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42화 (42/191)

# 42

13. 피아식별 (1)

10분의 쉬는 시간은 기자들의 취재 시간이었다.

기자들은 내게 비리의 구체적인 경위를 물었고, 제보자나 용의자의 신상에 관해 집요하게도 물어 왔다.

나는 10분이 다 되기 전에 공손하게 목소리를 냈다.

기자는 상대적인 갑이었다.

유권자를 대하는 것보다 더 수그려야 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1부에 관련 증거를 전부 넘겼습니다. 이 이상은 함부로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뒤편에서 눈치를 보던 대위 출신의 5급 비서관 송병익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제가 관련 질문 대신 받겠습니다. 이번 사건 조사한 송병익 비서관입니다.”

역시 빠릿빠릿했다.

자리를 피하겠다는 내 의도를 알고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대신 맞이하는 것이었다.

나도 화장실은 다녀와야 했기에, 송 비서관과 바통을 터치하고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화장실로 들어가자, 손을 닦고 있던 국방위 위원장 임청학 의원이 나를 쳐다봤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려던 찰나.

“윤 위원.”

임 의원이 물을 틀어 놓은 채, 나를 불렀다.

“예, 위원장님.”

“그거 확실한 겁니까?”

방금 말한 깔깔이 비리 사건을 묻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그러면은 미리 언질이나 좀 주지 그랬어요? 같은 국방위 식구끼리.”

태연한 말에선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질 않았다.

불퉁한 것 같긴 했지만.

그 외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작은 눈 때문에 시선이 어떤지 알아보기도 힘들었고, 임 의원 자체가 원래 무감정한 사람인 탓에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질의서 준비할 때만 해도 확신하질 못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말이라도 흘려요, 나한테는. 명색이 위원장인데 후배 의원 뒷수습이나 해서 되겠어요?”

“주의하겠습니다.”

“혈기가 넘치는 건 내 잘 알겠는데, 잘못해서 역풍 불면 어쩌려고 그래요?”

내가 곧장 대꾸하지 않자, 그가 말을 이었다.

“좀 있으면 개회 할 거니까 일 보고 얼른 들어와요.”

“예, 위원장님.”

대답하고 고개를 드는데, 묘한 여운이 돌았다.

그래도 한 때 대권후보였던 사람이었다. 또한 친김계와 반목했던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 덕에 전국적인 유명인이 됐었고.

물론 과거나 현재가 아닌, 국회 하반기부터 시작해서 수년 뒤에 벌어질 일이었다.

아마도 지금 즈음이면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했을 터였다.

친김계와의 거리도 벌어질 것이고.

그 결과, 임 의원은 19대 국회 하반기에는 위원장 후보나 주요 당직에서 밀려나 그냥 국회의원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딴생각이 났다.

임 의원을 내 칼잡이로 쓸 순 없을까?

내가 친김계를 직접 해체하는 게 아니라, 임 의원을 데려다 쓴다면?

남는 장사였다.

일단 똥물을 피할 수 있었다.

싸움판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네거티브나 인신공격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었다.

원래는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친김계의 목을 쳐낼 생각이었다.

그 생각에 소변을 보고, 손을 닦으면서 계획을 떠올려 봤다.

당장 뭐가 반짝하진 않았으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임 의원은 친김계와 반목할 사람이었으니, 내 공격수로 꼬드겨봐야 할 일이었다.

건조기에 손을 넣고 말리는데,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송 비서관이었다.

[의원님. 위원장님이 복귀하라고 하십니다. 개회하신 답니다.]

그럼 일단 들어가야지.

* * *

장세룡이 눈매를 좁혔다.

프린트 된 인터넷 신문에 실린 타이틀 때문이었다.

[국방부 납품 비리 속보]

[새한국당 윤수혁, 깔깔이 납품 비리 직접 검찰에 수사 의뢰해]

아직 몇 개 없는 기사 내용이었으나, 장세룡은 인쇄물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내 시선을 든 장세룡이 맞은편에 선 보좌관을 향했다.

“딴 건 더 없나?”

“검찰 쪽에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거기도 이제야 수사 착수를 한 상태라…….”

보좌관의 대답에 장세룡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검찰도 모르는 걸 먼저 팠다?’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국방위원회 위원이라는 금배지를 달고 있으니, 소관부처에서는 왕놀이도 할 수 있었다.

불편하고 마뜩잖은 상황을 보게 되면 상설 청문회나 위원회 회의에서 소관부처장을 불러서 갈구면 될 일이었다.

회의장에서 제대로 된 답변과 대책을 요구하면, 부처장은 반드시 대답을 내놔야 했다.

