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41화 (41/191)

# 41

12. 개원 (3)

조컨설팅의 조양준 대표는 실력이 우수했다.

상대성 평가나 절대등급이 없어서 내가 말한 최고라는 걸 증명할 순 없지만.

조 대표는 전직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실무를 봤었고, 작년 서울시장 선거에선 캠프의 한 파트를 맡았었다.

그 결과는 당선.

앞으로 5년 뒤에 있을 대통령 보궐 선거에서도 조 대표는 대통령을 당선시킬 것이었다.

그 덕에 청와대에선 조 대표를 홍보비서관으로 낙점했었다.

공무원 급수로 1급에 해당되는 대통령 직계라인.

경력이나 정계 진입에 도움이 되는 길인데, 조 대표는 정치컨설팅 판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알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알만했다.

조 대표는 정치컨설팅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었다.

정치 컨설팅 설명을 더하는데, 그의 활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계약서를 한 차례 살핀 뒤, 조 대표의 말에 끼어들었다.

“말씀 감사합니다만, 제가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계약서는 봉투에 담아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변호사하고 다시 검토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대강 자리를 마무리하는데, 조 대표가 일어나면서 말을 흘렸다.

“재선도 생각하시죠?”

지나가는 듯한 말에 픽하고 웃음이 났다.

“어떤 것 같습니까?”

“왠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윤 의원님은 파악이 좀 어렵네요.”

눈치도 제법 괜찮아 보였다.

나는 재선을 위한 행동을 하면서도, 재선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움직였다.

애초에 ‘재선’이라는 대가를 바라는 국회의원은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었다.

유권자는 겸손하고 성실하고, 유능한 인재를 좋아했다.

대가는 그 안에 없는 단어였다.

나는 조 대표에게 가볍게 웃어 주었다.

“열심히 할 뿐입니다. 사명감을 가지신 의원 분들도 계시잖습니까?”

내 말에 조 대표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질도 거부하고, 재선에도 애쓰지 않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여야를 떠나서 나라를 위해 개인을 내던지는 이들.

나도 그렇게 보일까?

조 대표는 나를 배웅하면서 고개 숙였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조컨설팅 사무실을 나왔다.

입구에 차를 대고 있던 영석이가 뒷문을 열었다.

뒷자리에 오르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옷에 들러붙었던 더위를 몰아냈다.

그러나 한숨을 돌리고 쉴 때가 아니었다.

얼마 뒤면 제 310회 1차 국방위원회 회의가 열릴 것이었다.

소관부처인 국방부와 병무청의 업무보고를 받고, 동시에 질의도 해야 했다. 내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의원들이 하는 말도 알아들어야 해서 봐둬야 할 게 많았다.

더구나 언론에서 이슈가 된 신형 전투복 개발과 운동화 지연 지급 같은 문제도 걸려 있었다.

그것 말고도 갈굴 만한 것이 없진 않았다.

애초에 국방부는 일을 제대로 해도 본전치기가 어려운 정부부처였다. 거기에 더해서 담합이나 청탁, 각종 비리가 넘치는 곳이었다.

폐쇄된 탓에 그런 곪은 부분이 터지지 않는 이상 외부에 드러나지도 않았고.

나는 그런 국방부에 칼을 박아 넣을 생각이었다.

죽진 않겠지만, 꽤 아픈 상처.

국방위원회를 줄줄이 꿰거나, 국방부를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나도 조금 알았다.

그걸 쓸 생각이었다.

* * *

2012년 7월 24일, 국회의사당.

국방부 차관이 국방위 위원들의 질의에 힘겹게 대꾸하고 있었다.

관례상 받아 놓은 질의서를 보고 있긴 했으나, 곤혹스러운 질문을 피하거나, 면피용 대답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생중계용 국회 카메라가 돌고 있었고, 기자들이 카메라를 든 채 아직도 회의장에 남아 있었다.

어느새 새한국당의 사령관 출신 재선의원이 질문을 이어 갔다.

“그리고 운동화를 현행 한 족에서 두 족으로 추가 보급하겠다는데, 그게 적합하다고 생각합니까?”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국방부 차관이 대답하자, 기다렸다는 듯 재선의원이 물었다.

“국방부 차관께서는 기획예산처에 근무하셨고, 군 생활도 방위로 끝내서 모르시는 것 같은데, 간부 보직 중에는 운동을 일절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십니까?”

“죄송하지만, 간부 보직을 전부 알지는 못합니다.”

“그건 틀린 답변입니다. 운동 못하는 보직도 있는데, 운동화를 두 족씩 보급해서야 되겠습니까?”

