었다.

장세룡은 나갈 채비를 하다가 열쇠로 잠긴 사무책상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현금 뭉치 몇 개와 수십 그램 단위의 골드바, 시계 케이스와 각종 선물 상자가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위에 올려져 있던 수첩에 장세룡의 손이 닿았다.

새 것이었다.

표지는 흑갈색의 가죽이며, 손바닥만한 작은 사이즈였다.

작년까지 쓰던 것은 검찰 증거로 넘어가서 새로 산 것이었다.

이내 새 수첩의 표지를 넘긴 장세룡이 정장 안주머니에서 만 년필을 꺼냈다.

장세룡이 수첩의 첫 장에 글자를 눌러 적기 시작했다.

[YSH : 전대 당비 서포트, 치바 호텔]

한 줄을 짤막하게 적은 장세룡이 여백을 바라보다가, 만 년필 뚜껑을 닫았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4대 일간지의 타이틀에 큼직한 활자가 올라왔다.

[새한국당 전당대회 금품살포 의혹]

[8.20 전대 앞두고 돈봉투 살포 제보, 선관위 수사 착수해]

[신민주, “새한국당 전대 당헌당규 개정부터 잘못돼, 금품살포는 전부터 예견된 망조.”]

온갖 기사가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신민주당 대변인의 정론관 기자회견이 가장 보기 좋았다.

망조라니.

꼬투리 하나 잡으면 칼부림까지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새한국당이든, 군소정당이든, 정치판의 모든 단체가 마찬가지였다.

이슈가 되기 위해 난리를 피는 것.

그래서 좋았다.

자극적이면 언론에서는 더 크게 다루니까.

선관위와 경찰, 검찰 공안부에서 바쁘게 움직일 것이었다.

금품 살포 용의자로 지목된 새한국당 초선의원이나 전당대회와 관련된 인물들도 바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선 후보로 출마할 김정환 전 비대위원장도, 그의 오른팔인 장 의원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다들 비리 하나씩은 있으니.

그리고 잠시 뒤.

내가 기다리던 카톡 하나가 도착했다.

[장세룡 의원님 방에서 약속 취소한다는 연락 왔습니다.]

박 보좌관이 보낸 것이었다.

픽하고 웃음이 났다.

뒷얘기를 풀어 놓고, 전당대회 당비 지원에 관해 논의하자던 장 의원이 전당대회 금품살포 기사에 재빠르게 움직인 것이었다.

눈치 빠른 인간이니 오래지 않아서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될 것이었다.

금품살포가 아니었다.

그저 출판기념회 초대장을 돌린 해프닝에 불과한 사건이었다.

그것도 이미 열흘 전에 발생한 일.

내가 제보한 것이었다.

선관위와 경찰, 검찰에 익명으로 투서했고, 동시에 언론사에도 제보장을 뿌렸다.

이유는 하나.

장 의원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뒷얘기를 풀어 놓거나, 전당대회 당비 지원을 할 생각도 없었다. 장 의원도 굳이 집요하게 들러붙질 않았다.

아마도 내가 제 손바닥 위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그래서 며칠 기다리면서 적당한 변명거리를 골라본 것이었다.

장 의원이 약속을 취소하게끔.

그 사이, 차가 멈춰 서면서 영석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원님, 도착했습니다.”

차창 바깥을 보자, 건물들 틈으로 번듯한 빌딩 한 채가 보였다.

최근에 신축한 듯 외벽에 붙은 석재가 번지르르했다.

“좋은데?”

“네, 조 대표가 사무소를 잘 선택한 것 같습니다.”

조컨설팅의 조양준 대표가 내 이미지와 홍보를 위해서 계약을 이행한 첫 결과물이었다.

사무소 위치선정, 현수막 디자인, 간판 제작, 사무소 개소식 행사 계획 등등.

당연히 비용이야 내 주머니에서 나갔고.

나는 건물 중간 즈음 걸려 있는 기다란 플래카드를 바라봤다.

[새한국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윤수혁 사무소 개소]

이게 내 강북구을 사무소이었다.

이 근방에 강북구을 출신의 신민주당의 재선의원이 사무소를 갖고 있다는데, 그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20대 총선에서 낙선할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 핸들을 쥔 영석이를 불렀다.

“너는 사무소 개소식 하는데 차에 있게? 동생이란 놈이 그럴 건 아니지?”

“아닙니다, 의원님.”

영석이의 대답에 옅은 웃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백미러로 영석이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같이 가자. 차 주차장에 세워.”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 필요한 데 써라.”

나는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서 보조석에 놓았다.

핸들을 틀던 영석이가 멈칫했다.

“너 6월생이잖아, 생일 지나간 거 미안해서 그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내가 너랑 일한 지 1년 반 동안 월급 말고 준 게 뭐 있어. 그냥 받아둬.”

영석이가 망설이고 있지만,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지금 7급 비서로 받는 월급은 대화투자자문에서 받던 것에 비하면 절반짜리나 다름없는 월급이었다.

씀씀이 차이에 한창 힘들 게 뻔했다.

나도 그걸 염두에 두고 준 것이었다.

“내가 선물 사주고 싶은데, 못 사서 그래. 그냥 받아.”

“……고맙습니다.”

재차 이어진 내 말에 영석이가 고개까지 숙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고맙긴.”

이로서 영석이의 대학등록금에 다시 수백만 원이 더해졌다.

이건 단순히 돈이 아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구원이었다.

뭔가가 가장 필요할 때, 필요한 뭔가를 줬다.

충성심이 얼마나 될지.

내심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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