그러나 그게 한계였다.

과오의 공론화, 질책과 자료 요구.

그 이상은 국회의원이 직접 하기에는 힘든 일이었다.

굳이 한다면, 인맥을 동원해서 뭔가를 할 수는 있겠지만, 비리를 밝혀내는 건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나 펜을 무기로 삼은 기자들의 몫이었다.

내부자들만 알만한 비리를 무슨 수로 국회의원이 알아낸단 말인가?

장세룡은 테이블에 올려놓은 윤수혁의 기사로 시선을 내렸다.

‘전 장관과의 인맥과 비리 제보라…… 능력이 있긴 있네. 금력(金力)인지, 딴 능력인지는 몰라도 여튼 비상하다, 그거지?’

이내 보좌관을 바라본 장세룡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윤수혁 동향 파악해. 사찰 같은 소리는 안 나오게.”

“예, 의원님.”

보좌관이 공손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장세룡은 곧 스마트폰을 꺼내서 연락처를 확인했다.

이내 번호 하나를 고르고 통화 버튼까지 눌렀다.

오래지 않아서 중후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 어, 장 의원.

“상철아, 더 나온 건 없냐?”

- 무슨…… 아, 윤수혁?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5선 의원인 김추완을 쳐 내기 위해서 모였을 때, 장세룡이 김상철에게 윤수혁에 대해 알아 봐 달라고 했었다.

“종이 몇 장 퀵 보낸 걸로는 모자라. 그걸로 퉁칠 생각하면 안 돼.”

- 알아보고 있는데, 그거 말고 더 안 나와. 새파랗게 어린 초선인데, 있긴 뭐가 있겠어?

“너 아직 기사 안 봤냐?”

- 무슨 기사?

“그 새파랗게 어린 초선이 국회의사당에서 국방부 비리 터뜨렸어, 남부지검에서 이제야 수사 준비한다.”

- 오늘?

“그래, 국회의원 배지가 암행어사 마패도 아니고…… 초선이 뭐라고 수사기관보다 앞서? 이게 무슨 경우야?”

그 말에 김상철의 목소리가 더디게 전해졌다.

- 아…… 그래도 여기서 더 할 게 없다. 압수수색을 하던가, 뒤에 꼬리 붙여야 돼. 방법 더 없어.

장세룡이 미간을 좁히는 사이, 김상철이 설명이라도 하는 듯 말을 이었다.

- 둘 중에 뭘 해도 걸리면 7급 주무관 사찰한 거랑은 급이 달라. 잘못되면 내 선이나 박 변 선에서 커버 못 친다. 국회의원 배지가 마패는 못 돼도, 장식은 아니잖냐.

김상철이 장세룡의 성미를 짐작하며 말했다.

사학재단과 재벌집단 사이에서 자란 장세룡은 권력과 권위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김상철도 대검 차장까지 지냈지만, 장세룡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갔다.

괜히 스파크라도 튀기면 피해 입는 쪽은 자신이었으니까.

어느새 고심하던 장세룡이 간결하게 대꾸했다.

“알았다.”

- 그럼 깨끗하게 접는다.

“다음에 밥 살게, 로펌 임원들하고 날짜나 맞춰봐.”

- 고맙다, 금방 연락 줄게.

장세룡이 전화를 끊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윤수혁의 이름이 실린 기사가 놓여 있었다.

‘적인지, 아군인지 확인은 해야 되겠는데 거, 참…….’

잠깐의 생각 끝에 장세룡이 인터폰을 눌렀다.

- 네, 의원님.

“윤수혁 불러 와.”

용건만 마치고 입을 닫은 장세룡이 의자에 기댔다.

그의 머릿속에는 본능적으로 윤수혁을 엎어뜨릴 숱한 방법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왠지 윤수혁이 아군 같지가 않은 탓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보병이 아닌, 공수부대나 수색대, 혹은 특작부대 같은 적.

장세룡은 상상이 지나치다고 여겼으나, 쓸 만한 카드 고르기를 멈추진 않았다.

윤수혁은 당 내 실세였던 김추완과 만났고, 전 장관인 안순익과 커넥션을 유지하는 수천억 대의 자산가였다.

최소한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 * *

박 보좌관에게 카톡이 왔다.

[장세룡 의원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회의 끝나고 바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장 의원.

그가 눈치챈 것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확신하는 것일 터였다. 확신이 아니라면, 확신하기 위해서 날 부르는 것일 수도 있었고.

이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이른 시기였다.

안 그래도 임명장 수여식 때 장 의원이 방문한 게 신경 쓰여서 일부러 피해 다니던 중이었다.