“그 부분은 돌아가서 면밀히 검토를 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검토를 합니까? 미국이나 독일, 러시아를 가도 전부 초도 보급만 하지, 구매보급이 기본입니다. 우리나라 간부들도 피복구매권이 다 있습니다. 차라리 PX에 깔아두면 낫지 않겠습니까?”

“네, 위원님. 그 부분은 면밀히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차관은 순순히 대답했다.

상대는 중장 출신의 재선의원이었고, 자신은 장관 대리로 나온 샌드백이었다.

또한 재선의원의 말대로 그는 방위 출신이었고, 기획예산처에서만 십수 년을 근무해서 국방부 업무를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오늘도 미리 받은 질의서가 아니었다면,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장관 대리로 참석했던 차관이 한숨을 삼켰다.

이윽고 질의 순서가 흘러서 신민주당이 질의하고, 1차 질의가 말미에 다다랐다.

국방위 위원장이 마지막 차례인 윤수혁을 바라봤다.

“존경하는 윤수혁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

수십 번의 ‘존경하는’을 가져다 쓴 위원장의 말에 윤수혁이 마이크에 입을 댔다.

“그럼 차관님께 질의하기에 앞서서 존경하는 동료 의원님들의 질의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위원장이 번거롭단 눈으로 윤수혁을 봤으나, 윤수혁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먼저 이왕호 위원님, 운동화 두 족 추가 보급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이 있는데…… 전제가 많이 잘못됐습니다.”

사령관 출신의 이왕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운동화는 일과 이후 환복하면 신게 되는 것이지, 운동할 때 신는 전문 운동화가 아닙니다. 그리고 미군과 비교하셔도 안 됩니다. 미군은 이등병이 한화로 약 200만원을 받고, 우리나라 부사관은 100만원 좀 더 받습니다. 중요한 건 모병제고요. 또 운동화는 약 45만 명인 병사들이 주로 신는 것이고, 간부들은 다들 사서 신습니다.”

위원들의 말을 요약하고 체크했던 윤수혁이 서류를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왕호 위원님께서는 사령관으로 전역하셔서 모르시는 것 같은데, 병사들은 운동화 두 켤레도 많이 모자랍니다. 그리고 한 달에 몇만원 받는 걸로는 살 수도 없고요. 또 존경하는 신민주당의 김철웅 위원님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

그렇게 윤수혁이 네댓 명의 위원을 지적했다.

국방부 차관은 그다음이었다.

차관은 윤수혁이 준 질의서를 확인했다.

이미 앞에서 지적한 것들과 중복되는 게 대부분인 질의였다.

신형 전투복의 재질과 비용, 성능 등에 관한 답변도 다 마친 상태여서 차관은 한시름을 놓았다.

하다못해 전투복에 달린 품질표시 라벨로 갈리기까지 했다.

더 이상은 까려도 깔게 없을 정도였는데, 윤수혁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회의 중에 새로 들어온 자료가 있는데…… 아주 중요한 사안이라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제 보좌관에게 지시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검찰과 수사라는 단어에 사람들의 시선이 윤수혁에게 쏠렸다.

남아 있던 기자 한둘은 바로 카메라를 들어서 윤수혁을 렌즈에 담았다.

“납품업자로부터 국방부 직원이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익명의 제보가 있었습니다.”

* * *

제보자는 익명이었다.

미래의 윤수혁이라고 할 순 없었으니까.

어쨌든 전에 알고 있던 기억을 토대로 여기저기서 정보를 모았고, 제대로 된 증언까지 한두 마디 수집했다.

거기에 들어가는 노력이나 시간은 아주 적었다.

전에 비서 생활 할 때 이리저리 발품팔고 뛰어다닌 것에 비하면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내 직책이 국방위 위원이었다.

국방부나 방위사업청, 군수품 납품업자들은 속되게 표현하자면, 내 밑이었다.

내가 그들에게는 상급자였고, 감사였다.

그리고 대위 출신의 5급 비서관도 장교 출신답게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노련하게 괴롭히고 회유했다.

그러면 웬만한 사람들은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국회의원도 멘탈 관리를 못해서 부지기수로 자멸하는 마당에 일개 납품업자가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모두가 보통 사람이었다.

어느새 기자가 플래시를 터뜨렸고,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깔깔이라고 하죠, 방한용 내피. 바로 이 내피의 원단을 납품하는 업자가 수년 동안 원가를 속이고, 이중으로 장부를 관리했습니다. 물론 국방부 직원이 그 과정에서 감사를 봐주고,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았고요.”