애초에 나와 김추완의 관계를 짐작했으면서도 여태 별다른 일이 없었던 게 불안하기도 했고.

분명 무슨 신호가 있어야 하는데 여태 없었다.

아마도 그 신호가 카톡의 호출로 나타난 것이리라.

한숨이 나왔다.

아직은 만날 때가 아니었다.

장 의원에 비해서 힘이 많이 딸렸다.

내 곁에 서줄 사람들도, 인맥도, 직접적인 권력도 부족했다.

가진 건 내 기억과 장부 스캔본이 전부인데 이걸로는 장 의원을 공격할 순 있어도, 몰락시킬 순 없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장 의원이 원하는 대로 져 줘야 했다. 안 그러면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그사이, 국방 위원장인 임 의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전체회의는 내일 오전 10시, 소위원회 구성의 건과 방위사업청 소관 업무보고를 위해 개회할 예정입니다. 이만 산회를 선포합니다.”

땅땅땅.

의사봉 때리는 소리가 들리고,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선배 의원들의 칭찬과 호기심 어린 질문을 미리 막았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장세룡 의원님께서 부르셔서…….”

나는 장 의원을 이름을 대는 어린 의원을 흉내 내고, 자리를 떴다.

늦어서 좋을 게 없었다.

이 인간 성미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나였다.

늦지 않게 국회의사당을 나와서 신축한 의원회관, 그것도 명당으로 꼽히는 6층에 들어섰다.

그중 장 의원에 방에 가자, 비서가 기다렸다는 듯 개인사무실에 노크했다.

이윽고 비서가 문을 연 뒤.

나는 장 의원의 개인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비례대표 출신 윤수혁입니다.”

선배 의원들에게 하듯 인사하고 고개를 드는데, 장 의원의 턱짓이 보였다.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아랫사람에게는 철저히 군림하는 모습.

선수(選數)와 경로 사상이 기저에 깔린 국회의원 본연의 모습이 드러났다.

더구나 장 의원은 재벌집안과 사학재단 사이에서 고고하게 자란 인간이었다. 공개재산이 천억대는 아니지만, 수백억이 넘는 자산가였다.

돈이라면 내가 그보다 많긴 했지만, 그건 공개재산일 뿐이었다.

장 의원의 비밀 금고에는 더 쌓여 있을 것이었다.

페이퍼 컴퍼니며 차명계좌에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고.

지금 그는 명백히 내 윗사람이었다.

일단 턱짓을 따라서 응대용 소파에 앉는데, 송곳처럼 장 의원의 말이 날아들었다.

“전당대회에 당비 지원 좀 하게.”

움찔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음 달 말에 전당대회가 있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교류도 없던 내게 뜬금없이 전당대회를 지원하라는 건 떠보려는 수작이었다.

내가 대꾸를 안 하자, 장 의원의 목소리가 금세 이어졌다.

“왜, 싫은가?”

“아닙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초선 풋내기를 흉내 내며 눈치를 보는데, 소름이 돋았다.

장 의원의 눈빛이 너무나도 예리했다.

내 눈알을 뚫을 것 같았다.

이미 내 속을 반 즈음 아는 눈치였다. 어쩌면 그보다 많은 것을 아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제 포지션을 바꿔야 했다.

장 의원이 나를 아는데, 순수한 비례출신의 청년을 연기할 순 없었다.

연기를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겠지.

나는 늦지 않게 입을 열었다.

“의원님.”

“말 해.”

“제가 당비를 낸다면 뭘 받을 수 있습니까?”

“뭘 받고 싶어?”

장 의원이 태연하게 물어 왔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리라고 이미 짐작하고 있던 사람처럼 보였다.

장단에 맞춰 줘야만 했다.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서 더 이상의 방법도 없었다.

“……강북구을 당협위원장이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다야?”

장 의원이 되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16년 총선 때 강북구을 전략 공천까지 해 주셨으면 합니다.”

일부러 오버해서 말했다.

16년 전에 친김계는 파탄이 날 것이었다. 내게 공천을 줄 힘도 없을 테고.

하지만 이게 장 의원이 바라는 것일 터였다.

애초에 당협위원장 자리는 전당대회 당비 지원에 비해서 너무 가벼웠었다. 당협위원장이 아무리 공천 후보 예비자라고 해도, 공천을 받는 것과는 천지차지였다.

그러던 중, 그가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장 의원은 자신의 허벅지까지 쳐가면서 한참을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는데, 오래지 않아 웃음이 그쳤고 장 의원의 입이 열렸다.

“이럴 거면서 김추완이한테 내 얘기는 왜 흘렸어?”

장 의원이 눈빛이 싸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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