사실 1, 2억에 불과한 돈이었지만, 좀 있어 보이라고 수억이라고 말했다.

어느새 카메라를 놓은 기자들은 핸드폰을 꺼내서 어디론가 바쁘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위원들은 놀란 얼굴이었고, 국방부와 병무청 등에서 나온 국장급 이상의 고위직 간부들은 웅성거렸다.

“차관님,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까?”

얼이 빠진 차관을 향해 질문했다.

어차피 올해 말 즈음에 차관은 물론 장관까지 이 사건으로 탈탈 털릴 예정이었다.

그가 주춤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사안은……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확인된 바가 없으니…….”

“제가 직접 확인한 겁니다. 납품업체 네 곳을 돌았고, 국방부와 방위사업청도 다녀왔습니다.”

“음…… 네, 그래도 저희 측에서도…….”

“차관님!”

돌연 목소리에 힘을 주자, 차관이 말을 잇다가 움찔했다.

“바로 작년에도 신형 깔깔이 비리가 있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비리 형식은 알고 계십니까?”

“아…… 어떤 형식을 말씀하시는지.”

차관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뜬금없이 비리 제보를 언급하니 속이 타들어 갈 것이었다. 뒷자리에 있던 실무진들도 비슷해 보였다.

이미 대다수의 실무진들은 죄다 핸드폰을 붙잡고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들과 엮인 업체를 점검하거나, 지인에게 알려 주는 것이리라.

나는 말을 이어 갔다.

“자체생산을 조건으로 한 계약을 무시하고, 납품업체에서 이중장부를 만들어서 외부업체에 저가로 발주했었습니다. 이 때 국방부에선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십니까?”

“음…… 구체적인 부분까지는 제가 확인을…….”

나는 차관을 무시하고 뒷 줄의 실무자를 봤다.

“여기 나오신 담당자 중에 아시는 분 계시면 대신 답변하십시오.”

내 말에 방위사업청의 국장 한 명이 슬그머니 마이크를 잡았다.

국장이 긴장한 얼굴로 나를 흘깃 보고 대꾸했다.

“계약을 해지하고, 일반경쟁으로 전환해서 새 업체와 계약했었습니다.”

“납품업체 전부와 계약 해지했고, 새 업체들로 교체 했습니까?”

“한두 곳만…….”

“총 세 곳 중에 한 곳입니다. 나머지 두 곳은 계약 조건을 변경해서 다시 계약했었습니다. 이게 지금 제대로 된 해결책입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처리가 완료되어서…….”

“국장님! 공무원들은 업무 지시 어기고 막대한 손해를 유발해도 봐줍니까? 어느 단체에서 그렇게 한답니까. 다시 지시하면 그만입니까?”

책상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에서 카톡이 왔다.

[의원님, 조금 더 흥분하셔도 됩니다. 혈세와 국가 안보 언급하시는 게 효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박 보좌관이었다.

생중계 중인 회의를 보면서 그가 첨언해 준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 보다 자극적인 어휘를 선택했다.

이내 박 보좌관으로부터 좋다는 카톡이 왔고, 오래지 않아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가 꺼졌다.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위원장이 서둘러 추가 질의 순서를 정하고 진행했지만,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진 않았다.

언제 온 것인지 회의장에 기자들이 늘어나 있었다.

결국 위원장이 힘든 듯 입을 열었다.

“기자분들께서도 많이 오셨고, 소란스러운 관계로 10분간 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윤수혁 위원님이 제기한 문제는 검찰 수사에 들어갔다고 하니, 나중에 다시 언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럼 정회를 선포합니다.”

땅땅땅.

의사봉 때리는 소리에 기자들이 일시에 내 쪽으로 몰려왔다.

간만에 받는 확실한 스포트라이트였다.

내 비리 제보가 세긴 좀 센 모양이었는데, 굳이 비리 제보를 하지 않았어도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 같았다.

위원들 상태가 생각보다도 영 좋지 못했다.

차관이 장관 대리로 온 것도 모른 채 보좌관이 써 준 질문을 그대로 읽거나, 다른 위원이 했던 질의를 반복하기도 했었다.

한둘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랬다.

그사이, 몇 번이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러다가 혼자 난리를 쳤다고 위원장이나 선배 의원에게 꾸중을 들을 것 같았으나, 상관없었다.

나를 커버해 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안 고문이 약을 치기도 했고, 내 주위에 알아서들 모여 준 덕분이었다.

나는 곧 기자들이 쏟아 내는 질문에 입을 열었다.

“먼저 제일일보 기자님 질문에 답변하겠습니다.”

내 국회는 이제 개원했다.

0